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우리는 지금/우리 땅(대마도)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역사)

자연정화 2008. 8. 27. 13:00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역사)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대한지지>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이유


일본의 입장

 일본정부가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 것은 1905128. 그로부터 4주 뒤인 222일 시마네 현(縣)은 현(縣) 고시40호로 우리의 독도를
다케시마 」죽도(竹島)로 명명, 오키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둔다고 공시했다.

그후 독도는 1952
118,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호로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 규정하는 해양 경계선은 한˙일 두 나라 사이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평화선(Peace Line)'을 규정하였고, 그 뒤 51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협상과정에서 두 나라간의 외교문제로 논쟁대상이 되었으나 그 해결이 뒤로 미뤄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최근 선거공약과 정책지침에까지 공공연히 독도 영유권주장을 포함시키는 등 독도문제를 수면 하의 영토문제」에서 「수면 위의 영토분쟁」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토편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첫번째로, 근세초기 이래 독도는 일본영토였고 영토편입 직전까지 오랫동안 일본이 「실효적 경영」을 했으며 두 번째로, 영토편입 당시 독도는  주인 없는 돌 섬이었으므로 「무주물선점(無主物先占)」을 한 것이라는 두 가지 논리로 집약될 수 있다.

또한 일본은 제2
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대일평화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에 실려있는 제2 (a)항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그리고 울릉도를 포함하는 "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right), 권원(title)과 청구권(claim)을 포기한다."의 세 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우리 나라와 일본은 큰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는 이 세 섬의 한국의 영토에 포함되는 중요한 섬의 예로서 언급된 것이며, 따라서 울릉도에 딸린 섬인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이 세 섬은 한국 영토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외곽선을 표시하는 섬들이며, 따라서 독도는 한국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무성 관료 출신의 관변학자 가와카미 겐조(川上 健三)를 중심으로 다수파를 이루고 있는「고유영토=실효. 메이지(明治)시대에 와서도 오키 도민(島民)들은 울릉도로 가는 길에 죽도(竹島)에서 전복 등 해산물채취에 종사했다. 1898년께 부터는 오로지 강치(물개 비슷한 바다동물)잡이에 전념하게 됐다.


그러자 「강치적 경영론」은 1966
년 가와카미가 펴낸 「다케시마(竹島)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에 매우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저자가 외무성조사관이었을 때 쓴 이 책은 일본측이 독도영유권을 정당화하는데 인용되는 가장 유력한 문건이다. 독도의 실효적 경영에 관한 가와카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죽도(竹島)의 개발럭嚥동 관해서는 1618년에 오타니(大谷)레ザ粲タ(村川) 양인이 막부정부로부터 울릉도로 가는 도항권을 얻어 이 섬의 개발에 종사했고 울릉도를 오가는 길에 지금의 竹島에 들러 어획을 했다.
이에 관한 고문서는 많다. 또한 이 섬의 경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1696
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확한 지도」도 있다.

 


강치잡이에 나서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나 강치가 절멸위기에 처하게 됐기 때문에 1904

9월 나카이(中井 養三郞)가 독도의 영토편입렝鍛釉 요청하게 됐다』「국사대사전(國史大辭典)」제9권「죽도(竹島)」항; 길천홍문관(吉川弘文館) 1988년간)

이는 그 자신이 집필한 독도연구서의 핵심적 내용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일본측은 울릉도가 조선조의「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4
50년 동안 무인화해 있는 사이에 오타니(大谷)등이 울릉도를 「발견」, 그곳에서 벌목에 종사하면서 독도에서 어로활동을 한 것을 중시한다. 가와카미와 같은 「실효적 경영론자」들은 수 백년 동안 비어있던 울릉도로 본토의 한국인들이 직접 나가서 개발에 손을 댄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따라서 더 멀리 떨어진 독도로 나가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이상이 일본측 독도영유권주장의 주요핵심이다. 이를 철저하게 논박하고 제압하기 위해서는 현재 확보하고 있는 우리측의 자료와 사료를 한층 더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토문제는 가장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그것이 일본측에서 제기될 때 감정폭발이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일본을 침묵케 하는 길을 찾는 것은 미래지향적 한렝構喚甕 위해 한국인이 발휘해야할 지혜다. 


