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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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하전여총도에 나타난 천하의 중심 한반도

자연정화 2016. 3. 10. 00:53

4. 천하전여총도에 나타난 천하의 중심 한반도

 

자료출처 : 통일일보 2007.01.19  01:02:08 <서현우와 함께하는 바다의 한국사 4>

 

5. 세계의 중심, 한반도

이 장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문제의 천하전여총도에 흥미를 가질 것이다. 또 그만큼 지도의 분석결과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한편으로 독자들 중 상당수는 지도의 진위여부에 앞서, 도대체 그 지도가 우리 역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에 더 관심을 느낄 것이다. 더욱이 ‘바다의 한국사’란 제하의 이 글의 첫 장에 내세운 주제이기에 말이다. 이 장에서는 그러한 의문을 놓고 논의를 시작하자.

문제의 천하전여총도는 2006년 1월의 공개 직후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학계에 미친 파장은 물론이고 세계 유수의 방송에 의해 비상한 관심사로 취급되어왔는데, 특히 미국과 동남아시아는 지도의 진위논쟁에 있어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선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문제의 지도가 중세 중국의 지도이기에,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며, 더구나 이른바 ‘동북공정’에 심기가 불편한 우리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행여 지도가 더해줄 중국역사의 영광과, 그에 대비되는 우리역사의 상대적 빈곤 탓일 것이다.

어쨌든 문제의 천하전여총도는 공개와 동시에 뉴질랜드의 와이카토 대학에 분석이 의뢰되었다. 분석결과는 뒤에서 살피기로 하고, 여기선 일단 다음의 내용으로 논의를 시작하자.

이제까지 보았듯이 독자들은 천하전여총도(1763년)에 나타나는 남극대륙과 ‘캘리포니아 섬’이란 특징이 공교롭게도 조선의 두 지도, 지구전후도(1834년)와 곤여전도(1860년)에도 나타남을 알았을 것이다.

만약 천하전여총도가 실제로 1763년의 것이라 밝혀진다면, 이 지도들 중에서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시기의 지도이자, 두 특징이 담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지도가 된다.

그렇다면 이 지도들을 그보다 앞선 시기의 지도들과 비교해 보자. 아래는 앞장에서 다룬 4지도 중의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1602년)와 기울리오 알레니의 만국전도(1623년)이다.

 

▲ 1602년 제작된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 [자료사진 - 오길순]

 

▲ 1623년 제작된 기울리오 알레니의 만국전도. [자료사진 - 오길순]

 

알다시피 위 지도들은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제작한 지도들이다. 그런데 위 지도들엔 (당연하게도) 남극대륙 및 호주대륙이 미지의 영역으로 나타난 반면, 캘리포니아 반도의 실제 정보가 담겨 있다.

즉 캘리포니아 일대의 실제 정보가 (당시 유럽의 일반적인 지도보다도 더) 이른 시기부터 동양에 알려져 있었다는 증거이다.

더하여 4지도의 나머지 지도들인 조선의 지도, 천하도지도(1770년)와 ‘하백원의 만국전도’(1821년)는 이 지도들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 내용이 흡사하다. 그러므로 이들 4지도가 17C 이후의 동양의 일반적인 세계지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만약 천하전여총도가 후대의 위작이라고 간주해 보자. 위작자는 당연히 위 지도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작자는 왜 위 지도에서 부정된 ‘캘리포니아 섬’을 차용했으며, 나아가 콜럼버스 시대 이전인 1418년의 원본 지도(천하제번식공도)를 운운했을까? 그것은 스스로 위작임을 드러내는 꼴이 아닌가? 더하여 원본지도에다, 조정에 바쳤음을 의미하는 공도貢圖란 이름을 붙여서 말이다.

한편으로 지구전후도의 제작자인 최한기, 김정호와, 곤여전도의 중간重刊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의문이 생긴다. 왜 그들은 당시 신정보이자, 이미 일반화된 정보를 외면한 채 굳이 그들의 지도상에 ‘캘리포니아 섬’을 택했을까?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당대 실학의 거두이자, 부호였던 최한기의 서고, 태연재泰然齋와 기화당氣和堂엔 중국, 일본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각종 진귀한 물건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위 지도들 이외의 여타 동서양의 신 지도들도 접했을 것이다.

위의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필자가 가질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는, 천하전여총도가 스스로 알리고 있듯이, 실제 그 지도가 1418년 제작의 천하제번식공도의 모사본이란 것이다. 아울러 최한기와 김정호가 천하전여총도와 그 기원을 같이하는 모종의 지도를 입수하여 그것을 더 신뢰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조선판 곤여전도의 모본이라 알려진 1856년 광동판 곤여전도 역시 같은 경우일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논리이자, 가설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몫이다.

