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가동 개시...
中-러, ‘안보협력’ 넘어 ‘경제동맹’으로 가나?
출처 : 펜앤드마이크 2019. 12. 03. 박순종 기자
지난 2014년 러 ‘가스프롬’-中 CNPC 30년 장기 계약 맺고 가스管 연결 작업...
2일 첫 가동식 미국과의 무역 갈등 장기화...
‘시베리아의 힘’, 中 에너지 문제 상당 부분 해결할 것 기대
지난 9월 2년 연속 中-러 합동 군사 훈련 실시 등
안보 협력 강화하는 가운데 경제 동맹까지...‘새로운 냉전’ 시대 돌입
서로 악수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사진=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협력’을 넘어 본격적인 ‘경제동맹’ 체제에 돌입한다. 러시아산(産)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운반하는 파이프라인 1호 ‘시베리아의 힘’이 2일부터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중·러 양국은 지난 2014년 30년에 이르는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힘’ 파이프라인을 통해 계약 기간 동안 총 3200억달러(한화 약 380조원에 상당)어치의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수출하게 된다. 우선 가동되는 구간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링(長嶺)까지이지만 중-러 양국은 2023년을 목표로 상하이(上海) 부근까지 파이프라인을 연장할 계획이다.
동(東) 시베리아로부터 중국 북동부 지역에까지 이르는 전장 3200킬로미터(㎞)의 파이프라인의 건설은 러시아 최대의 천연가스 수출 기업 ‘가스프롬’(Gazprom)이 맡았다. ‘가스프롬’은 지난 2014년 중국 내 전체 가스 파이프라인 가운데 80%를 관리하는 중국 국영 기업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中國石油天然氣集團, CNPC)과 손을 잡았다.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파이프라인이 가동됨에 따라 중국의 천연가스 수급도 숨통을 트게 될 전망이다.
최근 중국의 천연가스 소비량이 그 생산량을 넘어서며 빠르게 증가해 왔다. 2012년 중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00년 대비 292% 증가한 데 그쳤으나 소비량은 2000년 대비 500%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중국의 천연가스 수입량도 덩달아 큰 폭으로 늘어났다. 2018년에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수입국에 올라섰다. 하지만 중국 국내 천연가스 가격은 중국 정부 당국에 의해 통제되고 있어 수입가격보다 낮게 책정돼 수입량의 증대는 곧 천연가스의 수입 및 판매와 관련된 기업들의 손실로 직결돼 중국으로서는 골머리를 썩여오던 차였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힘’이 본격 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4년 이후에는 연간 수송 능력이 380억제곱미터(㎡)에 달하면서 ‘시베리아의 힘’이 중국의 연간 천연가스 수입량의 20%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중국 당국은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중국이 맞은 에너지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가설 계획. 실선으로 표시된 구간에서 가동이 개시됐으며 2023년까지 중·러 양국은 파이프라인을 상하이까지 연장할 계획이다.(지도=구글 지도)
‘시베리아의 힘’은 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중·러 양국 간의 결속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의 상당량을 미국에 의존해 온 중국으로서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미국과의 ‘무역 마찰’ 또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러시아로서도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무력 병합(倂合) 이래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를 받게 돼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수출길이 녹록치 않던 차에 중국으로의 활로가 뚫려 한시름 놓게 됐다.
2일 ‘시베리아의 힘’ 가동 기념식에 참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너지 분야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시베리아 힘’의 가동이) 중국과 러시아 양국 간의 깊은 통합과 전략적 협력의 표본이 될 것”이라며 화답, 중·러 양국 정상은 향후 안보 차원을 뛰어넘어 경제적 차원에서도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아갈 것임을 시사했다.
