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한민족 고대사

㉔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했던 아시아 기마민족이 중부유럽에 세운 헝가리

자연정화 2019. 3. 26. 22:12

김석동의 한민족 성장DNA 추적㉔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했던 아시아 기마민족이 중부유럽에 세운 헝가리

 

출처 : 프리미엄조선 2015. 03. 16.

 

1. 헝가리 국가와 역사개요

 

헝가리는「도나우(다뉴브)강」중류의 중부유럽에 위치한 국가다. 면적은 9만3천㎢로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고 인구는 996만 명으로 우리의 5분의 1이며, 1인당 GDP는 1만3천불로 우리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넓은 평원지역인 헝가리는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등 7개 국가로 둘러싸인 내륙국가다.

 

2,850㎞에 달하는 도나우(다뉴브)강이 슈바르츠발트에서 시작하여 헝가리 북부국경을 흐르다가 남쪽으로 수도「부다페스트」를 지나면서 국토의 중심부를 종단하고 동쪽으로 흑해에 다다른다. 도나우강은 유럽에서 볼가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강으로, 예로부터 동서유럽을 관통하면서 교역과 문화교류의 대통로가 되어온 국제하천이다. 특히 동방의 여러 민족이 유럽으로 이동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경로 역할을 하여 훈, 마자르, 몽골, 투르크 등 아시아 기마유목민족이 유럽대륙에서 활약하는 역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강이다.

 

헝가리 평원(좌), 부다페스트를 흐르는 도나우강.

 

헝가리는 아시아 기마유목민인 마자르족이 세운국가다. 마자르족은 우랄산맥 부근의 초원지대에서 목축생활을 하다 5세기경 동쪽으로부터 또 다른 기마 민족의 압박을 받으면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9세기경에는 우랄산맥에서 볼가강을 따라 이동하다 흑해북안을 지나 카르파티아 산맥과 도나우강 사이에 위치한 드넓은 헝가리 대평원으로 이동했고, 896년 아르파드 대제 시대에와서야 현재 헝가리 땅인 카르파티아 분지를 차지해서 영토와 민족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땅은 5세기 중엽까지 훈제국의 심장부였다.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 때인 10세기경에는 로마 교황이 승인하여 기독교 국가가 되고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다.

 

부다페스트의 건국 1000년 기념비(좌), 이슈트반1세 동상.

 

1241~42년 몽골 바투의 침공으로 국가가 와해되는 대재난을 겪게 되나 몽골 해체 후 14~15세기에는 중부유럽의 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했다. 이후 16세기 들어서는 다시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국가인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일부 영토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귀속되었다가, 17세기말에는 아예 합스부르크가에 편입되어 150년간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헝가리 국민의 끈질긴 독립운동이 계속되면서 1867년부터 헝가리는 내정을 독립하고 오스트리아가 외교·국방 등을 관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시대가 전개된다. 이 제국은 합스부르크가를 중심으로 오스트리아·독일·헝가리 등 11개 민족으로 구성된 큰 나라를 형성해 당시 프랑스나 통일 독일보다 넓은 나라였고 지배민족은 독일과 헝가리였다.

 

1990년에 제정된 헝가리 국장, 방패 오른쪽 아랫편에 세 개의 초록색 산봉우리와 평원이 인상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으로서 패전하여 헝가리 영토는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전쟁 전 28만 2천㎢에서 9만3천㎢로 축소되고, 인구도 1820만 명에서 79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헝가리는 약소국으로 전락하여 절치부심하다 실지회복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축국에 가담했으나 다시 패전하여 수도 부다페스트가 70% 이상 파괴되고 소련의 세력권에 들어가 공산화하게 된다. 1956년 대학생·노동자 등이 주도하는 헝가리 봉기가 발생하고, 이후 체제 전환을 모색하다 1989년 공산통치가 끝나고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2. 헝가리 마자르족의 유럽 정착 역사

 

헝가리는 9세기 경 마자르족이 중부유럽에 세운 국가다. 그런데 이에 앞서 AD 374년경 ‘발라미르’가 이끄는 아시아 기마군단 훈족이 볼가강과 돈강을 건너 동고트를 점령하고 드네프르를 건너 서고트를 축출하는 등 유럽을 파죽지세로 공격하면서 들이닥치게 된다. 유럽은 공포에 떨었고, 이들의 공격을 “신의 징벌”이라고까지 했다. AD 400년경에는 ‘울딘’이 다시 훈족을 이끌고 유럽을 초토화시키자 고트족이 헝가리·이탈리아 등지로 피난을 하면서「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초래되고 세계사와 세계지도를 바꾸게 된다.

 

AD 434년에는 훈족의 왕 아틸라가 등극하여 441년 동로마와 전쟁을 선포하고 카스피해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아틸라는 451년 서로마제국과 전쟁을 선포, 갈리아를 공략하고 라인강 건너 메츠를 점령해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게 되지만 453년 게르만 제후의 딸(일디코)과 결혼한 첫날밤 의문의 사망을 하고 이후 훈족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하게 된다. 당시 아틸라군은 50만 명에 달하는 병력으로 약 10년간 중부유럽을 중심으로 라인강~발트해~카스피해~흑해~도나우강~지중해를 잇는 유럽 최강의 국가를 건설하였다.

