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서양의 대격변을 일으킨 흉노-훈족
최병현(崔秉鉉)·이종선(李鍾宣) 두 학자들이 말하는 흉노계 기마집단의 신라 유입 경로는 차이가 있으나 신라 김씨 왕족들이 흉노계라고 보는 데서는 일치하고 있다. 최교수는 흉노 기마군단의 급작스러운 경주 진출을, 이원장은 흉노계 민족의 단계적인 이동을 상정(想定)하고 있다.
흉노족은 지금의 몽골고원에서 유목민 최초의 대제국(흉노)을 만들어 중국의 한족(漢族)과 대결하던 용맹무쌍한 유목민 기마군단이었다. 이들이 한(漢)무제의 공격을 받자 일부는 서쪽으로 나아가 4세기 게르만족을 치면서 서양사에 등장한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그에 따른 로마제국의 붕괴를 일으킨 훈족의 출현이다.
3세기말 중국의 진(晉)이 내부 권력투쟁으로 분열하자 몽골고원과 중국 북방에 남아 있던 흉노 등 다섯 유목민들은 남침(南侵)하여 중국을 150년간 대혼란에 빠뜨리고 다섯 호족(胡族)이 16개국을 만드는 5호16국 시대를 연출한다.
이런 유목민족 대이동의 흐름을 타고 일단의 흉노계 부족이 경주에 나타나 토착정권을 장악한다.
이 흉노계 신라 지배층이 삼국통일을 주도하여 오늘날 한민족으로 불리는 정치·문화·역사 공동체를 건설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라가 당(唐)과 결전하여 한반도를 민족의 보금자리로 확보할 수 있었던 정신적 힘-정체성, 자존심 같은 것도 출신성분이 한족과 근본적으로 다른 데서 연유한 바가 클 것이다.
흉노족이 가진 특성은 모든 유목민족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영민·용맹하며 자유분방하고 친(親)자연적이고 정직하며 당당하다. 개인적이고 오기가 세기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면 무섭게 뭉쳤다가도 그런 지도자가 사라지면 집단도 사라지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흉노계의 특성을 점검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우리 민족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런 민족에게 알맞은 경영방식은 무엇인가, 왜 신라 김씨가 삼국통일을 주도할 수 있었는가 등등의 화두를 세워볼 만하다.
훈·흉노·신라는 유라시아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을 이어주는 기마민족의 띠이자 말의 길이다. 말이 가진 기동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같은 시기(4~6세기)에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과 동쪽 끝에서 같은 흉노(훈)족에 의한 일대 격변으로 구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했는가를 알기 힘들다. 붙박이 농경민족의 눈으로는 눈부시게 기동하는 기마민족의 역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흉노족에 대한 연구는 민족사를 세계사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시각의 일대전환이다. 이는 나와 우리를 보는 시각의 재정립이기도 할 것이다.
유목민족의 종착지 진한(辰韓)
중국의 진나라 사람 진수(陳壽)가 3세기에 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마한·진한·변한의 삼한 사회에 대한 기록이 있다. 중국 사람이 이곳을 여행하여 남긴 기록으로서 한국인의 조상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이 기록과 삼국사기, 그리고 고고학적인 발굴을 종합하면 신라의 지배세력은 동북아시아를 서북쪽에서 동남 방향으로, 즉 대각선으로 이동해 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진한의 왕이 항상 마한 사람을 써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한양대 인류학과 김병모(金秉模) 교수는 『이는 신라의 전신(前身)인 진한 사람들이 토착민인 지석묘인(人)들과는 경제방식이 다른 사람들임을 나타내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들 진한의 외래인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동이전의 기록을 본다.
『진한은 마한 동쪽에 있다. 이 나라 노인들에 따르면 옛날에 진나라 사람들이 괴로운 노역을 피해 한으로 들어왔는데 마한은 그 동쪽 국경 지역의 땅을 떼어 이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성책(城柵)이 있고 말하는 것이 마한과 다르고 진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진은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그 진이다. 진은 중국의 서부 감숙·섬서성에서 일어난 나라인데 다수 주민들은 유목민들이었다. 전국시대 7웅 중에서 진(秦)만이 유목국이었고 나머지는 농경국이었다. 서기 전 221년에 진이 통일한 데는 유목민 특유의 기마전술에 힘입은 바가 컸다.
진의 시황제는 몽염(蒙恬)의 지휘하에 만리장성을 쌓고, 함양에 궁궐을 짓는 등 백성들을 혹사했다. 이때 부역을 견디지 못하고 한반도로 들어온 진인(秦人)들이 지금의 경상북도 지방에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한은 진한이라 쓰이기도 했다.
동이전은 이어서 이렇게 썼다.
『동방 사람들은 자신들을 (아)阿라고 부르는데 낙랑군(樂浪郡)의 사람을 아잔(阿殘)이라 부른다. 낙랑군 사람들은 자신들의 잔여(殘余)이므로 「아잔」이라 부른다』
문맥상 동이전의 저자인 진수(陳壽)는 「진한 사람들이 도망쳐 온 중국의 진나라 사람이면서 동시에 낙랑군 주민 출신이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앞에서 이종선 관장이 단정했듯이 고조선과 낙랑군(평양 부근)의 주민들은 흉노족이었다. 이 흉노족 중에는 진에서 이동해 온 사람들도 있었고, 이들이 다시 경주로 옮겨가서 살고 있는 상황을 진수(陳壽)는 다소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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