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천국' 된 한국]
11년 넘은 디젤차 276만대, 미세먼지 뿜으며 전국 질주
발암물질 8배·미세먼지 11배..검사 불합격해도 1만원 주면 '통과'
자료출처 : 한국경제 2016. 5. 19.
[ 강현우 / 박준동 기자 ] 판매 중인 디젤차보다 미세먼지 등 공해물질을 10배 이상 배출하는 노후 디젤차가 280만여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런 노후 디젤차가 자동차 정기검사에서 별 문제없이 통과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11년 이상 디젤차는 미세먼지 필터도 없어
19일 국토교통부와 업계에 따르면 2006년 1월 디젤차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4가 도입되기 이전에 팔린 11년 이상 된 노후 디젤차 276만여대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3월 말 기준 등록돼 있는 디젤차 878만여대에서 2006년 이후 신차 판매량과 폐차량 등을 대입해 산출한 수치다. 전체 승용차 2100만대 중 13%를 웃돈다.
현행 디젤차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6에 따르면 디젤 승용차는 1㎞ 주행 시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은 0.08g, 미세먼지는 0.0045g 이하를 배출해야 한다. 이 기준은 차량 크기에 따라 달라지며 대형 화물차는 NOx 배출 기준이 0.125g 이하로 높아진다.
2002년 7월부터 2005년까지 적용된 디젤차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3는 NOx 0.5g 이하, 미세먼지 0.05g 이하였다. 현행 기준과 비교하면 NOx는 8.2배, 미세먼지는 11배에 달한다. 당시 팔린 디젤차 한 대가 지금 팔리는 디젤차의 11배에 달하는 미세먼지를 내뿜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2005년 이전 판매된 디젤차에는 NOx 배출을 줄이는 배출가스재순환장치(EGR)만 장착돼 있고 미세먼지 저감장치인 디젤입자상물질필터(DPF)는 의무 사항이 아니어서 대부분 달려 있지 않다. 그나마 달려 있는 EGR도 노후화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차량이 많다.
정부는 2009년 유로5, 2014년 유로6 등으로 디젤차 배출가스 기준을 높여 왔다. ‘유로’는 유럽연합(EU)의 디젤차 배출가스 기준으로, 한국은 EU보다 1~2년 늦게 적용하고 있다.
‘뒷돈’으로 정기검사 합격처리
정부는 자동차 정기검사와 도로 위 수시검사 등으로 디젤차 배출가스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매연 디젤차를 걸러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 디젤차 정기검사 현장에선 검사 대행업체들이 뒷돈을 받고 검사를 통과시켜 주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2006년 2L 디젤차를 산 박모씨는 2010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집 근처인 서울 양재동 자동차 검사소를 갔다 온다. 지난달에도 다녀왔다. 박씨는 갈 때마다 ‘내 차가 매연을 조금 뿜는 것 같은데 통과될까’ 걱정이 든다. 하지만 양재동 검사소에서 직원을 만나는 순간부터 이 같은 걱정은 사라진다. 직원이 알아서 다 해주기 때문이다.
검사는 2010년부터 늘 불합격이다. 지난달에도 불합격이었다. 하지만 검사소 직원이 와서 1만원을 내면 아무 문제없이 해 준다고 한다. 들이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1만원이면 아무것도 아니다. 박씨는 지난달에도 1만원을 냈다. 검사소 직원은 10분 뒤 와서 키를 건네며 아무 문제없이 잘 처리했다고 한다. 박씨는 안면을 익힌 검사소 직원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검사소 직원은 “약품 좀 넣고 액셀러레이터 세게 몇 번 밟으면 NOx 이런 거 다 빼낸다”며 “그런데 이거 하루만 지나면 똑같이 되돌아간다”고 했다.
김모씨는 3L 디젤차를 2010년 샀다. 4년 뒤인 2014년 처음으로 검사소에 갔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검사소 직원은 “좋은 디젤차 사셨네요”라고 덕담까지 건넸다. 하지만 지난 3월 사고가 나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화가 나 차를 몰고 나왔다. 자동차회사에 전화를 해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느냐”고 따졌다. 자동차회사 직원은 “디젤차는 몇 년 지나면 원래 다 그런데 모르셨어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김씨는 벌금이 수십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 검사소 직원의 얘기를 기억하고 구청에서 얼마나 매길지 두려워하고 있다.
"노후 디젤 트럭 등 인센티브 줘 교체 유도해야 "
정부는 2009년부터 녹색성장 정책에 따라 배출량을 줄이는 쪽에 초점을 맞춰 기준을 강화했다. 2020년까지 자동차 회사들은 평균 탄소배출량을 97g/㎞ 이하로 낮추거나, 평균 연비를 24.3㎞/L로 높여야 한다. 현행 기준은 탄소배출량 140g/㎞, 연비 17㎞/L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5년 내 탄소배출량을 30% 정도 줄여야 한다. 2021년까지 탄소배출량 기준을 113g/㎞로 정한 미국이나 2020년 100g/㎞로 정한 일본보다 강도가 높다.
이 같은 정책 드라이브의 영향은 컸다. 완성차 업체들은 정부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 같은 친환경차 개발에 나서는 동시에 배출량이 휘발유(가솔린)보다 20%가량 적은 경유차 관련 투자를 대폭 늘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5개 완성차 업체들의 경유 승용차 모델은 2010년 21개에서 지난해 33개로 크게 늘었다. 전체 승용차 판매 중 경유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경유차 수요를 급격히 억제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동차산업 전문가인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경유차가 영세자영업자, 운수업자 등과 연계돼 있는 만큼 무차별적인 경유차 억제는 자칫 저소득자의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경유 가격 인상이나 환경개선부담금 인상 등의 수요 억제책으로 인해 외국산 경유차 판매가 감소될 경우 통상 마찰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해 배출가스를 많이 내뿜는 노후 경유차를 교체하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대형 트럭의 서울 시내 진입을 규제하는 등 선별적인 경유차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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