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
미트박스 '직거래 혁신' 고깃값 거품 30% 덜어내
출처 : 조선비즈 2018. 08. 03. 박정현 기자
중간 유통 없애고 앱으로 생산자·구매자 바로 연결
“고깃값 최대 30% 절약”…재구매율 85~90% 육박
경기 수원시에서 고깃집 ‘올소올소’를 3년째 운영 중인 이종덕씨는 작년 여름부터 축산물 직거래 플랫폼 ‘미트박스’를 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서 미트박스 앱(애플리케이션)을 켜고 필요한 부위별로 고기를 검색하면, 1㎏당 실시간 시세가 뜬다. 여기서 시세는 축산물 생산자, 수입상들이 매일 정하는 공급가격이다. 여러 브랜드별로 가격을 비교한 다음 원하는 상품을 선택해 주문하면 다음날 상자가 배달된다.
이씨는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원재료비 지출로) 2000만원 넘게 들었는데, 미트박스를 쓴 이후로 원가 비용이 20~30% 낮아졌다”고 말했다. 강릉시에서 ‘한우 무한리필’ 정육식당을 차린 김태민씨도 “8개월째 미트박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같은 가격에 품질이 더 좋은 한우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 김씨 같은 자영업자들은 미트박스를 통해 기존 유통구조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축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 유통구조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 현재 유통구조에 따르면 고깃집, 정육점 자영업자들은 중간 유통상을 통해 고기를 공급받는다. /사진=연합뉴스
미트박스를 공동창업한 김기봉(47) 대표ᐧ서영직(47) 최고경영자(CEO)는 ▲중간 유통상을 거치면서 축산물 가격이 비싸진다는 점 ▲축산물 가격에 대한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외상 거래 관행 때문에 유통상을 쉽게 바꿀 수 없어 고깃집 사장이 ‘약자’의 위치가 됐다는 점 등을 기존 유통시장의 문제로 꼽았다.
대기업에서 20여년간 축산물 MD(Merchandiser·상품기획자)를 하면서 기존 유통구조의 한계를 느낀 김 대표는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대학 동기 서영직씨를 설득해 2014년 미트박스를 창업했다. 미트박스는 축산농가ᐧ수입상(생산자)이 그날 팔 상품을 올리면, 고깃집ᐧ정육점 자영업자(구매자)가 상품을 골라 사는 ‘축산물 직거래 온라인 장터’다.
김 대표와 서 CEO는 최근 조선비즈와 만나 “축산물 유통업계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미트박스’를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불필요한 비용을 낮추고 기존 관행의 역기능을 파괴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효율성을 걷어내고자 한다”며 ‘기존 유통구조의 파괴’를 강조했다.
▲ 미트박스 공동 창업자 서영직 CEO(왼쪽)와 김기봉 대표(오른쪽)/미트박스 제공
미트박스는 생산자와 구매자가 직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장터를 제공하는 대신 약 3~5%의 수수료를 받고, 미트박스와 계약 맺은 물류인력과 시설을 통해 배송까지 해준다. 고깃집, 소규모 정육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입장에선 축산농가와 직거래하면 고기값을 최대 30%까지 싸게 살 수 있다. 한 번 샀던 고깃집 사장들은 최대 85~90%가 재구매한다.
① 중간 유통단계 없애자 고깃값이 낮아졌다
“고깃값이 왜 이렇게 비싼 줄 아세요?”
김 대표와 서 CEO는 그 이유가 ‘유통 마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축산농가에서 생산된 축산물이 여러 중간 유통상을 거지는 과정에서 유통 마진이 붙어 고깃집ᐧ정육점까지 오고, 그렇게 최종 소비자들은 ‘비싼 값’에 고기를 사먹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고기 상자는 어디 안가고 가만히 있는데, 중간 유통업자들 때문에 며칠만에 가격이 훌쩍 뛴다”고 설명했다.
