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단군조선(BC2333)

1. 단군조선 고대산문화 bc2300~bc2049

자연정화 2013. 7. 31. 16:57

단군조선 고대산문화 bc2300~bc2049

 

단군 왕검, 2세 부루, 3세 가륵, 4세 오사구, 5세 구을 단군

 

기원전 2830년, 13세 사와라 환웅 때에, 배달국의 왕비족이었던 웅녀 여왕의 후손 려(黎)가 단목국(檀木國) 왕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460년후 단목국 왕검 단웅(檀熊)이 웅씨왕녀에게서 아들 단군(檀君)을 얻으니 기원전 2370년이다.

단군은 14세에 웅씨왕의 비왕으로 임명되어 24년간 섭정하다가 웅씨 왕국 왕검에 올랐다.
그해, 2333년 단목국에 들어가 구환족(九桓族)을 통일하고, 대표 왕검인 [신한辰韓]으로 등극하였다.
신인 왕검이 800명과 함께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阿斯達)의 단목지허(檀木之墟)로 와서 국인들의 추대로 천제가 되었다.

 


1. 단웅의 단목국 평양성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왕녀이며 bc2370년 박달나무 밑에서 태어났다.

14세가 되어 웅씨의 왕은 그를 비왕으로 삼았고 대읍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bc2333년 왕검은 단국으로부터 아사달 단목지허檀木之墟에 이르러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비서갑斐西岬의 하백녀河伯女를 거두어 아내로 삼았다."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서 기록은 다음과 같다.

 

"13세 사와라斯瓦羅 환웅의 초기에 웅녀군熊女君의 후손으로 여黎라는 자가 있어 왕검王儉으로 책봉이 되어 단허檀墟에 봉토를 받았다. 460년 뒤에 왕검 려黎의 후손에서 신인 왕검王儉이 태어나 웅씨왕의 비왕裨王이 되어 대읍을 다스리는 것을 섭정하였다. 왕검은 비왕으로 24년을 지냈다.

 

그후 웅씨왕이 전사하자 신인 왕검이 대신하여 구환九桓을 통일하고 단군 왕검이라고 하였다.

단군 왕검은 백악산 아사달白岳山阿思達에 조선을 세워 개국하였고 국토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통치하고 진한辰韓은 스스로 통치하셨다."

 

윗 글로서 유추하면 기원전 2830년, 13세 사와라 환웅 무렵에, 웅씨의 후손 려黎가 태어나 단목국檀木國 왕검王儉으로 임명되었다. 환웅국은 치우 환웅 때에 이르러 수도를 산동반도 태산동쪽 용산으로 옮겨가고,권력의 공백이 일어난 동북아시아에는 여러소국들이 남아있었다. 460년후, 소국중의 하나인 단목국이 커지고, 왕검 려의 후손 중에서 단웅檀熊의 아들이 단군檀君 왕검王儉으로 태어나니 기원전 2370년이다.

 

단목국은 아래에서 비정한 철령시鐵嶺市가 되고, 왕검은 소읍이던 청천강 마한에서 태어나 14세에 비왕이 되어 24년간 섭정하다가 부왕을 계승하여서 철령시 단목국의 왕이 되고, 마침내 천산 신시의 신시씨를 밀어내고, 만주를 재편한다.

 

또 달리호達里湖변의 비서갑을 쳐서 하백녀를 부인으로 얻고, 서남쪽의 치우 후손 치두남과는 타협하여 번한으로 삼아서 만주 통일, 구환九桓 통일의 과업을 이룬 것이 된다.

 

왕검의 아버지 나라인 단웅의 단목국檀木國은 342년 고구려 고국원왕때 환도성丸都城 남쪽에서 전연군前燕軍에게 패하여 고국원왕이 도주한 단웅곡斷熊谷을 단서로 추적한다. 단웅곡斷熊谷은 본래 단웅곡檀熊谷인 것이다.

 

현재 조병산시調兵山市다. 동천왕이 이곳에 평양성을 세웠고, 고국원왕은 이 평양성에서 백제군에게 전사하였다. 요나라때 이 부근에 단주檀州를 두었다가 기주淇州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발해환주桓州 기수현淇水縣과도 관련 된다. <신당서>에서는 이 기수현을 구도현성九都縣城이라고도 하였다. 여기는 단목국 왕검 려나 단웅의구택이 된다.

 

한편 단군 44세 단군 구물 시대에 해성에 이궁을 지어 역시 평양海城平壤이라고 하였다. 46세, 47세 단군의 수도였다.

 

즉 단군시대 평양이 두 개라는 것인데 하나는 해성이며 이는 지금의 조병산시인 것이다.

북부여시대에는 해성을 평양도사(平壤道使)에 속하게 하였다. 즉 또하나의 원래 평양이 부활한 것이다.

 

<단군세기>에서 4세 단군 오사구 때 평양성을 쌓은 기록이 있다. 이는 법고시 서북 한대산韓大山이 되며,고구려 환도성丸都城, 발해환주桓州에 해당한다. 즉 법고시 서북한대산이 4세 단군 오사구때 쌓은 새로운 평양성이고, 왕검 려와 단웅, 왕검의 단목국 수도평양은 뒤에 해성이라고 하던 조병산 위치다.

 

환도성 한대산 새 평양 위치와 단웅곡이었던 구도성 조병산 평양성 위치

 

환도성 평양과 해성 동천왕 평양과 단목국과 궁홀산금미달

 

단가구는 단목국성, 고려구는 동천왕평양성, 쇄룡구는 고국원왕증축성, 성자산이 해성 평양으로 고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