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한민족 고대사

⑪ 동아시아 최강 기병국가 고구려의 몰락은 초원제국 돌궐이 멸망했기 때문

자연정화 2018. 8. 1. 07:36

김석동의 한민족 성장DNA 추적⑪

동아시아 최강 기병국가 고구려의 몰락은 초원제국 돌궐이 멸망했기 때문

 

출처 : 프리미엄조선 2014. 04. 08.

 

1. 유라시아지역에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돌궐

 

흉노는 유라시아 대초원지역에서 기마유목민이 건설한 최초의 스텝제국이었으며 기마유목국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흉노는 유라시아대륙 양단에 강력한 흔적을 남겼으나 한나라와 쟁패하는 가운데 분열되면서 유목민 선비에 패배해 역사에서 사라졌다(151년). 선비족은 몽골고원 일대를 장악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나 단석괴 사후 다시 분열되어 중국의 화북지방으로 남하하여 5호16국 시대를 열게 됐다(304년). 선비의 남하로 생긴 공백을 틈타 몽골계 유연이 몽골고원을 차지하고 150년 가까이 지배했으나 또 다른 유목민 튀르크계 돌궐에 멸망당했다(330~555).

 

흉노의 후예로 알려진 튀르크족에서「부민(Bumin)」카간이란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돌궐을 건국(552년)했으며 나라의 정식 명칭은 Kok Turk인데, 이는‘하늘의 신성한 튀르크’란 뜻이다. 부민카간을 이은「무한(Mukhan)」카간(553-572)은 최고 전성시대를 열었는데, 돌궐비문은 그에 대해“사방에 군대를 보내 모든 종족을 복속시키고, 머리를 가진 자는 머리를 숙이게 하고, 무릎을 가진 자는 무릎을 꿇게 하였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그의 장례식에는 중국, 티베트, 비잔틴, 유연, 거란, 고구려 등에서 사신이 왔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돌궐은 유라시아지역 동서·남북에 걸쳐 건설된 최초의 대제국으로 최대 영토가 1,000만㎢를 넘었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당나라와 쟁패하면서 역사의 중심에 등장했다. 그러나 돌궐은 초원제국의 분열이라는 역사상 전례를 벗어나지 못하고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동돌궐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한 서돌궐로 분열됐다(582년). 둘로 나뉜 돌궐은 국력이 쇠잔해지면서 동돌궐은 630년, 서돌궐은 651년에 각각 당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그 후 50년의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당에 대해 꾸준히 독립투쟁을 전개했고, 마침내 682년「쿠틀룩」이란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 거의 완전하게 돌궐을 재건하여 후돌궐시대를 열었다. 후돌궐은 720년경「빌게」카간 때 최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이시기에 세워진‘오르혼비문’은 유라시아 기마유목민족사의 기념비적인 유물이다. 빌게카간 사후 급속히 약화된 후돌궐은 745년 위구르·당·티베트의 협공을 받아 멸망했다.

 

동돌궐에 속했던 유목민족은 전통을 유지했으나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화했고 이후 원의 지배하에 들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서돌궐은 초원지역에서 유목과 오아시스 농경생활을 병행하다가 압바스 왕조의 지배하에서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일부 세력은 터키 지역으로 계속 서진했다. 이들 서돌궐세력은 960년경 셀주크 장군의 지휘로 실크로드를 따라 부하라·사마르칸트로 이주했고, 1037년 토그릴이 셀주크튀르크를 건국했다(1037~1194). 서진을 계속한 셀주크튀르크 일족은 아나톨리아 지역(터키)에서 비잔틴 제국을 격파하고 룸셀주크를 건국했다(1077년). 룸셀주크 세력약화 후 서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오스만1세가 오스만공국을 건국(1299년)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출발이다.

 

돌궐의 황금유물./사진=몽골국립박물관

 

2. 북방민족 돌궐과 통일중국의 대결

 

돌궐이 건국되던 시기에 중국은 5호16국 시대를 지나 남북조시대에 들어섰으며, 돌궐은 북위가 분열되는 상황에서 무력으로 북조를 압박하는 등 우월한 지위를 견지했다. 589년 중국은 수나라가「통일」하고 돌궐은 동·서로「분열」되는 큰 정세변화가 일어났다.「통일」과「분열」은 향후 양국의 역사전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다. 통일 수나라는 돌궐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돌궐 분열을 더욱 조장하고 그 결과 더욱 약화된 돌궐을 압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데, 이것이 역사다.

