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신비로운 생애
"금세기 초에 최초로 공간에너지 활용장치의 제작을 시도한 사람은 미국 의 전기공학자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였다." 방건웅 박사의 < 신 과학은 세상을 바꾼다 >에 있는 말이다. 방 박사는 '테슬라 코일'을 언급 하며 "이 고압발생 장치에서는 종종 입력보다 출력이 높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하였으며 이 '테슬라 코일'이야말로 현재도 공간에너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널리 활용하는 장치의 하나라고 하였다.
1. 발명가 테슬라
'테슬라 코일'은 저 전압을 고 전압으로 바꾸는 변압기의 일종이며 회로에 불꽃 간극을 가져서, 고 진동수의 고 전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흔히 코일의 꼭대기에 커다란 금속구를 부착하여 그곳으로부터 전기의 흐름이 나오게 된다. 커다란 테슬라 코일은 수백만 볼트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전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는 시범 장치로는 굉장한 것이나 그 뿐이다. 이러한 테슬라 코일에서 정말로 입력보다 출력이 높은 현상이 관찰되었을까? 방 박사는 어디에서 이 내용을 읽은 것일까?
현재 테슬라 코일은 단지 과학기술의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나 테슬라의 숭배자들은 변압기의 발명을 그와 함께 말하기도 하고 도처에서, 즉 자동차나 텔레비전에서 그의 코일을 볼 수 있다고도 말한다. 아마도 점화 코일이나 플라이백(fly-back) 변압기를 말하는 것 같으나 고압을 만든다는 것 만이 같을 뿐 어느 것도 테슬라 코일이 아니다.
테슬라 코일은 전압과 진동수가 여러 인자에 의해 변하는 등 오늘의 기준으로 결함이 많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는다. 다만 작은 테슬라 코일은 진공 시스템의 누설탐지에 사용되었는데, 누설 홀 근처에서 유입되는 가스가 방전을 전도시켜 밝게 빛을 내는 원리이다. 유명한 발명가 테슬라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는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인 부모에서 출생하였다. 크로아티아와 후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어린 시절부터 기술적 재능을 나타내었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였으며 1882년부터 유도 모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졌다. 1884년에 파리에서 대륙 에디슨 회사(Continental Edison Company)에 근무하던 중에 뉴욕으로 이민하여 에디슨 밑에서 약 1년간 일하다가 떠났다.
결별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자신의 전기 발전기를 향상시키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하였다. 테슬라가 발전기를 향상시킨 다음에 에디슨에게 돈을 요구하자 에디슨은 미국인의 농담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테슬라가 에디슨을 떠난 것은 공기브레이크의 발명자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와의 관계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전기기술분야에 흥미가 있어 전력수송에 관한 테슬라의 아이디어를 샀다는 것이다. 당시 에디슨은 독점적으로 직류전기를 사용하였으며 거의 모든 전기 특허를 독점하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테슬라는 교류를 옹호하였는데, 좀 더 먼 거리 수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웨스팅하우스로서는 에디슨의 직류 특허를 피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1891년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는 교류모터와 발전기를 개발하여 콜로라도의 한 광산마을에 세웠는데, 이 장치는 에임스 발전소(Ames Power Plant Station)에 아직도 있으며, 테슬러를 기리는 표지가 붙어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1893년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을 사용하여 시카고의 컬럼비아박람회(Columbian Exposition in Chicago)에 전기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 테슬라는 박람회에 모든 전기와 전등을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연을 하였고 그의 발명품을 보여주었다.
이 때 쯤 테슬라는 후에 '테슬라 코일(Tesla coil)'로 알려진 고전압 발전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테슬라는 박람회장에서 이 장치를 사용하여 1890년대 사람에게는 정말로 인상 깊은 굉장한 전기 쇼를 보여주었다. 그후 몇 년 간 테슬라는 세계 최초의 상업적 발전소가 된 나이아가라 폴의 애덤스 발전소(Adams Power Station) 건립을 감독했다. 이 일을 끝으로 테슬라의 진정한 생산적 활동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 그후 수십 년간 여러 아이디어에 몰두하였으나 어느 것도 시작했던 일을 끝낸 것이 없었다.
