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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강소국들의 국경 파괴 실험

자연정화 2017. 12. 3. 10:39

북유럽 강소국들의 국경 파괴 실험

유럽의 실리콘밸리 가다-덴마크·스웨덴 메디콘밸리

 

자료출처 : 월간중앙 2013. 07. 15. 허정연, 백승아 기자

 

덴마크·스웨덴 걸친 유럽 최대 생명과학 클러스터 …

기업 주도로 성장한 100년 역사 과학단지

 

 

 

스웨덴 남쪽 끝의 말뫼는 해안가 중소 도시다. 덴마크 대륙과 외레순 해협을 사이에 둔 인구 30만 말뫼는 1980년대 초만 해도 잘나가는 산업도시였다. 특히 조선업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해안가 조선소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무게 7560t, 폭 165m, 높이 128m의 초대형 크레인은 말뫼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스웨덴의 조선업은 일본·한국·중국에 차례로 밀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곳 조선소도 문을 닫았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거대한 랜드마크를 해체·운반하는 데만 220억원이 들었다. 이 비용을 부담할 회사를 찾지 못해 한동안 방치했다. 2002년, 현대중공업이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사들였다. 이른바 ‘말뫼의 눈물’이다.

 

스웨덴의 이웃인 덴마크도 1990년대 들어 경제위기를 겪었다. 두 나라는 주저앉아 우는 대신 힘을 모았다. 말뫼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잇는 대역사 외레순 대교가 2000년 7월 완공됐다. 과거 영토 분쟁으로 수 차례 전쟁을 치를 만큼 오랜 앙숙 관계인 두 나라는 8km 길이의 다리 하나로 단일 경제권을 이뤘다. 코펜하겐 시민들은 집세와 물가가 30%가량 저렴한 말뫼로 이사를 가고, 말뫼 시민들은 코펜하겐 직장으로 출퇴근했다.

 

기차로 15분이면 코펜하겐 국제공항에 다다를 수 있게 되면서 말뫼·룬드 지역에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도 늘었다. 1990년대 중반 두 도시 실업률은 15%에 이르렀지만 외레순 대교가 개통된 이후 실업률은 각각 4%(코펜하겐), 7%(말뫼)대로 떨어졌다.

 

그 원동력은 두 나라에 걸쳐 형성된 과학비즈니스벨트 ‘메디콘밸리(Medicon Valley)’였다. 제약회사와 의료기기·기술회사 등 생명과학 분야 기업이 밀집한 메디콘밸리의 외연은 넓다.

덴마크 코펜하겐 도심에서부터 스웨덴 말뫼~룬드~헬싱보리에 이르는 ‘스코네(스웨덴 남부권역을 지칭)’ 지방이 모두 과학비즈니스벨트에 포함된다. 서로 다른 나라이지만 국경을 통과할 때 따로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듯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건너 스웨덴 말뫼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스타트업(신생 기업)부터 중소·중견기업, 대기업을 포함해 600여 기업이 자리잡았다.

 

8㎞ 대교로 단일 경제권

메디콘밸리는 다양한 기업이 100년에 걸쳐 만든 과학단지다. 1900년대 초반, 이곳에는 이미 건선치료약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레오파마가 자리를 잡았다. 이어 인슐린 제약회사로 널리 알려진 노보노디스크과 룬드벡 등 대형 제약회사가 차례로 들어섰다. 이 회사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자 이를 중심으로 의료기기 기업과 제약사·병원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주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형성된 다른 나라 과학비즈니스벨트와 다른점이다. 지금도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특별한 지원은 없다.

 

메디콘밸리의 규모가 커지자 효율적 운영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인 메디콘밸리얼라이언스(MVA)가 출범했다. MVA는 양국에 걸쳐 생성된 생명과학 단지를 위한 비영리단체다. MVA는 이곳에 속한 기업·대학·연구소의 교류와 협력을 돕는다.