중·러 양국은 지난 9월 2년 연속으로 대규모의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미국에 대항해 군사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지난 2011년 중국으로 석유를 수송하는 석유 파이프라인을 가동하고 북극권 LNG 개발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등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인류가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경험한 지도 벌써 30년이 흐른 2019년, 미국을 포함한 시장자유주의 진영과 중·러로 대표되는 국가자본주의 진영 사이의 패권 싸움이라는 형태로 ‘새로운 냉전’이 자리잡고 있는 모양새다.
2800㎞ 가스관 개통… 中·러 '에너지 동맹'으로 더 밀착
출처 : 조선일보 2019. 12. 03. 베이징 박수찬 특파원
러, 30년 동안 470조원 규모 공급… 상하이 아파트도 러 가스로 난방
유럽으로 가던 가스 수출 막힌 러… 연료 부족한 中의 이해관계 맞아
美 주도 세계 질서에 정면 도전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와 중국 북부를 잇는 천연가스 공급관이 2일 정식 개통됐다. 앞으로 30년간 중국의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2018년 기준)의 14%에 가까운 천연가스가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공급된다. 베이징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상하이 아파트까지 러시아산 가스로 난방을 하는 셈이어서 양측이 '에너지 동맹'을 맺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과 중국 관영 CCTV 등에 따르면 양측은 2일 중·러 동부 가스관 가운데 러시아 구간인 '시베리아의 힘' 개통식을 열었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사하 지역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헤이허(黑河)까지 연결하는 2800여㎞ 길이의 가스관이다.
러시아 동부와 중국을 잇는 중·러 동부 가스관 연결 사업은 총길이 8000㎞다. 이날 개통식으로 러시아 구간과 지난달 공사가 끝난 중국 북부(헤이허에서 지린성 쑹위안까지 1000여㎞ 구간)까지 4000㎞가 완성됐다. 홍콩 명보는 이번 가스관 연결로 헤이룽장 등 동북 3성, 베이징, 톈진까지 러시아산 가스가 공급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앞으로 상하이 등 창장(長江) 유역까지 가스관을 연결할 예정이다.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은 앞으로 이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 가스프롬으로부터 30년간 연간 380억㎥ 가스를 공급받는다. 2018년 기준 중국 천연가스 연간 소비량(2800억㎥)의 13.6%다.
중국 관영 CCTV는 러시아 국가에너지연구소 소장을 인용해 러시아의 천연가스전 개발이 계속되고 있어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천연가스 수출량이 더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30년간 가스를 공급받는 대가로 러시아에 4000억달러(약 470조원)를 지급한다.
중·러의 '가스 동맹'은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양측은 1996년부터 천연가스관 연결 사업을 연구했지만 2014년 5월 중·러 정상회담에서야 가스 공급 프로젝트에 최종 서명했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유럽으로 가던 가스 수출길이 막혔다. 천연가스 소비량이 늘어나는 중국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수입선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중국 에너지 사용량에서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7.8%로 이는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앞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가스관 연결은 정치적인 의미도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중앙정보국(CIA) 에너지 분석관을 지낸 에리카 다운스 컬럼비아대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이 가스 동맹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말고도 대안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시대 들어 중국과 러시아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군사·경제 등 각 분야에서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2018년 9월 사상 처음 중국군을 자국 연례 연합 훈련에 초청했다. 중국과 러시아 해군은 지난달 28~29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인근 해역에서 남아공 해군과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대체하는 국제 결제망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 양국 수교 7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신시대 전략협력동반관계'로 규정하고 우주 개발 등 협력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연결된 중·러 천연가스관 역시 가스만 오가는 게 아니다. 미국 CNN방송은 러시아산 가스관 출입구인 러시아 블라가베센스크와 중국 헤이허를 잇는 첫 다리가 준공돼 내년 봄 개통된다고 보도했다. 양측은 그동안에는 배를 이용해 국경인 아무르강(중국명 헤이룽장)을 건넜다.
