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한국(BC7197)

3. 한민족 남성 Y염색체의 유래

자연정화 2013. 7. 31. 16:44

3. 한민족 남성 Y염색체의 유래

 

 

 

위 분포 그림에서 한국인과 피가 가장 많이 통하는 것은 대만, 중국, 필리핀, 동남아시아, 만주인, 일본 등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반도 문화는 북방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지라도,그 오랜 혈통은 동남아시아와 훨씬 더 가깝다.

여기서 2006년 자료로서 한국인 남성의 Y유전자 분석과 주변 민족을 비교하면 아래표와 같다.
(표의 숫자는 해당 유전자의 발현 빈도 퍼센트%) (세로 분홍색 칼럼이 한국인의 Y유전자 분포)

 

Haplogroup 다울거란 에웬키

혁철족
숙신

회회족 만주족 내몽고 실위

위굴우루무

위굴신강

석백선비

한족하얼빈

한족신강 조선족 포의족 하니족

려족해남도

장족 시족 티벳 요족광서 요족광동 한족사천 한족감숙 한족광동 일본

한국합계

외몽고 브리야트 알타이Q
55

라후구려

묘족 낙시

Y* 5 6 4 3 21 2 3 8 3 9 + 3 1 3 15
C*
0 4 7 11 3 3 17
C1 9
C3* 28 27 11 11 22 38 19 22 14 6 12 18 3 3 12 20 9 2 16 34
C3c

3

27

11

3

9

42

7

5

 

 

 

 

 

 

 

 

 

20

C그룹 합계 31 58 29 22 25 47 61 3 7 27 14 6 12 18 3 17 3 12 20 9 11 16 54 60 24 5
D 11 3 3 2 3 18 43 3 7 28 3 2 3 + 12
E 3 6
J 9 26 7 3 10 1 3
F 31
K* 4 3 4 3 13 5 9 4 3 6 2 15 13 78
NO*/– 3 4 2 3 6 3 2 +
N* 6 3 3 10 3 3 12 9 3 7 3 4 +
N2 18 3 6 6 3
N1 6 2 6
N3* 2
N3a 8 13 5 5 3 1 6
N그룹 합계 11 4 20 3 15 13 6 9 8 17 6 3 12 12 9 3 3 7 3 6 1 11 28
O* 3 3 6 3 1 7
O1*
5 8 9 3 3 7 3 9 3 26 15 15 3 6 15 7 20 8
O2* 3 2 3 9 2 6 9 9 4 3 3 37 3 14 + 2
O2a* 15 4 3 37 6 59 9 9 3 6 3 3 4 28 17
O2a1 17 44 3 3 3 12
O2b* 3 4 6 2 20 4 16
O2b1 8 23 9
O2그룹 합계 21 4 6 3 15 2 6 3 9 12 21 32 54 50 65 15 9 40 9 18 3 14 31 25 2 8
O3*
3 16 3 9 7 5 5 20 22 24 3 6 6 3 3 10 3 2 16 3 15
O3/-cd* 15 4 9 9 9 4 6 5 9 9 3 3 15 9 21 10 26 2
O3/-c 3
O3/-d 3 3 17 29 34 51 6
O3/-d1 3 3 6
O3e* 4 4 3 6 7 3 3 5 12 23 3 9 9 3 12 6 3 6 15 7 3 4 12 2 15
O3e1 8 16 16 3 14 11 3 3 5 5 14 6 16 3 6 9 18 37 14 15 10 11 17 12 5
O3그룹 합계 26 32 49 18 38 29 18 6 15 27 66 46 40 32 18 3 36 74 40 34 83 54 37 52 23 40 12 6 30 53
P* 11 19 15 2 3 6 + 5 6
R1a 6 23 15 6 9 7 9 2 7

 

 

(2006년에 중국에서 발표한 자료 http://www.genetics.org/cgi/content/full/172/4/2431#TBL1 ;에 한국인은 2개 자료를 더하여 보정한 것임. 브리야트, 알타이는 1999년, 라후는 2000년, 묘족은 2003년 자료임. 아래는2006년조사장소