 

아틸라 사후 동로마제국에 패배한 훈족은 대부분 다시 카스피해 북부, 러시아 남부, 흑해 북안 등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중부유럽에 남았다. 이들은 후에 유럽으로 다시 동진해 온 마자르족과 함께 헝가리 왕국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유럽인들은 이들을 공포의 대상인 훈족의 후예로 생각하고 이들의 국가를 Hun(훈)·Gary(영토)라고 불렀다고 한다. 헝가리의 전설에서는 훈족과 마자르족은 피를 나눈 형제라 한다.

 

헝가리인들은 카르파티아 지역에 정착한 이후에도 일부 마자르족의 기마군단은 계속 서진하여 독일·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지역까지 공격하여 약탈하면서 유럽을 유린하였다. 이러한 마자르족의 유럽 침공에 맞서 동프랑크 국왕 ‘오토1세’는 독일 전역에서 동원한 통일군대를 이끌고 955년「아우구스부르크」근교의「레히펠트」전투에서 마자르 기마군단을 격파했다.

 

이 전투로써 오토1세는 중부유럽의 권력을 장악하여 962년 신성로마제국을 창시하고 황제로 등극한다. 마자르족의 약탈전쟁은 마자르왕 이슈트반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렇게 아시아 유목민이 동서의 교차로인 중부유럽에 정착하면서 유럽 속에 아시아계가 자리 잡은 ‘인종의 섬’이 되었다. 이들은 역설적으로 나중에 몽골, 투르크의 유럽 침공을 저지하는 방패역할을 하게 된다.

 

3.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후예, 헝가리 마자르족-공포의 아시아 기마군단

 

헝가리 전체 인구의 약 95%를 차지하는 마자르족(Magyars)은 동부유럽 일대에 약 1500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헝가리어인 마자르어는 우랄어족에 속하며, 음운이나 형태적 특성이 알타이어족과 유사하고 같은 교착어에 속한다.

 

유럽연합의 언어 중 헝가리어·핀란드어·에스토니아어 3개 언어만 우랄 어족에 속하며 나머지 국가는 모두 인도유럽 어족에 속한다. 아시아 유목민의 후예 마자르인들은 헝가리 대평원에 정착한 후에는 슬라브족, 게르만족 등과 혼혈이 이루어졌으나 아시아인의 언어와 혈통이 유지되고 있다.

 

헝가리인에게는 유목민의 DNA가 유지되고 있는 많은 특성이 있는 것 같다. 헝가리인의 대표적인 정서는 일에 대해 강한 집념과 책임감으로 이들은 일단 약속을 하면 끝까지 지키려한다. 또한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지만 무슨 일에든 빨리 관심을 갖고 빨리 식어 버리는 냄비근성도 있다 한다.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독립적 기질도 보인다. “헝가리의 기관과 조직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치를 두는 덕목은 개인의 역량이나 능력이다. 헝가리인들은 지위자체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리더’라는 개념도 특정 팀을 관리하는 사람 정도이지 자신들을 지휘, 감독하는 개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김용성, KOTRA)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마자르족은 아시아 기마군단과 마찬가지로 기마술과 궁술에 능했으며 마상에서 몸을 돌려 화살을 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민족에 속한다. 고구려·위구르의 벽화에서 바로 이들과 같은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헝가리에서는 매년 7월 첫째 주말 초원에서 ‘승마의 날’ 축제가 벌어진다. 각국에서 참가한 마장 마술 국제경기가 열리고 헝가리 목동들의 승마곡예가 벌어지는 행사로, 기마유목민들의 문화가 지금껏 남아있는 것이다.

 

집안 고구려박물관 복원도인 무용총 수렵도./필자 소장

 

헝가리인은 아시아에서 이동한 민족이지만 유럽의 토박이들인 슬라브족, 게르만족 등과 많은 혼혈이 이루어져 외모는 유럽의 코커서스인을 닮았다. 그러나 눈이 깊지 않고 팔다리도 상대적으로 짧은 특성이 있다. 마자르인에게서는 서양과 다른 모습들이 많이 나타난다.

 

성이 먼저이고 다음이 이름이 되는 순서다. 날짜도 년-월-일 순으로 쓴다. 또 시대나 지도자에 따라 고유의 샤머니즘에서 가톨릭, 이슬람, 신교 등으로 환경과 시대에 따라 종교를 바꾸는 융통성도 동시에 발휘했다. 마자르인들은 문화적 응집력이 강하고 전통을 존중한다.

 

헝가리는 고유의 음악, 미술, 문학 등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음악에서는 작곡가 F.리스트, Z.코다이, B. 바르토크와 지휘자 G.솔티 등이 유명하다. 헝가리인 중 13명이 노벨상을 받았고 이중 9명이 과학 분야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 부터의 과학교육, 엘리트교육의 성과, 기마유목민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어우러진 결과가 아닐까 한다.

 

유럽 중앙에 살고 있으나 아시아 기마유목민인 헝가리의 마자르인, 이들은 유라시아에서 대활약한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오랜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