북 관통하는 한~러 ‘가스관 로드’…에너지 대장정 첫발 뗐다
출처 : 한겨레신문 2018. 10. 25. 조계완 기자
[남북러 천연가스 프로젝트]
가스공사 “남·북·러 천연가스 사업 / 공동연구 위한 실무단계 준비중”
최단거리 러→원산→평택 1200㎞ / 북 지질조사 등 현지 실사가 관건
경제성·평화·공동번영 ‘일거삼득’
북한을 관통하는 ‘남-북-러 육상 연결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구상의 경제적 타당성 등을 검토하기 위한 한국·러시아 ‘공동연구’ 실무준비가 이뤄지고 있다. 이 거대 프로젝트가 실행 단계에 들어선다면 남북을 잇는 ‘에너지 혈맥’이 뚫리는 셈이 된다. 천연가스 자원 도입에서 경제성은 물론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이라는 세가지 축을 동시에 아우르고 있어 한·러 양국이 공동연구에 공식 착수할 시기에 눈길이 쏠린다.
24일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극동 시베리아 가스전에서 채굴되는 천연가스를 육상 배관을 통해 북한을 거쳐 한국에 공급하는 ‘남-북-러 천연가스사업 한·러 피엔지(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 공동연구’를 위한 선행 단계의 하나로 실무준비에 착수했다. 가스공사는 “피엔지 공동연구는 대북 제재와 무관하며,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향후 여건 조성에 대비한 실무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러시아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 ‘남·북·러 3각 협력을 위한 가스 분야 한·러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하고, 가스공사와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가스관 연결 관련 경제성 및 기술성에 대한 공동연구에 합의한 바 있다. 두 가스 기관은 최근 몇 차례 공동연구 본격화를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북한을 관통하는 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연결 구상은 1990년대부터 민간 및 정부 차원에서 간헐적으로 논의됐으나 북한 핵 문제 등 각종 돌발 변수가 터지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지난 2010년 한·러 공동연구 검토 보고서를 보면, 향후 30년간 연간 750만t의 시베리아 가스전 생산 천연가스를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한국에 공급하는 것으로 돼 있다. 파이프 길이는, 2015년 가스공사 의뢰로 삼정회계법인이 추산한 최단 노선(북·러 접경에서 원산·철원·파주·인천을 거쳐 평택까지)은 총 1202㎞에 이른다. 북한의 천연가스 수요를 고려해 평양·개성을 경유하면 1505㎞로 늘어난다. 북한은 현재 에너지원으로 천연가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향후 북한도 국가에너지믹스에 천연가스를 포함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한·러 양국의 자체 공동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북한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 북한 내 가스관 노선에 대한 지질 조사도 필요하고, 돌발 상황의 경우 배로 수입(액화천연가스 운송 형태)해야 할 때 가격 경쟁력도 검토해야 한다. 이성규 에너지경제연구원 북방에너지협력팀장은 “한·러 공동연구가 앞으로 북한 현지에 직접 들어가 육상 배관 여건 등을 조사하는 ‘실사’ 형태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북한과 협의해야 하고, 또 (실사에 대한) 미국 쪽의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라며 “북한지역 실사 없이 한국과 러시아가 각각 향후 천연가스 장기수요량(한국)과 공급능력(러시아) 등 최신 데이터 정보를 작성·공유하는 형태로 연구가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공사는 이른바 ‘통과료’도 추산해보고 있다. 가스프롬이 우크라이나·슬로바키아 등과 체결한 기존 통과료 계약에 비춰볼 때 우리가 북한에 지급할 통과료는 천연가스 1천㎥를 100㎞ 운송할 때 2달러(종량제 기준)로 추산되고, 이럴 경우 통과료는 총 1804억원가량 된다. 가스공사는 “육상 배관에 관한 국제협약이나 보편적 기준은 없으며, 통과료 계약은 대부분 기밀이고 협상을 통해 확정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통과료를 현금으로 받지 않고 천연가스 물량으로 받아 내수용으로 쓸 수도 있다.
