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한민족 제후국들도 중국 천년 이상 지배
한족(漢族) 정벌·지배한 예맥조선, 오환족, 선비족 모두 단군조선 이은 한민족 맥족
자료출처 : 전)숭실대 법대 교수 이을형
들어가며 - 약소국 한(漢)나라의 강대국 조작
고대 우리민족은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국가였다는 것이 고고학에 의해 확실히 판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각 TV에서 방영 되는 주몽(朱蒙) 등 역사 연속극에는 여전히 중·일의 위조하고 왜곡한 내용으로 제작·방영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역사무지를 보여 줄 것인지 한심하고 환멸을 느낀다. 한(漢)나라는 우리나라를 지배한 일이 없는데도 역사를 뒤집어 한(漢)나라의 영향 하에 있는 양 철저히 왜곡·조작됐다.
중국은 예맥(銳麥)이 극히 강대해 중국을 정벌하자 이에 대한 증오심(憎惡心)으로 예맥(濊貊, 穢貊)이라고 짐승이름 악명을 붙였다. 관자전서(管子全書, 券十一 小稱篇)에 ‘예맥은 흉악하다’ 하고,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공(孔)씨가 예맥에 맥(貉)이라는 짐승이름을 붙인 것은 악을 말한 것이다’고 했다.(海東繹史, 第三, 貉) 당시 한(漢)은 예맥에 지배당해 우리 한민족 국가를 감히 넘볼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작금의 우리 역사서들은 한민족 국가들이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국가가 아니라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국가에 예속된 후왕(侯王)의 국가로 위조된 것을 따른다. 이번 칼럼에서는 고조선 후기의 강력한 한민족 제후국(侯國)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후기 고조선 후국(侯國) 예맥조선…동주(東周)~한무제(漢)武帝) 1천여년 중국 정벌·지배
중국 고서(中國古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이고, 우리 한민족에 대해 가장 자세히 기록한 것 또한 이들 책이다. 지금 우리나라 역사책은 아직도 한무제(漢)武帝)가 한민족을 정복하고 사군(四郡)을 설치했다는 중국사의 위조를 그대로 번역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한무제(漢)武帝)가 우리민족을 지배한 일이 없음을 입증하는 내용이 중국역사에 명기돼 있다.(三國志, 第三十, 東夷傳)
당시 우리민족 중에 천하를 호령하는 강대한 예맥이 엄연히 존재한 사실을 고찰하면 자명(自明)해진다. 고조선 후기 당시의 조선은 광의적(廣義的)으로는 단군조선이요, 협의적(狹義的)으로는 예맥조선이다. 예맥조선은 동주(東周)시대로부터 한무제(漢)武帝)시대까지 1천여동안 중국을 정벌·정복하고 지배한 사실이 사서들에 명기돼 있다.
고조선의 후국(侯國)은 그 지역이 광대(廣大)했다. 제왕운기(帝王韻紀, 卷下, 東國君王開國年代 幷序)의 경우 지금은 일실(逸失)된 단군본기(檀君本紀) 책을 인용해 고시라(고(故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예(濊), 맥(貊)이 모두 단군의 수(壽)라고 기록했다. 당시 모든 부족의 족장을 단군(檀君)으로 칭한다고 한 때다. 그런데 이 때 모든 부족 중 주체는 예맥조선이다. 고조선의 후국(侯國)이지만 그 외 고조선 변방에 있는 동호(東胡), 오환(烏桓 烏丸), 선비(鮮卑), 해(奚), 오손(烏孫), 원 유연(柔然), 산융(山戎 원 匈奴), 철륵(鐵勒, 원 돌궐), 실위(室韋, 원 몽골) 등이 고조선의 후국(侯國)들이었다.
동호(東胡), 단군 삼조선(三朝鮮) 중 가장 서쪽 위치…맥족, 가장 오랜 기간 중국 지배
동호(東胡)는 지금의 난하유역 동쪽부터 지금의 요하 이서지방(以西地方)에 거주하던 맥족(貊)族)에 대한 총칭이다. 사기(史記)는 “조양자(趙襄子, 전국시대 진(晋)나라 장수가 대(代)나라 조(趙)나라 속국)를 공격하여 병합하매 호맥(胡貊)에 다다랐다고” 했다.(史記, 卷110, 列傳, 匈奴傳) 한서(漢書)도 호맥(胡貊)을 기록했다.(漢書, 卷49 愛益ㅇ傳 參照) 동사강목(東史綱目) 주에는 맥(貊)은 호(胡)를 말한 이름이니 동북방에 있다고 했다. 관자(管子 卷六, 小匡篇)에는 “제환공(齊桓公)이 진공(晋公)을 구하면서 적왕(狄王)을 생포하고 호맥(胡貊)을 패퇴시켰으며 도하(屠何)를 부숴 기마(騎馬)오랑캐를 복종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럼으로 공자가 ‘관중(管仲)이 없었다면 중국은 멸망되어 우리가 피발(被髮)하는 되놈이 되었으리라’고 말했다.(論語, 卷14, 憲問 第14). 산해경(山海經)도 동호(東胡)의 위치를 지금의 난하(欒河)이동으로 기록했다.(山海經 海內書經參照). 중국인들은 난하동쪽부터 이서지방에 거주하던 맥족을 호맥(胡貊)이라 하고 위치를 넣을 때는 동호맥(東胡貊)인 것을 약(略)하여 동호(東胡)라고 호칭했다.
