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우리는 지금/사회·문화

요순시대(堯舜時代)의 태평성대를 갈망하며...

자연정화 2014. 4. 29. 19:15

요순시대(堯舜時代)의 태평성대를 갈망하며...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 환웅의 아들인 고조선의 시조 단군이 있듯이 중국의 건국신화에도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있다. 

중국 상고시대 전설상의 세 황제인 ‘삼황(三皇)’은 일반적으로 불을 발명한 ‘수인씨’, 물고기 잡는 법과 사냥기술을 가르친 ‘복희씨’, 농사법을 가르친 ‘신농씨’를 말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의미하는 천황(天皇)ㆍ지황(地皇)ㆍ인황(人皇)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먼 훗날 진나라를 세워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황제(皇帝)라는 호칭은 여기서 따온 것이며, 삼황오제의 기운에다 그들 이후 최초의 황제를 의미하는 시(始)를 첨가하여 진시황제(秦始皇帝)라고 정한 것이다.

삼황과 더불어 오제(五帝)는 황제의 뒤를 이은 다섯 자손을 뜻하며, 소호 금천ㆍ전욱 고양ㆍ제곡 고신ㆍ제요 도당ㆍ제순 유우이다. 뒤의 요(堯)와 순(舜) 이 두 명을 따로 떼어 ‘성군(聖君)’을 칭송할 때 관용적으로 쓰는 ‘요순임금’이라고 한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중국의 신화 속 군주로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신화 가운데 오제의 하나이다. 

부족국가로 구성된 시기에 중국은 태평성세(太平聖歲)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기가 바로 ‘요순시대(堯舜時代)’이다. 요순시대는 중국에서 이상적인 정치가 베풀어져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았던 시대로, 오늘날 중국인들은 덕으로 치세(治世)하던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숭배하고 있다. 

사마천이 편찬한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 요(堯)임금은 20살에 왕위에 올라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렸다. 요의 치세에는 가족들이 화합하고 백관(百官)의 직분이 공명정대하여 모든 제후국들이 화목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요(堯)임금이 민정을 살피러 나갔는데 왕의 행렬에는 아랑곳없이 뽕잎 따기에만 열중하는 한 처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여 친히 다가가니 그 처녀의 얼굴에 커다란 혹이 하나 달려있었다. 요임금은 순간 실망하였으나,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녀의 현명함에 끌려 그녀를 왕비로 삼았다. 왕비의 가마가 궐에 당도하자마자 왕비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수라간으로 들어갔다.

“나는 요(堯)임금의 아내다. 내 손으로 진지를 차려드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니 모두들 비켜라.” 그녀는 정성껏 수라상을 준비한 다음에 궁녀들의 사치스러운 복장과 경박스러운 행동들을 지적하며, 

오늘부터 백성들보다 사치하는 자, 농어촌의 선량한 아낙네들보다 호의호식하거나 더 게으른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백성들의 어버이이신 임금을 섬기는 자들이 백성들보다 예와 도리가 모자란다면 어떻게 임금께서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날부터 나라의 질서와 도덕이 하루가 다르게 바로서고 꽃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


흔히 남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 중에 ‘요고순목(堯鼓舜木)’이란 말이 있는데, 글자그대로 ‘요(堯)임금의 북과 순(舜)임금의 나무’라는 뜻이다. 요(堯)임금은 자신이 독단적인 정치를 할 것을 염려하여 조정에다 ‘감간고(敢諫鼓)’란 북을 걸어두고 어느 누구든지 간언할 수 있게 하여 늘 스스로를 경계하였고, 순(舜)임금은 마루를 세워서 여기에 경계하는 말을 쓰게 하였다. 요고순목은 성천자(聖天子)가 착한 말을 잘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요순시대란 말이 오늘날에도 태평성대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될 정도로, 요임금과 순임금은 백성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였고 선정을 베풀었다. 후진(後晋) 고조 때 유구 등이 칙명(勅命)을 받들어 편찬한 《구당서(舊唐書)》에도 “요(堯)임금은 북을 두드려 간언하도록 하였고, 순(舜)임금은 나무를 세워 경계할 말을 구하였다.(요고납간 / 堯鼓納諫, 순목구잠 / 舜木求箴)”라는 말이 있다. 

이 모두의 공통된 목적은 국민여론을 잘 수렴하여 올바른 정치를 폄으로써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

요(堯)임금은 왕위에 오른 지 70년 가까이 지난 후 신하들에게 후계자를 찾아 추천할 것을 명하였다. 신하들은 오제 중의 하나인 전욱 고양의 후손이자, 효성이 지극한 순(舜)을 추천하였다. 