한국으로서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정책 목적도 이 공동연구 추진에 포함돼 있다. 가스공사로서는 천연가스의 안정적 도입선 확보는 물론 엘엔지(LNG·액화천연가스) 도입가격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세계 천연가스 수입 1~3위국인 일본·중국·한국의 엘엔지 도입가격(한국은 2017년 1MBtu당 평균 8.08달러)은 국제유가 연동계약에다가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불리한 조건이 붙기 때문에 미국(4.49달러) 및 유럽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두배 가까이 더 높다. 현재 가스공사는 카타르·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지의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액화시켜 선박으로 들여오고 있으나, 파이프라인으로는 기체 상태 그대로 수송할 수 있다. 피엔지 방식이라는 새로운 대체재의 존재로, 기존 엘엔지 공급자와의 협상에서 수요자인 우리의 교섭력이 커져 엘엔지 도입 단가를 크게 떨어뜨리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조계완 기자
러~중~한 가스관 ‘1석 4조’인데 … 손 놓고 있는 한국 정부
출처 : 중앙일보 2014. 03. 30. 박태희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 자치공화국의 러시아 합병 조약에 서명하던 지난 18일. 유럽과 미국의 비난 성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푸틴의 한 측근이 조용히 일본으로 향했다. 푸틴의 오랜 동지이자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업체 로스네프트의 최고경영자(CEO) 이고리 세친이었다. 그는 이튿날 도쿄에서 기자들을 모아 놓고 “유럽과 미국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 한다면 모스크바는 아시아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러시아 싱크탱크인 전략기술분석센터(CAST)의 중국전문가 바실리 카신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러시아는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고 중국 지지만 받아도 아무도 러시아가 고립됐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4년 뒤면 300km 코앞 산둥까지 들어오는 러시아 가스관
러시아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이런 발언을 내놓은 배경은 뭘까.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중-러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주목한다. 양국은 동시베리아 코빅타 가스전과 사하공화국 내 차얀다 가스전을 중국 동북 3성~베이징을 거쳐 산둥반도까지 파이프로 연결하기 위해 2년여 동안 본격적인 가격 협상을 벌여왔다. 실제 세친도 이날 회견에서 “오는 5월 예정된 푸틴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 천연가스 최종 계약이 체결된다면 글로벌 파워가 바뀔 것이고 그러면 서방은 필요 없어진다”고 큰소리 쳤다.
중·러 에너지 동맹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이 논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정가에서는 오는 5월 중·러 정상 회동에서 수년째 이어진 천연가스 가격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어느 때보다 맞아떨어지고 있어서다. 우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에너지 수출에서 유럽 의존도를 낮춰야 할 형편이다. 석유·가스는 러시아 수출의 70%, 연방정부 재정수입의 52%를 차지한다. 이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가는 지역이 유럽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의 75%가 유럽으로 향한다. 아시아 소화 분량은 15%에 불과하다. 천연가스의 경우 아시아에 수출하는 물량은 1100만t으로 미미하다.
