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한민족 고대사

우실하 교수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자연정화 2013. 9. 18. 00:54

 

우실하가 지은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을 찾아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서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것에 대한 반발심에서 시작된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에 대한 관심 덕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고구려의 역사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홍산(紅山) 문화로 더 잘 알려진 요하 일대의 신석기 문화의 발견은 중국 역사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중국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고고학적 발굴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 것이다.

아직도 과거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역사학자들에게는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느 한쪽의 이로움과 불리함의 잣대를 떠나 인류 역사의 소중한 유물이다.

홍산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우선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신석기문화를 시대적으로 구분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아래의 글은 우 실하가 지은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103 페이지에 나오는 글이다.

 

요서 지역의 신석기문화 유적들은 많이 있습니다. 각 문화의 시작연대에 대해서는 조금씩 이견이 있어서 논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에 있으면서 흥륭와문화 등 주요 유적을 직접 발굴한 유국상(劉國祥)이 2006년에 발표한 "서요하 유역 신석기시대에서 초기 청동기시대까지의 고고학 문화개론"이라는 논문에서 정리한 연대를 사용하기로 하겠습니다.

논의 전개상 필요한 요하 지역의 주요 신석기문화, 청동기문화를 유국상의 편년을 기준으로 하여 시대 순으로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신석기시대 소하서(小河西)문화(기원전 7000∼기원전 6500).

둘째, 신석기시대 흥륭와(興隆 )문화(기원전 6200∼기원전 5200).  

셋째, 신석기시대 사해(査海)문화(기원전 5600∼).

- 한국학자들과는 달리 유국상을 비롯한 중국학자들은 사해문화를 흥륭와문화의 한 유형으로 보기 때문에, 별도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논의 편의상 별도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사해문화가 발견된 부신시(阜新市) 문화국 자료에 의하면 사해문화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는 기원전 5600±95년이라고 합니다.


넷째, 신석기시대 부하(富河)문화(기원전 5200∼기원전 5000).

다섯째, 신석기시대 조보구(趙寶溝)문화(기원전 5000∼기원전 4400).

여섯째, 동석병용(銅石竝用)시대 홍산문화(기원전 4500∼기원전 3000).

-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청동기가 아닌 순동을 주조한 흔적들도 발견되고 있어서 동석병용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유국상이 쓴 최근의 논문에서는 동석병용시대로 분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유국상은 이 논문에서 홍산문화의 중요한 유적지인 우하량유적이 발견되는 홍산문화만기(紅山文化晩期)(기원전 3500∼기원전 3000)에는 이미 '초급문명사회(初級文明社會)'단계에 진입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시기에 이미 '문명사회'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보기도 하지만 반론도 있기는 합니다.   

일곱째, 동석병용시대 소하연(小河沿)문화(기원전 3000∼기원전 2000).
        소하연문화를 고리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덟째, 초기청동기시대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기원전 2000∼기원전 1500).
        유국상은 청동기시대로 진입하는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에는 '고급문명사회(高級 
        文明社會)' 진입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홍산문화를 포함한 요하 일대의 신석기유적지의 유물들은 요령성과 내몽고자치구 경계에서 발굴되고 있다. 이들 유물들은 이곳이 중원의 문명에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보다 먼저 문명을 꽃피웠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껏 야만의 땅으로만 치부해버리던 중국의 동북지역에 중원보다 앞서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국 역사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시대별로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하서문화는 동북지역 최고의 신석기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반지혈(半地穴)식 주거지와 흙으로 만든 사람 얼굴상이 발굴되었다.

 

흥륭와문화는 세계 최고(最古)의 옥(玉)귀걸이가 발굴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옥귀걸이는 수암옥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중화원고제일촌 혹은 화하제일촌이라고도 불리는 신석기 집단 주거지가 발굴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도 발굴되었다. 

 

사해문화는 중국 최초의 용(龍)형상물인 석소룡(石塑龍)이 발굴된 것으로 유명하다. 석소룡은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용의 형상물로 중원문명의 상징물인 용이 동북지역에서 최초로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곳에서도 신석기 집단 주거지가 발굴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도 발굴되었다.

 

부하문화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복골(卜骨)이 발견되었다. 동물의 견갑골에 구멍을 뚫고 불에 구워서 점을 치는 것을 골복(骨卜)이라고 하고 골복을 한 뼈를 복골이라고 한다.

 

조보구문화에서는 중화제일봉(中華第一鳳)으로 불리는 토기가 발굴되었다. 이 토기는 봉황을 형상화한 것으로는 중국 최고(最古)이다. 또한 채도도 발굴되었다.

 

홍산문화에서는 직경이 20∼30m에 이르는 거대한 제단과 적석총들이 발굴되었다.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여신(女神)상과 여신묘도 발굴되었다.

 

소하연문화 유적지에서는 도부문자(陶符文字)가 발견되었다.

나름대로 각 문화별로 요약해 보았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다소 주관적인 내용도 있지만 읽어볼 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신석기유물들에게 유독 최고(最古), 제일(第一)이라는 형용사가 많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유물들이 가지고 있는 고고학적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 아직도 중국 역사학자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망설여질 것 같다. 사실 이들 고고학적 유물들이 어떻게 후세로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논리적인 추론이 가능할 지는 몰라도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누구든지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 유물들이 중국의 동북지역이 중원의 문명보다 뒤쳐지지 않았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현재까지는 중국의 동북지역의 문명이 중원의 문명을 선도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도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역사의 빈곳은 각자 여러분들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