테슬라는 대단한 결벽증자로 알려져 있다. 일생에 걸친 세균에 대한 공포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악화되었다. 그는 호텔에서도 계속 손을 닦았는데, 하루에 18개의 깨끗한 수건을 방에 비치하도록 주문하기도 하였다. 항상 돈이 부족하였으나 깔끔하게 옷을 입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또한 둥근 물체에 대한 병적인 공포를 가졌다. 그는 생애 마지막 값싼 호텔에 살 며 온 시간을 날아든 비둘기에 모이를 주는 일로 보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2. 실현하지 못한 아이디어
테슬라의 아이디어는 그 자체가 천재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집념적으로 매달렸던 것은 전선이 없이 전기를 수송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정보의 전달을 목적으로 한 라디오와는 다른 것으로, 그는 대단히 많은 전기를 대기 중으로 방사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그대로 잡아 전기기구를 가동시킬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를 가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바다의 배들도 연료를 싣고 다닐 필요가 없지 않은가? 전자기장의 보건문제에 신경을 쓰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여하튼 이런 목적으로 테슬라는 고압, 고진동 전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점점 더 큰 테슬라 코일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1899-1900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실험실에서 직경 54피트에 이르는 코일을 만들기도 했다. 구체적인 실험 목적은 알지 못하나 어느 때 많은 전기를 끌어다 썼기 때문에 발전기에 불이 나 그 지역이 정전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이런 저런 불평을 받고 그는 그곳을 떠났다.
그 다음 롱 아일랜드 워든클라이프(Wardenclyffe) 탑이야말로 그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1901-1903년에 세워진 이 탑은 높이가 172피트이며 버섯 모양의 반구형 돔을 가진 것이었다. 그는 탑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해 모건(J.P. Morgan)에게 자신의 특허 관리권을 양도하는 서명을 했는데, 모건은 이 탑이 세계적인 라디오 시스템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테슬라는 대서양을 가로지른 무선 전기수송을 위한 롱 아일랜드의 것보다 더 큰 테슬라 코일을 계획했다. 그러나 완성되지 못한 채로 1917년에 해체되었다.
이런 사실로 보아 테슬라가 스케일이 큰 발명가 중의 발명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발명가로 경제적으로 성공, 1890년대 백만장자였으나 이런 저런 비싼 실험을 한 탓에 1920년대 초부터 돈으로 고생하였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1943년 사망할 때에는 경제적 곤궁에 시달렸다. 이런 그의 일생을 보아도 그는 숭배자들이 경탄할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테슬라를 연구한 학자들은 테슬라의 숭배자들이 그의 진정한 발명인 유도모터와 교류발전기술을 그리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자기 유도 또는 자기속 밀도의 단위에 테슬라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이러한 그의 진정한 발명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숭배자들은 다른 곳에서 테슬라의 위대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다. 1890년대 중반 테슬라는 라디오 시스템의 실용화에 필요한 모든 부품을 개발하였다. 그러나 단거리 시범 외에 더 나아가지 않고 흥미를 잃어 버렸던지 포기했다.
그런데 단지 2-3년 후 테슬라가 경멸하던 마르코니 (Guglielmo Marconi)는 장거리 무선통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로부터 테슬라 패러독스(Tesla Paradox)가 나왔다. 다시 말해서 테슬라는 마르코니와 다른 많은 사람을 앞질렀으나 초기 라디오 역사에는 테슬라를 중요하지 않게 언급할 뿐이라는 것이다.
테슬라의 날 없는 증기터빈은 개념상으로는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나 제조하기에 어렵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실용화의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진 것이다. 또한 완벽하기에는 아직 기술적 문제를 가졌음에 틀림없지만 테슬라의 숭배자는 이것이 실용화되지 못한 당시의 상황을 분개해 하는 경향이 있다.