 

 

위 표를 분석하여 특징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1. 중국이나 태국에서 가장 한국적 문화를 많이 간직하여 당나라 때 이주한 고구려 후예로 여겨지던 라후족이 Y, F, K 등 고대 유전자를 주로 가졌다. 그러나 몽고 유전자가 섞이지 않은 것은 이들이 압록강 남쪽 사람들이고, 그들 스스로 강서에서 왔다고 하므로 대동강 서쪽 강서군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은 고대 마한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고려 된다. 가장 오래된 고대 유전자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출발지에서 보다 변화하지 않고 보존되는 현상이 종종 있다. D유전자는 일본 아이누족과 티벳산중, 인도양의 안다만 섬 같은 고립된 지역에 보전되어 있다.

 

2. 원시 몽골 유전자 C그룹은 3만년전에 시베리아로 이동하여 북만주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환웅 시대 이전에 원시 몽골유전자 C그룹이 들어오지 않았다.

 

3. D그룹이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티벳과, 티벳과 이웃한 요족瑤族에 남고, 남쪽으로는 인도양 안다만섬으로 가고, 북쪽을 돌아서 몽골 유전자 C1과 동행하여 함께 일본에 건너 갔는데, 이는 한국을 지나간 것이 아니라 시베리아를 돌아서 사할린을 통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D와 동행한 C1이 일본에는 9%이지만한국에는 전혀 없다. 아이누족 유전자인 D는 일본에서 30%에나 이르지만 한국에는 3%에 못미친다. 따라서 D는 일본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4. 북방으로 우회한 원시 몽골 유전자 대신에 한반도에는 3만 5천년전 아랄해에서 출발한 Y, F, K 그룹 유전자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이는 한반도에 살았던 라후족 유전자로도 확인된다. 이 유전자들은 알타이를 거쳐 중국 황하를 지나왔는데, 황하 남북에사는 약20% 인구가 K유전자를 가졌다.


K나 F, Y 등은 중국을 거쳐 만주를 통해 한반도로 들어온 것이 확인된다. 중국에도 F 유전자는 5% 이내로 적은데, 일찍 K로 변형을 일으켰던 것이다.


Y, F, K와 뒤에 일어난 O그룹까지도 아직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모습과 다름없는 흑인의 피부색을 가졌었다. 이는 7000년전의 양자강 하구 하모도 유골도 마찬가지로 흑인형(negroid)이었다.

 

 

5. K그룹이 시베리아에서 NO그룹을 발생하고 N그룹은 러시아를 지나 스칸디나비아로 가면서 백인이 된다.
시베리아의 NO그룹에서 O그룹(M175)이 35000년전에 발생하는데, O그룹은 그곳에서 P그룹을 발생시켜서 대부분의 유럽인의 조상이 되게 한다.

 

6. O그룹(M175)은 중앙아시아로부터 티벳에 들어와서 다시 동아시아의 세 방향으로 퍼졌다.
약 2만년전에 O그룹은 광동성 해안 지방에서 O1(M119)그룹을 발생시키고,
또 다른 O그룹은 우수리강, 흑룡강에 이르러서 O2 (P31)그룹를 발생시키고,
역시 또 다른 O그룹은 운남지방에서 O3(M122)그룹를 발생시켰다. 광동의 요족이 O3를 발생시켰을 가능성이 높은데, 인도의 아리안족이나 드라비다족에게는 O3가 없다. 즉 드라비다족의 언어와 O3그룹의 언어는 유사한 것이 많지만 혈통적 관련은 적다.

 

7. O2는 북경 동북의 요녕성에서 중심이 되고 한반도에 까지 들어왔고, O3는 중국 해안을 따라 한반도로 들어왔다. 중국은 O3(M122)의 전국적 확산을 신석기시대 쌀농사의 확산으로 추정해 왔는데 사실과 다르다.
O3의 일본까지 확산이 다른 북부 지역과의 확산과 별 차이가 없으므로 15000년전에 있었던 한반도와 일본 분리 이전에 O3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쌀농사와 관련없는 구석기시대 수렵족 O3의 확산으로 보인다.

