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현 명지대 명예교수는 '한국사로서의 금의 역사'를 주제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한다며 역사학적, 민족학적, 영역적, 관계사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이 가운데 민족학적 근거로 “금나라를 건국한 아골타의 선조는 신라(혹 고려)에서 옮겨 온 유이민이고 나라를 세울 때 협력한 발해 유민들은 곧 고구려계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아골타 근족들의 혼인 대상 민족은 요양에 거주하던 발해 귀족의 여식들이었다. 이들 후손들이 금 일대를 통치하였으니 황제는 신라유족, 후비는 발해 유족이었다"고 설명했다.
만주몽골지역은 고대부터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기원전 수천 년 전에는 고조선이 있었고 기원전 1세기부터 300년간은 부여가 있었다. 기원전 37년부터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워 668년(보장왕 27) 멸망할 때까지 28대 705년간 북아시아 전역을 차지하였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이 되던 해인 699년에는 고구려 유장 대조영이 발해를 세워 926년 멸망할 때까지 14대 227년간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국가를 유지하였다.
김 교수는 "만주에서의 우리 역사가 발해의 멸망과 함께 한반도 내로 위축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나 만주지역에서의 역사는 여기서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금나라는 어느 모로 보나 고구려와 발해 못지않게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구난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중국은 고대부터 청대에 이르는 북방민족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는 논리를 급속하게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때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북방사를 되돌아보고 한국사의 외연과 내연의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문제 인식을 던져주었다”고 평가했다.
구 교수는 “안정복安鼎福은『동사강목東史綱目』의 사론에서 발해를 기록한 것에 대해 '순치지세脣齒之勢였으므로 서술'했다고 대변한 바 있다. 당시 신라 중심적 시각에 젖어있는 사론계에 던지는 가히 혁명적 일침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식 전환은 후에 유득공의 『 발해고』 등과 같은 인식을 형성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금사'를 한국사의 외연에 둘 때 대안적 담론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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