이외 테슬라와 함께 따라 다니는 그의 공헌인지 의심스러운 여러 가지도 있다. 테슬라는 기체를 채운 관이 고압 장치에서 광을 내는 것을 발견했으나, 현재 네온이나 형광등은 이런 식으로는 작동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개발한 것이다. 또한 그가 로봇의 발명자라고 하는 이야기는 1898년 물탱크 안에 보트 모형을 넣고 리모트 콘트롤에 의해 움직였다는 데서 나왔다.
그는 전기가 치료효과를 가졌다고 믿었고, 이 목적으로 테슬라 코일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투열기의 발명자라고 이름을 들어야 할지는 의문이 있다. 또한 그는 죽음의 광선이라는 글을 두서없이 적었는데, 이것이 그가 레이저의 발명자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는 1920년대 대단히 묘한 복엽비행기(biplane)를 스케치했는데 이것이 수직이륙비행기의 발명자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마치 다빈치가 헬리콥터의 발명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00년에 그는 라디오 수신기를 갖고 일련의 규칙적인 펄스를 뽑아 낼 수 있었다. 그는 화성인과 접촉했다고 결론지었으나 발표되자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 현대 테슬라의 숭배자는 그로부터 60년 후 라디오 천문학자가 발견한 펄사(pulsa, 맥동성)의 진정한 발견자가 그라고 말한다.
테슬라의 죽음의 광선만 해도 떠도는 이야기는 많다. 그가 실제 그런 것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만들어 비행기를 격추시켰다고도 하고 이때 광선의 성격도 어떤 종류의 입자 비임이라고도 하고 초음파 총이라고도 하는 등 여러 가지다. 아마도 앞의 방건웅 박사의 공간에너지 활용기술은 테슬라 코일에 의한 무선 전기수송 아이디어와 관련하여 테슬라 숭배자가 지은 어느 책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테슬라의 사망 직후 미정보당국이 집을 급습하여 85개의 트렁크에 가득한 그의 모든 장치를 압수해 갔다는 이야기는 신비성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 흔히 아직 이 세계가 그의 기술을 활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라거나 무슨 나쁜 의도가 있다는 식이다. 그의 비밀 발명에는 소문에 의하면 시간 여행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FBI에서는 여러 소문에 접하고 그에 관한 문서를 공개하였는데 테슬라의 장치가 압류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는 체코의 크로아티아인이며 외국인 재산관리인에 의해 모든 서류가 압류된 상태라는 것이다. 제2차 대전 중이었다.
3. 참조
1) Jeff Johnson, Nokola Tesla: Genius, Visionary, and Eccentric,
Skeptical Inquirer, Summer 1994, p. 368-378.
2) Nikola Tesla and extraordinary science, Skeptical Inquirer,
January/February 1995, p. 65-66.
-나이아가라에 있는 테슬라 동상-
아래는 일반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내용으로 테슬라의 기록이다.
<“우리의 첫 번째 실험은 전적으로 직관에 의존했다. 풍부한 상상력과 열정과 다소 미숙한 상태로...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시들해진다. 그러나 우리의 첫 번째 영감은 진정한 목적의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어린 시절 난 이상한 병으로 고생 했다. 그 때 꿈에서 가끔 내 몸에 이상한 빛이 나를 감싸는 영상을 보았다. 빛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다가 시간이 경과해서 나는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세상으로 여행이 시작되고 새로운 영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초점이 흐린 상태에서 영상들이 흐리게 보였다. 나중엔 영상을 확대시키는 법을 배웠다. 불가능 할 거 같지만, 나는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는 방법들을 배웠고 내 마음속에 있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17살이 되었을 대 발명하는 것에 집중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어떤 물건들을 상상하는 것이 쉽다는 것에 내가 놀라워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그들이 만들어 놓았던 물건을 어떤 형태로 나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더욱 놀라워했다.