 

20000년전 대륙지도. 붉은 지역은 빙하의 확장으로 인한 해수면의 저하로 육지였던 곳. 현재의 동해바다가 육지로 둘러싸인 내해였고 황해바다, 대만, 해남도가 육지였다. Times Books (4th ed) 1993. 한국과 일본은15000년전에 분리 되었다.

 

8. 한반도 동북부의 O2그룹은 흑룡강에서 흙을 구워서 질그릇을 개발하였다. 이는 일본 북부에 16000년된 유적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는 한반도 동북방의 아무르강 유역에서 개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질그릇의 개발은 씨앗 열매나 채소류의 소화력을 증가시켰다. 특히 사냥이 어려운 한겨울에 음식거리로 마른 곡물이 먹거리의 중심이 된다.


즉 질그릇의 발명이 자연 상태 곡물 채집과 농경 생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는 컴퓨터의 발명이 정보산업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로 질그릇이 농업을 일으킨 것이다. O2그룹과 O3그룹은 한반도의 태백산맥을 경계로 하였을 것이다. 요동반도까지 한반도 서쪽이 주로 O3그룹이고, 태백산맥 동쪽과 길림성, 흑룡강성을 포함한 북부 지역이 O2그룹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9. 15000전 한반도 충북 청원 소호리에서 쌀농사가 시작되었다. 야생 벼의 원산지는 중국, 인도 등일 것이지만 이를 처음으로 재배 경작한 것은 한반도인이다. 이때 한반도에서 쌀농사를 지은 종족의 주 유전자는 O3(O122)였고, 처음으로 도입된 농사는 한반도 신석기인의 인구폭발을 일으켰다. 인구폭발 와중에 O3e(O134)가 한반도에서 생겨나서 O3와 함께 한반도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세상으로 아직 농사가 확산되지 않았으니, 기존의 종족들은 대부분 과일 채집과 동물 사냥으로 살았다. 이무렵 O2그룹도 역시 농사 혁명으로 O2b그룹을 발생시켰는데 이들은 좀더 추운 지방의 작물들을 재배했을 것이다.

 

10. 12700년전 영거드라이아스기라고 부르는 천년 혹한기가 시작되고, 한반도의 쌀농사족은 기장쌀, 보리 등 혹한에 견디는 농사로 전환하거나, 쌀농사를 계속하기 위해 중국 전역으로, 특히 중국 남쪽해안으로 이주하였다. 농사를 모르는 민족은 천년 혹한기 동안 사냥의 한계로 개체수가 많이 줄어 들고, 대신에 농사짓는 한민족은 더 많아져서 중국의 대부분 인종은 한반도에서 다시 남쪽으로 회귀한 O3와 한반도에서 발생한O3e로 대체 된다. 한반도에서 O3, O3e는 삼한족三韓族을 구성했다.

 

11. 한반도 북부와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에 산재해 있던 O2그룹은 한반도에서 일찍이 농사 기술을 배워서만주 북부로 퍼졌다. O2는 북방 몽고족이 들어오기 전에 한반도 동부에서 O2b로 분지되고, 이들은 점차 세력을 넓혀서 요녕성에 남아 있던 O3와 함께 예족穢族을 구성했다. (단, 이들 O2그룹과 O3그룹이 대규모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4세기 무렵의 백제전기 시대다.)

 

12. 천년 혹한기 끝에 단 수년만에 급격한 기온 상승으로 인하여 11600년전부터 인류는 고원으로 피신하고 고원 문화가 발달한다.


<환단고기-삼성기>에 환인족의 선조인 "나반那盤"과 "아만阿曼"과 아이사타에서 만나 환인족의 조상이되었다. 이는 환인국의 형성 전이다.


"나반"의 "나"는 나르, 즉 태양의 의미를 가졌고 이는 쿠르드 언어에 남아있다. 이집트의 태양신은 "라"이다.우리말에서는 "날. 낮"이 그 파생어다. 또한 드라비다어로서 누반은 기장쌀이다. 노란색의 어원이 태양 나일 것이고, 태양의 노란색과, 건조 기후에 적합한 기장쌀의 노란색 때문에 기장쌀은 태양빛 곡물로서 이름을 누반이라고 했을 것이다.


