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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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백제 구수대왕 대국주신과 사반대왕 사대주신

자연정화 2018. 7. 23. 14:45

4장. 백제 구수대왕 대국주신과 사반대왕 사대주신

百濟 仇首大王 大國主神과 沙伴大王 事代主神

 

출처 : 일본사 X-file http://blog.daum.net/daangoon/13305272

 

초고대왕의 아들 구수대왕은 초고대왕의 딸인 수시리공주와 결혼해서 일본의 대화大和에 진출하여 일본의 대국주신이 되었고 다시 백제로 돌아왔다.

구수대왕의 아들 사반대왕은 일본의 효소천황이자 사대주신이 되었고 사반대왕의 딸은 신무천황의 비가 되었다.

따라서 신무천황도 초고대왕의 증손자이고, 신무천황비도 초고대왕의 증손녀이다.

 

 

[고사기]에서 초고대왕은 처음에 이즈모出雲에 정도하고 그 곳에 수가須賀(=속고速古)에 야에가기八重垣궁을 짓고 살면서 백제의 여인 쿠시나다히메櫛名田比賣와 결혼하여 일본 팔도왕인 야시마지누미노가미八嶋士奴美神를 낳았다. 이를 [일본서기]에서는 오호아나무지(대기귀신大己貴神) 또는 대국주신大國主神이라 하였는데 바로 초고대왕의 장자 구수대왕仇首大王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쿠시나다히메가 함경남도 문천 출신이고, 백제에서 구수대왕을 낳고 일본으로 데려간 것이다.

구수대왕은 일본에서 귀수왕貴首王이라고 표기하는데, 일본의 대국주신大國主神이다.

 

대국주신의 일본 발음인 오호아나모지大穴牟遲(=大己貴神)는 아나穴, 己가 그 발음에서 본래 귀貴를 뜻하고 모지牟遲가 우리말 머리首를 의미하므로 귀수왕貴首王을 일본말 아나모지大穴牟遲로 풀어쓴 것이다.

 

스사노오의 후손으로 기록된 장남 야시마지노미신八嶋土奴美은 일본 팔도왕八嶋牟遲을 의미하는 관직명이다. [위서왜인전]에서 일본 지방왕을 히노모리卑奴母離라고도 했는데 이는 백수白首라는 우리말이다. 우리나라 남자 무당을 의미하는 박수무당의 박수와 어원이 같다.

고구려 [동천왕묘지문]에도 백수百殊라는 왕칭王稱이 등장한다.

 

백제의 첫번째 팔도왕 야시마지노미八嶋土奴美는 구수왕자였다.

대국주신의 또다른 별명인 야찌호꼬八千矛神와 같은 발음의 이름이다.

 

구수대왕의 무기가 광창廣槍이었으므로 야찌보코八千矛神라고 했다.

이즈모의 박물관에 남아있는 수많은 비파형 동검 중에서 가장 넓은 것이 그의 무기였다. 비파형동검의 아래 부분에 나무를 끼워서 장창으로 사용한 것이다.

 

초고대왕은 칸오호찌히메神大市比賣와 결혼해서 오호토시노가미大年神, 우카노미타마노가미宇迦之御魂神(=海神)을 낳았다. 함흥 지방에는 만년산萬年山이 있다. 만년과 대년이 서로 통한다.

 

[일본서기]에서 초고대왕은 일본에서 다시 신라 땅 소시모리, 즉 함흥으로 돌아갔다. 구수대왕, 즉 대국주신은 일본에서 고려高麗로 돌아간 것이 일본의 야찌보코오호쿠니누시신사八千矛山大國主神社의 연기縁記에서 확인된다.

 

함흥이 당시는 백제 땅이었고, 후에는 고구려 땅, 또 신라 땅이었으므로 기록의 시점에 따라 신라, 고구려로 다르게 적혔지만 같은 곳이다.

 

구수대왕은 초고대왕이 먼저 함흥으로 돌아간 뒤에도 일본에 남아있다가 함흥 남쪽 정평군定平郡 수시리성에 다시 와서 초고대왕을 만나고, 초고대왕의 딸이자, 구수대왕의 배다른 동생인 수세리히메須勢理毗賣와 결혼하여 정비로 삼고 일본에 다시 건너가서 일본을 다스리는 대국주신大國主神이 되었다.

 

[고사기]에서 스사노오의 딸이자 대국주신의 부인이 된 수세리히메는 정평군 수시리성의 공주였던 것이다.

 

초고대왕은 장자인 구수왕자를 [고사기]에서 초고대왕은 아시하라葦原의 시골놈(是奴, 葦原色許男, 葦原醜男)이라고 불렀다.

 

구수왕자는 초고대왕의 딸 수세리히메를 정비로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나모지穴牟遲(穴=貴, 즉 귀수貴首)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다스리는 오호쿠니누시大國主神가 되었다.

 

대국주신의 대국성大國城은 오사카 대국정大國町에 있었다.

구수왕자 대국주신은 일본에서 도또리현의 야카미八上 공주, 니이가타의 누나가와沼河 공주, 후쿠오카의 타기리多紀理 공주 등등과 결혼하였다.