중국은 환경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동안엔 천연가스에 비해 가격이 싼 석탄을 주로 써왔다. 문제는 석탄이 스모그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최근 중국 젊은 층 사이에는 “공기 좋은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자”며 이민을 고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인 영국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백근욱 선임연구위원은 “연료 사용 문제가 사회 안정성 문제로 번지면서 중국 내에는 스모그 원인인 석탄 사용을 줄이고 천연가스 사용 비중을 현재 5~6%에서 두 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 외교가에서는 수입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러시아에 모종의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안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 내 한 소식통은 “양국 정부 간 긴밀하게 접촉이 이뤄지고 있어 마지막 남은 가격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될 공산이 커졌다”고 전했다. 중·러는 가격 협상에 서명하는 대로 곧장 공사에 들어가 이르면 2018년에 동부 시베리아와 산둥반도를 잇는 4000㎞ 파이프라인을 완성할 계획이다. 한반도에서 서해 넘어 315㎞ 전방까지 러시아 천연가스가 배달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금이 중·러 파이프라인 협상에 한국이 뛰어들 호기라고 지적한다. 눈앞에 차려지는 ‘자원 밥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게 아니라 이 파이프라인을 한국으로 연장해 ‘다목적 자원외교 카드’로 활용하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산둥으로 들어온 파이프라인을 인천까지 연장할 경우 한국에는 크게 네 가지 실익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수입선 다변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중동·호주 등 다른 수입선과의 거래 시 가격 협상 권한이 커지는 것이다. 백 연구위원은 “대형 선박으로 LNG를 전량 들여오는 상황과 파이프라인 공급선을 확보한 상황은 가격 협상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산둥에서 인천까지의 거리는 300여㎞에 불과해 해저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데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블라디보스토크~북한 내륙~속초 라인이 850㎞인 데 비하면 연결 구간이 훨씬 짧다. 서해는 수심이 평균 55m로 얕아 파이프라인 공사에 기술적 제약도 없다.
인천으로 들여온 러시아 가스관은 대북 협상의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재영 구미·유라시아실장은 “비핵화를 전제로 인천에서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연결하는 파이프 라인 건설을 북한에 제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 북한에 당근책이 된다는 얘기다. 이 실장은 “블라디보스토크~북한 내륙~속초 라인이 대북관계에 따라 공급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었던 데 비해 인천~개성~평양 파이프라인은 이런 염려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북한 외에 일본에도 팔 수 있다. 국내에는 2400㎞ 길이의 내륙 순환 가스 파이프라인이 있다. 부산과 일본의 규슈 지역을 연결하면 러시아~중국~한국~일본을 거친 동북아 천연가스 동맹체 결성이 가능해진다. 일본은 전력 발전의 30%를 LNG 연료에 의존하는데 한국처럼 LNG를 전량 선박으로 수입하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천연가스를 쓰는 나라가 됐다. 실제 멕시코만의 산지 기준으로는 가스 1mmbtu의 평균 가격이 4달러지만 일본에는 이보다 4.5배 비싼 가격으로 도입된다.
가스 수입비용을 낮추기 위해 일본은 러시아 사할린에서 홋카이도 혼슈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개설하는 방안을 러시아와 오랫동안 논의해왔지만 북방 4개 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면서 협상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백 연구위원은 “일본 내 가스 파이프라인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인천으로 들여온 파이프라인은 우리가 일본에 외교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된다”며 “일본 천연가스 시장에서 미국의 LNG 못지않게 한국의 파이프라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합치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세계 최대 단일 대륙이자 거대 시장인 유라시아 역내 국가 간에 협력을 통해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북한 개방 유도 등에 함께 나서자는 구상이다. 이 실장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매개로 북한을 둘러싼 4개국이 에너지 공동체로 묶이면 한반도 평화 유지에 강력한 억제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중~한 파이프라인은 장기적으로 동북아 환경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된다. 중국·한국이 합쳐 시장이 커지면 LNG 수입 가격을 더 낮출 수 있고 그만큼 중국 내 사용량을 늘릴 수 있다. 스모그 주범인 석탄 사용 감축의 전기를 마련하는 셈이다. 한국이 중앙아시아에 보유한 가스전을 활용할 길도 열린다. 한국은 현재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등에 가스전을 매입해 보유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생산된 가스를 국내로 들여올 방법이 없어 애를 먹어왔다. 백 연구위원은 “파이프가 연결되면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이 생산한 가스를 중국에 주고 러시아산 가스를 파이프를 통해 공급받는 ‘스와프’ 거래가 가능하다”며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논의에 뛰어들 시간이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한국가스공사 등 국내 유관 부처·기관 사이에는 서해 파이프라인에 대한 논의가 멈춘 지 오래다. 정부 한 관계자는 “MB 정부가 블라디보스토크 라인을 강조한 이후 서해 라인은 논의에서 배제됐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아무도 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MB 정부는 2010년 파이프라인 설치의 경제 타당성 검토를 위해 러시아 가스프롬, 한국가스공사와 함께 외부 용역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블라디보스토크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타당성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당시 조사는 서해 라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PNG(파이프를 통해 가져오는 것), CNG(압축천연가스), LNG(액화천연가스) 상태로 들여오는 방법과 비교했다.
