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환단고기·한민족역사 61

36. 고수대전장(高隋大戰場)의 위치와 수양왕의 죽음

三十六. 고수대전장(高隋大戰場)의 위치와 수양왕의 죽음 국정이 안정된 후 갑술 10년 봄에 다시 천하에 징병령을 내려 고려 정벌에 나섰다. 태사령 유(庾)가 간하여, "백성이 너무 피폐하니 관내를 진무하고 三 五년간 농상(農桑)에 힘써 四海가 풍요로이 된 연후에 널리 살피시옵서."하였..

35. 高句麗 征隋軍의 班師와 隋나라의 內亂

三十五. 高句麗 征隋軍의 班師와 隋나라의 內亂 高句麗 乙支文德 總管은 遼河 건너 遼東 고성에 있는 산과 같이 쌓인 수군의 군수 물자를 收獲하고 군사를 휴식시킨 후 천자에게 表를 올렸다. 西部總管征西大將軍臣乙支文德上表于皇帝陛下尊許耳今而隋王廣狂暴自慢滅趙國以來其放恣..

34. 隨 煬帝의 九軍 潰沒과 隨 煬帝의 敗走

三十四. 隨 煬帝의 九軍 潰沒과 隨 煬帝의 敗走 수 양왕 광은 백제군과의 작전계획에 평양을 협공할 기일이 닥쳐오고 있었다. 백제의 첩자는 끊임없이 고구려 군의 동태와 평양성의 내부 정보를 수 양왕에게 보내 왔다. (百濟王璋遣使請討考慮帝使之觀考慮動靜璋內與高麗潛通隋軍將出..

33. 수(隨)나라의 水軍 대장군 내호아가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고구려 황제(皇弟) 건무태자에게 대패하여 전멸함

三十三. 수(隨)나라의 水軍 대장군 내호아가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고구려 황제(皇弟) 건무태자에게 대패하여 전멸함 隨王은 高句麗와 戰爭에 그의 運命을 걸었다. 한편 高句麗 朝廷에서는 수 양왕 광의 출병을 전하는 파발마의 보고가 잇달았다.. 平壤의 皇帝는 廟議를 열고 백관의 의논..

32. 隋 陽帝의 大運河建設과 戰爭 準備完了하고 運河로 軍需物資 大量으로 輸送과 三百萬 動員 高句麗로 出兵

三十二. 隋 陽帝의 大運河建設과 戰爭 準備完了하고 運河로 軍需物資 大量으로 輸送과 三百萬 動員 高句麗로 出兵 隋王은 이번 敗戰으로 그 동안 天下 第 1 人者로 無所不通을 자랑하다가 오만이 꺾이니 性情이 殺伐해지고 反亂을 두려워하여 주위를 의심하였다. 그래서 太子 勇이 各地..

31. 隋文帝의 高句麗侵入과 姜以式總管의 隋軍殲滅

三十一. 隋文帝의 高句麗侵入과 姜以式總管의 隋軍殲滅 고구려 영양제(拏陽帝) 대에 이르러 수는 중원에서 열국을 정복하고 오호16국 시절에 막이 내려졌다. 수문왕(隋文王)은 중원열국을 멸하고 항복한 왕들을 축출하고 중원 황제로써 위세를 떨쳤다. 수왕은 고구려가 진이 패망하는 것..

30. 河南百濟本國의 敗亡과 廣開土大王의 中原 占領과 崩御

三十. 河南百濟本國의 敗亡과 廣開土大王의 中原 占領과 崩御 사기에도 백제는 요서에서 요동의 고구려와 2백여년간 함께 존립하였다고 했으니 진나라 말기에 하남 기주 지역에서 군웅이 쟁패하였는바 이 때가 백제의 하남입국 2백여 년간에 해당되는 것이다. 광개토대호태왕비에 백제..

29. 故國原皇帝의 戰死와 廣開土太王의 中原 北部 征服 및 五胡十六國

二十九. 故國原皇帝의 戰死와 廣開土太王의 中原 北部 征服 및 五胡十六國 百濟는 近肖古王 26年 高句麗가 모용광에게 패하여 쇠약한 틈을 타서 3萬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아직 완전 수축이 안된 왕검성 공격에 나섰다. 그간 백제는 하남에 창업한 이래 고구려와 요서에서 여러 해를 충돌..

28. 고구려(高句麗)와 위(魏)가 합작(合作)하여 공손연을 멸(滅)하고 모용광이 고구려를 공략

二十八. 고구려(高句麗)와 위(魏)가 합작(合作)하여 공손연을 멸(滅)하고 모용광이 고구려를 공략 고구려 10대산상왕 延憂 皇帝는 후사가 없어 근심하고 山川에 제사지내고 王子를 점지해 줄 것을 빌었다. 어느 날 꿈에 三신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장차 소후의 몸에서 太子를 얻을 것이니 ..

27. 高漢 大戰에서 光武帝를 敗退시키고 中原 北部 故土를 回復한 후 歲幣(朝貢)를 徵收

二十七. 高漢 大戰에서 光武帝를 敗退시키고 中原 北部 故土를 回復한 후 歲幣(朝貢)를 徵收 大武神王 혹은 대주류왕, 무휼 皇帝는 在位 27年에 遼東과 遼西의 一部 및 山東 河北의 中原 北部 地域 및 東北 地域을 占據하여 中原 故土 回復의 轉機를 마련하는 大功을 이루었다. 高句麗 大..

26. 太祖황제가 遼東의 漢寇를 축출함과 아울러 중원 고리국 故土를 회복

二十六. 太祖황제가 遼東의 漢寇를 축출함과 아울러 중원 고리국 故土를 회복 漢광무가 죽고 환왕이 왕위를 이은 후 한구가 요동을 침범함에 고구려는 다시 요동 六현을 공략하고 이어 안왕이 王위를 계승함에 五年에 사신을 파견하여 현도 군에 침입한 한구의 철수를 요구하였으나 실..