한편 "아만"은 몽고어로서 "하나"라는 의미다. 첫 번째라는 뜻도 된다. 즉 나반과 아만의 만남은 O그룹의 드라비다어와 C그룹의 몽고어가 만난 것이고, 한반도에서 올라간 만주의 농사족이 시베리아의 수렵족중에서 에웬키족과 만나 그들을 농사족으로 바꾼 것이다.


11600년전의 환인족 유전자는 한반도에서 발생한 O3e1이 된다. 위에 제시한 표에서 보듯이 모든 북방족에 퍼져 있고 한반도에도 많이 있다.

 


(1999년 자료)

 

13. 아만의 에벤키족의 유전자는 지역별로 세 종류가 있다. 시베리아-에벤키, 극동(오호츠크)-에벤키, 만주-에벤키 등이다. 이중 가장 오래된 종족은 고대 유전자인 Y와 N그룹이 많이 남아있는 시베리아 에벤키로서 퉁구스라고도 불리웠다.


O3e그룹의 나반이 드라비다어(당시 한반도 고어였다.)를 사용하면서, 만주로부터 시베리아에벤키족의 일부가 살던 "아이사타"에 들어가서, 기장쌀 농사를 가르치고, 그 결과로서 만주 에벤키족이 탄생했을 가능성이높다.


만주에벤키가 탄생한 위치는 "아이사타 阿耳斯陀"라고 했는데, 중간의 이耳는 ㄹ 발음을 대신하는 것이므로 본래 "알-사타" 라고 고려되며 이는 흥안령산맥과 바이칼호수 중간의 내몽고 우랑카이고원에 위치한 울리아스크(東烏珠穆沁旗縣)로 추정된다.


울리아스크는 흑인(negroid)에 의한 농경족 문화로 추정된다. 따라서 농경으로 인해 북방에서 상당한 인구 증가가 되고 당시 시베리아 몽골인중에서 주류로 성장하게 된다.


11600년부터 8200년 사이에 오랑캐고원에서 이루어진 환인족의 문화는 농경족과 수렵족 두문화권의 결합으로 뛰어난 발전을이루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이때 흑색을 숭상하여 검은 칠을 남겼는데 옥조각에 입힌 광물성 흑칠의 비밀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14. 8200년전 200년 혹한이 찾아왔다. 오랑캐고원은 혹한 속에서 도저히 농사짓기에 부적당해서 환인족이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이때 서남쪽 내몽고로 내려간 환인족은 내몽고 중심인 인산陰山에 자리잡아서 알유족(에벤키족의 옛이름)이 되고, 인산산맥에 암각화를 새기는 암각화 문화를 만드는데 이는 한반도 동남해안에도 흔적이 있다. 이때 알유족과 반대로 동남쪽 흥안령 산맥을 넘어 새한산(塞罕山 = 혹은 서한산西罕山)으로 진출한 것이 환인족의 환국이다. 반면에 남쪽 난하 지역으로 진출한 산융족(험윤)도 있다.

 

15. 꾸준한 기온 상승으로 6000년전 지구의 해수면이 오늘날과 같아졌다. 2만년전에 비해 100m 이상 높아진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기후의 온난화로 북방 시베리아 진출이 쉬워 졌다. 이때 C3그룹 유전자를 가진 바이칼의 브리야트족이 시라무렌강 유역에 도래한다. 환인의 서자라고 표현된 환웅은 원시 몽고족의 방계민족인 것이고 브리야트족은 우리말로 부여족인 것이다. 배달국, 밝은땅에 살던 이들 문화의 특징은 붉은 색깔이다.


이전까지 빗살무늬 토기와 달리 홍산문화는 붉은 색을 칠한 채도문화가 가장 큰 특징이다. 붉은 칠과 울란우데(적봉), 울란바토르, chita赤塔 등은 모두 붉은 색을 숭상하는 지명이다.

