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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수 한국해 연구소장이 그동안 모아온 지도를 펼쳐놓고 설명을 하고 있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오간 대화 중 하나. 권오을 한나라당 의원은 “19세기 이전 서양의 고지도를 들여다보면 지금 동해의 옛 명칭은 한국해였다”며 “동해 표기가 내국인 중심이어서 외국에 오해의 소지도 있으니 동해를 한국해로 고치자”고 주장했다. 이해찬 총리도 “일리 있는 말씀이니 한국해 표현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처럼 최근 일본의 독도 망언과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불거진 역사문제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해야 한다”고 예전부터 주장해 왔던 사람이 있다. 유학파 미술사학자이자 20년 경력의 지도 및 사료 수집가 이돈수씨(39, 한국해 연구소장). 왠만한 우리나라 고지도와 사료는 거의 그의 손아귀에 있다. 특히 한반도 주변 바다를 표기한 지도는 정부와 학계도 그가 쌓아놓은 자료를 따라올 수 없을 정도다.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 동안 동해와 독도, 대한해협 등 바다를 둘러싼 일본과 영유권 문제의 현재 상황을 냉철히 짚고, 나아가 동해가 한국해로 쓰여야 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해왔던 바다 관련 정책 성적은 동해표기 C, 독도는 D, 대한해협은 F 학점으로 부끄러울 지경이다”며 “지난해 12월 세계지도책에서 동해와 독도는 분쟁지역, 대한해협 자리에는 쓰시마해협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관계자들이 급하게 만들어낸 ‘동해(East Sea)’표기 보다 국호를 넣은 ‘한국해(Sea of Korea)’가 맞다”며 “국제사회에 호소력 있는 한국해 명칭으로 ‘일본해(Sea of Japan)’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우리나라가 동해 병기를 국제사회에 알렸던 것처럼 일본은 그 틈을 타서 오히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며 “지도에서 바뀐 표기 등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가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망언으로 인한 독도문제 등이 불거질 때만 분노하는 성향이 있다”라며 “평소에도 독도를 포함해 간도 등 우리 영토에 대한 의식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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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사 세계지도책 제8판 지도에 괄호 표기 없이 쓰인 '쓰시마해협' [자료=한국해 연구소] | 지금까지 우리나라 인근 바다 정책에 대해 성적을 매긴다면 어떠한가. 학점으로 말하면 동해표기는 C, 독도는 D, 대한해협은 F 학점이다. 지도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 받는 미국지리학회가 가장 최근인 2004년 12월 6일에 발간한 ‘세계지도책(Atlas of the World,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을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
5년 마다 개정되는 이번 ‘세계지도책’에는 우리가 10년이 넘도록 주장해온 ‘동해(East Sea)’표기가 괄호로나마 ‘일본해(Sea of Japan)’ 아래쪽에 함께 표기됐다. 그 동안 없었던 표기를 넣게 됐다는 점에서 동해표기는 C학점 정도다.
독도문제는 ‘독도(Dokdo)’ 아래에 ‘다케시마(DakeShima)’ 표기를 허용했다는 점에서 D학점이다. 멀쩡한 우리 땅 독도가 졸지에 일본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땅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대한해협은 훨씬 상황이 심각하다. 대한해협 아래에 예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쓰시마해협(Tsushima Strait)’ 표기가 괄호 없이 추가됐다. 쓰시마 인근 바다가 모두 대한해협으로 표기됐던 과거에 비해 이는 엄청난 결과다. 이런 까닭에 F학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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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랭의 1752년 일본지도. 이를 뜯어보면 일본지도에서 조차 한국해를 대한해협 위치에 표기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무렵 동해는 '한국해'로 서양 고지도에 완전히 정착한 상태였다. [자료=한국해 연구소] | 세계지도책 제8판 개정판에 대해 자세히 말해 달라. 한 장의 지도는 수만권의 책을 대신할 수 있다. 지도 안에 사용된 표기와 기호가 함축하는 의미는 그만큼 크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계지도책 제8판 개정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내용들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개정판은 우리나라 인근 바다에 대해 앞서 말한 세가지 특징을 보인다. 먼저 대한해협 자리에 쓰시마해협이 등장한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 원래 쓰시마해협이라는 명칭은 국제적인 바다 표기로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 자리 역시 대한해협 자리였다는 말이다.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에 일본이 우리 바다를 삼켜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된 독도 문제도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가 ‘동해’의 병기를 국제사회에 강하게 주장하자 일본은 이에 자극을 받아 오히려 역공을 펼쳤다. 그 결과 개정판에는 다케시마 표기가 불쑥 등장했다. 국제사회는 논란이 있는 영토에 대해서 쉽게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각 당사자들이 해결할 문제라고 떠넘기며 ‘영도분쟁지역’이라는 딱지를 달아줄 뿐이다. 그렇게 독도는 다케시마 표기를 혹처럼 달게 됐다.
