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유목(遊牧)성 주장한 윤은숙 박사
강원대에서 국제학술회의… 목축학자·생명공학자·인류학자도 참여해 민족 기원 밝혀
"몽골사적 관점에서 조선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너무 재미있다"는 윤은숙 박사.
지난 4월 12~13일 강원도 춘천 강원대학교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린다. 이 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동물자원공동연구소가 공동으로 마련한 국제학술회의 ‘한민족 유목 태반사 연구·복원을 위한 구상(한국마사회 후원)’이 그것. 주제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부제다. ‘한국의 중국 동북 프로젝트 대응방식, 무엇이 문제인가?’. “도대체 어떤 행사입니까?” 지난 3월 28일, 이 회의의 발표자로 나서는 윤은숙(40) 박사(강원대 사학과·몽골사 전공)를 만나자마자 그 질문부터 던졌다.
“행사 팸플릿에 ‘우리 민족의 뿌리(게놈, genome)를 밝힌다’는 표현이 있어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원리에도 드러나 있듯 (우리)나라말은 중국과 다릅니다. 우리 민족의 인식 체계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뜻입니다. 인식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생업이나 생태 차이에서 비롯되지요. 이번 심포지엄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논하되, 그 뿌리를 민족의 생업과 생태 기반에서부터 살펴보기 위한 것입니다. ‘중국과 우리는 뿌리부터 다르므로 역사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낼 계획입니다.”
윤 박사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도 중국 논리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연구진의 소신이라고 했다. “공정이라는 말 자체가 중국식 표현이므로 굳이 똑같이 써서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는 모양새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힌다’는 공통 주제를 규명하기 위해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다. 역사학자뿐 아니라 목축학자, 초지(草地)학자, 생명공학자, 인류학자까지 총동원돼 ‘학문 간 공동 네트워크’ 형태로 연구를 진행할 예정.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연구 형태는 해외에서는 이미 일반화됐지만 국내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다.
강원대는 개교 60주년이 되는 올해 이 프로젝트를 역점사업으로 정해 추진하고 있다. 완성 목표 시점은 오는 2010년이다. 일단 올해 국제학술회의 개최로 연구를 시작한 후 분과 모임을 통해 이론적 논의를 끝내고, 2008~2009년 조사단을 구성해 현지 답사를 실시하며, 2010년 연구 결과를 모아 책으로 펴내는 한편 4년간의 연구를 정리하는 심포지엄을 열겠다는 복안이다. 강원대는 2007년 3월 현재 위도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대학. 이번 프로젝트에는 ‘차제에 북방 최고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강원대의 의지가 깔려 있다.
강원대가 주축이긴 하지만 이번 학술회의에는 국내외 연구진도 대거 합류한다. 서정선 서울대 교수(유전자이식연구소장), 전호태 울산대 교수, 조흥윤 한양대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을 비롯해 몽골(제 바투터르 몽골국립대학교 국제관계대학 교수), 야쿠티아공화국(알렉세프 아나톨리 야쿠츠크국립대 사학과 교수), 터키(에르한 아타이 터키문화원 연구원) 학자들도 참석한다. 윤 박사는 행사 마지막 순서에 ‘조선왕조의 유목적 성격’이라는 주제 발표자로 나선다.
강원대 사학과 시절부터 줄곧 몽골사 한 분야에만 매달려온 윤 박사에게 ‘조선왕조 연구’는 새로운 도전이다. “일종의 아웃사이더죠. 그런데 아웃사이더의 눈으로 조선사를 보니 오히려 재미있는 게 많이 보여요. 몽골사는 상당 부분 고려사나 조선 초기사와 겹치거든요. 똑같은 사료를 읽어도 몽골 역사를 알아야 온전히 이해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이성계 같은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몽골사적 배경 지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윤 박사는 작년 8월, 근 10년간 매달렸던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지었다. 주제는 ‘몽(蒙)·원(元) 제국기 옷치긴가(家)의 동북만주 지배’. 그가 조선 태조 이성계 가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논문을 작성하면서부터였다. “이성계는 고려계 몽골군벌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가 두만강 인근 오동(斡東) 지역에 정착했는데, 예전 고구려와 발해가 있던 지역이에요. 당시 이안사는 몽골 옷치긴 왕가로부터 고려의 동북면 일대를 다스리는 ‘다루가치’라는 벼슬을 받았고, 그 벼슬이 5대를 이어 이성계 대까지 내려온 거죠.”