 

16. 한편 산동반도의 임치(臨淄)에서 역사적인 연대에 따른 유전자분석이 있었다. 즉 2500년전 유골의 유전자와 2000년전의 유골의 유전자, 현대인의 유전자를 일본 도쿄대학에서 분석한 것이다. 2500년전은 치우의 후손인 용산문화 이후 제나라 지배하의 임치이나, 임치는 치하淄河변으로서 4800년전의 치우 후손과 밀접하다. bc1236년 단군 색불루 때에 포고씨를 청주 땅 엄에 세웠다는 기록도 있고, bc461년 단군 물리 때에 박고씨를 청주에 세워 엄국(고엄국은 산동곡부曲阜에 있었다)이라고 하였었다는 기록도 있다. 단군 색불루 이후 환웅족 부여인이 오르도스 고원에 진출하여, 환인족 알유인과 스키타이 금속문화를 일으켰고, 이 청동예술 문화가 스키타이인들을 통해 유럽에 전해졌었다. 당시 <사기>에는 양성凉城의 적적인赤翟人과 중산국中山國의 백적인白翟人들이 있었으니 이들도 관련된다. 2000년전은 한나라시대이고 진시황의 통일 이후로서 동이인東夷人들을 많이 북쪽과 동쪽으로 물리치고 제나라 사람들이 살았다고 보여진다.


연구 결과는 2500년전의 임치인(치우 후손)은 유럽인과 같은 유전자를 가졌고, 2000년전의 임치인은 위구르인과 키르키즈인의 중간이었다. 그리고 현재 임치인은 몽골인과 한국인의 중간이었다.


즉 4888년전의 치우나그 후손인 2400년전의 청구인은 검은 얼굴의 유럽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용산문화의 특징은 검은 질그릇의 흑도문화黑陶文化이기 때문이다. 또한 청동기물의 수면문獸面文이특징인데 이는 아랍인의 얼굴을 과장한 것일 수 있다. 신라때 아랍인 처용의 얼굴가면으로 귀신을 쫓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중국 최초로 말을 기른 것이다.


치우족은 현재 만주에 남아있는 석백족(sibe)의 선조로 고려된다. 석백족은 러시아인에 많은 N그룹과 유럽인에 나타나는 P그룹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석백?伯은 지비犀毗, 선비?卑(이것도 시비로 읽어야 한다. 흉노의 왕칭인 선우도 치우에서 유래한 것이니 시우로 읽어야 옳다.), 시비矢比, 등 다양하게 표기를 하며 하이라얼의 실위산 아래 사는 부족도 있다. 이는 모두 치우의 발음과 관련된다. 석백족은 사내가 태어나면, 활과 화살을 매단 새끼줄을 대문에 거는 풍습이 있고, 어려서부터 말타기를 가리킨다. 또한 10세에 완전한 활을 주고, 평생 활과 화살을 신물로 여겨서 남녀가 결연할 때의 매개로 삼기도 한다. 이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데 이는 치우의 구려(九黎=句麗=狗) 후손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석백족은 특이하게 정월 16일을 말흑절(抹黑節)이라고 하는데 악귀를 쫓고 밀의 풍년을 위해서 뺨에 검은칠을 하는 명절(抹黑節)이다. 솥바닥의 검은 그을음을 쓰기도 한다. 대문앞 큰 길에 검은 재를 뿌리기도 한다. 그외 존경을 위해 노인의 이마에 검은 점을 찍기도 한다. 즉 검은 것을 숭상하는 것이 치우 용산 문화의 유물이다. 여러 가지로 석백족은 치우의 후손으로 고려되는데 현재 치우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대신 관우를 섬기고 있다.

 

현재 치우를 섬기는 것은 묘족苗族이다. 묘족이 한나라 이전에 임치에 살았다고 추정 된다. 치우가 황제를 꺾으면서 남하하여 산동반도 임치에서 묘족을 배경으로 황하 동부의 하북과 양자강까지 중국을 다스렸던 것이다.

 

 

4년후 중국에서 나온 보충 논문은 다르게 결론을 유도하고 있으나 아래 추가된 새로운 그림을 보면, 역시 일본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