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천900년 전 소빙하기, 천체 충돌로 시작"
출처 (서울=연합뉴스 2013. 9. 3. 11:55) 이영임 기자
1만2천900년 전 지구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고 극도로 건조한 `영거 드라이아스기'(Younger Dryas)에 접어든 것은 오늘날의 캐나다 퀘벡 지역에 떨어진 소행성이나 행성 때문이라는 최신 연구가 나왔다고 사이언스 데일리가 2일 보도했다.
북미 지역에 들이닥친 영거 드라이아스기는 사람과 동식물 모두에 깊은 영향을 미쳐 매머드와 마스토돈, 낙타 등 대형 포유동물들이 멸종했고 대형 산불, 대기와 해양 순환의 급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클로비스인'으로 불리는 북미 수렵민은 이때 무거운 창을 내려놓고 초목의 뿌리와 열매, 작은 동물들을 먹이로 삼는 수렵채집 생활로 전환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 과학자들은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주의 영거 드라이아스기 초기 지층에서 발견된 소구체(小球體)들의 지화학 및 광물학적 특성이 캐나다 퀘벡주 남부 지역의 암석 성분과 같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퀘벡 지역에 소행성이나 행성이 떨어지면서 광범위한 지역이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충돌로 튕겨져나간 녹은 암석의 결정체인 소구체의 존재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수많은 천체 충돌 사건 연구의 근거가 되고 있다.
연구진은 "충돌로 생긴 크레이터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영거 드라이아스기를 일으킨 충돌이 일어난 범위를 처음으로 좁혀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영거 드라이아스기의 혹한은 인류 역사에 매우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근동 지역의 나투피아인들도 환경 스트레스로 인해 처음으로 정착해 농업을 시도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영거 드라이아스의 광범위한 환경 변화는 수많은 천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충돌해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그러나 "아직은 발견된 충돌 크레이터가 없지만 앞으로 추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영거 드라이아스기 소빙하기에 관한 지금까지의 고전적인 가설은 북미의 빙상이 녹아내린 것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얼음 둑 뒤에 엄청난 양의 담수가 고였다가 갑자기 둑이 터지자 모든 물이 대서양으로 흘러나갔고 이 때문에 적도의 따뜻한 물을 북쪽으로 이동시키던 대서양 해류 순환이 멈춰 춥고 건조한 시기가 계속됐다는 것이다.
소빙하기(The Little Ice Age)와 기후가 만들어낸 재앙
소빙하기란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서늘한 기후를 보였던 시기를 말한다. 물론 언제가 소빙하기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서기 1250년경부터 기온이 낮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추웠던 시기는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였고, 1850년경부터 기온이 점차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소빙하기 기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은 오늘날에 비해 1~1.5oC 정도 더 낮았다. 이렇게 낮은 기온은 태양활동의 감소와 함께 화산분출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온 하강은 빙하가 성장을 하고 나무의 성장이 저해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가축들에게는 전염병이 널리 퍼지고 죽어나갔고, 추수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인간 역시 기근과 질병으로 고통 받았다.
<Pieter Bruegel의 The Hunters in the Snow(1565)>
소빙하기는 얼음판(ics sheet) 더 크게 자랄 만큼 충분히 춥지는 않았기 때문에 빙하기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가 영향을 받았고 그에 관한 많은 기록들 역시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이러한 원인이 기후변화에 기인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이 기간 동안 허드슨만의 얼음이 3주 정도 더 오랜기간 동안 남아 있었고, 북대서양의 유빙의 크기와 수도 훨씬 많았다. 한때는 에스키모인들의 카누를 영국 해변가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유럽의 산악지역에서는 빙하가 성장하여 산악지역의 마을을 덮치기도 하였고, 긴 겨울과 짧은 여름으로 인해 식량 생산에 대한 영향도 역사기록에 남아 있다.
춥고 습한 기후는 질병의 발생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서는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망하기도 했다. 농업이 어려워지자 북유럽의 농부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나갔고, 긴 겨울동안 부족한 식량은 나무껍질을 갈아서 빵을 만들어 먹어야 할 만큼 심각한 식량난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부족한 식량생산과 가축질병은 북유럽 및 동유럽지역에 심각한 기근을 몰고 왔다.
