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팔도 조선국세견전도(五畿八圖 朝鮮國細見全圖)
川口常吉·石田旭山,1874年,98.4×47.2cm.
染崎延房의 <조선국세견전도>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지도에서는 한반도 전체의 윤곽이 길고 가늘게 묘사되었다. 조선 전기의 또 다른 지도를 母本으로 한 것 같다. 남쪽에 비하여 북쪽은 좁게 표현되었으며 압록강구와 두만강구가 거의 수평으로 나타나 있다. 북방의 국경선이 드러나지 않고 일본에서 제작된 일본 지도와 달리 대마도를 하나의 섬으로 표현하였다.
조선에서 제작된 지도를 원본으로 하는 일본판 지도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산수를 기본으로 하여 고을들을 행정체계상의 지위에 따라 표현하려 했다. 자국의 국토를 대상으로 한 지도들이 國郡의 경계를 중요시하여 이들을 면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한 데 비하여 조선지도는 道의 경계를 표현할 뿐, 각 고을은 點으로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원래 조선의 지도는 대체로 행정 통치의 필요에서 중앙 정부나 지방 관청에서 제작된 만큼 각 행정단위의 호구나 結負, 또는 官數를 부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지도도 각 도의 명칭 옆에 소속 官數를 기록하고 있으며, 고을 등은 도에 따라 五方色으로 표시하였다.
조선에서 제작된 지도들에다 첨가한 요소가 있다면 남북을 N과 S자로 표시한 컴퍼스다. 조선에서 전국을 팔도라 하였듯이, 명치유신 이전 일본에서는 전국을 오기칠도라 하였다. 五畿란 역대 왕궁을 중심으로 한 국왕 직할지역인 대화·산성·하내·화천·섭진(攝津)을 가리킨다. 七道란 사국, 구주와 본주의 나머지 지역, 즉 五畿에서 선상(扇狀)으로 펼쳐진 山陽道·山陰道·北陸道∇山道∇海道·西海道와 南海圖를 가리킨다. 그러나 명치유신과 더불어 하이(蝦夷)라 부르던 프런티어를 內國植民地로서 차지하게 되면서 이 지역을 北海道라 부르게 되자 기존의 七道는 八道가 된 것이다. 일본땅을 가리키는 五畿八道라는 명칭을 조선땅에도 붙이려 한 것은 어차피 조선도 8도였기 때문이었겟지만 조선에서 5畿를 찾는 것은 일제의 이른바 萬世一系는 天皇정신과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정한론의 시대에 나온 이 지도가 五畿八道라는 일본 이름을 붙인 데에서 의미를 찾자면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이땅에 또 하나의 일본을 건설하려는 침략주의가 노출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스파니아 등의 제국들이 식민지에 자국의 지명들을 붙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제의 경우에도 이러한 명명법을 채택하여, 한일합방 이후 1914년 무렵에는, 특히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도시지역에 일본의 지명들을 끌어 붙이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영남대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