 

우리의 입장

정부는 독도문제에 관해 「무대응」이 최선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현재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일본측의 「시비」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측 입장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지정학적 근거


 








우리 영토인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48해리인데,  일본 은기도에서는 이 거리의 약 2배인 82해리이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우리 나라에 포함되어야 한다


 






역사적 근거

 

1. 독도는 신라시대에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국을 형성하였으며,  우산국은 신라 지증왕 13년 (512년) 신라에 귀순하여 왔다. 그 이후 계속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우리 나라의 관리하에 있다.



2. 일본이 1905년 도근현시 40호 행정초지를
취한것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가 아님을 실증하는 것이다.


 








국제법상
 근거
1. 그 지역의  주인이 없어야 한다.
2.영역취득의 국가의사가 있고, 그 의사를 대외적으로 공표 하여야 한다
.
3.실효적인 점유가 있어야 한다



카이로
 선언

포츠담선언 '카이로선언'을 보면 폭력과강요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돌려준다는 구절이 있으며,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카이로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선언하였으므로, 폭력과 강요에 의해 빼앗겼던 독도를 일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당시 일본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예가 '고종강제퇴위'사건이다. 일본은 1905년 그들의 강요로 체결된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다. 이에 대항하여 고종황제가 국가의 자주권회복을 위해 헤이그로 밀사를 파견한자 일본은 이를 빌미로 궁궐밖에 대포를 배치한 채 고종황제를
위협하여 강제 퇴위시켰다



국제사회 상황에 따른 우리의 입장

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러나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올 경우 우리도 같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맞대응 하면 국제적으로 독도가 분쟁 수역이라는 인식을 심으려고 하는 일본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된다. 따라서 소리나지 않게 독도에 대한 실질적 점유를 강화함으로써 일본이 제풀에 지쳐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독도에 접안시설 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탈환」하기 위해 당분간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는 한·일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제제기는 훗날을 기약하기 위한 「기록용」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무대응」 전략에도 한계는 있다. 94년 발효된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전세계가 바다의 경계선을 긋기 위한 작업
에 들어갔고 한·일양국도 그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 Exlusive Economic Zone)은 그 수역의 주인이 되는 연안국이 그 수역 안에서 돈벌이가 될 만한 모든 경제적인 활동을 배타적(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수역을 가리킨다.

이 수역은 영해와 공해의 중간에 자리잡는 '제3의 수역' 이다. 이 수역의 성격은 경제 활동 면에서는 영해와 같고, 선박이나 비행기의 통과와 국제 통신 등에 있어서는 공해와 같다.
이 수역의 주인이 되는 연안국이 배타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생물,
비생물 자원의 탐사와 개발 및 보존과 관리


 ◎수력,
조력, 풍력 발전을 비롯한 경제적 탐사와 개발


 
◎인공섬
시설 및 구조물을 설치 운영
하는 권리


 
◎해양 환경의 보호 보존에 대한 관할권


 
◎해양에 대한 과학적 조사권


이상과 같은 특성 때문에 이 수역을 '자원 영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수역에서 다른 나라들의 모든 권리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 수역에서 선박 항해 및 비행기상공 비행의 자유와 해저 전선 파이프라인 부설 등의 자유를 지닌다.


