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조선팔도지도(?原 朝鮮八道地圖 )
原義長,1876年,48.0×35.4cm.
강화도 앞바다에서 운양호로써 조선을 도발한 일본은 조선파견특명전권변리대신 흑전청융의 육군 增派 요청에 따라 1876년 1월 19일 육군경 山縣有朋을 下關에 급파했다. 이 지도가 간행된 것은 1876년 2월 10일이었으며, 조선과 일본 사이에 수호조약이 체결되어 조선이 개국하고 일본이 대륙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2월 26일이었다. 조선 진출은 일본 정부의 과제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 민중들의 현실도피적 돌파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륙에 대한 관심은 조선지도에 대한 수요를 가져왔고, 이를 겨냥한 많은 지도가 간행되었는데 이 지도도 그 중의 하나였다.
4개월 전에 간행된 <關口 朝鮮輿地全圖>와 동일한 발전단계를 보이는 지도지만 한반도의 東西 폭이 실제에 가깝게 넓어졌다. 이는 비교적 정확한 조선제작 원도에 충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문에 의하면 8엽(葉)으로 된 八道 지도를 한 도엽에 축소하여 제작하였다고 하며 제목에 八道라는 말을 쓴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정상기식 지도를 이용한 듯하다. 방위 표시는 제대로 되어 있지만 동시대 일본의 다른 지도들과 달리 경위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훌륭한 민간 지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原圖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천 지형과 고을, 그리고 주요 도로를 기입한 이 지도에서 산들은 우모식 방법으로 표현되어, 산맥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山塊로서 나타났다. 이 점에서 조선의 지도를 수용하되 일본식 표현방법을 따른 지도라 할 수 있다. 울릉도는 '鬱陵島'라 기입하고 그 옆에 "일본에서 는 竹島라 부른다"라고 적어 놓았다. 조선식 지명을 위주로 한 것이다. 八道貢戶表와 조선지를 곁들인 이 지도에서 흥미로운 것들 중 하나는 조선과 일본·청국의 국기를 그려 넣은 것이다. 일본은 이미 제정된 일장기가 국기로 제시되었다. 태극기가 국기로 제정된 것은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후였으므로 조선은 아직 국기가 없는 상태였다. 이 지도에서 조선의 국기라고 제시한 것은 청도기였다. 세로로 '淸道'라 쓴 이 기는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 땅을 행렬할 때에 사용하던 것으로 일본인들은 이를 국기로 인식했던 모양이다. 청국도 국기가 확정되지 않은 시기였는데 용기를 그려 넣었다. 용기가 청국의 국기로 제정되는 것은 1898년이다.
-영남대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