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겨레21 2013. 8. 21. 16:40
진짜 전력난의 주범은 누구인가?
[하승수의 오, 녹색!] 기업이 4년간 5조23억원 이득 얻는 원가 이하 산업용 전기, 싸게 책정했다 화력발전소까지 돌리게 하는 심야요금… 정책실패·능력부족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무능한 정부
8월12일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정부는 연일 전력 수급이 비상이라고 부르짖었다. 덕분에 에어컨 사용이 금지된 공공건물은 찜통으로 변했다. 국민은 시시각각 보도되는 예비전력 소식에 맘을 졸여야 했다. 마치 전시비상사태라도 선포된 듯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철과 겨울철이면 늘 전력난 얘기가 나온다. 전력난은 결국 전기 소비가 공급을 넘어설 우려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전력난은 왜 생긴 것일까?
산업용 전기 소비 53% 차지하는데
전력난의 주범은 늘어난 전기 소비다. 우리나라의 전기 소비는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5.6% 증가해왔다. 경제성장률을 훨씬 뛰어넘는 증가율이다. 우리나라의 전기소비량은 어느덧 세계 8위 규모에 이른다. 경제 규모에 비해서도 과도한 소비량이다.
문제의 원인을 알려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기는 가정에서도 쓰고 공장에서도 쓰고 대형 건물에서도 쓴다. 그래서 그냥 전기 소비가 많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디에서 어떻게 많은지를 봐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용 전기 소비가 과다한 것이 전력난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산업용 전기 소비는 우리나라 전체 전기 소비의 53%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것도 외국에 비하면 많은 편이라는 것이다.
최근 감사원이 이런 지적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6월12일 감사원은 '공기업 재무 및 사업구조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한전에 대한 감사 결과도 포함돼 있었다. 감사 결과에서 눈에 확 띄는 대목이 있었다. "주거 부문 1인당 전력소비량은 OECD 평균의 50%에 불과한 반면, 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OECD 평균의 1.75배에 이르는 등 산업용 전기를 과다하게 소비한다"는 것이었다.
감사원은 그 원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진단을 한다. 감사원은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일본 244, 독일 214, 영국 174, 프랑스 166이라고 보았다(2010년 기준). 이처럼 외국과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엄청나게 싼 것이다. 이렇게 전기요금이 싸다보니 전기 소비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에는 등유와 석탄 등으로 하던 작업 공정까지 전기로 대체하는 '전력화 현상'이 일어났다. 기업의 처지에서는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예를 들어 지난 10년간 등유 가격은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기업들은 등유로 하던 일도 전기로 대체했다. 그 결과 2002∼2011년 등유 소비는 52% 감소한 반면 전기 소비는 68% 늘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철강회사들은 전기를 이용해 고철을 녹이는 용광로인 '전기로'를 늘렸다.
이런 식으로 산업용 전기 소비가 늘어난 것이 전력난의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막상 전력난이 닥치면 가정이나 공공기관에 책임이 돌려진다. 기업들에는 절전을 해달라며 협조를 부탁하는데,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공공건물에는 에어컨 사용 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이게 정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업에 타격? 전력비 비중 2011년 1.17%
전기요금은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결정된다. 대한민국은 한전이 사실상 공급 독점을 하고 있고, 전기요금은 정부의 인가를 받아 정해진다. 그리고 정부는 정책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해왔다. 그만큼 기업들은 특혜를 받은 것이고, 한전은 손해를 봐온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원가 이하로 산업용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기업들이 받은 이득은 5조23억원에 달한다.
감사원도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산업계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 기업에 타격이 간다'는 논리를 편다. 정부나 정치권도 이런 쪽 눈치를 본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도 기업들은 망하지 않는다. 대기업 제조원가에서 전력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그나마도 점점 떨어져왔다. 대기업 제조원가에서 전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1.94%에서 2011년 1.17%까지 하락했다. 다른 물가는 오르는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별로 오르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다. 업종에 따라 전기요금 부담이 클 수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과도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기업들은 자가발전 비중을 늘린다든지 해서 적응하기 마련이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기업들의 자가발전 설비가 일본 전체 발전 설비의 20%를 넘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한국은 자가발전 설비 비중이 떨어지고 있다. 한때 10%대이던 것이 4%대로 떨어졌다. 자가발전보다 한전에서 전기를 사서 쓰는 것이 싸기 때문이다.
심야전기도 문제다.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는 일단 가동을 시작하면 24시간 가동한다. 밤에도 가동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심야에 전기요금을 싸게 해서 심야전기 소비를 늘리겠다는 정책을 세웠다. 그러나 심야전기 소비가 예상보다 너무 늘어나 지금은 심야전기 소비량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심야전기를 위해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뿐만 아니라 가스화력발전소까지 가동해야 한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전의 적자로 쌓였다. 한전은 싼 심야전기 때문에 2008∼2011년 1조9714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이렇게 전기요금 체계를 잘못 정한 것은 누구일까? 정부다. 그래서 전력난의 주범은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전기요금 정책으로 전기 소비를 급증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전력난을 일으킨 주범이 국민에게 '절전을 하라'고 지적질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것 때문에 애꿎은 시민들만 '내가 전기를 많이 써서 그런가?'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거액 들여 도입한 EMS, 운영 못하고 '순환정전'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정부나 전력거래소의 전력계통 운용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전력난을 과장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혹은 국회 입법조사처로부터 제기됐다. 대한민국이 전력난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2011년 9월15일에 일어난 정전이었다. 이날 전력거래소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전력 수요가 증가하자 갑자기 '순환정전'을 실시해버렸다. 더 큰 정전(블랙아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일부러 정전을 시켜버린 것이다.
이렇게 순환정전을 한 이유가 전력계통 운용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의혹의 핵심에는 전력계통제어시스템(EMS)이 있다. 전력계통제어시스템은 전국의 발전·송전 상태를 실시간 감시함으로써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대규모 정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력거래소는 2002년 220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이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정작 능력 부족으로 제대로 운영을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래서 예비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 2011년 9월15일 전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계통이 불안정해지자 갑자기 정전을 시키는 황당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이런 의혹은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8월12∼14일에도 실제 예비전력은 400만kWh를 넘었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기관 에어컨 사용 금지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이것만 봐도 실시간으로 전력계통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 실패와 능력 부족을 국민의 부담으로 떠넘기고 있다. 이런 정부부터 뜯어고치는 것이 '전력난'의 진정한 해법이 아닐까?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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