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1)貊族,고구리,발해

압록과 고려의 북계

자연정화 2022. 2. 21. 02:00

압록과 고려의 북계

 

출처 : 윤한택/복기대 외, 2017

 

윤한택/복기대 외, 압록과 고려의 북계, 주류성, 2017

 

. 고려 서북 국경에 대하여 - 윤한택

고려의 서북 국경에는 두 개의 압록강이 있다. 국경선으로서의 압록강(鴨淥江, 현 요하)과 후방방어선으로서의 압록강(鴨綠江)이 그것이다. 또 국경선 압록강의 거점 도시는 보주였고, 후방방어선 압록강의 그것은 의주였으며, 보주는 의주방어사가 관할하고 있었다. 고려의 서북 국경선은 고려 전체시기를 통하여 변함없이 압록강(鴨淥江, 현 요하)이었지만, 이러한 서북 국방 방어체계가 성립한 것은 요와 금의 교대시기인 12세기 초반이었다.

 

. 고려 윤관이 개척한 동북9성의 위치 연구 - 이인철

동북9성의 위치는... '함흥평야 일대설', '길주 이남설', '두만강 이북설' 등 여러 주장들이 대립하는 상황... 본 논문에서는 이들 문헌자료들의 거리와 지명 등을 근거로 현지를 답사하여 고증한 결과, 동북 9성 위치를 비정하는 주요 지명인 공험진과 선춘령은 두만강 이북에 위치했었음을 분명하게 확인 할 수 있었다. ... 동북9성이 고려 및 조선초기에 두만강 이북 현재의 흑룡강성 수분하 일대 및 연변 등 길림성 일대의 지역에 있었다는 인식을...

 

. 서희 개척 8주의 위치에 대한 재고찰 - 남주성

고려와 거란군의 군사행동을 요령성으로 옮겨보면 지리적으로 상당부분 부합된다. 따라서 서희 장군이 개척한 8주는 ... 요령성 요하 상류의 남쪽 개원시 일대와 요양시 이북 일대에 위치하였다고 추정된다.

 

. '고려도경', '허항종행정록', '금사'에 기록된 고려의 서북계에 대한 시론 - 박시현

... 고려 전기의 압록강은 지금의 요하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나라와 금나라의 고려 서북계에 대한 인식은... 그 결과 고려의 서변은 현재 중국 요하유역이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북계는 현재 중국 흑룡강성 동남지역이나 혹은 현재 길림성 서북부지역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었다.

 

. 중국학계의 거란 동쪽 국경인식에 대하여 - 복기대

거란의 동쪽 경계를 확인해 보고자 한 것... 그 결과 거란의 동쪽 국경은 오늘날 중국 요녕성 중동부지역으로 확정할 수 있었다. ... 뿐만 아니라 거란사와 맞물리는 발해와 여진사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 13-14세기 고려의 요동 인식 - 윤은숙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당은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고구려 유민을 강제로 요양으로 이주시켰고, 10세기에 이 지역을 차지한 거란은 928년에 동란국을 요양으로 이동시키면서 발해주민들을 대거 요.심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 1370년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고려의 요동정벌은... 요.심 지역이 고려의 주권이 미치는 지역임을 강조하기 위한 군사 조치라고 할 수 있다.

 

. 명대 한중 국경선은 어디였는가 - 남의현

명의 영향력은 요동도사 지역에 한정되었다. 흑룡강, 백두산, 두만강 등의 지역을 그들의 판도로 만들 수는 없었으며 결국 힘이 미치지 않는 '版圖外'의 지역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명대 한국과 중국의 국경선은 압록강이 아니다.

이번 책도 제 역량이 부족하여 비판이나 검토는 어렵습니다.

 

 

 

장수태왕이 천도한 평양은 북한의 평양이 아니다

출처 : 문사 2020. 02. 24.

https://www.youtube.com/watch?v=QrYm5FYqaDo  

 

일제강점기 이래 중국과 일본 학자들은 줄곧 장수태왕이 천도한 평양성이 현재 북한의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학자들도 지금의 평양으로 보고 있다.

대다수 사학자들은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한 남진정책으로 북한의 평양에 평양성을 축조하고 수도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출토한 고구려와 낙랑의 유물들을 그 유력한 근거로 제시한다.  그런데 최근 민족사학계 일각에서 장수태왕이 천도한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요녕성 요양이라는 해석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수많은 중국 문헌들은 현재 요령성 요양(遼陽) 부근으로 고구려 장수태왕의 평양성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수많은 기록들이 유물해석보다 정확하다면 장수태왕은 한반도로 남진한 것이 아니라 광활한 만주벌판을 차지하기 위해 압록강 유역의 집안에서 서진하여 요하(遼河) 유역으로 진출한 것이 된다.