동호(東胡)는 서기전 206년 흉노(匈奴)의 공격을 받고 해체됐는데 그 때 부각된 오환(烏桓 烏丸), 선비(鮮卑), 해(奚) 부족을 통해서도 동호(東胡)가 고조선 후국(侯國)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채호(申采浩)선생은 호맥동호(胡貊東胡)를 단군조선의 삼조선(三朝鮮) 시기에 가장 서방에 있던 ‘신조선’이라고 했다.(申采浩 上古史 改訂版 丹齊 申采浩 全集 上卷 97~98面 參照). 맥족(貊)族)은 고조선 형성의 3대부족의 하나로 중국을 오래 동안 지배한 족속이다.
동호의 맥족 강대한 후국 오환(烏桓)…‘오’는 단군조선 지방장관·대신급 ‘환’은 왕족 호칭
오환(烏桓 烏丸)은 본래 동호(東胡)를 구성한 맥족(貊族)의 하나인데 후한서(後漢書)는 ‘오환’의 구심점을 ‘적산’(赤山)이라고 했다.(後漢書,권85, 東夷列傳, 烏丸, 鮮卑列傳參照) 적산(赤山)은 홍산(紅山) 및 적봉(赤峰)과 같은 것이다. 적산(赤山), 홍산(紅山), 적봉(赤峰)은 모두 ‘북달’의 한자 표기이며, ‘북달’은 ‘밝달’과 호환되는 같은 것이다. ‘밝달’은 ‘백산(白山)’으로 한자 표기됐다.
후한서(後漢書)는 “오환(烏桓 烏丸) 중에서도 상곡(上谷)의 새(塞) 밖의 백산(白山)에 있던 것이 가장 부강했다고 기록했다.(後漢書, 卷85, 東夷列傳, 烏丸, 鮮卑列傳 參照) 흉노가 동호(東胡)를 공격해 멸망시킨 서기전 206년 경 끝까지 저항하며 항복하지 않고 오환산(烏桓)(烏桓山)을 지킨 동호(東胡)의 부족을 ‘오환(烏桓)’이라고 호칭하게 됐다고 후한서(後漢書)는 기록하고 있다. 이 오환(烏桓)의 명칭도 고조선과 직결되어 있다.
오(烏)는 단군조선의 지방장관, 대신급 호칭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환(桓, 丸)은 단군조선 왕족의 호칭이었다. 이 부족 명칭으로 봐도 오환족(烏桓族)은 고조선의 후국족(侯國族)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환족(烏桓族)은 4부로 구성돼 있는데, 그들의 중심이 있는 산에 백산(白山)의 명칭을 붙이고 태양을 숭배했다. 오환족(烏桓族)은 당(唐) 시대에는 ‘해(奚)’ 또는 ‘고막해(庫莫奚)라고 호칭됐다.(新唐書, 卷85, 烏丸, 東夷列傳 參照)
동호의 맥족 강대한 후국 선비(鮮卑)…세습 군장 성은 단군조선 왕족의 성씨 ‘단’(檀)씨
선비(鮮卑)는 오환(烏桓 烏丸)과 마찬가지로 동호(東胡)를 구성했던 맥족(貊)族)의 일파였다. 흉노(匈奴)가 서기전 206년 동호를 공격해 해체시켰을 때 항복하지 않고 선비산(鮮卑山)을 지키다가 동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선비족의 명칭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선비족의 언어와 습속은 오환족(烏桓族)과 동일하다고 했다.(三國志, 卷30, 魏書, 烏丸. 鮮卑, 東夷傳, 鮮卑條, 參照) 이들은 매년 5월에 축제를 여는 것도 예, 맥족과 동일했다. 선비족(鮮卑族)의 세습, 군장의 성은 ‘단’(檀)씨였다. 이것은 단군조선 왕족의 성씨로서 선비족이 단군조선의 후국족(侯國族)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선비족(鮮卑族)은 그 후 서기 2세기 무렵에 단석괴(檀石槐)라는 대왕이 나타나서 모든 선비족 들을 통일해 대제국으로서 선비국(鮮卑國)을 세웠다.
후한서(後漢書)는 선비국의 강성함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후한의 조정에서는 오랫동안 선비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아직 이것을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침내 사신을 파견해 인수(印綬)를 갖고 단석괴(檀石槐)를 왕에 봉해서 동시에 화친을 맺고자 했다. 단석괴(檀石槐)는 인수(印綬)를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더욱더 격렬하게 침략을 실행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영지(領地)를 3부로 나누어서 우북평(右北平)으로부터 동쪽으로 요동(遼東)이르러 부여, 예맥에 접하는 20여 읍(邑)을 서부(西部)로 해서 각각에 대인(大人)을 두고 이를 지배했다. 이들은 모두 단석괴(檀石槐)에 속했다.(後漢書,卷85, 東夷列傳, 烏丸, 鮮卑傳, 鮮卑條 參照)”
당시 선비국(鮮卑國)은 강했기 때문에 북방에서 중국을 압박해 중국역사에서 5호16국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됐다. 이 같이 한민족(韓民族)의 고조선(古朝鮮) 후국(侯國)들은 중국 한족(漢族)을 정벌·정복하면서 중국을 지배했다. 이를 배경으로 하면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정복·지배했다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허무맹랑한 허구라는 것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 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백원 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김세환 ‘고조선역사답사기’ ‘동남아유적지를 찾아서’ ‘노을속의 메아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Joseph Eidelberg 著·中川一夫 譯 ‘大和民族はユダヤ人だった’,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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