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한민족 고대사

중국시조 황제(黃帝)는 홍산인

자연정화 2014. 3. 28. 14:11

중국의 시조 황제가 동이족 홍산문화사람이라는 것이 중국학계의 공식입장입니다.

멍청한 식민빠들이 환빠환빠거리면서 발악중인데 그럼 중국도 환빠입니까? 한민족이 동아시아문명의 시원이며 동아시아문명은 한민족문명이라는 것이 밝혀지고있는 때인데 식민빠들의 발악으로 이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최초의 문명 발해문명(요하문명, 홍산문화)은 고조선 직계의 문명이며 예맥계로 알려진 한민족의 직계조상입니다.

최초의 문명을 일군 사람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당시 짐승처럼 살던 야만족의 땅 중원으로 퍼져나가서 문명을 전파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본민족의 기원인 일본천황은 기원전 4세기전 한반도남부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야요이문화를 일군 도래인이라는 것이 역사학의 상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기원인 최초의 중국황제는 발해문명(홍산문화)사람이 남하해서 중국에 식민지(은나라)를 건설한 고조선직계 조상이라는 것은 이제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수천년간 중국을 정복하고 식민지배해왔던 한민족계 북방민족이 중국에 최초의 문명을 건설하고 중국문화를 기초를 일궜다는 것은 동아시아 전체가 한민족 문화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식민빠들이 걸핏하면 한국이 중국문화권이라는 헛소리를 더이상 지껄이지 못하게 해야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중국황제를 홍산문화사람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 또 이상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중국황제가 홍산인이면 단군도 중국황제의 후예이고 한민족이 다 중화민족의 후예다? 이게 논리적으로 말이 됩니까? 그 반대입니다. 중국황제가 고조선직계의 홍산인이니까 중국황제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민족인 것입니다. 중국은 고대한민족 황제의 식민지배를 받아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역사의 시작이 한민족의 이주로부터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역사의 시작도 한민족의 이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천황이 한반도로부터 도래한 사람이니까 한민족이 일본의 후예입니까?

이따위 말도 안되는 논리를 왜 중국황제에 갖다부치는 겁니까?

일본천황이 한반도로부터 유래했으므로 일본은 한민족의 식민지배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시조 황제가 고대한민족이므로 중국도 한민족의 식민지배로부터 문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가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에 대한 중국 학계의 연구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2012.9.10 <<국제뉴스부 기사 참고>>

 

 

"韓민족 역사·문화기원에 대한 새 틀 마련해야"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요하(遼河)문명이 발견된 이후 중국은 자국 문명의 기원을 완전히 새로 쓰는 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의도대로 상고사 재편이 마무리되면 고조선 이후 한국사는 자동적으로 중국사의 한 갈래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10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沈陽)에서 만난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요하문명에 대한 한국 학계의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절실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국내 학자로는 처음으로 지난 3~6일 요하문명의 중심 도시인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츠펑(赤峰)시 정부가 주최한 '제7회 홍산문화(紅山文化)포럼'에 참가했다.
만주 일대에 흐르는 강인 요하 주변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고도로 발달된 신석기문명의 유적과 유물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이 요하문명은 그동안 중국 문명의 기원에 대한 정설이었던 황하(黃河)문명보다 1천여년을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며, 홍산문화는 요하문명 가운데 가장 많은 유적·유물이 발견된 대표적인 문화권이다.
중국은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발달된 문명인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기원으로 삼고,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영역으로 규정하려는 준비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는 게 우 교수의 설명이다.
신석기·청동기 시대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던 요하 지역이 중화문명의 시작점이 되면 우리 한(韓)민족의 선조도 황제의 후예가 되는 셈이다.
우 교수는 "발굴 초기에 홍산문화의 주도세력을 동이족(東夷族)이나 예맥족(濊貊族)으로 보던 중국 학계는 1990년대 후반 들어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후예들이 홍산문화를 건설했으며 중원 지역의 상(商)왕조는 요하에서 갈라져 나온 황제의 후예가 하(夏)를 정벌하고 건립한 것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로 벌써 7회째를 맞은 이번 포럼에서는 홍산문화에 대한 연구가 단순히 고고학의 차원이 아닌 지리, 예술, 종교, 민족학 등 이미 다양한 학문 영역으로 확대됐을 뿐만아니라 중원문화와의 비교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중국은 공인 역사서를 발굴하는 중화서국(中華書局)을 중심으로 오는 2015년 완성을 목표로 25사(25史·전설의 황제(黃帝)부터 명나라까지의 정사인 24사와 청나라 역사인 청사고(淸史稿)를 합친 중국의 공인 정사)를 전면 수정·보완하는 '국사수정공정(國史修訂工程)'을 벌이고 있다.
우 교수는 "홍산문화의 주 토템은 곰인데 우리와 관련이 깊은 요하문명·홍산문화는 중국 만의 것이 아니라 동북아 공동의 기원으로 봐야 한다"면서 "상고사의 전면 재편이 핵심인 중국의 정사, 교과서 수정이 끝난 뒤에는 우리가 대응하기에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포럼에서는 일부 중국 학자 사이에 홍산문화와 중원 지역의 문화가 너무나 이질적이고 오히려 발해만, 산둥 지역, 한반도 문화권과 연결돼 있다는 발표도 있었다"면서 "특히 발굴된 홍산인 두개골 17개 중 13개에서 편두(편<衣변에 扁>頭·인공적으로 이마를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일종의 성형)가 발견됐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이는 우리 신라, 가야는 물론 고대 마야, 이집트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어서 주목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국사수정공정과 병행해 요하문명이 중화문명의 발상지라는 학문적 논리 개발은 물론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성과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잇따라 신축 개관하는 등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우 교수는 "중국은 자국 문명의 기원을 완전히 새로 쓰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우리도 요하문명·홍산문화에 대한 연구가 역사·고고학자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방면에 걸친 연구를 통해 우리의 역사·문화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