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우선주의가 경제를 붕괴 시키는 이유
자료출처 : KBS 2015. 5. 11.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26
지난 달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8%나 줄어들면서 우리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수출 감소세가 넉 달 새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제품인 가전이 24%나 줄었고, 자동차도 8%나 감소하였다. 수출 강국을 만들겠다며 근로자들의 임금을 억제해 온 탓에 내수가 꽁꽁 얼어붙은 우리 경제에 이제 유일하게 남은 성장 동력인 수출마저 꺾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수출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수입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다. 지난 달 수출이 8% 줄어든 반면 수입은 무려 18%나 줄어들어, 무역수지는 85억 달러 흑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 2월부터 석 달째 월간 사상 최대 무역흑자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가 늘어나면 무조건 좋은 것인 줄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국가경제는 가계와 달라서 지금과 같이 수입 급감으로 인해 발생한 흑자는 극심한 불황이 엄습해 올 것을 알리는 위험한 전조(前兆)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불황이 전 세계로 확산돼 ‘환율 전쟁(Currency war)’이 시작될 조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천문학적인 흑자가 치명적인 독이 될 가능성도 높다.
또한, 이 같은 무역수지 흑자는 그동안 우리가 추진해 왔던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의 후폭풍으로 우리 경제를 치명적인 불황으로 이끌 독소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대비책을 준비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우리와 같은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을 썼다가 대다수 국민들이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멕시코다.
■ 세계 최고의 부자와 최악의 빈곤이 공존하는 나라
멕시코의 치안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세계 최대의 마약 소굴로 알려진 멕시코 북부지역의 도시들이 하나 둘씩 마약 갱단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된 도시 중 가장 악명 높은 과달루페(Guadalupe) 시에 20살의 앳된 여대생 마리솔 가르시아(Marisol Garcia)가 경찰서장으로 취임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마약 갱단의 공격으로 과달루페 시 인근에서만 시장을 포함해 모두 2,500명이 살해되었다. 더구나 경찰서장까지 멕시코 마약 갱단에 납치돼 고문을 당하고 목이 잘려 숨진 뒤에는 아무도 경찰서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20살의 여대생인 가르시아가 남성도 꺼리는 경찰서장에 자원하자 곧바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가르시아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에 자그마한 체구의 전형적인 여대생이었다. 취임식에서 두렵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가르시아는 “두려움이 우리를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 된다”며 굳은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마약 갱단의 계속된 살해 위협과 공격에 시달리던 가르시아는 결국 6개월 만에 미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했다. 결국 한 사람의 용기와 노력만으로는 이미 붕괴한 치안을 회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멕시코는 2005년 상반기에만 194건의 납치 사건이 일어나, 납치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치안이 가장 불안한 나라가 되었다. 더구나 납치조직이 경찰과 유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납치를 당해도 신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납치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치안만이 문제가 아니다. 본 기자가 2006년 멕시코로 취재를 갔을 때, 시내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를 하면 어김없이 아기를 업은 소녀나 할머니가 나타나 정말 간절하게 구걸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다.
멕시코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1천 달러로, 남미국가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잘 사는 나라에 속한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부자로 등극했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이 사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출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근로자들의 임금을 극도로 억제하는 전략을 써 온 탓에 세계 최고의 부자와 최악의 빈곤이 공존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 도대체 멕시코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멕시코는 1940년부터 1980년까지 40년 동안 한국과 비슷한 국가 주도형 발전 전략을 채택해 평균 6.2%에 이르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여 ‘한강의 기적’에 못지않은 찬사를 받았다. 1975년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47위까지 올라, 당시 세계 76위에 불과했던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았던 나라였다.