동해표기는 동등한 입장을 말하는 ‘병기’가 아닌 ‘분쟁지역’으로 인정 받은 것 뿐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드디어 동해가 병기됐다고 샴페인을 터뜨릴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미국지리학회는 해당 학회의 표준 지명-이름 규약에 따라 한 국가 이상이 공유하는 지리적 명칭에 분쟁이 있을 경우, 일반적으로 인식된 명칭을 먼저 사용하고 분쟁 상태의 명칭을 괄호 안에 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회는 ‘일본해’가 제1순위이고 ‘동해’는 그 아래 괄호로 쓴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병기와 분쟁지역의 차이는 무엇인가. 병기는 동일한 개념, 같은 무게의 지명이 함께 쓰인 것이다. 하지만 분쟁상태는 말 그대로 두 나라가 각자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개정판에 나타난 것처럼 괄호로 작게 쓰인 지명은 새로운 주장이 나타났거나 그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는 분쟁상태를 뜻한다. ‘동해’가 절대 등가적 의미로 병기된 게 아닌 것을 되새겨야 하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국가 간 바다표기의 문제는 국제수로기구(IHO)나 유엔지명전문가회의(UNGEGN)를 통해 해결한다. 하지만 국제기구들은 동해 표기 주장 등을 쉽게 수용해 주지 않는다.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사태가 심각하면 당사국끼리 합의를 우선 권고하고 있다. 이후 문제 해결 때까지 두 나라의 의도를 모두 들어주면서 분쟁지역으로 규정한다. 바다의 명칭 표기가 변한다고 영토가 곧장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도 명칭의 변화는 무엇보다 우리 영토가 직접 맞물려 있는 영유권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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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베르니에의 1679년 일본전도. 타베르니에는 동양(Ocean oriental)으로 동해를 표기하고 대한해협 자리에 한국해를 써 넣었다. [자료=한국해 연구소] | 온 국민이 동해를 일본해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해와 한국해 명칭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맞다고 보나. 한국해든 조선해 든 국호가 들어간 명칭이 가장 타당하다. 현재 대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East Sea’가 20세기 중반 이전에 서양 고지도에서도 과연 발견될까. 아예 없다. 이후 1950~1980년대까지도 만약 그런 지도가 있다면 어디든 가서 구해보고 싶을 정도다.
우리나라 고지도들은 대부분 바다의 명칭을 안 적고 있다. 동해라고 정확히 표기한 지도는 8개 정도로 극히 드물다. 게다가 1960~1970년대 한국 해양지도는 일본 것을 그대로 베껴 오히려 일본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해 즉 ‘Sea of Korea’ 명칭의 흔적은 17세기 초부터 100년 이상에 걸쳐 확인되고 있다. 1850년대에 다시 일본해로 그 이름을 완전히 빼앗기기 전까지 서양 고지도에서 확고히 지켜왔던 이름인 것이다. 게다가 국호가 들어간 바다 이름은 대외적으로도 쉽게 알려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통일 이후를 고려해도 합리적인 이름이 한국해 아닌가. 궁극적으로는 한국해를 포함해 대한해협, 조선해 등 국호가 들어간 명칭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지금까지 동해표기가 국내에서 강조됐던 것인가. 시대적인 요구와 그에 부응하려던 정부의 성급함에 그렇게 된 것 같다. 1980년대 말 일본해라는 이름이 일제 강점기하 잔재라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1991년 해양수산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East Se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후 유엔지명전문가회의 등에 안건을 올리고 반크 등 민간단체가 활동하면서 ‘East Sea’가 너무도 당연하게 정착된 것이다. 특히 정부가 한 번 정하고 추진했던 것들은 잘 안 바뀌지 않는가. 이 때문에 ‘한국해’ 주장 등 이후 나온 의견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심이 없었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East Sea’를 곰곰이 뜯어보자. 올초 우리나라는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한성(漢城)’ 대신 우리 발음을 살린 ‘서우얼(首爾)’로 바꿨다. 세계적으로 현지 발음에 따른 지명 표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해는 ‘East Sea’가 아닌 ‘Dong Hae’가 차라리 맞다.
동해를 ‘Dong Hae’로 써도 문제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의 ‘동중국해’ 때문이다. 과거에는 동중국해와 우리나라 동해를 하나로 묶어 ‘동해’로 부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방향성의 의미가 담긴 ‘Dong Hae’ 표기는 중국에게 또다른 바다 영토 분쟁의 단초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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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일본이 1974년에 공동제작한 해양지도. 대한해협은 자취를 감춘 채 그 자리에 쓰시마해협이 단독 표기됐다. 이를 볼 때 일본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한해협 표기를 없애려는 시도가 보인다. [자료=한국해 연구소] | 한국해라는 명칭이 역사성과 대표성이 없어서 안 된다는 견해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나. ‘한국해’라는 명칭에 대해 반론을 펴는 분들은 17세기 이후 서양 고지도에서 사용된 ‘한국해’ 표기는 그들의 편의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국해(Sea of Korea)’도 현지의 고유지명이 아닌 외래어라고 폄하한다. 또 한 켠에서는 고전인 삼국사기 등에서 ‘동해’라는 명칭이 쓰였기 때문에 역사성도 깊다고 말한다.
물론 지도의 명칭은 역사성과 대표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도 오히려 한국해가 옳다고 본다. ‘한국해’ 명칭의 역사성은 19세기 말 한일어로협정과 대한제국 성립 이후 지도 등에서 ‘조선해’ ‘대한해협’이라고 썼던 것을 고려할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대표성도 국호인 ‘코리아(Korea)’가 들어가는 것만큼 명확한 게 또 어디에 있나. 국익을 위해서도 국호가 포함된 명칭이 나은 것 아닌가.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한국해 표기는 편의성이 아닌 ‘과학성’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경제적인 이유로 3~4년 전부터 고지도 수집 등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바다를 제대로 연구하고 알리는 일은 계속할 생각이다. 아직 개인적인 연구는 완성도 차원에서 30%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바다와 독도를 지키고 지도를 통해 재현되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확대를 막는 데에도 힘쓸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해달라. 우리 국민들이 영토에 대한 의식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일본의 망언 등으로 독도 문제나 역사왜곡 문제가 불거질 때에만 분노했던 게 우리 국민들 아니었나. 우스개 말로 애국가 가사 중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서 ‘삼천리’는 간도를 제외한 영토를 말한다. 간도를 더하게 되면 나중에는 애국가 가사가 바뀌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