우리나라도 소빙하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670년과 1671년에 걸쳐 당시 조선 인구의 20%가 넘는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경신(庚辛)대기근’이 이 시기에 발생했다. 이상저온으로 우박과 서리, 때아닌 폭설이 그칠 줄 모르고 내렸고, 가뭄과 홍수까지 덮쳤다. 제주도에서 함경도까지, 조선 팔도에서 역병 등 전염병이 유행하였다.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고 인육까지 먹는 참상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이때는 현종(재위 1659~1674)이 즉위한 다음해였는데 "아, 내가 즉위한 이래로 천재가 달마다 생기고, 가뭄과 수해가 서로 잇달아 없는 해가 없어 밤낮으로 걱정하며 편안한 겨를이 없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뭄이 더욱 참혹하여 봄부터 여름까지 들판이 모두 타버려서 밀과 보리를 수확할 수 없게 되었고 파종도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1670년 5월2일, 현종)라는 말로 당시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이 이후도 조선은 소빙하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1695년에는 다시금 100만 명이 굶어 죽는 ‘을병대기근’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화산에 의한 소빙하기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숨바와(Sumbawa)섬의 탐보라(Tambora) 화산이 1815년 4월에 폭발을 일으켰다. 이 폭발로 표고 4,000 m 이상 되었던 산은 2,851 m로 낮아졌다. 이때 분출된 화산재는 약 150억 톤 정도였는데 500 ㎞ 상공으로 뿜어져 올라가 반경 600 ㎞나 되는 지역의 하늘을 뒤덮어 3일 낮을 온통 캄캄한 밤으로 만들었다.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다음해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는 6월이 되어도 여름을 느낄 수 없었고, 서리 때문에 경작지는 얼어붙고 눈이 산야를 뒤덮고 나뭇잎은 동해로 시커멓게 변했다. 7월과 8월에도 서리가 내려 농작물이 수확량은 급감하였다. 그해 겨울의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옥수수 가격은 두 배, 밀 가격은 다섯 배 이상이나 뛰었다.
유럽 쪽의 상황이 더 나빴다. 추운 여름으로 인해 곡물 작황이 나빠 프랑스에서 식량은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구입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식량 폭동이 빈번했다. 영국에서도 “빵이냐, 피냐”라는 깃발을 든 폭도들이 몽둥이와 창검으로 무장하고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였으며, 아일랜드에서는 기근과 더불어 장티푸스가 번져 그 다음해까지 2년 동안에 5만 명이나 기아로 사망했다.
이 여파는 1818~1819년 유럽 대륙에 대규모의 금융 공황과 불황을 몰아닥치게 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많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미국의 인구가 1800년경의 530만 명에서 1820년경에는 960만 명으로 거의 배나 증가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 시기는 조선시대 순조(純祖) 16년에 해당되는 데 혹심한 이상기상 현상에 대한 기술은 없으나 경상도에서 절량민(絶糧民) 9만여 명에게 구호곡 8천여 섬을 방출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카르타고 제국의 몰락 -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1775~1851)>
우울하고 추운 여름이 만들어낸 창의력
화산재는 역설적이게도 오렌지색, 진홍색, 분홍색의 눈부신 석양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빨간색, 파란색, 갈색의 먼지가 섞인 눈을 내리고, 때로는 흙비를 뿌리기도 한다. 1817년에 영국의 화가 터너가 그린 ‘카르타고 제국의 몰락’이라는 그림을 보면, 노란 안개가 드리워진 인상적인 하늘 풍경과 음침한 색조가 이시기 하늘 상태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여름이 없는 해로 기록된 1817년은 새로운 창작의 시기이기도 했다. 부족해진 태양빛으로 작물 생육이 부진해지자 식품가격은 뛰어 올랐다. 말 먹이로 사용되던 귀리의 가격은 특히나 더 비싸졌다. 그때까지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 이었으므로 귀리 가격 상승은 곧 교통비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이러한 교통비 상승은 칼 드레이스(Karl Drais)라는 독일인이 말없이도 주변을 여행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래서 자전거가 발명되었다.
또한 이러한 우울한 여름날씨는 많은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불어 넣었다. 여름 같지 않은 여름 동안 3명의 영국 작가는 스위스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계속 내리는 비와 우울한 하늘로 인해 실내에 발이 묶여있던 작가들은 춥고 어두웠던 날씨를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마리 셸리(Mary Shelley)는 종종 폭풍우 치는 환경이 등장하는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을 섰고, 시인 바이런경(George G. Byron)은 ‘어둠’이라는 시를 썼다.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꿈을 꾸었네, 전적으로 꿈만은 아니었네. 밝게 빛나던 태양은 사라져 버렸네(I had a dream, which was not all a dream. The bright sun was extinguish’d.)”
미국 펜실바니아주립대학교 기상학과 한스 뉴버거(Hans Neuberger) 교수는 새로운 각도로 소빙하기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였다. 그는 1400부터 1967년 사이의 그려져서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회화 12,000점에서 구름과 어둠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였다. 1970년에 발표된 그의 연구결과는 구름과 어둠이 등장하는 그림은 소빙하기와 관련이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특히나 1600~1649년 사이의 회화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 우울한 날씨는 예술가들에게도 크나 큰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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