축산농가에서 생산된 고기는 생산 농가의 로고가 찍힌 상자에 담겨 냉동 창고에 집결된다. 그러면 중간 유통상들이 창고로 와 축산농가나 원수입자로부터 고기를 수십여톤에서 수백톤까지 산 다음, 전국 곳곳 지역별, 도시별로 활동하는 중간 유통상들에게 쪼개서 판다. 지방에 있는 중간 유통상들은 그렇게 산 물량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눠 소매 유통상들에게 나눠 판다. 이런 과정을 서너번을 거친다.
하지만 사실상 이 과정은 서류상으로만 이뤄진다. 고기가 담긴 상자는 처음 창고에 그대로 놓여있다. 서 CEO는 “냉동 창고에 가만히 있던 서류상 고기상자의 주인만 A유통상에서 B유통상, C유통상, D유통상으로 바뀌는데 앉은 자리에서 가격이 몇 배씩 뛴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중간 유통상을 거칠 때마다 고기에는 5~10%씩 유통 마진이 붙는다”며 “국내 육류 시장규모는 연 40조원인데 이중 중간 마진이 약 7조~8조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미트박스는 중간 유통상을 거치지 않고 축산물 생산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해준다/이미지=미트박스
유통 과정에서 원생산자, 즉 축산농가나 수입업자는 약자다.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의 축산 농가라도 생산, 가공까지만 하고 유통은 중간 유통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수입상도 마찬가지다. 1%의 저마진만 남기고 중간 유통상에 판다. 거의 마지막 단계 소비자인 고깃집 사장도 약자다. 생산 원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중간 유통상이 떼어주는 가격에 고기를 사야 한다.
미트박스가 서비스를 시작하고 원생산자와 고깃집 사장을 바로 연결해주자 고깃집 사장들이 사는 고깃값이 확 낮아졌다. 축산물 직거래를 통해 원가 비중이 가장 큰 고깃값을 줄여 자영업자들의 근본적인 수익 개선이 가능해진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비용 절감을 할 수 있게 되자 입소문을 타고 회원들이 빠르게 늘었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미트박스를 이용하는 생산자, 자영업자 회원은 2만명, 매월 거래되는 금액은 약 70억원이다.
▲ 미트박스
어려움도 많았다. 미트박스 서비스가 잘 되자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로부터 협박 전화도 걸려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제가 핸드폰을 잘 안본다”고 했다. 대도매상으로 불리는 중간 유통상들은 국내에서 약 2000여곳으로 추정된다. 연 매출이 500억원~1000억원 정도 하는 곳들이다.
김 대표는 “중간 유통상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그래도 우리는 큰 그림을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축산물을 주된 원재료로 해 영업 중인 식당은 국내에 약 15만곳, 그리고 정육점은 2만3000개로 추산되는데, 2000여개 중간 유통상보다 15만~17만 자영업자에 혜택을 줄 수 있는 대안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② 아무도 몰랐던 시세 정보 공개, 품질 좋아지고 가격 경쟁 붙어
미트박스가 직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도입한 또 다른 정책은 도매 시세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농수산유통공사, 축산물품질평가원도 한우, 한돈 경매가를 공개하지만 부위별 가격 또는 시세는 제공하고 있지 않아 실제 구매에 활용하기 어려웠다. 또한 수입육은 경매가격도 아예 알 수 없어서 정보의 비대칭이 심각했다.
미트박스는 마장동 축산물 도매시장에서 톤 단위로 실제 거래되는 축산물의 실시간 시장 가격을 조사해 이를 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수십여가지 세부적인 부위별 시세가 매일 업데이트된다. 필요한 부위의 개별 가격의 변화 추이를 알 수 있으니 자영업자들도 시세를 보고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이 도매 시세는 미트박스에서 상품을 사든, 사지 않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가격 정보다. 구매자들에게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자 일부 중간 유통상들도 시세에 맞춰 가격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 미트박스의 물류 창고에서 보관 중인 축산물/미트박스 제공
서 CEO는 “축산물의 시장 가격이 매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려줘 축산물 가격 정보의 비대칭성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했다”며 “유통업체에 가격 인하 요인을 간접적으로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트박스를 통해서는 500여개 브랜드의 축산물을 품목, 부위별로 1200개 이상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대형마트도 많아봐야 50종의 고기가 있지만 미트박스는 등급별, 원산지, 가격별로 2000종의 상품을 확보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③ 고깃집 ‘약자’ 만드는 외상거래 탈피...협상력 높였다
기존 축산물 유통구조에 따르면 중간 유통상들은 고깃집에 고기를 먼저 가져다주고, 돈은 몇 개월 지나 나중에 받는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의 입장에선 일단 받은 고기를 팔고 나중에 현금이 생기면 유통상에게 돈을 준다. 이런 외상 관행이 있다보니 자영업자는 자연스럽게 채무자가 돼 약자에 위치에 놓였다. 한마디로 끊임없이 빚을 지는 것이다.
