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한민족 고대사

태평성대 요순(堯舜)의 중국 이상향 ‘우리 선조’

자연정화 2014. 4. 29. 18:54

태평성대 요순(堯舜)의 중국 이상향 ‘우리 선조’

이을형의 ‘법과 정의’…한국의 상고사 찾기(25)-신시배달국사(神市倍達國史)(17)

 

 

들어가며

 

지금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사관(史觀)이 없고 생명력을 잃은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역사적 행동은 경제적·사회적 실생활에 의해 전개됐었는데, 현재 우리역사같이 일제가 심어놓은 공허한 관념에 의해 전개되는 오늘의 역사관은 우리의 참 역사관이 아니다. 또한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문화사상이지만 우리역사 속에는 문명의 역사가 흘러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한민족은 태고 상고시대부터 인류최초로 국가를 건국하고 세계 최초의 요하문명(홍산문화·紅山文化)를 비롯해 세계문명을 선도하고 이룩한 위대한 선조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는 문화사상을 중심으로 다루어 져야 하는데도 오늘의 역사에는 이 부분이 실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교과서는 문화사상을 발견하지 못한 뼈대가 없는 일본이 왜곡한 반도식민사관의 자비적(自卑的) 위조의 역사만이 판을 치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는 상고시대 환국(桓國)에서부터 현대사까지 한민족 사관에 입각한 자주독립의 민족사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문화사상을 중심으로 다뤄져야 한다. 잘못 심어진 거짓역사(僞史)를 배제하고 고증을 통한 인류 발달사를 기준으로 연구해 가야 한다. 인류 발달사는 보편적 역사다. 보편적 역사를 고찰하면 우리 한민족의 특수성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를 무시하고서는 진정한 한국사를 발견하지 못한다. 세계 역사를 보면 자비적(自卑的) 역사로 위조한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우리는 자존적(自尊的) 역사를 갖고 있어 꾸밀 필요가 없는 나라다. 사실 그대로의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를 기록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중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비열하게 역사를 왜곡해 왔지만 근래에 와서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가 장래와 자손들을 위해 비난 속에서도 역사를 계속 위조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자존적(自尊的) 역사 위조 현상을 사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과 일본 처럼 극심한 역사왜곡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 이런 필법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자존적 역사를 갖고 있는 민족은 설사 위조했다고 해도 흥하고 자비적(自卑的)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는 실재한다고 해도 망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민족도 쓰라린 경험을 했다. 이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중국은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의 수법으로 패배한 사실을 삭제하고 승리로 위조하는 수법으로 우리 역사를 변조하고, 일본은 상가야(上伽倻)의 흔적을 빼어버리고 제멋대로 우리 역사를 칼질해 왔다. 여기에 우리는 김부식(金富軾)을 시조로 한 조선조의 사대사가(事大史家)들이 중국에 아부하며 역사를 왜곡·변조했다. 이들은 한민족이 중국인의 후손이요 단군시대부터 중국을 섬겼다는 허무맹랑한 이단적 역사를 만들고 써 국민을 가르치게 했다. 근세에는 친일매국노 같은 조국 혼이 없는 학노(學奴)들에 의해 국민의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조장한 역사가 기술되고 교육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진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다루고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승리와 패배, 영광과 수치에 대해 사실대로 다루어 발전시켜야 할 장점과 반성해야 할 단점을 앎으로 진정한 민족의 활로를 개척해 가야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상고시대 중국의 요순(堯舜)에 대해 중국사기(史記) 등의 역사왜곡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상고시대 없는 중국역사, 우리 선조를 훔쳤다

 

중국은 상고시대의 역사가 없는 나라다. 그런 이유로 사마천은 역사를 조작하며 우리의 역사를 도둑질했다. 사마천은 삼황(三皇)으로 수인(燧人)·복희(伏羲)·신농(神農)을, 오제(五帝)로 천황(天皇)·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을 기록했으나 이들은 중국 한족(漢族)이 아니다. 이들은 엄연한 배달국 우리겨레의 조상이다. 중국의 조상이 아니다. 예컨대, 삼황(三皇)의 수인(燧人)은 ‘환단고기’에는 배달국의 제후로서 서토를 다스렸다. 복희(伏羲)는 배달국 5대 태우의(太虞儀) 환웅의 아들로 배달국의 왕족이다. 또한 신농(神農)은 배달국 제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桓雄)때 그를 중국 섬서성 강수(姜水)로 보내 지역의 군사를 감독하게 했다.
 
