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한씨(淸州韓氏)는 마한의 후예(後裔)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유래(由來)는 후조선(後朝鮮)인 기자조선(箕子朝鮮)에 기원(起源)을 두고 있다.
기자는 은(殷)나라 왕실 사람으로 주왕(紂王)의 숙부(叔父)였다. 주왕은 평소 성정이 잔인하고 포악하여 학정을 일삼으니 국력이 쇠퇴하였다. 이를 기화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쳐 멸망시켰다. 은나라 종실(宗室)의 일족이었던 기자는 주나라에 살면서 무왕의 신복(臣僕)이 될 수 없다 하여 고조선(古朝鮮)으로 망명(亡命)하게 된다. 때마침 단군조선(檀君朝鮮)도 국운이 다하여 종말을 고하게 되자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후조선(後朝鮮)을 건국하니 이것이 기자조선(BC323년)이다.
기자존영(箕子尊影)
기자조선 6대왕인 기준(箕準)때에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에게 패하여 기자조선은 멸망하게 되고 준왕은 남은 무리를 이끌고 배를 타 남하하여 마한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운다. 이를 기씨 마한이라고도 하고 또는 금마(金馬)라고 한다. 기준은 마한에서 다시금 왕업을 일으킨 후에 성을 한(韓)씨로 바꾼다.
후에 마한(馬韓) 원왕(元王)때 나라가 기운을 다하여 망하게 되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다. 이 세 아들이 스러지는 국운과 함께 갈라지게 되는데 우평(友平)은 고구려에 들어가 북원 선우씨(北原鮮于氏)가 되고 우량(友諒)은 신라 (新羅)에 들어가 상당 한씨(上黨韓氏) 즉, 청주 한씨가 되었고 우성(友誠)은 백제(百濟)에 들어가 덕양기씨(德陽奇氏)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청주 한씨는 기자(箕子)의 후예(後裔)이며 마한 왕실의 자손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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