이 운영조합은 1997년 유럽연합(EU)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돼 처음에는 룬드와 코펜하겐 대학만 참여했다. 이후 지역 내 대형 제약사의 지원으로 규모가 커졌다. 스티그 요한슨 MVA 대표는 “메디콘밸리는 이익을 찾아서 들어온 기업이 꾸린 자발적인 클러스터”라며 “입주 기업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4일, 코펜하겐 MVA 컨퍼런스룸에서는 ‘한국 생명 과학 연구 현황과 시장성’이란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60여명의 MVA 멤버가 모여 한국 의료시장과 관련 법규를 배우고 시장 전망을 짚어봤다. 당시 발표자로 나선 토마스 욘슨은 한국과 일본 의료시장에 능통한 연구원이자 홍보대사다.

그는 “현재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세계 15위권에 드는 한국은 2016년까지 톱7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며 “한국은 이미 자동차·조선·전자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런 잠재력을 바이오테크에서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덴마크 대형 제약사인 룬드벡이 이미 한국 생명과학 분야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해 방한한 적이 있고, 16개 기업과 연구소를 돌아봤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서울대와 심포지엄을 여는 등 다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MVA는 생명과학과 관련된 해외시장 현황, 진출 방안 등에 관한 컨퍼런스를 수시로 열고, 구성원의 해외 진출을 돕는다.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비용은 MVA 회원이면 무료다. 멤버가 아니면 행사마다 2000크로나(약 40만원)의 참가비를 따로 내야한다.

MVA의 운영은 구성원이 낸 연회비와 EU에서 받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구성원이 되려면 기업의 경우 6075 덴마크 크로나(약 120만원)의 연회비를 내야 한다. 여기에 구성원 수당 280크로나(약 5만5000원)를 추가로 낸다.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회비를 많이 내는 구조다.

 

기업 성장 단계에 따라 맞춤형 지원

구성원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한 중소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수잔 헤이보리는 “컨퍼런스 참가 때 마지막 15분은 네트워킹 시간”이라며 “이 때 다양한 업체 사람과 명함을 교환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나 연구 동반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MVA는 ‘앰배서더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도 돕는다. 이 프로그램은 정보 부족이나 비용 마련 등의 문제로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마련했다. 일본·캐나다·러시아·미국 등 해외 시장과 국내 상황을 모두 잘 아는 전문가를 파견해 진출 예정 국가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2008년 시작해 아직 초기 단계지만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는 프로그램이다.

 

코펜하겐 도심의 니코틴 츄잉검 생산 기업 알칼론(Alklaon)은 앰배서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이 회사는 ‘알칼론’이라는 기업의 브랜드 대신 제품의 라이선스를 판매한다. 가령 한국 기업에 라이선스를 판매한다고 하면, 해당 기업이 식약처로부터 제품 판매에 대한 승인을 받은 후에 제품을 수출하는 식이다.

 

알칼론은 앰배서더 프로그램을 통해 캐나다와 일본에 니코틴 츄잉검을 판매했다. 보 탄드롭 알칼론 대표는 “해외 시장 중에는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이 있다”며 “일본이 대표적인데, 현지 전문가를 통해 일본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처럼 작은 회사일수록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이 프로그램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다른 과학클러스터가 해외 기업을 유치하려고 애쓰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역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더욱 중시한다. 메디콘밸리에서 성장한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와 국제 경쟁력을 키우려는 것이다.

스티그 요한슨 MVA 대표는 “덴마크와 스웨덴은 작은 나라라 국내 시장만으론 경쟁력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며 “인력·정보·비용 부족 등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해외 진출 활로를 열어준다”고 말했다. 그는 “앰배서더 프로그램이 해외 시장에 MVA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알려 결과적으로 해외 기업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덴마크와 스웨덴 남부 전역에 흩어진 입주기업의 지역적 특성을 이용해 돕는 기관도 있다. ‘인베스트 인 스코네(Invest in Skane)’는 스웨덴 스코네 지방 기업의 운영을 관할하는 일종의 투자청이다. 이곳은 스코네 지방의 대표 도시인 말뫼·룬드 지역에 입주한 기업의 운영을 돕는다.

