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재신' 아시아 최고 부자, 리카싱 청쿵그룹회장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를 중퇴한 가난한 소년. 찻집 종업원, 시곗줄 외판원 하며 華商의 꿈을 키운 노력파. 22세에 창업해 54개국의 500여개 기업을 거느린 천재적 기업인. 개인 재산 33%, 6조원을 내놓은 그가 말한다.
“진정한 부귀는 금전을 사회 봉사에 쓰려는 참된 마음에 있습니다”
기자는 눈을 의심했다. 개인 재산만 188억달러(약 18조원). 아시아 최고이자 세계 10위의 부자인 리카싱(78·李嘉誠의 캔토니즈식 발음·이하 모두 홍콩 캔토니즈 표기법 사용) 청쿵(長江)그룹 회장이 직접 운전대를 붙잡고 차를 몰다니! 지난 10월 20일 오전 6시50분 홍콩섬 남쪽 풍광 좋은 딥 워터베이(Deep Water Bay)의 홍콩골프클럽 입구.
눈을 씻고 다시 봐도 7~8년쯤 됨직한 곤색 BMW 500의 운전석에서 내리는 이는 분명 리카싱 회장이었다. 경호원 한 명이 미리 주변을 지키는 가운데 바로 뒤따라온 차에서 2명의 경호원이 이어 내려 그의 곁에 밀착했다. 하지만 삼엄한 분위기는 아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옷차림새. 170㎝쯤 되는 적당한 키에 창이 달린 흰색 모자를 쓰고 있다. 흰 반팔 티셔츠에 연한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다. 양말과 신발·승용차 모두 허름하다. 명품 브랜드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찾을 수 없었고, 트레이드 마크인 커다란 까만 뿔테 안경도 여전했다.
부자 중의 부자, 그래도 직접 운전
한쪽 손에 아이언 골프채 하나 달랑 들고 차에서 내리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그도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악수를 청해 왔다.“매일 아침 골프를 치세요? 얼마나 운동하세요?”고 묻자 반가운 듯 편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건강 관리를 위해 이만한 게 없지요. 파3짜리 9홀 구장이잖아요. 두 번 도는데(그러니까 18홀)…. 보통 1시간에서 1시간15분 만에 다 마쳐요.”
환한 웃음과 함께 울려 나오는 경쾌한 목소리가 상대방 마음을 짜릿하게 만든다. 첫 느낌은 두 가지. 먼저 리 회장의 영어 발음과 표현. 고령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또렷하고 완벽했다. 그룹 관계자들을 추가 취재해보니 “리 회장은 지금도 퇴근 후 자택에서 TV 프로그램의 영어 자막 등을 보며 큰소리로 읽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두 번째는 빠른 걸음걸이. 1940년 고향(광둥성 차오저우·潮州)을 떠나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온 그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학교(중학 1년)를 중퇴했다. 어머니와 두 동생의 생계를 위해 철물점, 시계, 플라스틱 혁대 가게 등에서 외판원으로 일하면서 그는 홍콩섬과 카우룽(九龍)반도 등을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걸었다고 한다. 중대 결단을 내릴 때는 홍콩섬 센트랄(中環) 사무실에서 자택이 있는 리펄스 베이까지 10㎞ 거리를 걸어 다닌 적도 부지기수다. 속보(速步) 습관은 그래서 생겼다.
그는 홍콩섬 청쿵센터빌딩 맨 꼭대기인 70층에서 홍콩과 아시아를 호령한다. ‘재신(財神)’ ‘상신(商神)’ ‘초인(超人)’이라는 극존칭으로 불리는 그는 재산·학력·혈연 등 모든 면에서 제로(zero·無)였지만 아시아 최고의 기업군을 일궈낸, 살아있는 신화의 주인공이다. 이런 마력의 비밀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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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많은 사업에서 성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 열심히 일하고 인내력과 강한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아요. 더 중요한 것은 지식(knowledge)입니다. 특히 자신의 비즈니즈 분야에서 가장 업데이트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현재를 넘어 미래 자기 비즈니스가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세 번째는 정직과 신뢰로 자신에 대한 좋은 평판(reputation)을 쌓는 것입니다.”
그가 의미하는 지식은 단순한 기술이나 석사 박사 같은 학위가 아니다. “더 넓은 비전과 비판적 사고 능력, 건설적 진보를 위한 논리적 귀납 같은 것”(2003년 12월 베이징 이공대 강연)으로 세상을 보는 더 높은 안목을 뜻한다.