앞으로의 협상추이에 따라서는 독도문제가 국제해양법재판소등의 심판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정부가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일본과의 영유권 다툼은 피할 수 없게 된다.정부는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일본측의 논리를 제압할 수 있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각종 역사적
자료와 지도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참고자료


울릉도에서 뱃길로 3시간 여 소요(군함이나 해경정일때 소요시간)되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라는 행정구역을 가진 독 도. 해발 98m의 동도와 해발 168m의 서도라는 두 개의 주요 섬과 주변의 가제바위, 지네바위, 구멍바위, 미륵바 위 등 각각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36개의 암초로 구성된 독도. 250만년 이상 전에 울릉도, 제주도 보다 먼저 형성된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는 독도.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 정된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의 번식지 등 다양한 그들만의 아름다운 생태계가 형성된 독도

*도대체 가로세로 400m의 이 조그마한 땅덩이에 무엇이 있길래, 한국과 일본은 이리도 오랜 세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영유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


㉮ 독도의 일반적인 경제적 가치.
독도주변 해역은 황금어장이다.독도주변해역이 풍성한 황금어장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한류와 남쪽 에서 북상하는 대마난류계의 흐름들이 교차하는 해역인 독도주변해역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 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회유성 어족인 연어,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오징어잡이 철인 겨울이면 오징어 집어등의 맑은 불빛이 독도 주변 해역의 밤을 하얗게 밝히곤 한다. 또한 해저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등의 해양동물과 해조류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어 어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며, 특히 1981년 서울대 식물학과 이인규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독도의 해조식생이 남해안이나 제 주도와 다른 북반구의 아열대지역이나 지중해 식생형으로 볼 수 있기에, 별도의 독립생태계 지역으로 분할할 수 있을 정도로 특유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 독도의 군사적 가치 및 해양 과학적 가치
1905년 노일전쟁의 최후를 장식한 이른바 '동해의 대해전'에서 독도의 군사적 가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한국령 독도를 일본령 '다케시마'로 개명하며 시마네현 은기도(隱岐島)의 소관으로 1905년 2월 15 일에 일본내무성의 결정으로 독도를 강제적으로 일본령으로 편입하였으며, 1905년 8월 19일에는 독도에 망루를 준 공하였<극비 명치삼십칠팔년 해전사>기에, 러시아 함대를 맞아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독도에 고성능 방공레이더 기지를 구축하여 전략적 기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손쉽게 파악하여 동북아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경상북도에 의하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72억원을 들여 독도 북서쪽 800m 해상에 50평 규모의 철골 구 조물인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대구매일신문.98년 12월 4일자) 이 독도 해양과학기지를 통해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상태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여 기상예보모델의 초기값 중 해양상태를 나타내는 값을 보다 정확하게 입력시킴으로서 보다 적중률 높은 기상예보가 가능함은 물론, 지구환경 연구, 해양산업활동 지원과 해양오염방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 1993년 10월 북한 청진항 동쪽 300km 해상에서 러시아가 핵 폐기물을 투기한 행위가 환동해권 국가인 한 국 및 일본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며, 이후 동해 내에 투기된 오염물질의 이동, 확산, 분해, 해저 침적과정 등을 이 해하고 정확히 예측하는 과학적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동해의 해수 및 물질순환에 관한 연구 3차년도 최종보고 서. 과학기술처. 1997)


㉰ 독도의 지질학적 가치 .. 독도는 세계적인 지질유적
앞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독도의 생성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만년 전부터 250만년전 사이인 신생대 3기의 플라이오세(Pliocene epoch)기간의 해저 화산 할동에 의해 형성되어졌으며, 이 시기는 울릉도(약 250만 전∼1만년 전)및 제주도(약 120만년 전∼1만년 전)의 생성시기 보다 앞선 시기이다. 생성시기로 따진다면 울릉도, 제주도의 형인 셈이다. 애국가의 표현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은다면', 독도는 더 이상의 작은 바위섬이 아니고, 높이 2천여m의 거대한 산의 꼭대기라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독도는 동해의 해저로부터 해저의 지각활동에 의해 불쑥 솟구친 용암이 오랜 세월동안 굳 어지면서 생긴 화산성 해산이다. 이러한 독도는 원래 동도,서도가 한덩리인 화산섬이었다. 몇십만년의 세월이 흐르며 바닷물에 의해 침식작용 과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을 거듭하며 원래 부드러운 성질의 돌이 천천이 깍여들어갔다.(파랑에 의한 해식작용) 이 러한 해식작용의 결과로 칼로 깍은듯 날카롭고 가파른 해식애(sea cliff)들이 만들어졌으며, 한편에서는 서도의 북 쪽과 서쪽 해안처럼 파식대지(wave-cut platform:파도에 깍여 만들어진 바닷가 해저의 평탄면) 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질구조를 갖는 독도는 지질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독도는 해저 밑바닥에서 형성된 벼개용 암과 급격한 냉각으로 깨어진 부스러기인 파쇄각력암이 쌓여 올라오다가 해수면 근처에서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켜 물위로 솟다가 대기와 접촉할때 생기는 암석인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으로 구성된 '암석학의 보고'라고 한다. 해저산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문 예이며, 또한 오랜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작용에 의해 원래 의 모양을 간직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고 한다.