서 CEO는 “덫에 갇힌 것처럼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고깃집 사장은 돈을 다 갚기 전까지는 쉽게 유통업자를 바꾸지도 못했다.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은 식당이 부도가 나버리면 수개월치의 돈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빚더미에 앉아, 소매 유통업자와 연락을 끊은채 도망가버리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서 CEO는 “미수금을 메꿔야 하는 소매 유통업자는 다른 식당 사장들에게 돈을 더 비싸게 받는 방식으로 손실을 전가했다”고 설명했다.
▲ 미트박스 직원들이 배송 준비를 하고 있다/사진=미트박스
이런 상황에서 고기의 가격은 오락가락이었다. 고깃집 사장은 고기의 시세를 잘 모르니, 유통상이 부르는대로 고깃값을 치뤘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소비자에게 받는 가격을 올렸다.
외상 거래 관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미트박스를 이용하는 회원들은 선충전 방식을 쓴다. 미리 수백만원씩 돈을 충전해놓고 결제할 때마다 돈이 빠져나가는 선충전 방식을 도입했다. 온라인 쇼핑하듯, 내가 사는 만큼 그때 그때 돈을 내도 된다. 여기에 도매 시세 가격까지 더해져 외상 거래에 따른 불합리한 구조에서 벗어나 자영업자들도 협상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럼 축산농가, 수입업자 같은 원생산자는 돈을 언제 벌까. 미트박스는 배송이 완료된 날로부터 7일 후에 원생산자에게 정산을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기존 구조에선 빠르면 15일, 늦으면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 CEO는 “직거래를 할 수 있게 연결해주니 정산이 늦어질 염려도 없고 생산자 입장에선 리스크가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며 “미트박스에 가장 열광하는 것은 원생산자, 수입업자”라고 말했다.
⬥김기봉ᐧ서영직 공동 창업자는…
미트박스(주식회사 글로벌네트웍스)에서 김기봉 대표는 마케팅 등 경영전략을, IT전문가인 서영직 CEO는 R&D를 담당하고 있다. 김 대표는 LG계열 유통업체(GS리테일 전신)와 아워홈에서 10년 이상 축산물MD를 하면서 축산물 유통시장을 몸으로 익혔다. 그는 회사를 나온 후에는 보쌈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면서 소비자 관점에서 문제점을 파악했다. 이후 게임회사 웹젠 전략기획실장을 지낸 서 CEO와 손잡고 미트박스를 창업했다.
미트박스는 순수 기술기업도 아니고 순수한 유통도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온라인의 영역으로 가져와 기술로 해결하고 또 오프라인 시장의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있는 ‘융합형’ 스타트업이다. 서 CEO는 “어떤 대단한 기술을 가진 기업만이 혁신적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선 축산물 시장처럼 오래된 산업 구조와 관행을 바꿔야 하는 니즈가 절실한 부분이 많다”며 “올드한 산업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축산물 유통시장의 거대한, 오래된 관행을 흔들지 않으면 구조를 바꿀 수가 없다. 혁신은 어떤 의미에선 파괴적이다”라며 “미트박스를 합리적인 소비를 위한 대안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트박스는 소프트뱅크벤처스, 알토스벤처스, 스톤브릿지캐피탈 등을 통해 누적 기준 총 110억원을 투자 받았다. 이 회사의 매출은 모두 수수료에서 온다. 매월 미트박스를 통해 거래되는 물량은 약 1200톤, 2017년 연간 거래액 목표는 100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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