외판원 시절 그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바쁜 와중에도 영어 단어장을 만들어 틈날 때마다 외우곤 했다. 또 번 돈을 아껴 동년배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산 다음 퇴근 후 집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과서를 읽고 또 읽는 ‘자수자학(自修自學)’을 했다고 했다. 그의 독서 습관은 6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쉴 줄 모른다.
여든 가까운 고령임에도 세계 변화와 정세에 정통하고 최첨단 IT 분야까지 소상하게 꿰뚫고 있는 것은 취침 전 최소 30분 이상은 책을 읽는 평생의 불문율 덕분이라 한다.
사업 모토는 ‘안정 속 전진, 전진 속 안정’
-지금까지 비즈니스 모토(motto)는 무엇입니까?
“안정을 유지하면서 전진하고, 전진하면서 안정을 유지하는 것(發展中不忘穩健, 穩健中不忘發展)이라는 말을 평생 새겨 왔습니다.”
그렇다. 리 회장이 지금도 매우 보수적인 회계방식을 적용하고, 그룹 전체의 현금 흐름을 극도로 중시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는 1956년 이후 빚을 거의 지지 않는 ‘무(無)부채, 안정 경영’을 반(半)세기에 걸쳐 실천 중이다
“아무리 늦게 취침해도 오전 5시59분쯤 일어나요.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기온이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골프장에 갑니다. 전문 레슨을 받은 적은 없어요. 골프를 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정함을 잃지 않고, 전략을 잘 짜는 것이라고 봐요”.
그는 골프 수준을 묻는 기자에게 “싱글이나 보기 플레이어 정도는 못된다. 하이 핸드캐퍼(high handicapper)인데, 동반자(partner)로서 즐겹게 어울려 칠 만한 수준”이라고 겸손해 했다.
건강 관리술도 골프를 제외하면 특별한 게 없다. 술은 와인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담배, 춤 등은 아예 문외한이다. 저녁 약속도 거의 하지 않은 채 일찍 퇴근한다. 고기보다는 야채와 두부 등을 즐기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1967년부터 지금까지 65~68㎏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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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중 90% 5~10년후 고민… 은퇴 생각 안해봤어요”
자택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그는 매일 세계 각국 유명 신문들의 제목을 훑어본다. 관심있는 글로벌 경제 관련 기사 몇 개는 탐독한다. 출근 후 집무실에서 받는 각종 보고는 15분을 넘기지 않는 게 철칙(鐵則)이다.
―퇴근 후나 주말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시나요?
“주로 미래를 생각한다고나 할까요…. 업무시간 중에도 90% 이상은 내년이나 5년, 10년 후의 일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데 모두 바칩니다.”
리 회장은 지금도 자신이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를 8분 빠르게 맞춰놓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한 발 앞서 준비하는 철저한 자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어로 ‘8(八·빠로 발음)’은 돈을 번다는 뜻인 ‘發(파)’와 발음이 비슷하다. 중국인들이 8이란 숫자를 좋아하는 이유다. 사무실 전화번호 끝자리 4개도 모두 ‘8’이다.〉
미래를 대비하고 연구하는 그의 노력은 1970~1980년대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22세 때(1950년) 청쿵(長江)플라스틱을 창업한 데 이어 1971년에는 청쿵실업(부동산)을 만들어 주력사로 키웠다. 1979년에 또 다른 주력사인 허치슨왐포아(항만·전화·에너지·호텔 등 종합재벌), 그리고 1985년에 홍콩전력…. 사업 확장 때마다 그는 대성공을 거뒀다. 타이밍을 제대로 살리는 발군의 비즈니스 감각 때문이었다. 2003년부터는 3G(3세대이동통신)사업에 총매진 중이다.
―승승장구하신 사업 역정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1950년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였어요. 5만 홍콩달러(약 600만원)가 가진 돈의 전부였는데 너무 적었어요. ‘가진 것은 지혜와 학습과 노력뿐’이라는 각오로 최신 흐름을 쫓는 데 매진했어요. 1950년대 후반 ‘플라스틱’이라는 영어 잡지에서 플라스틱 조화(造花)가 히트할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어요. 성공할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죠.”
그는 그러나 조화 생산기술을 배워야 했다. 즉시 이탈리아로 날아가 선진 제조 현장을 둘러봤고, 이후 에너지를 연구 개발에 쏟아 부었다. 결국 7년 만에 플라스틱 조화 단일 공장으로 세계 최대 규모 사업장을 만들어냈다. ‘조화 대왕(大王)’ 별명은 이래서 생겼다.