일본이 독도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 - 독도주변 해역에 천연 가스층이 존재한다. 1997년 12월 러시아과학원 소속 무기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중인 경상대 화학과의 백우현 교수는 연구소장 쿠즈 네초프(Kuznetsov)로부터 '한국의 동해바다 한 지점에 붉은 색으로 하이드레이트 분포 추정지역임을 분명히 표기 하고 있는 지도'를 선물로 받았다.(신동아, 98년 9월호)'하이드레이트'란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로서, 기존 천연가스의 매장량보다 수십배 많은데다가 그 자체가 훌륭한 에너지 자원이면서도 석유자원이 묻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시자원'이라고 한다.

98년 5월 백우현 교수가 러시아를 재방문했을 때 '동해에 관련된 하이드레이트의 자세한 정보'를 부탁하자, 쿠즈 네초프 소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 규칙상 공개할 수 없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동해의 독도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 다지요?』. 신동아는 이 부분의 이야기를 매우 충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들 땅이라고 우겨온 중요한 이유가 동해상의 풍부한 해양자원 확 보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근거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란다.

현재 하이드레이트의 개발수준은 그 매장량이 막대한데도 개발기술이 초보단계이므로 러시아 만을 제외하고 상 업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은 하이드레이트층에 대한 매우 축척된 탐사자료를 통해 99년 11월에는 난카이 해구에서 시험생산체계에 돌입한다고 한다. 1997년 기준 우리의 원유소비량은 전세계6위이며, 원유 수입량은 세계 4위이며,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는 97.8%라고 한다.(신동아 98년 9월호. 1997년 에너지 경제연구원)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1970년부터 30만㎢에 달하는 대륙붕에 7개의 광구를 설정하여 해저탐사를 벌여왔으며, 실제 89년과 93년에는 비록 경제성이 미흡했지만 동해중심해역에서 가스층이 발견되었으며, 최근 98년 7월 27일에 는 울산 남동쪽 50km 해상의 대륙붕에서 이전의 것과 비교 안되게 뛰어난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었다.

실제 국내 대륙붕 및 인접 중국과 일본의 석유 발견지점을 지도를 보면, 동중국해에서 동북방향으로 울산남동 쪽을 거쳐 독도인근해역을 거쳐 일본 서부연안을 향해 유전지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30만㎢의 광할한 대륙붕에서 단지 30개의 시추공만을 꽂았을 뿐이며(일본은 38만㎢의 대륙붕에서 175개의 시추 공을 꽂았다고 한다), 이중 12개는 외국계회사가 국내에 석유를 팔려면 의무적으로 한반도 대륙붕에서 석유를 탐 사해야 한다는 의무조항 때문에 그나마 형식적으로 시추공을 박았다고 한다.

금번 러시아 과학원의 연구소에서 제공한 동해의 '하이트레이트층' 의 분포추정 지도나 석유발견지도의 경향을 보았을 때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석유자원의 보유가능성은 매우 명확하다고 하며, 그 경제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고 한다독도주변해역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정부는 분명 상기해야 할 것이며, 결코 독도주변해역의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을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의미깊게 상기해야 할 필요성이 재기된다.

내용출처 : www.tokd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