 

참고문헌

고구려 수도 평양은 북한땅에 없었다 신동아 2013,1 이정훈

고구려의 평양과 그 여운 복기대

다시 찾는 7000년 우리 역사 이덕일

 

 

 

 

 

고구려 평양은 한반도 평양이 아니다

 

출처 :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2020. 01. 19.

 

우리 역사에서 ‘평양’은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거점도시였다.

 

현 역사교과서에서 평양은 고조선의 건국 중심지, 위만조선의 중심지, 한사군의 낙랑군, 고구려 때의 수도, 고려 때 북방을 총괄하던 ‘서경(西京)’, 조선시대 북방을 총괄하던 거점도시로 나온다.

 

그리고 한·중 여러 기록에서 중국과의 국경도 평양을 기점으로 설정하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는 1925년 동아일보에 쓴 ‘패수고(考)’에서 ‘조선사를 말하려면 평양부터 알아야 한다’면서 ‘지금의 평안도 평양을 옛 평양으로 알면 잘못 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 교과서에서는 단재가 잘못이라고 지적한 대로 옛 평양을 모두 현재의 평안도 평양이라고 확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마침 최근 이렇게 된 배경과 바른 평양의 위치에 대한 연구가 나왔다. 간단히 산책해 본다.

 

교과서의 내용 중 위만조선이나 한사군이 평안도 평양이 아닌 중국 하북성 난하와 요하 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이미 30여 년 전 윤내현, 김종서 등이 밝혀놓았으나 아직도 교과서는 바뀌지 않고 있다. 교과서의 내용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원 아래 임찬경, 복기대, 지배선, 윤한택 등 인하대 고조선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여러 학자들은 연구 결과 고구려 때 여러 번 수도가 되었던 평양과 고려 때의 서경인 평양이 현 북한의 평양이 아니라는 것을 『고구려의 평양과 그 여운』이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이 책에 따르면, 고구려 평양성과 한사군의 낙랑군이 현재의 평양이라는 주장은 7세기의 『주서』 『수서』 『북사』등의 중국 정사에는 고구려의 평양성과 낙랑군을 연결시키는 내용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945년에 편찬된 『구당서』가 처음으로 이런 왜곡을 했고, 1060년의 『신당서』가 그대로 인용했다.

 

그런데 1145년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이를 그대로 따라서 장수왕이 427년 천도한 평양성을 현재의 북한 평양으로 추정했고, 『동사강목』과 『아방강역고』 등 조선시대의 사대사관에서 여기에다 기자까지 연결시켰다.

 

일제가 조선침략을 적극 추진하던 1892년, 하야시 다이스케가 『조선사』에서 이를 그대로 수용했고, 1910년 일제가 우리 국토를 강점한 후 고고학적 조사 결과를 보태 이를 더욱 굳혔다. 그 후 이병도가 1923~2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사개강’에 이를 그대로 인용하고, 책으로도 이를 발표함으로써 현재의 교과서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488년 최부가 제주도 근무 중 배를 타고 이동 중 풍랑을 만나 중국 절강성에 표류했다가 중국 연안을 따라 귀국하는 과정을 기술한 『표해록』과 조선중기 이후 압록강과 요하를 건너 북경을 다녀온 조선의 사신들이 고구려의 역사 현장을 거치면서 남긴 550여권의 연행록에는 고구려의 도읍이 요동 또는 구체적으로 요양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그들은 그 근거로 『한서지리지』 『대명일통지』 『성경통지』 『대청일통지』 등 중국 기록을 제시해서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삼국유사에서는 ‘요하의 북쪽’이라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나도 역사학자지만 그 분야 연구를 하지 않아 사실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이와 같이 근거기록들이 많이 있다면, 교과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고대 평양의 위치 인식은 너무도 명백한 오류로 보인다.

 

그런데도 그간 그런 자료들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잘못된 사대 및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해온 우리 역사학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이병도 등 선배들의 주장을 비판하지 않는 강단학계의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단재가 1925년에 지적한 내용을 지금까지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국민 역사교재인 교과서에 그대로 실고 있는 것은 반민족적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반민족 범죄는 이제 국민들이 나서서 다스려야 한다.

 

 

 

 

 

 

고구려 평양의 진실 - 복기대 교수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출처 : 히스토피아 2016. 10. 12.

https://www.youtube.com/watch?v=GyI17ysO4uk  

 

(사) 유라시안 네트워크 역사인문학 특강 제 22회

일 시 : 2016년 10월 10일 오후 5시~7시

장 소 : KT광화문 빌딩 1층 창조경제혁신센터

 

 

 

고구려시대의 압록강은 어디 ? (강원대 사학과 남의현 교수)

출처 : 히스토피아 2017. 02. 14.

https://www.youtube.com/watch?v=U_notYJy1Ps  

 

(사) 유라시안네트워크 역사인문학 특강

일시 : 2017년 2월 13일

장소 :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