―본인이 일구신 사업에 대해 자랑스럽겠지요. 스스로도 ‘나는 훌륭한 비즈니스맨’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 정반대인데…. 나는 훌륭한 비즈니스맨이 아닙니다. 첫째, 다른 사람 접대에 능하지 못해요. 둘째, 비즈니스관계를 맺는 데도 서툴고…. 마지막으로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감정에 너무 쉽게 이끌려요.”
―사업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사업가로서 약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배우고 혁신하고 열심히 일하자고 맘 먹었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좋아했어요. 이런 것들이 내 사업이 계속 클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봐요. 핵심 사업 영역에 초점을 맞추면서 확장을 위해 다른 영역을 늘 모색해 왔습니다. 또 여느 사업가들처럼 상대방을 접대하고 사업 파트너들과 어울리는 데 쓰는 시간을 최소화했어요. 대신 스스로 공부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힘을 키운 게 사업 성공의 핵심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사업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은 아니겠지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런 것이 인생에서 궁극적인 의미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것을 기꺼이 내 필생의 사업이라고 여깁니다.”
1980년 ‘리카싱기금회’를 만든 것도 이런 맥락 때문. 그는 리카싱기금회를 ‘셋째 아들’이라고 부른다. 기금회에 투입한 개인 재산만 80억홍콩달러(약 1조원)를 넘는다. “하루 10시간의 업무시간 중 6시간은 청쿵그룹 일에, 나머지 4시간은 기금회 활동에 쏟고 있어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입니까?
“좋은 책을 읽거나 골프에서 나이스 샷 할 때, 자선활동을 할 때, 가까운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친구들을 사귀는 순간…. 이런 것들이 내가 감사하는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가장 즐기는 것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리카싱기금회가 벌이는) 교육과 의료건강사업에 쏟아 부을 때입니다.”
리 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기금회에 낼) 수표에 그냥 서명만 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과정에 직접 몸 담는 걸 좋아합니다. 봉사활동의 효율성을 평가하고 직접 찾아가봄으로써 돈의 진정한 가치와 내 사업의 의미를 새삼 발견하는 것이지요. 이런 때가 가장 큰 즐거움(the greatest joy)이에요.”
리 회장은 올 8월 총재산의 3분의 1(63억 달러·6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동양의 전통적 사고는 재산을 아들이나 손자에게 물려주는 것이지만, 이런 구습을 바꿔 사회로 돌려주는 즐거움과 보람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부(富)는 무엇입니까?
“부(富)는 많아도 귀(貴)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요. 진정한 부는 자기가 번 금전을 사회를 위해 쓰려는 속마음(內心)에 있다고 봐요.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바른 뜻(志氣)’이 없는 사람은 가장 가난한(最窮) 사람입니다.”
좌우명은 ‘의롭지 못한 채 부귀를 누림은 뜬구름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논어의 한 구절이다. 집무실에 걸려 있는 대형 동양화도 그의 맘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림에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구 ‘山中問答(산중문답)’이 쓰여 있었다. (나에게 ‘무슨 뜻으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가니, 별천지요 인간 세상 아니라네.)
―한국에 대한 인상이 궁금합니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감탄(admiration)합니다. 한국인들은 애국적이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애쓰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 자신의 재산과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나라를 살리려 한 데 큰 감명을 받았어요. 한국인들은 산업과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GDP 대비 R&D투자 성과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2년 후면 80세다. 때문에 그의 건강문제는 세계적인 뉴스다. 작년 8월 중순 리 회장의 건강 악화설이 나돌자 홍콩 항셍(恒生)지수는 하루 만에 300포인트 넘게 빠지며 폭락했다.
―나이가 많다는 생각을 안 하시나요? 은퇴 계획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몸이 건강하고 아무 이상이 없는데 나이가 무슨…. 은퇴는 아직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다만 2008년부터는 리카싱기금회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작정입니다. 하루 8시간 정도는 자선활동을 해야지요.”
‘청쿵(長江)’이라는 회사 이름은 ‘크고 작은 시냇물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정과 사회·기업에서 성공을 넘어 더 넓은 인류 봉사와 헌신의 무대에 몰입하려는 그의 말년은 여전히 20대 청년의 기백으로 충만한 거인의 활보(闊步) 바로 그것이다.
■ 리카싱 회장이 살아온 길 ˝의롭지 못한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 … 리카싱의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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