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시바 료타로의 신라(新羅) 평가
일본의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쓴 「한국(韓國) 기행」을 읽으면 일본인들이 가진 백제문화에 대한 호감과 신라 예술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바 료타로는 이 책에서 신라의 통일전략을 높게 평가한다.
그는, 백제 멸망의 한 원인으로서 백제 지배층이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양자강 남쪽의 동진(東晉)과 밀착하면서 중국화 되었고, 특히 중국의 사치풍조를 많이 받아들인 점을 지적하였다. 시바 료타로의 요지는 이러했다.
<백제 지배층은 수(隋)와 당(唐)이 중국을 통일한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은 당이 곧 분열할 테니 걱정할 것이 없다면서 육조풍(六朝風)의 화려한 문체와 가무음곡(歌舞音曲)을 즐기고 현세보다도 불국토(佛國土)를 동경하였다.
신라는 다분히 야성적이라 문(文)보다도 무(武)를 숭상하면서 무인(武人)의 감각으로써 대당제국의 무서운 힘을 느꼈다. 신라는 적극적으로 당의 힘을 이용하여 동맹을 맺음으로써 백제를 멸망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고구려도 백제처럼 국제정세를 오판하였다. 돌궐과 동맹하여 수당과 대항하려고 한 것이 실수였다.
이런 사태를 보고 신라는 당과 동맹했던 것인데, 이는 신라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구려로부터 압박을 받아 오면서 터득한 국제감각 덕분이었다>
◆ 당(唐)의 파병 요청을 받아들인 신라(新羅)의 희생과 보상
정관연중무위신라왕조(貞觀年中撫慰新羅王詔)라는 문서가 중국에 현존한다. 이는 서기 645년 2월 당태종이 고구려 원정군을 지휘하기 위하여 낙양을 출발하기 직전에 신라의 선덕(善德)여왕 앞으로 보낸 편지이다. 그 내용은 당군이 고구려를 치는 데 신라도 파병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때는 아직 나당(羅唐)동맹이 결성되기 전이다.
그 3년 전 신라는 백제, 고구려 연합군으로부터 한강유역의 당항성을 공격받았고 합천(大耶城)을 백제군에게 빼앗겼다. 이듬해 신라는 사신을 당 태종에게 보내 원군의 파병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시킬 때 죽은 도독 김품석(金品釋) 부부는 뒤에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었다. 삼국사기 선덕여왕조(條)에 따르면 인간적인 대목이 나온다.
<춘추는 소식을 듣고 기둥에 기대어 종일토록 눈을 깜박이지 않고 사람이나 동물이 앞을 지나가도 살피지 않더니 이윽고 말하기를 『아아, 대장부가 어찌 백제를 없애지 못하겠는가』하고, 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신이 고구려에 가서 군사를 청하고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겠습니다』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김춘추는 고구려를 찾아가 동맹을 꾀하나 고구려는 죽령 서북 땅을 돌려 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요구했다. 김춘추는 이를 거절했다가 잠시 구속되기도 했었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으나 일본 사서(史書)에 따르면 김춘추는 고구려에 갔다가 온 뒤에는 일본에 가서도 동맹을 맺으려 했으나 또 실패했다고 한다. 대고구려, 대일본 외교에 실패한 김춘추는 서기 648년 당으로 건너가서 태종과 담판하여 나당동맹을 맺게 된다.
위에서 소개한 태종의 편지는 나당동맹 결성 이전의 것으로서 이 동맹의 배경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 645년 고구려를 치기 위한 30만 원정군을 보내면서 당 태종은 2년 전 자신에게 원병을 요청했었던(당이 들어주지는 않았다) 신라에게 오히려 고구려를 치는 데 도와줄 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선덕여왕은 당 태종의 요청을 받아들여 3만명(신·구당서(新·舊唐書)에는 5만 명으로 나온다)을 뽑아 당군을 돕기 위해 파병했다. 이 틈을 타서 백제가 신라의 서쪽 일곱 성을 쳐서 빼앗았다. 당의 고구려 원정도 실패로 끝났다. 신라로서는 손해만 본 파병이었다. 그러나 이런 희생이 그 뒤 나당동맹 결성을 가능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즉, 당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기 위해 파병한 것은 그 전에 신라가 파병해 준 데 대한 보답이란 측면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당 태종은 선덕여왕에게 파병을 요청하면서 거의 동시에 백제에도 편지를 보내 고구려를 치는 데 파병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백제는 파병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라를 쳤던 것이다. 나중에 당이 대고구려 전략을 변경하여 백제와 신라 중에서 동맹국을 결정해야 했을 때의 선택은 신라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국제관계에서도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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