자, 이제 천하전여총도에 대한 논의의 마지막으로, 필자가 이제까지 언급을 미뤄온 지도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드러내 보자. 이 특징이야말로 필자가 이 지도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이유의 핵심이 된다.

이제 독자들은 눈길을 아래의 천하전여총도로 향하여, 지도의 중앙에 남북으로 그어진 수직선이 어디를 지나는지 확인해 보길 바란다.

 

▲ 2006년 1월 17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 의해 런던에서 공개된 1763년 제작의 세계전도 '천하전여총도'. 한반도가 중심에 놓여있고 지도상엔 1418년에 제작된 '천하제번식공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자료사진 - 서현우]

 

순간 독자들의 눈이 커질 것이다. 놀랍게도 중앙 수직선이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음이 아닌가?

앞서의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나, 알레니의 만국전도를 보라. 그 지도들의 중심 경선은 그저 태평양 가운데를 지나, 각자 베링해 양안의 육지로 이어질 뿐이다. 중심 경선과 한반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천하전여총도의 중앙에 한반도가 놓여져 있다니?

한반도를 지나는 그 수직선의 위아래로 눈길을 따라가 보라. 그 선은 접었던 흔적이라 보기엔 선의 굵기가 어울리지 않게 가늘다.

독자들 중의 일부는, 그렇다고 해서 이 선이 한반도가 지도상의 중심임을 나타낸다고 보기엔 무리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처음 생각도 그랬다. 그러나 이 지도가 1418년 지도의 모사본이라고 밝혀진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최종 판단이다.

이 수직선을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1418년 당시의 중국적 사유방식이나, 가치관, 세계관에 의해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지도가 되고 만다. 독자들은 뒷장에서 (이 글의 다른 주제에서 다룰) 대명혼일도 같은 지도를 통해, 당시 명나라 지도의 특징들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인데, 앞서 언급한 직방세계관으로 볼 때 당연 지도의 중심은 중국, 그것도 당시의 명나라 도읍지인 오늘날의 남경이나, 새 도읍지로 한창 건설공사 중이던 오늘날의 북경이어야 마땅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 수직선은 한반도가 중심임을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어진 선이다. 즉 한반도자오선을 강조하는 일종의 지도상의 경선인 것이다.

독자들의 판단은 어떠한가?

보다시피 이 지도는 두 개의 큰 원을 일부 겹친 형태로 하여 그 안에 세계를 담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의 수직선이, 두개의 원이 맞닿는 아래위의 ∨와 ∧, 두 모서리를 잇는 가상의 수직선에서 약간 어긋남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놓고 필자는 한반도 상上의 수직선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추론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이 수직선이 지도의 모본인 1418년의 천하제번식공도에 실제 그어져 있었다는 것, 또 하나는, 만약 그렇지 않다면 1763년 모사본의 제작과정에서 제작자의 눈에 한반도의 위치가 모본과 달리 지도의 중앙에서 약간 비켜나는 것처럼 보이자, 제작자가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특별히 그은 선이라고 말이다.

필자로선 그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만약 독자들마저 필자와 의견이 같다면, 우리는 위 수직선을 지도상의 한반도자오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지도의 진위여부에 따라 두 가지 궁금증을 가질 것이다. 즉 1418년 모본 지도의 존재가 진실이라면 대체 그 지도제작자가 누구인가라는 것과, 이와 달리 이 지도가 후대의 위작이라면 대체 그 위작자는 무슨 의도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우리로 하여금 위작의 심증을 더 하게 하는 것인가를 말이다.

자, 이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천하전여총도에 대한 분석을 마치기로 하고, 이제 그것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과, 뉴질랜드 와이카토 대학의 분석결과에 대해 알아보자.

분석결과가 나오기 이전까지 논쟁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1763년이란 제작연대에 있었다. 즉 지도가 실제 1763년의 것임이 확인된다면 당연히 1418년의 원본지도는 인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경우의 비유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만약 한국인의 누군가가 현재까지 확실치 않은 화성이나, 여타 태양계 행성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통합하여 최대치의 추정지도를 작성한다고 하자. 그는 어떤 엇갈리는 정보를 판단하는데 있어 더 오래된 정보를 취하는가 하면, 어떤 부분에선 일반이 쉽게 알 수 없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과감히 취하여 마침내 지도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 한국인은 엉뚱하게도 지도상에다, 이 지도가 (인류가 지구 밖의 행성 탐사에 나서기 전인) 20C 초의 어떤 시점에 작성된 지도의 모사본이라고 써놓는다. 그의 실제 의도는 후세에 이르러 한국인이 최초의 행성탐사에 나섰다는 증거조작을 위해서이다."

