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 : 한계레신문 2014. 05. 29. 09:40
[한겨레] 50대 여성 김희자(가명)씨는 최근 난생 처음 교도소와 법원이라는 데를 방문했다. 1995년 남편이 빌린 523만원의 빚 때문이었다. 20여년 사이 빚은 저축은행, 신용정보회사, 대부업체 등 채권추심이 가능한 업체들을 떠돌아다녔다. 이달 초 김씨는 '채무가 탕감됐다'는, 채권자가 보낸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씨의 이야기를 인터뷰 및 그의 채무에 대한 금융기관들 서류와 소송 자료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남편 회사 망하며 상환일 넘겨 3년뒤 "200만원만 갚으라" 첫 추심
다시 13년뒤 이자만 1600만원 이번엔 대부업체서 소송
3분 재판뒤 채권은 다른 업체로 20년만에 '희망살림'에서 우편물
"귀하의 빚은 탕감됐습니다"
#1995년 1월, 한 금융기관
김씨의 남편은 전북 전주의 한 토건업체에서 일했다. 남편 회사는 남편 명의로 상호금융기관에서 523만원을 대출받았고, 이자를 내왔다. 1997년 원금 상환일이 돌아왔지만 회사가 망했다. 남편은 막노동을 시작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빠듯했다. 이자도 원금도 갚을 수가 없었다. 2000년께 한 신용정보회사에서 '200만원만 갚으면 나머지를 탕감해주겠다'고 연락해왔다. 채권추심이 시작된 것이다. 금융기관으로부터 평균 원금의 3%대로 저렴하게 채권을 사온 뒤 채무자가 일부라도 갚게 해 이익을 남기는 영업이었다. 200만원을 갚을 돈도 없었다. 남편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2013년 1월, 법원 앞과 교도소
빚은 지난해 한 저축은행에서 서울의 ㄱ대부업체로 넘어갔다. 그사이 이자가 1600만원 붙었다. ㄱ업체는 김씨 집에 '자택 방문 예정 통보장'을 보내왔다. 2123만원을 갚으라고 압박하며 법적 대응도 하겠다고 했다. "소송을 걸겠다는데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일에 바쁜 남편 대신 도움받을 사람을 찾으러 법원 앞에 갔어요. 법무사 사무실들 중간에 '지원센터' 간판을 단 곳이 있길래 무작정 들어갔죠." 김씨는 센터 대표라는 사람에게 소송 도움 명목으로 36만원을 지급했다. 그는 서울에서 법대를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고, 연락마저 끊겼다. 경찰에 신고하자 그해 6월 "그는 사기죄로 최근 구속됐다"는 답변을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변호사도 법무사도 아니었다. 김씨처럼 법적 지식이 부족한 이들만 이용당한 것이었다. 교도소 면회장까지 갔지만 "미안하다. 돈은 돌려주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뒤늦게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갚을 의무가 사라졌다(소멸시효 완성)"는 조언을 들었다.
#2013년 11월, 서울의 법원
재판이 열렸다. 서울에 올라간 김씨는 난생처음 법원에 가봤다. 법정 앞에 붙어 있는 재판 일정을 보니 ㄱ대부업체가 개인들에게 건 소송만 A4 용지로 2장 반이나 됐다. 안에 들어가 보니 원고석의 ㄱ업체 대리인은 고정으로 앉아 있고, 피고석 개인들은 차례대로 앞에 나가 재판을 받았다. "부산에서 광주까지 각 지방에서 올라왔다더라고요. 저처럼 10년 넘은 채권이 ㄱ대부로 팔려가서 재판받으러 온 거더라고요." 대부업체는 사온 채권에 대한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고 판결을 통해 재산 압류에 나서기 위해 줄줄이 소송을 걸고 있었다.
"채무가 인정되지 않냐", "반박 자료가 있냐", "원금을 갚는 선에서 조정하면 어떠냐" 등의 질문이 오갔다. 김씨는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했다. 김씨의 재판이 끝나는 데는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초조하게 판결을 기다리는데 '소가 취하됐다'는 통지문이 왔다. ㄱ업체는 추심이 여의치 않자 채권을 또 다른 곳에 팔았다. 김씨는 언제 소송이 다시 들어올지 몰라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5월, 김씨의 집
채권자로부터 우편물이 도착했다. 또 추심이 시작되는 걸까 걱정하며 봉투를 뜯은 김씨는 뜻밖의 문구를 발견했다. '귀하의 빚이 탕감됐습니다.' 채권자는 시민단체 '희망살림'이었다. 희망살림은 대부업체들이 장기부실채권을 싼값에 사들인 뒤, 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 전액을 갚으라고 독촉해 돈을 버는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4억6764만원어치를 사오는 데 1300만원이 들었다. 원금의 2.7%밖에 들지 않은 것이다. 그중 김씨 남편의 채권이 있었다.
금융연구원은 채무연체 취약계층 350만명 가운데 114만명이 '상환 능력이 매우 부족한 채무자'라고 지난해 10월 발표했다. 10년 넘게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살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한 장기 연체자들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실시한 '국민행복기금'이 있지만 일회성이고,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은 원금이 일부 탕감돼도 당장 남은 빚 갚기가 쉽지 않다. 희망살림은 더 많은 채권을 사오기 위해 6월6일까지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다. 문의 070-8785-6127.
송경화 기자
희망살림 사이트 : http://cafe.daum.net/edu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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