 

스테판 요한슨 인베스트 인 스코네 대표는 “컨퍼런스를 열어 전 세계 기업과 스웨덴 지역 기업의 미팅을 주선한다”며 “기업이 마케팅이나 홍보에 별도의 비용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해외 시장에 그들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 투자청은 지자체 행사와 연계해 기업을 알리고, 문화·주거·교육 등 사회기반시설 전반에 걸쳐 기업 친화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한다.

 

메디콘밸리에는 코펜하겐·룬드대학을 포함해 12곳의 대학과 32개 병원(대학병원 11개 포함)이 모여있다. 특히 이들 대학은 메디콘밸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한다. 코펜하겐 의과대학은 메디콘밸리에 입주한 기업과 탄탄한 연구 파트너십을 유지한다. 코펜하겐 의대는 칼스버그를 비롯한 대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는다. 공공기관·정부가 후원하는 금액보다 많다. 올해 코펜하겐 의대가 기업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1억1200만 유로(약 1766억원)에 이른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내는 공적자금은 5300만 유로(약 779억원)다.

 

메디콘밸리 안에 수많은 클러스터 형성

이곳 학생들은 ‘산업 박사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과 공동연구에 참여한다. 기업에 연구인력으로 파견되는 방식이다. 코펜하겐 의대는 기업과 학교에 감독관을 따로 둔다. 스벤 프료케아 의대 교수는 “코펜하겐 의대는 기업과 연구 파트너로 돈독한 관계”라며 “연구에 참여한 학생은 졸업 후 기업이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관계자를 강사로 초빙하는데 이 또한 산학 협력을 공고히 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메디콘밸리 덕에 이 지역은 최근 북유럽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2009년 스코네 지방은 스웨덴 전역에서 ‘글로벌 기업의 고용률 부문’ 5위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수도인 스톡홀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스테판 요한슨 인베스트 인 스코네 대표는 “평균 7~10개 해외 기업이 해마다 말뫼 지역에 입주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생명과학 분야 8개 기업, 재료과학 분야 5개 기업 등 4개 분야에서 총 22개 기업을 유치했다. 코펜하겐은 생명공학 관련 기업이 몰리고, 관련 벤처기업이 생겨나면서 국가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덴마크는 국민 1인당 의약품 수출액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의약품 수출 규모는 연간 84억 달러(약 9조5760억원)에 달한다. 또한 생명공학 특허 분야에서 세계 2위다. 국내 총생산(GDP) 대비 생명공학 투자 비중에서 유럽 1위다.

 

올해 3월, 메디콘밸리에 ‘메디콘빌리지’라는 새로운 과학단지가 조성됐다. 룬드에 있는 이곳은 본래 글로벌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 연구소가 자리한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가 이곳에 있던 연구소를 두고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 이 회사가 쓰던 고가의 시설과 기구로 신생 제약회사를 키우자는 데 합의한 룬드대학과 지자체는 재단을 세워 연구기반 시설을 사들였다.

 

초대형 제약회사가 자리를 뜬 지 3개월 만에 80개 신생 기업이 들어섰다. 6월에는 룬드대학의 과학자 130명이 입주를 마쳤다. 아네트 오르하임 메디콘빌리지 홍보 담당자는 “벤처기업이 이곳에 입주하면서 7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며 “과학단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연구와 기술 개발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규모를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메디콘밸리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기업이 모여 수많은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스티그 요한슨 MVA 대표는 메디콘밸리의 성장동력으로 끊임 없는 일자리 창출과 교육·연구기관 및 벤처기업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꼽았다. 지역·국가적 한계를 뛰어넘은 세계 최대의 생명과학 클러스터, 메디콘밸리의 국경 없는 활약은 끝이 없다.

 

메디콘밸리 얼라이언스(MVA) 메디콘밸리의 생명공학 분야 기업·대학·연구기관을 위해 일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조직이다. 비영리단체로 생명과학위원회를 대표해 지역 내 새로운 연구와 사업 기회를 창출하려는 목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 진행한다. 1997년 룬드·코펜하겐대가 ‘메디콘밸리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2007년 메디콘밸리얼라이언스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었다.

 

 

출처 : 녹협 연합회 http://cafe.daum.net/gaundeg/1BMc/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