(1919년)난 잠을 잘 잔다. 잠자는 동안은 마치 깊은 숨을 들이키는 거와 같이 하나의 예술적인 형태로 이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것은 동양의 비밀 중에 하나인데, 나는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게 세상의 외형적인 모습들만 추구한다. 사람들의 내면 속 영혼엔 어떤 일이 벌어지를 망각하고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빨리 죽는 것이다. 개인에게 적용 되거나 그리고 약간의 군중에게도 적용이 된다. 문제들에 매달려서 작업을 하는 것도 나에겐 일종의 신에 대한 맹세에 속한다. 나의 의식의 내면 깊은 곳에서 대답이 존재했고 난 그걸 찾아야만 했다. 내가 회전자기극(Rotary Magnetic Poles- 나중에 전기모터 개발)을 발견하기 전에도 나는 나의 모든 에너지를 실험에 집중해야만 했다. 내가 만약 평범하게 섹스를 하는 삶을 살았다면 어떤 것도 성공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테슬라는 책을 통째로 암기해서 다녔고, 詩를 좋아했다.
1882년 부다페스트에 있는 공원을 친구와 걸으면서 괴테의 파우스트 암송하고 있었다. “내가 괴테의 시를 암송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불이 번쩍이듯 영감이 떠올랐고 그것이 현실화 되었다. 바닥모래에 도면을 그렸고 6년 뒤에 미국 전기공학연구소에서 발표를 했다. 내가 보았던 아이디어는 너무 선명하고 명확해서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말했다. 봐라 이것이 내 모터야, 역방향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봐.
"모든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위대한 힘이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지시하고 행복하게 하는 그런 이상이 가져야만 한다. 그런 신념이 예술, 과학 또는 어떤 다른 것에 있다고 해도 이것은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이 힘이 물질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힘은 인간 자체가 평화롭게 존재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물리학에서 그의 과학적인 업적은 아직도 이해가 안돼서 풀리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예를 들면 1891년 초에 테슬라는 최초로 전자에 대한 논문 발표를 했지만1897년 노벨상을 받은 톰슨의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894년 테슬라는 X-ray를 발견했지만 1년 뒤 뢴트겐이 X-선으로 물리학 최초의 노벨상을 받아서 뢴트겐의 발견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895년 12월 독일의 렌트겐(Wilhelm Roentgen) 교수가 X-레이의 발견과 유용함을 발표하였을 때 테슬라는 자기가 이미 X-레이를 이용하여 머리를 찍은 사진을 렌트겐에게 보냈다. 렌트겐은 이를 숨기지 않고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일반에 공개했다. 이 때문에 테슬라는 유명해져 잡지사에 기고도 여러 번 하게 되고 강연도 하게 되었다. 테슬라는 뢴트겐 박사에게 영광을 돌리면서도, 그 위험성도 함께 경고했다.
그리고 테슬라는 1903년 최초로 레이다(Radar) 작동원리를 개발했는데 그 뒤로 30년이 지나서 레이더가 실용화 되었다. 1897년 테슬라는 우주선(cosmic-ray: 우주에서 내려오는 일종의 방사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과학계는 1912년 실험으로 우주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테슬라는 레이저가 발견되기 60년 전에 또는 1893년에 이미 레이저에 관한 문서를 작성 했었고 레이저와 비슷한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테슬라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은 너무나 많다. 테슬라가 라디오를 최초로 발명한 것에서부터...
테슬라가 1943년 1월 7일 가난하게 뉴욕의 뉴요커(Newyorker)호텔에서 생을 마감하자 미국 기관이 들어와서 그의 문서들을 다 가져 갔다. 금고에 있는 것들도. (아직도 이해 안되는 문서들도 있으며, 엄청난 내용으로 미국이 그걸로 뭘 하는지...)
-호텔 뉴요커에 있는 테슬라를 기념하는 동판-
-테슬라 장례식 : 뉴욕시장을 비롯한 2000명이 참석-
이 비범하고 신비스러운 인물인 테슬라는 초월명상 또는 동양의 주문수행을 통해서 천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던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의 기억력은 마테오리치 신부와 같은 "하늘의 기억장치"와 같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에서 물리학을 배웠던 나로선 위와 같은 사실들을 접하고 매우 놀라웠다. 물리학을 뒤 흔들었던 30년가량이 지난 뒤에 현대 물리학이 나왔는데 많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이름들이 거론된다. 거기엔 테슬라가 이미 발견 했거나 개발을 했던 것들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이 다수 포함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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