윤 박사에 따르면 이성계는 ‘고구려와 발해의 생태 기반 위에 고려계 혈통을 지녔고 몽골 체제의 전략과 전술까지 체득한’ 전천후 장군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362년 이성계가 나가추 장군이 이끄는 전투 병력 수만 명과 싸우는 장면이 나와요. 나가추 장군은 몽골에서도 가장 단단한 무력 기반을 지닌 무칼리 가문 출신이었는데 이성계 군대 앞에서 맥없이 쓰러집니다. 이성계는 병력을 삼등분해 분산 배치하고 기습 공격하는 등 전통적 유목민의 전투 방식을 쓰다가도 산악전에 약한 몽골군을 산으로 유인, 매복해 있다가 무찌르는 등 다이내믹한 전략·전술을 구사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도 이성계가 지닌 이런 복합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나 싶어요.”
같은 맥락에서 윤 박사가 파악하는 조선 왕조의 탄생 배경 역시 남다르다. “조선이 건국된 14세기 말은 동아시아의 변혁기였습니다. 당시 중국은 원·명 교체기였고, 고려는 두 나라 사이에서 이른바 ‘삼각 외교’를 펼치고 있었어요. 그 와중에 북원 내부 사정에 훤했던 이성계가 북원의 쇠락을 일찌감치 예상한 겁니다. 북원이 멸망한 게 1388년 4월이었고 위화도회군이 그 해 5월에 이루어진 것만 봐도 이성계의 정보망이 어느 정도로 뻗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죠. 결국 조선 왕조의 창업은 자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격변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태동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강원대 연구팀이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한 기반 지역으로 보고있는 대만주권 지도.
대략 아무르강(점선 화살표) 아래 부분으로, 북극해 방향으로 흘러가는 다른 지역 강(실선 부분)과 달리
만주권 내 강은 대부분 태평양 방향으로 흘러 들어 동북아시아 유목제국 창업의 태반을 이룬다.
윤 박사는 대학 졸업 후 1991년 몽골로 건너가 꼬박 5년여를 ‘몽골 사람’으로 살았다. 주채혁 당시 지도교수가 “지역사를 알려면 그 지역의 언어, 생태, 토양을 알아야 한다”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몽골국립아카데미에서 석사과정을 밟는 동안 그는 온몸으로 몽골을 느꼈다.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여름, 먹을 게 없어 양들이 떼죽음 당하는 겨울, 그리고 다시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봄…. 몸에 맞지 않는 육식과 유제품에 적응하고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느라 위장병과 허리디스크 등 온갖 병을 달고 살았지만 귀국 후 그 역시 스승 못지않게 ‘몸으로 느껴야 그 지역을 알 수 있다’고 믿는 학자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그에게 각별하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온몸으로 느끼며 공부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중국과 목축과 농경 기반을 두루 갖춘 우리는 생업과 생태 기반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번 연구를 통해 ‘대(大)만주권’이라는 큰 틀에서 중국사와 우리 역사를 비교해 보면 양자 간 차이를 보다 확실히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팀 구성이 훌륭합니다. 저희끼리는 ‘퍼펙트 팀’이라고 불러요(웃음). 4년 후면 우리도 동북 프로젝트에 흔들림 없이 대응할 수 있는 항구적 논리를 갖게 될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최혜원/주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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