요(堯)임금시절 백성들은 먹을 것이 가득하여 배를 두드리며 잘살고 있었지만 해마다 넘쳐흐르는 황하의 홍수만은 해결할 수 없었다. 해서 요(堯)임금은 온 산천을 뒤져서라도 평소 덕망 많기로 유명한 전설속의 은사(隱士) 허유를 찾아 그를 천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허유는 그 말을 듣고는 기산으로 몸을 감추었다. 그래도 계속 요(堯)임금의 또 다른 요구가 계속되자, 그 말을 들은 허유는 영수(潁水)에 가서 귀를 씻었다. 그때 허유의 친구 소부가 소를 몰고 오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것을 보고 그 연유를 묻자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 말을 들은 소부는 소를 상류로 몰고 올라가 물을 먹이며, “더러워진 귀를 씻은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한다. 

순(舜)에게는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아버지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노인을 고수(瞽叟). 즉, 눈 먼 장님이라고 불렀다. 순(舜)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는데, 계모는 아주 악한 여자였다. 계모에게는 상(象)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상을 총애했다. 이런 집에서 자라난 순(舜)이지만 항상 부모께 효도하고 동생을 사랑했다. 이에 사람들은 덕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요(堯)임금은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면서 두 딸을 순(舜)에게 시집보내어 사람됨을 지켜보게 했다. 또한 식량창고를 지어주고 많은 소와 양을 주었다. 그것을 본 순(舜)의 계모와 동생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고수와 함께 순(舜)을 죽이려고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순(舜)에게 식량창고 지붕을 고치라고 했다. 순(舜)이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자마자 고수는 창고에 불을 질렀다. 자기 아들 순(舜)을 불태워 죽이려 한 것이다. 불이 난 것을 본 순(舜)은 사다리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이미 치워버렸던 것이다. 다행히도 순(舜)은 햇빛을 가리는 데 쓰는 삿갓 두 개를 갖고 있었다. 그는 양 손에 삿갓 하나씩을 들고 새가 날개를 편 것처럼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순(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다. 순(舜)이 우물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돌로 우물을 메워버렸다. 순(舜)을 우물 안에 파묻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순(舜)은 우물 밑으로 내려가자 굴을 팠고, 그 굴을 통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 왔다. 그 다음부터 고수와 상은 더 이상 순(舜)을 해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순(舜)은 여전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생과 사이좋게 지냈다. 

결국 요(堯)임금은 평소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던 순(舜)에게 자신의 두 딸을 시집보내고 여러 가지 일을 맡겨 그의 사람됨과 능력을 시험하였으며, 이윽고 3년 후 순(舜)을 등용하여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렇게 임금의 자리를 세습(世襲)이 아니라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을 ‘선양(禪讓)’이라고 한다

임금이 된 순(舜)은 백성들과 함께 더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하게 생활해서 칭송을 받았다. 수십 년 뒤 요(堯)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순(舜)은 임금 자리를 요의 아들인 단주에게 넘겨주려고 하였으나 주변사람들이 모두 반대했다. 그제야 순(舜)은 정식으로 임금이 되었다.

공자(孔子)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서경(書經)》을 편찬할 때, 많은 전설의 임금들을 다 빼버리고 제일 첫머리에 제요를 두었다. 천황ㆍ지황ㆍ인황 등의 황제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전혀 비추지 않았다.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천하를 전하고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게 천하를 전해 준 것만을 크게 취급했다.

요순시대에는 한마디로 백성들의 생활은 풍요롭고 여유로워 심지어는 군주의 존재까지도 잊고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는 세상이었고, 정치는 가장 이상적인 ‘선양(禪讓)’이라는 정권 이양방식으로 절대 다툼이 없었다. 선양은 당시 가장 도덕을 갖춘 사람을 임금으로 추대하는 방식으로, 후대의 혈연에 따라 왕위를 세습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18대 대통령선거를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오늘, 나는 요순시대의 태평성대가 우리에게도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갈망하며 홀로 ‘격양가’를 불러본다.

해가 뜨면 일하고 / 日出而作(일출이작) 
해가 지면 쉬고 / 日入而息(일입이식)
우물 파서 마시고 / 鑿井而飮(착정이음)
밭을 갈아 먹으니 / 耕田而食(경전이식)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 帝力于我何有哉(제력우아하유재) 


< 2012.11.22. 한림(漢林) 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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