중국은 2012년 2월 방중한 한국석유공사 대표에게 중·러 파이프라인을 한국으로 연결하자는 제의를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아직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가스 연결은 석유공사가 나설 업무는 아닌 데다 에너지 문제는 정치·경제·외교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여서 공사 차원에서 주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산자부 이용환 가스과장은 “가스 도입 문제는 가격과 부대 조건, 에너지 수요 현황, 대체 에너지인 셰일가스 수급 현황 등 다양한 각도에서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의 수입선 다변화 의지가 확고한 만큼 중·러의 협상 결과에 따라 차후 서해 라인도 신중하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러 가스관, 북한 빼고" 中 파격 제안
출처 : 중앙일보 2012. 03. 23.
중국이 북한 변수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북한~한국 가스관 연결 사업의 대체 노선으로 러시아~중국 산둥(山東)반도~한국 서해 노선을 제안했다. 중국석유천연가스(CNPC) 장제민(蔣潔敏) 회장은 지난달 16일 베이징에서 한국석유공사 강영원 사장을 만나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과 관련해 중국을 경유해 서해를 지나는 해저 노선 방안을 타진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중앙일보·JTBC가 단독으로 입수한 두 사람 간 회의록에 따르면 CNPC 장 회장은 “산둥반도 웨이하이(威海)에서 한국으로 해저 가스관을 부설해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는 것이 북한을 경유하는 방식보다 안정적이고 경제적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제안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의 한국 측 사업 파트너인 한국가스공사도 CNPC 측과 접촉하고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웨이하이에서 백령도까지는 174㎞이며, 서울까지는 380㎞다. 현재 논의 중인 러시아~북한~한국 가스관의 경우 북한 통과 거리가 700㎞에 이른다.
중국은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천연가스전과 중국과의 접경인 부랴트를 잇는 가스관을 중국 내로 연결하는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와 천연가스 가격 협상이 완료되면 3~4년 안에 이 가스관을 베이징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CNPC 장 회장의 제안은 이르쿠츠크~베이징 가스관 노선을 웨이하이까지 연장한 뒤 서해를 통해 한국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업계 소식통은 “중국이 한국과 함께 공조를 이뤄 러시아와 천연가스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구상에서 나온 제안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중국이 한·중 가스관 사업 제안을 주도하며 한국 측에 협력을 요청하게 됐다는 것이다.
CNPC는 중국 국무원(행정부) 석유공업부에서 분리된 국영기업이다. CNPC의 회장은 정부 부처 장관급에 준하는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공산당을 이끌고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한 명인 저우융캉(周永康) 중앙정법위원회(공안 담당) 서기도 CNPC 회장을 역임했다. 공산당·정부 부처와 긴밀히 연결된 거대 국영기업 측이 웨이하이라는 구체적인 입지까지 거론하며 사업 구상을 밝혔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정부 기관과 사전 검토를 거쳐 새 노선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경유 노선은 북한 리스크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사업이 급진전될 수도 있다.
안보 전략상 서해 해저 가스관은 한국에도 의미가 작지 않다. 북한 변수에 발목이 잡혀 있는 남북·러시아 가스관 사업이 속도를 내도록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서해를 통해 한·중 양국이 에너지 인프라로 연결되는 만큼 양국 관계도 더욱 긴밀해질 전망이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서해상에서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도발 리스크를 중국과 함께 분담하는 효과도 있다”며 “그러나 중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는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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