 

수나라에 이은 강력한 왕조 당나라는 돌궐과 다시 대적하게 된다. 당나라는 290년간 존속한 통일 왕조로, 중국은 한나라에 이어 제2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자신을 진시황과 한무제에 비견했던 당태종 이세민(627~649)은 끊임없는 팽창정책을 추구했으며 따라서 그에게 가장 큰 위협이며 숙제는 바로 고구려와 돌궐이었다. 고구려는 수나라 대군을 격파하고 결과적으로 멸망에 이르게 한 바 있고 돌궐은 수시로 중국영역을 공략하면서 국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당태종의 집념으로 630년 동돌궐이, 651년에는 서돌궐이 당에 멸망했다. 이어 668년에는 고구려 또한 나·당 연합군에 패하고 700년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당나라의 국력은 대단했다. 당은 선비계가 세운 왕조로, 당나라 사람은 남북조시대 이전의 중국 한족의 후예라기보다는 한족과 이민족이 융합한 새로운 공동체라 할 수 있다. 당나라는 주변의 이(異)민족의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문화를 교류하는 등의 개방정책을 통해 융성했고 전성기에 교류한 국가가 70여 개국에 달하는 등 중국왕조의 대명사가 되었다. 수도 장안은 전 세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인 국제도시로서 문명과 교통 교류의 허브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당나라 현종은 서역장악을 위해 고구려유민의 후예 명장 고선지로 하여금 서역원정을 하게했다. 고선지는 11년간(740~751) 다섯 차례 출전했다. 747년 출병시에는 해발 4,600미터의 탄구령을 넘는 전설의 진군을 했고, 중앙아시아, 파미르, 실크로드를 관장하는 안서도호부의 책임자가 됐다. 연전연승하던 고선지장군은 751년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의 패권을 두고 타쉬겐트 부근 탈라스강 유역에서 압바스·티베트·돌궐의 이슬람 연합군과 맞선 대전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했다. 고선지군대는 중국의 중앙아시아지역의 마지막 진출세력이었고, 이 전투의 패배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이슬람 세력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 고선지 장군은 그 후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모함을 받아 죽었다.

 

터키교과서에 실린 돌궐의 전성기 영토 지도.

 

3. 돌궐시대와 동아시아 최강 기병국가 고구려 역사

 

돌궐 건국 전 몽골고원과 내륙 아시아지역은 150년간 몽골계 유연이 지배했으며, 유연은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돌궐이 유연을 멸망(552년)시키고 동진하면서 여러 유목민족과 거란을 복속시킴에 따라 고구려의 서북국경에 전운이 감돌게 됐다. 돌궐은 고구려와의 사이에 있는 거란·말갈족에 대한 정벌전쟁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와 적대적 관계에 서게 된 것이다.전성기 돌궐의 무한카간은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고구려는 말갈족과 연합하여 이를 격퇴하기도 했다. 당시 돌궐은 동로마제국과 교류하였기 때문에 동로마 문헌에‘고구려인들은 위험에 대처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매일 매일의 신체 단련으로 투지가 높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구려의 국력과 고구려인의 기상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수나라가 건국되고, 돌궐이 동서로 분열되는 582년경 이후에는 고구려와 돌궐은 상호 우호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강력한 수나라의 등장이 돌궐과 고구려의 관계를 우호적이고 긴밀하게 바꾼 것이다.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반면 돌궐세력은 약화되면서 고구려는 홀로 수와 대적하게 되나 끝내 수를 격파하고 침공을 막아냈다. 이어 등장한 당나라는 동·서돌궐을 멸망시킨 후 팽창정책을 지속했고 돌궐 없이 홀로 남은 고구려는 영류왕·연개소문 시대에 단독으로 최강의 당을 상대하다가 668년 결국 멸망했다. 강한 북방유목민족국가가 존재할 때는 중국을 견제하여 고구려가 안정될 수 있었으나 북방세력이 쇠퇴할 때는 강국 고구려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682년 돌궐이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당이 다시 돌궐과 전쟁에 돌입하면서 세력의 공백기가 생겼고, 이를 이용해 고구려 후예들은 만주일대에서 발해를 건국하여 한민족사의 남북국시대(신라+발해)를 열었다. 발해건국에 참여한 말갈은「숙신→읍루→물길→말갈→여진」으로 시대별로 달리 불리웠던 우리민족의 갈래다.

 

중국통일 후 돌궐의 분열과 멸망은 고구려의 멸망으로 이어졌고, 후돌궐의 부활은 고구려의 부활(발해의 건국)로 연결됐다. 이는 초강대국의 등장에 따른 인접국가의 운명과 이에 맞서는 전략에 관한 중요한 시사를 하고 있는 대목이어서, 오늘날의 동아시아 정세를 판단할 때도 참고 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보여 진다.

중국의 통일왕조인 한나라시대에는 고조선과 흉노의 협력을 경계했고, 수·당시대에는 고구려와 돌궐의 동맹을 경계했다. 이것이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통일 중국왕조의 대외전략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외교정책의 기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