또한 중국인들의 숭상해 온 이 염제신농(炎帝神農)도 배달겨레이다. 자세한 기록은 환단고기에 기술돼 있다. 고대역사를 잃어버린 우리 한민족들은 우리 조상까지 중국의 조상으로 둔갑되고 있다. 삼황오제(三皇五帝) 외에도 치우천황(蚩尤天黃)과 황제헌원(黃帝軒轅) 역시 중국의 조상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다. 오제(五帝) 역시 한민족이다. 천황(天皇)은 환국시대와 배달국시대에 살았던 제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두 우리 한민족이다.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도 모두 우리 조상들이다. 요(堯) 순(舜)은 중국의 조상이 아니라 고조선의 제후들이었다. 사기(史記)의 기록은 모두 거짓으로 꾸며진 허구다. 사마천의 사기(史記)기록을 맹신하면 위험하다. 특히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중국기록들 상당부분에 허위, 과장, 왜곡이 너무 많다. 터무니없는 역사왜곡이 중국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조작돼 전해지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고조선의 제후였다. 요임금과 천자(天子), 동방의 나라 배달국 고조선과 관련된 사건은 환단고기(桓檀古記) 등에 간간히 기록돼 있다. 또한 한민족 원고사(原高史)의 하나인 부도지(符都誌)에 요임금과 순임금의 기록이 나온다. 그것은 ‘도요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났는데 일차로 성을 나간 사람들의 후예였다’는 내용이다. 요임금 역시 동방족의 후손이라는 기록이다. 순(舜)은 전욱(顓頊)의 6대 손이라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순(舜)을 우순(虞舜)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한 지역을 다스리던 왕(군장)이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등 몇몇 곳에는 단군왕검이 당요(요임금)를 대신해서 우순(虞舜)에게 산동성, 강소성지역의 여러 제후 국가들을 다스리도록 명했다고 나와 있다.
 
현재의 만주와 내외몽골, 하북성, 산서성, 섬서성 지역은 대부분 고조선의 본토였다. 특히 산동성과 남부 희대지역에는 수십 개의 동이계통 제후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들 나라를 총괄적으로 지휘하게 한 것이다. 때문에 중국사기(中國史記) 등에도 순(舜)임금이 동이족이라 고 명시하고 있다. 환단고기, 번한세가 상에는 요(堯)임금이 순(舜)에게 왕위를 순순히 물려준 것이 아닌 것으로 나와 있다. ‘천왕’(왕검)이 우순(虞舜)에게 명해 요(堯)임금의 땅을 나눠 다스리도록 하고 군사를 보내 주둔하도록 한 것이었다. 우순(虞舜)과 함께 당요를 공동으로 토벌해 요가 힘이 다해 우순(虞舜)에게 의지하고 목숨을 보전하고 나라를 넘겼다는 기록이 있다. 요(堯)와 순(舜)임금은 각각의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요는 순임금과 고조선 군대에 의해 항복하고 순(舜)이 임금이 된 것이다. 이때가 서기전 2267년의 일이다.
 
한민족 요순(堯舜) 시대 중국 측 기록은 허구다
 
요순(堯舜)은 중국 측 기술(記述)대로 중국한족(中國漢族)인가. 아니다. 중국 측 요(堯)에 대한 기록을 보면 순(舜)이 요(堯)의 신하로 있었다고 말하나 사실이 아니다. 중국의 사서(史書)나 삼국지(三國志) 등에는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양위한 것 같이 꾸미고 있으나 아니다. 중국의 조작일 뿐이다. 부도지(符都誌) 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순(舜)은 지역 군장으로서 고조선의 명을 받아 천왕제국(단군조선)에 적대행위를 한 요(堯)임금을 공격해 패퇴시켰을 뿐이다. 여기서도 터무니없는 역사왜곡이 중국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조작되어 전해지고 있다. 요(堯)가 망하게 된 이유는 요임금이 따로 당도(唐都-당나라식의 제단)를 만들어 고조선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단기고사에는 순(舜)이 고조선에 벼슬하지 않고 요임금에 붙어 벼슬을 했다고 하고, 요임금의 신하 우(禹)의 부친 곤(鯀)을 우산(羽山)에서 죽여 우(禹)의 원한을 샀다고 했다. 때문에 순임금이 남방을 시찰하다 관서성 창오(蒼梧)의 들에서 우(禹)의 무리들에게 습격을 받아 죽고 순의 아들 상균은 고조선에 귀의 벼슬이 사도(司徒)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순(舜)은 처음에는 고조선(왕검)에 협조하여 요임금을 쳤으나 요의 땅을 넘겨받은 후 주변의 동이(東夷), 삼묘(三苗)를 공격하는 등 종주국 고조선을 배반하고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다가 신하였던 우(禹)에게 죽게 되는 비극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기록은 순(舜)임금이 제위에 오른 지 39년 남쪽 나라들을 순방(사냥 갔다는 기록도 있음)하다가 광서성 창오(蒼梧)에 이르러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나와 있다. 분명한 것은 순(舜)은 사냥 갔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다. ‘번한세기’에는 순(舜)임금이 단군조선의 제후이며 순(舜)의 신하 우(禹)사공은 낭야성의 감독관으로 두었다고 나와 있다. 이것이 정확한 기록이자 진실이다.
 