 

타기리공주는 초고대왕이 히미코 왜여왕의 여사제에게서 낳은 공주였고, 누나가와 공주는 야시마무지신八嶋牟遲(관직명=白首의 고어로 추정)의 딸이었는데 구수대왕이 이즈모出雲에서 대화大和로 진출할 때 이즈모에 임명한 지방왕이 된다. 누나가와 공주의 신사는 니이가타新瀉현 경성頸城군에 있다.

 

구수대왕은 또 백제본국의 칸야타데神屋楯 공주를 통해서 백제 사반대왕沙伴大王 즉, 일본의 사대주신事代主神인 효소천황孝昭天皇을 낳았다.

 

214년에 구수왕자는 본국에 돌아와 백제대왕에 즉위하였고, 이즈모出雲의 야에가기八重宮에는 사대주신事代主神을 보냈다.

 

사대주신은 일본에서 효소천황孝昭天皇이 되었고, 미시마三嶋의 세야다타라勢夜陀多良와 통하여 이스케요리伊須氣余理毗賣(219~273)를 낳았는데, 이스케요리는 신무천황(194~256)의 황후가 되었다.

 

이스케요리히메의 비문이 효소천황릉에서 발견되었는데 바로 효소천황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이스케요리히메의 부친이라는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가 효소천황이었던 것을 확정할 수 있다.

 

초고대왕(재위166~214년)이 귀국한 뒤에, 166년부터 구수대왕이 오사카大阪 대국성大國城에서 일본을 다스리다가, 백제대왕으로 즉위한 214년 뒤에는 구수대왕(재위 214~234년)의 아들인 의덕천황懿德天皇(180~244) 오호야마토히코스키토모大倭日子鉏友命가 대화를 다스리다가 신무천황神武天皇(194~256)에게 전사하였다.

 

그 뒤에 초고대왕의 막내아들인 대년신大年神의 아들 안녕천황安寧天皇(222~270)이 신무천황에게 항복하였다.

 

이후 신무천황은 왜여왕 히미코를 통일 왜국왕으로 내세워 2인자로서 보좌하다가, 247년에 히미코 여왕이 죽으니, 백제 고이대왕古爾大王(재위 239~286)의 허가 없이 스스로 독립된 일본 최초 천황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신무천왕이 257년에 백제 구수대왕계의 반격으로 죽고, 백제에서 돌아온 사반대왕인 효소천황孝昭天皇(202~268)과 신무천황의 아들인 수정천황綏靖天皇(243~292)이 타협하여 효소천황의 손녀 공주인 13살의 여사제 일여壹與, 즉 개화천황開化天皇(244~283)을 여왕으로 세워서 휴전한다.

 

사반대왕의 아들이자 개화천황의 부왕인 효원천황孝元天皇(228~273)은 개화천황의 부왕으로서 역시 천황의 반열에 올려졌을 것으로 고려된다.

 

234년 구수대왕의 사후에 만주에 있던 백제 대방왕 구이대왕仇台大王이 만주 요양시遼陽市 태자하太子河 대방성帶方城에서 백제대왕으로 즉위하였고,

 

238년 구이대왕이 죽자 사반대왕沙伴大王(=효소천황)이 즉위하였고, 평양에서 낙초(樂初 238년; 삼국유사기록三國遺事記錄)라는 연호를 세웠다.

 

그뒤 1년만에 구이대왕의 아들 고이대왕이 백제대왕으로 즉위하고 사반대왕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효소천황이 되었다.

 

(주) 백제가 남긴 백제대왕의 대위는 동명성왕 고주몽을 1세로 한다.

 

[신찬성씨록]에서 백제 혜대왕을 주몽대왕 30세손이라고

出自百濟國都慕王卅世孫惠王也 했는데

 

[삼국유사]의 28대와 비교하면 혜왕 위에 사라진 두 왕이 더 있고 그중 하나는 추증된 시조 주몽대왕이 되니 다른 한 분은 구이대왕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백제 6대 구수대왕은 10세라고 했는데

出自百濟國都慕王十世孫貴首王也

 

고대에 칠七과 십十을 구별하기 어렵게 썼으므로 이를 7세라고 교정해서 보면 그의 앞에 주몽대왕 한 분만 있다. 따라서 구수대왕 뒤에 사라진 한 분이 있는데,

 

[삼국유사]에서 고이대왕의 즉위년을 기왕에 알려진 234년이 아니라 낙초樂初 2년 기미년 239년이라 하였으므로,

사반대왕의 즉위년을 238년으로 보아야 하고, 구수대왕(재위 214~234) 서거 뒤에 234년에서 238년까지 다스린 백제대왕이 비게 되므로 그 자리가 구이대왕 위치가 된다.

 

만주 대방 고지의 구이대왕은 공손탁의 딸을 후비로 들였고 국인들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수서隋書][북사北史/ 백제전] 東明之後,有仇台者,篤於仁信,始立其國 於帶方故地。漢遼東太守公孫度以女妻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