25. 高句麗 百濟의 建國記年 축소와 역사 왜곡 왜구(倭寇)의 신라 침략

二十五. 高句麗 百濟의 建國記年 축소와 역사 왜곡 왜구(倭寇)의 신라 침략 동이 조선의 古代를 중원 본토가 아닌 조선 반도에 갖다 놓고 중원에 있는 지명도 그렇게 하여 역사를 기술하려고 하니 조선 반도는 애초에 없고 중원에 있는 지명을 반도에다 갖다 부쳐 모순된 역사서가 생기고..

24. 한무왕의 조선 반도 海路침입 실패와 신라의 건국

二十四. 한무왕의 조선 반도 海路침입 실패와 신라의 건국 요동은 한나라의 색위 국경 밖이다. 진시왕은 불로초가 나는 삼신산을 가려면 조선 제국과 전쟁을 해야 하고 한무왕은 삼신산을 가려면 고구려와 싸워야 했다. 그들은 승산 없는 전쟁을 할 수는 없고 바다를 건너 바로 건너가서 ..

23. 百濟 건국과 위(魏)와 전쟁 공손도(公孫度)의 온조(溫祚)지원

二十三. 百濟 건국과 위(魏)와 전쟁 공손도(公孫度)의 온조(溫祚)지원 요동 요서 정세에 관하여 여기 추모王의 전처 예씨와 아들 유리의 출현은 서소노비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서소노비는 자기의 아들이 王位를 이을 것으로 믿고 있다가 첫째, 소생 유타를 太子로 봉하니 추모王의 공명..

22. 樂浪 玄도 臨沌 眞番 이란 四군의 실상을 살펴본다.

二十二. 樂浪 玄도 臨沌 眞番 이란 四군의 실상을 살펴본다. 한무는 비록 번 조선을 멸하고 그 영토를 점령하였으나 그것은 불과 수년에 고구려가 다시 회복하였으며 계속된 전쟁으로 국고의 탕진과 민심의 이탈로 장차 사직을 왕망에게 빼앗기는 원인을 만든 결과이기도 하였다. 무왕의..

21. 변조선 王國의 반역자들이 우거왕을 弑害하고 漢에 투항

二十一. 변조선 王國의 반역자들이 우거왕을 弑害하고 漢에 투항 세상 운명의 신은 너무나 무정한 것 같다. 물론 그것은 인재가 부른 불운이지만 우거왕의 大臣 相路人 相韓陰尼谿相參(국상노인 국상한음 니계상삼) 세 사람은 한王이 보낸 황금과 봉작의 유혹을 받고 항복의 기회를 노리..

20. 漢武王의 번조선 侵攻과 우거王의 抗戰

二十. 漢武王의 번조선 侵攻과 우거王의 抗戰 漢王은 전군에 동원령을 내렸다. 번조선을 도울 우군이 없다고 판단함이다. 제一선에는 燕과 齊에서 징발한 지난날의 전쟁 포로(주로 동이족)를 앞장세워 번조선 국경 요새를 격파하여 大軍의 진로를 개척하였으나(포로군은 이것을 한나라..

19. 漢武王과 右渠王의 朝漢平和 交涉 失敗

十九. 漢武王과 右渠王의 朝漢平和 交涉 失敗 한무王의 창해 패전은 한무王에게 위협이 되었다. 한무王은 지난날 東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목적으로 창해에 전진 기지를 설치코자 하다가 고구려에게 패하여 번조선 정벌을 중지하였으나 조선을 요동으로 멀리 밀어내고 싶었다. 한무王..

18. 衛滿의 번 조선王位 찬탈과 漢武帝의 蒼海패(敗)戰 및 歷史 왜곡과 古史書 破棄

十八. 衛滿의 번 조선王位 찬탈과 漢武帝의 蒼海패(敗)戰 및 歷史 왜곡과 古史書 破棄 大단군 제국이 三조선으로 분립한 후 번조선왕 기준은 위만을 맞아 그를 후대하였으나 위만은 야심이 충만하고 병법에 능통하며 기준이 그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랐다. 위만은 한구(漢寇)의 침..

17. 大武神王의 東부여 征服과 遼西經營

十七. 大武神王의 東부여 征服과 遼西經營 고구려는 무휼 태자가 보위를 이어 天子位에 오르니 이가 大武神王이다. 十六세의 나이 어린太子로 大軍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아가 각부 장군을 지휘하여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워 나라안밖에 사람들을 놀라게 한 영걸이었다. 어려서부터 총..

16. 周夢 皇帝의 崩御(붕어)와 黃龍國(황용국)의 滅亡

十六. 周夢 皇帝의 崩御(붕어)와 黃龍國(황용국)의 滅亡 周夢 天王은 조선 제국 열후들을 병합하고 위적의 침입에는 선두에서 분전하여 격퇴하고 마침내 고리국의 영광을 이을 고구려를 창업하였으나, 후세에 와서 요동에서 백제와 싸웠다. 二十二세의 젊은 나이로 고구려 대제국의 기틀..

15. 高句麗 大王 周夢(鄒牟) 天子位에 승차

十五. 高句麗 大王 周夢(鄒牟) 天子位에 승차 一次 창해 戰役後 해모수왕의 君臣들은 大扶余를 (扶餘로부터 분리한 해부루王國) 정벌하여 天王位에 오를 것을 주청 하였다. 王이 말하였다. 우리 고구려가 그들의 속국은 아니나 大扶余王 해부루가 비록 허명이라 할지라도 단군 제국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