하지만 1976년 대규모 유전 개발에 성공하면서 멕시코의 놀라운 성장신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석유가 발견되면 국가경제에 대단히 좋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미국과 같은 경제대국이 아니면 오히려 경제가 후퇴하는 ‘산유국의 저주’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멕시코도 석유 수출로 외화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자, 통화 가치가 올라가는 바람에 다른 산업들이 모두 도태되고 말았다. 더구나 멕시코 경제 기적을 가져왔던 성장전략과 산업정책까지 모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른 산업이 모두 몰락한 탓에 1981년 멕시코 수출의 4분의 3을 석유가 차지할 정도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세계적인 불황으로 유가가 폭락하자, 멕시코 경제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마침내 1982년, 멕시코는 국가부도의 위기 속에 채무지불유예(Moratorium)을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그런데 돈을 빌려준 IMF는 멕시코에 극도의 긴축정책을 강요하였다. 멕시코 경제의 회생보다 어떻게 월가의 돈을 회수할 수 있는지에만 몰두한 탓이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멕시코는 IMF의 긴축 요구를 거부하고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려고 했지만, 돈을 떼일 것을 염려한 IMF가 구제금융 중단이라는 초강수로 대응하는 바람에 이에 굴복한 멕시코는 외국인 직접 투자나 무역관련 보호장벽까지 완전히 개방하고 말았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멕시코는 1980년대 후반부터 수출물량을 늘리는 데 모든 경제적 역량을 집중한 ‘수출 주도형 경제’로 급격히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살리나스(Carlos Salinas de Gortari) 정권은 수출 확대를 통해 멕시코 경제를 재건하겠다고 외쳤지만, 수출이 늘어나도 멕시코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점점 더 악화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멕시코 수출품의 70%가 단순 조립품이었던 탓에 아무리 수출을 잘 해도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수출 주도형 경제로 전환한 이후 근로자들의 몫이 계속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멕시코 제조업 근로자들은 노동 생산성을 28%나 높였지만, 임금은 오히려 22%나 줄어들었다. 이처럼 근로자들의 임금이 줄어들자 멕시코 내수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2006년 본 기자가 멕시코 취재 당시 만났던 에르난데스(Hernandez) 노동부 차관은 이제 멕시코 기업들이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이를 사 줄 든든한 내수시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해외시장만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다며 답답해했다.
■ 임금 상승 없는 수출 주도형 전략은 왜 위험한가?
하버드 대학교의 대니 로드릭(Dani Rodrik)교수는 ‘한 나라의 경제에서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기업의 이윤이 커지는 반면, 근로자들이 임금으로 받아가는 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역설(力說)하였다. 특히 아무런 비전(Vision) 없이 단지 수출 물량만 확대하는데 몰두하는 정부는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국내 물가를 끌어올리게 되고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가 글로벌 경쟁을 핑계로 끊임없이 근로자들을 압박하기 때문에, 임금은 낮아지고 재벌의 몫은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근로자들의 몫이 줄어들어 임금이 노동생산성 증가분조차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 내수시장이 급격히 축소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같은 경제 구조가 계속되면, 마치 하늘만 쳐다보며 비 내리기만 기다리는 ‘천수답(天水畓)’처럼 남의 나라 경제에 완전히 의존하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다른 나라의 작은 움직임에도 자국 경제가 크게 흔들려 경제위기에 취약한 경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지금처럼 근로자들의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달성한 노동생산성만큼도 대우해주지 않는다면, 아까운 인재들이 국외로 빠져나가 경제에 치명타를 주게 된다. 2005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국제이민, 송금, 두뇌유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었던 192개국 중에서 세계 인재 유출 1위의 불명예를 기록한 나라는 멕시코였다. 실제로 멕시코를 빠져나간 대졸 이상의 인재가 한 해 78만 명에 이른다. 멕시코에서는 대학 등록금이 모두 국비로 지원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세금으로 애써 키운 소중한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두뇌유출도 만만치 않게 심각한 상황인데, 만일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조만간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저임금을 기반으로 수출 증대만을 추구하는 것은 ‘중상주의’ 시대에나 통용되던 낡은 전략이다. 일찍이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가의 부(富)는 나라 안에 쌓인 금은보화 총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며 ‘중상주의’의 무지(無知)를 호되게 비판하였다. 실제로 달러를 창고에 가득 쌓아놓은 채 국민들이 더 가난해진다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국부(國富)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창고에 금은보화를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야 한다. 우리 경제가 멕시코의 실패를 답습하기 전에 이미 2백여 년 전에 나왔던 애덤 스미스의 혜안을 다시 돌이켜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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