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4)숙신,훈,돌궐

훈족이야기 10. 로마교육 받은 훈족리더 아틸라칸

자연정화 2013. 8. 18. 13:05

 

출처 : 조선일보 [JR의 유목민 이야기] 한수선

 

10. 로마교육 받은 훈족리더 아틸라칸

 

 

아틸라는 서기 406년에 태어났다. 그리스의 사가인 프리시우수가 남긴 기록에 아틸라는 눈이 쟃빛이었다는 기록은 그의 어머니가 유럽인이었다는 설을 뒷밭침하고 있다. 아틸라는 십대가 되면서 로마제국의 에이시우스(Aetius)와 인질로 교환되어 로마궁정에 거주하면서 아틸라는 아시아인 최초의 서구식 로마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틸라의 이름은 애트리, 아틸라(Atli, Attila,) 게르만족은 에젤(Etzel), 헝가리 인들은 에탤레(Ethele)로 불렀다. 그의 유년시절은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로마 궁정에서 그가 받은 교육 즉, 로마인들의 생활방식 외에 광범위하게 얻은 로마의 지식을 습득한 그는 로마와 대항해서 로마군과 싸울 때 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로마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고 사가들은 보고 있다.

 

서기 434년, 아틸라의 삼촌 루아가 제부족을 통일한 다음 죽으며, 왕위를 조카인 아틸라와 그의 형인 불레다(Bleda)에게 양위했다. 그의 삼촌 루아는 죽기 전 이미 로마로 부터 매년 많은 양의 조공을 받았으나 아틸라의 야망은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틸라는 11년간 그의 형인 블레다 밑에서 왕권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가, 서기 445년 아틸라는 왕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블레다와 함께 사냥을 나가 형을 죽였다. 블레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야심 많은 아틸라가 왕권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형인 블레다를 살해 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며, 그럴만한 심증이 가는 이유는, 죽은 형을 장사 지낸지 3일후, 아틸라는 제부족을 초대해 거대한 연회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블레다의 죽음과 함께 아틸라의 삼촌이 왜 조카들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는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유럽인들이 남긴 아틸라의 모습은 수많은 형태로 남아 있다. 위의 사진은 미국 역사 방송에서 정확한 고증을 거처 교육용으로 제작한 아틸라의 인형이다. 아틸라가 사진에서 입고 있는 의상이 전형적인 훈족의 복장이다. 전투에서 부상으로 죽은 훈족 병사들이 로마군과 비교해 적은 이유는 훈족이 코트 안에 명주로 만든 내복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사가들은 말하고 있다. 근거리가 아닌 원거리에서 날아온 로마군의 화살은 명주로 된 훈족 병사의 내복을 뚫고 들어가도 몸에 깊게 박히지 않기 때문에 화살을 맞은 훈족병사는 양손으로 명주 내의를 끌어 잡아 올려 박힌 화살이 뽑았다고 군사전문가들을 주장하고 있다.

 

 

 

 

유럽 백인종에 위기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려낸 아틸라의 험악한 초상. 유럽의 주류국가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슬라브족이 훈족에 가담해 로마와 게르만 제부족과 싸웠으며, 크로아티아 인들이 훈족과 가장 많이 혼혈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훈족이 독일민족과 혼혈이 된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 훈족에게 쫓겨난 동고트족의 병사. 영국에서 정확한 고증으로 제작된 인형]

 

 

[편지를 읽고 있는 에이시우스(Aetius) 서로마 장군]

 

훈족의 왕 아틸라와 살롱에서 대전투를 벌인 서로마 장군 에이시우스(Aetius)는 아틸라와 교환된 로마의 인질로 훈족에게 보내진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어린시절부처 상대를 잘 아는 사이로 성장했다. 에이시우스는 유럽역사에서 백인을 아시아의 야만족으로 부터 구했다는 유럽인들의 칭송을 받는 사람으로서 살롱대전투에서 아틸라에게 패배를 안겨준 서로마 장군이다.

 

에이시우스는 훈족의 인질이 되기 전 고트족의 왕인 알라릭에게 인질로 보내졌다가 다시 훈족의 인질로 보내졌다. 아틸라가 로마궁정에서 로마의 모든 것을 배운 것처럼, 에이시우는 고트족, 훈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두 야만족으로 부터 그들의 장점인 전투방식을 배운 결과,  에이시우스가 살롱대전에서 훈족의 왕인 아틸라를 격파 할 수 있었다고 사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에이시우스의 출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에이시우스가 이탈리아인 어머니와 고트인 족인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이탈리아인 어머니와 스키타이인 아버지인 가우덴티우스(Gaudentius)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 그 당시 사가들은 훈족의 생활 방식이 기원전에 유럽을 석권한 스키타이인과 같아 훈족을 스키타이 인이라고 기록했다. 기원전에 유럽을 혼란에 빠트려 석권했던 야만족인 스키타인 인들이 4세기경에는 현지인들에 동화되어 역사에서 사라진 사실을 돌이켜보면 에이시우스의 부친이 훈족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