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우리는 지금/독도 관련 지도

증보개정 조선국전도

자연정화 2008. 8. 27. 21:45

증보개정 조선국전도



 
   

 

 
영남대박물관 소장 [ 49.5 × 72.5 cm ]
 
 
 
- 시기 : 1873年
- 제목 : 증보개정 조선국전도
 
田嶋象次郞
 
 
다색도 목판본인 이 지도는 정한론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에 관한 정보의 수요가 폭발하는 가운데 전시대의 고지도를 모사한 것이다.
<조선팔도지도>와 달리 이 지도는 林子平의 조선지도를 원도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임자평의 조선지도란 그가 1786년에 간행한 『삼국통람도설』에 실린 조선지도를 말한다.
이 책에는 <유구도> <무인도도>등과 함께 <조선도>도 실려 있었던 것이다. 삼국이라 함은 일본을 에워싼 조선·琉球, 그리고 하이(蝦夷)(오늘날의 北海道)를 말한다. 林子平(1738∼1793)은 당대의 3奇人으로 꼽히는 경세가로서 동경에서 태어나 仙台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764년 조암 일행이 통신사로 방일하였을 때 東京으로 달려가 선대한화『선태한화』를 저술하였다. 富國强兵을 주장한 그는 長崎로 가서 난학(蘭學)을 공부하여 국제 감각을 익히고 『삼국통람도설』을 썼다. 또한 『해국병담』(1786)을 완성하였다. 뒤이어 러시아 함대가 일본 북방에 출몰하자 막부에서는 그의 저서들이 체제를 흔든다고 하여 판목과 책들을 몰수하고 처벌한 바 있다. 불우한 신세로 죽은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외국 세력에 대한 그의 예견과 대책은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그의 조선도는 국방이라는 관점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나머지 두 곳의 지도와 함께 널리 이용되고 모사되어 유럽에까지 알려진 바 있다. 이 <증통개정 조선국전도>는 그의 공적을 기리면서 그의 지도를 증보하고 개정했다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윈도의 체제를 답습하고 있다. 남북이 좌우로 누워 있으며 경도선 없이 위도선만 그려 있고, 이 위도선은 사선으로 되어 있다. 제주도는 도시되지 않은 채 울릉도가 과대하게 그려져 있다. 萬里長城도 엉뚱하게 그려지는 등동시대 일본의 조선지도들 중에서 우수한 지도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지도의 소략함이 정한론으로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된 조선에 대한 정보의 갈증을 응급적으로 달래주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이 지도에는 조그만 대만(臺灣)지도(24.5×18.8cm)도 첨부되어 있었다. 정한론에 앞서 일어난 정대론(征臺論)의 반영일 것이다. 1871년 琉球 사람들이 대만에 표착하였다가 그 곳 사람들에게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1872년에 일본에 알려지자 명치유신의 주도세력인 살파(薩派)를 중심으로 征臺論이 일어났다. 이듬해 3월 일본 정부는 청국으로부터 사건에 관계된 대만인은 '代外之民'이라는 언질을 받아내었다. 이는 대만 침략을 위한 복선이었으며 정대론의 속셈은 琉球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琉球에 대한 영유권을 확인받고 대만 자체를 차지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대만 정복 이야기는 征韓論이 비등하자 잠시 밀려나게 되었다. 이 지도가 작성된 때는 한창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는 이야기가 들끓던 때였다. 刊記에 첨기된 광고는 『조선사정』이라는 한권짜리 책이 近刊될 것임을 알리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흔한 것이지만 염기연방(染崎延房)의 <조선국세견전도>(1873年)의 부록인 동명의 책자와 동일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출처 : 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