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우리는 지금/사회·문화

영원한 라이벌 한국 인터넷 선구자 4인의 남다른 인연

자연정화 2014. 5. 31. 19:42

이해진-김범수 "30년 동반자서 경쟁자로"…

김정주-김택진 "1위 다툼 경쟁자에서 동지로"

 

자료출처 : [머니투데이 2014. 05. 31. 05:41  최광기자]

66년에서 68년생. 서울대 공대 85 또는 86학번. 한국 인터넷 산업을 태동부터 현재까지 이끌어온 이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 4명은 모두 60년대 후반에 태어나 비슷한 성장기를 보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퍼스널컴퓨터를 접한 1세대다. 이해진 의장과 김정주 회장은 KAIST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한국 인터넷 도입을 눈으로 지켜봤다. 이해진 의장, 김범수 의장은 삼성SDS에서, 김택진 대표는 현대전자라는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들이 사회로 나온 199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닷컴열풍이 불어닥친 시기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자'며 대기업을 뛰쳐나와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냉정한 전략가(이해진), 과감한 승부사(김범수), 탁월한 선구안(김정주), 자상한 조직관리(김택진) 등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이 협력과 경쟁으로 이뤄낸 성과는 한국 인터넷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왼쪽),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해진·김범수, 30년 우정은 접어두고 동반자에서 경쟁자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남다른 인연으로 연결된 사이다. 서울대 86학번, 삼성 SDS, NHN창업으로 이어진 인연이 30년이 돼간다. 더욱이 동반자에서 이제는 경쟁관계다.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으로 김 의장과 이 의장의 경쟁은 단순히 한 회사의 주도권 다툼이 아니게 됐다. 글로벌과 모바일을 넘나드는 전세계적 인터넷 분야의 경쟁의 전면에 섰다.

서울학교 대학원을 마친 김 의장과 KAIST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이 의장은 나란히 삼성SDS라는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닷컴 열풍에 회사를 떠나 창업을 결심한다. 먼저 움직인 인물은 김 의장이다.

김 의장은 '인터넷에서는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지론을 가졌다. 1등을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아는 승부사의 기질도 갖추었다는 평가다. 1998년 삼성SDS를 나와 창업한 한게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신생 포털이었던 이 의장의 네이버와 과감하게 합병을 결정한 것도 1등을 위한 김 의장의 승부수였다. 5년이 지나지 않아 김 의장의 승부수는 옳았음이 증명됐다.

 

 

그런 김 의장이 2008년 돌연 NHN을 떠났다. 김 의장은 "삼성SDS를 떠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데"라는 말로 NHN에서 자신이 이룰 수 있는 한계를 설명했다. 한게임의 성장을 위해 네이버컴과 합병을 택했던 김 의장이 이번엔 카카오의 성장을 위해 다음과 합병이라는 두 번째 빅딜을 선택했다. 첫째 합병의 주도권은 김 의장에 없었으나 이번엔 김 의장 몫이었다. 김 의장은 합병법인의 지분 39.8%를 거머쥐며 최대주주의 위치를 차지했다.

김 의장과 친분이 있는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다음카카오는 합병에서 천명했던 '글로벌을 향한 시너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바일 이후의 인터넷'을 위한 도전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NHN의 공동창업자 3인방 중 유일하게 네이버에 남은 이 의장도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처지는 마찬가지다.

이 의장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면서도 사내 구성원과는 활발한 소통을 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핵심인재의 영입이나 주요 M & A 등 주요한 결정은 대부분 이의장의 결단으로 이뤄졌다. 싸이월드 개발의 주역인 이람 캠프모바일 대표의 영입이나 글로벌 검색시장 공략을 위해 인수한 '첫눈'이 그 대표적인 예. 일본 시장의 도전을 검색에서 시작했다가 모바일 메신저로 급선회한 것도 이 의장의 결단으로 가능했다.

이 의장은 "회사는 조기축구회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며 프로의식과 벤처 정신을 강조했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 이상을 해내는 프로선수가 돼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혁신을 강조한 이 의장의 경영 방침은 네이버를 '안방 10년 천하'라는 타이틀을 떼고 진정한 글로벌 성공자로 변신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외부활동을 자제했던 이 의장은 지난해 라인이 세계 가입자 3억명을 돌파하자 공식석상에 다시 섰다. 이 의장은 "내놓을 만한 성과가 없어서 나서지 못했다"면서 "모바일 시대에는 규모나 자금력보다는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가 승패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정주·김택진, 게임계 주름잡던 맞수 한 배탄 동지로

게임업계에서는 반대다. 오랜 라이벌 관계였던 두 창업자가 2년 전 빅딜을 계기로 한 배를 탔다. 국내 게임업체 1위를 다투고 있는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만남이다.

2012년 6월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 14.7%를 인수하며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전까지 24.9%를 소유하고 있던 김 대표의 지분은 9.99%까지 내려갔고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주인이 됐다. 물론 지배 구조에는 변화가 없다. 김 대표는 여전히 엔씨소프트 수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전까지 게임업계 선두를 다투던 두 업체간 빅딜이 이뤄진 이유는 대형 M & A(인수합병) 모색이었다. 넥슨이 김택진 대표의 지분을 사들이고 이를 통해 얻은 현금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인수해보겠다는 야심이었다.

그해 말 열린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김 대표는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 인수와 관련해 좋은 M & A(인수합병)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EA(일렉트로닉아츠), 밸브 등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성사는 되지 못했다.

김택진 대표는 1997년 엔씨소프트 창업 이후 17년간 엔씨소프트를 이끌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등 대형 MMORPG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기업. 대형 MMORPG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기획·개발·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인원을 지휘해야한다. 엔씨소프트가 대형 MMORPG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데는 김 대표의 리더십이 밑바탕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가 2012년 NXC에 지분을 넘긴 후에도 직원들의 큰 동요가 없었던 것도 그가 엔씨소프트의 경영을 계속한다는 신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정주 회장은 넥슨 창업이후 게임 사업에만 전념해 온 인물이다. 2005년 서원일 위메이드 해외사업 본부장이 넥슨 대표에서 물러나자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잠시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2006년 넥슨의 지주회사 NXC를 세운 후 대중 앞에서는 '사라진' 존재가 됐다.

하지만 넥슨의 일본 상장을 비롯해, 게임하이, JCE(현 조이시티), 엔도어즈 등 주요 게임 회사의 인수합병은 모두 김 회장의 결정으로 진행됐다. 2012년 김택진 대표의 엔씨소프트 지분을 인수하는 것으로 NXC는 국내 게임사에서는 절대적인 위치로 떠오르게 됐다.

업계에서는 김 회장과 김 대표가 맏형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한동안 전면에 나서길 꺼려하던 이들도 최근 들어 대중과의 접촉을 늘려나가고 있다. 김 회장은 이달 27일 열린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2014' 기조연설자인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 소개자로 나섰다. 오후 세션에도 토론자로 참여해 약 1시간 동안 대담을 나눴다. 지난해 말 노르웨이 유아용품 업체 스토케 인수, 올해 초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둔 스타트업 전문펀드 콜라보레이티브 펀드 참여 등으로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도 지난해 NC다이노스 프로야구 1군 참가 이후 간간히 야구장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e스포츠대회에 부인 윤송이 부사장과 깜짝 방문해 팬들과 만남의 자리도 가졌다.

머니투데이 최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