부도지(符都誌)에는 더 자세히 나온다. 순(舜)임금이 요의 두 딸(아황과 여영)을 얻은 후 요임금에 협조했는데 주위의 현자와 묘족(구려족)을 공격했다. 같은 동족인 순(舜)임금이 왜 동족을 공격했는지는 모른다. 사기에는 요임금이 순에게 거문고를 하사하고 산림, 하천 등 모든 정사를 맏겼다고 하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문헌 서전(書傳)에는 순(舜)이 우를 시켜 치우의 백성인 묘민(苗族)을 침공했다고 나와 있고 중국 고대신화에는 우(禹)가 회계산에서 풍이(風夷)를 침공해 파괴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부도지(符都誌)에는 순(舜)임금이 묘족들을 치자 고조선(왕검)의 명을 받은 유호씨(有戶氏=단군왕검의 군장)의 부자(유호, 유상)가 군대를 동원해 순과 요임금의 나라를 수년 동안 싸워 토벌한다고나와 있다. 결국 요임금은 패전해 감옥에서 죽고 순(舜)은 남방의 창오(蒼梧)의 들로 도주했다. 이 때 우(禹사공)가 아버지를 죽인 순을 죽였고 두 명의 처는 소상강물에 투신해 자결 했다고 기록 돼 있다.
 
여기서도 중국 측 사기기록은 요(堯)는 왕에서 물러 난지 28년간 은거했다고 했으나 거짓된 기록이다. 우리 측 기록이 맞다. 우리나라 역사의 기록이 정확하다. 신채호 선생은 “우리나라의 역사기술은 실수와 오류는 있어도 거짓과 왜곡은 없다”고 했다. 이 사건을 두고 한 학자는 순이 남으로 고조선군을 피해 이동했고 우가 순임금을 죽이고 그곳에서 하(夏)나라를 세웠다고 추정하는 자도 있으나 순(舜)은 우(虞)나라 왕이었고 우(禹)는 요순(堯舜)의 신하였다.
 
역사존중 목적은 민족활로의 개척이다

 

올바른 역사를 발견하고 성공한 나라를 보면 자기 역사를 소중히 한 나라들이다. 이스라엘은 고대 유대의 위대한 역사를 발견함으로 다시 일어섰다. 덴마크는 프랑스·독일의 침략으로 영토를 잃고 국민이 지리멸렬(支離滅裂) 해 방황 할 때 한 개인 갱생운동의 선구자 구룬드 비 목사에 의해 오늘의 덴마크로 성공했다. 그는 덴마크의 역사를 발견한 뒤 역사교육을 토대로 ①하나님을 사랑하자(학교 505곳에 성경과목을 연구케 했다) ②조국을 사랑하자 ③국민을 사랑하자는 갱생운동(更生運動)을 펼쳤다. 역사를 무시한 국가나 민족은 바로 설 수 없다. 세계 선각자(先覺者) 모두가 역사를 중시하고 역사를 바로잡았다. 오늘날 덴마크는 국민이 돈이 없어도 병원에 갈 수 있고 65세 이상이면 죽을 때까지 연금제도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복지국가의 전형인 나라가 됐다. 교육은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무료이고, 대학에 입학하면 45만원의 장학금을 주며, 정직한 나라로 지하철 표 검표와 감시원이 없는 나라다. 한마디로 일등국가로 발돋움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대다수 지도자가 그 방향감각 조차 잃고 있는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과 덴마크의 성공한 이면에는 역사를 바로세우고 목표를 바로 설정해 이를 실천한데 있었다. 이들의 국가갱생운동(國家更生運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도 실질적으로 역사재건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이제 우리는 배달민족의 찬란한 역사와 우리민족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옛 세계최강국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다.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상고사’와 ‘인간 단군을 찾아서’, 최 인 ‘한국학강의’, 임승국 번역·주해 ‘환단고기’,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최진열 ‘대륙에 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한정호 ‘대조선 민족사’, 盛O度 ‘新.漢民族から大和民族’,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西嶋定生·護雅夫·木村尙三郞·猿谷要 ‘世界歷史の基礎知識1·2’, 稻垣泰彦·川村善二郞·村井益男·甘粕 健 共著 ‘日本史’ 외 다수의 서책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