"실제로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오래전에 제작되어 아주 낡아버린 지도가 한 장 있는데 아무개는 그 지도가 보관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지도를 정성들여 모사한 뒤 모사한 지도에 그 유래를 밝힌다."

독자들은 위에 예에서 어느 쪽이 현실적이라 생각하는가? 불문가지, 두 번째일 것이다. 더하여 첫 번째의 예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그런 한국인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이기 이전에, 거의 정신병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논쟁의 초점은 1763년에 맞춰져 있었다.

논쟁의 양상을 들여다보자. 세계 언론의 비상한 관심 속에서도 지도의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주로 미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졌다. 특이하게도 필자에겐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호주 등의 서방사회가 논쟁의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볼 뿐, 진위 논쟁에 적극적이지 않는 것처럼 비쳐졌다.

필자의 생각에 서양의 이러한 반응은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는데,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 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어쨌든 진위논쟁에서 대표적 인물은 미국 워싱턴 주 타운샌드 소재 신대륙발견연구소의 구나 톰슨(Gunnar Thompson) 박사와 싱가포르국립대학 동아시아연구소의 게오프 와데(Geoff Wade) 박사라고 할 수 있는데, 전자는 지도가 진실이라는 입장의, 후자는 위작이라는 입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

위 톰슨은 인류학자이자, 고지도연구가로서 신대륙 항해에 대한 수수께끼를 다룬 여러 저서를 출간한 인물인데, 그는 최근에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는 명나라 초기 정화 함대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세계주항의 가능성을 뛰어넘어, 이미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 시대에 몽골 함대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런 만큼 그는 천하전여총도를 중세 유럽지도 및 원나라 지도와 비교해 가며 천하전여총도야말로 중세 유럽지도의 기원이었음을 주장했다.

반면 와데는 천하전여총도가 지난 50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이수한 누군가에 의한 위조품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두 개의 원에 세계를 묘사함은 유럽의 전통이며, 또한 ‘캘리포니아 섬’은 17C 유럽의 것이다. 또 중국을 중앙에 둔 (그의 표현) 세계지도는 17C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지도에서 나타남을 볼 때, 이 지도는 예수회 지도를 텍스트로 하여 17C 유럽지도를 베낀 것이다.
2. 명나라 시기의 여타의 지도 어디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을 반영하지 못했다.
3. 실제 구형의 지구를 평면에 묘사하려면 수학적 지식이 필요한데, 당시 중국엔 그런 지식이 없었다.
4. 지도엔 해안선만이 아니라, 내륙의 하천이나 산맥이 그려져 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5. 중국이 볼품(원문엔 Poor)없게 묘사되어 있다. 당시의 중국인 지도제작자가 왜 자신의 나라를 그렇게 초라하게 묘사했는가?

위의 양 입장은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이다. 한쪽은 유럽의 지도가 그것(천하전여총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유럽지도의 모사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필자가 확인한 바, 양측 어느 쪽의 주장에도, 또 그 내용에도 지도의 중심으로서의 한반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지도가 위조된 것이라 주장하며 위 와데가 내세운 근거는 필자가 보기엔 동양에 대한 무지의 발현일 뿐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동아시아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서 말이다. 필자는 다음 장에서 그의 저급한 동양에 대한 인식수준을 15C 조선의 관점에서 규명해 보일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논쟁의 과정에서 2006년 3월 하순, 뉴질랜드 와이카토 대학의 분석결과가 세상에 알려졌다.

방사선 탄소 연대측정 및 질량스펙트럼 분석 방법을 통해 나온 결과는 지도 제작에 사용된 종이와 잉크가 실제 17~18C의 것이란 내용이었다. (종이는 이미 지도의 공개 당시부터 대나무로 만든 종이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연대가 밝혀진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필자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겐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다양한 해석이 요구되는 문헌학으로서의 역사학이 내린 결과가 아니라, 자연과학이 실증해준 엄연한 과학적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제 천하전여총도는 250여년의 세월을 넘어 역사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자신을 둘러싼 비밀의 껍질을 누군가가 하나씩 벗겨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지도의 중심, 한반도. 한반도자오선.
과연 누가 무슨 의도로 한반도를 세계의 중심에 세웠을까? 그리고 그의 정체는, 대체 그는 누구일까?

호기심을 묻어두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