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단군조선(BC2333)

※ 국회청문회 임승국 (5-2) "한무제는 기자조선에 패하였다"

자연정화 2014. 3. 5. 10:15

※ 국회청문회 임승국 (5-2) "한무제는 기자조선에 패하였다"

제가 국회 국사청문회 자료를 인용하여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조작이니, 잘모르는 비전공자들의 믿을 수 없는 설이니 하는
얼빠진 인간들의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이자료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증언하여
국회가 보관하고 있는 국회 속기록 자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조작운운하는 얼빠진 소리"하는 사람들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국회 속기록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국회 문공위에서 증언한 목소리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국회는
안호상(安浩相), 박시인(朴時仁), 임승국(林承國) 3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한 사연을 담은 속기록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한사군"에 대한 "1차사료"이다)

다음 사료적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얘기입니다

한사군의 설치는 BC108년이고 그 당시 한나라 임금은 한무제입니다

중국의 25사라고 하는 책은 바로 이 한무제때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바로 한무제의 신하요 사관인 사마천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무제의 신하가 130권의 사기를 적었는데

그 115권이 이른바 우리가 문제 삼고자하는
한사군의 기록을 적은 "조선열전"입니다

따라서 이 "조선열전"의 기록은 한사군에 관한 한
우리사학에서 얘기하는 "제1차 사료"입니다

말하자면 원전이라는 뜻입니다


(1차사료인 사마천의 사기원전에는 한사군의 기록이 없다)

이 원전속에 오늘날 우리 중고등학생들이나 여기에 앉아계시는
여러분들이 다 잘 알고 또 외우고 있는
"낙랑, 현도, 진번, 임둔"이라는 사군의 이름조차 없습니다

그럼 지금 교과서에는 "낙랑, 현도, 진번, 임둔"이라는 글을
도대체 어디서 누가 창작해 냈단 말입니까 ?

역사라는 것은 창작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사실에는 "플라스 알파"도 안되고
"마이너스 알파"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래 어찌 있었는가 ? 그 역사 사실이 본래 어찌 있었는가 ?"를
연구하는 것이 실증사학의 표어입니다

이 말은 독일의 실증사학자 "랑케"가 얘기한 것이예요

저도 여기에 동의해요
역사사실은 본래 있는 그대로 적어야 해요

수치스러우면 수치스러운 대로 영광스러우면 영광스러운 대로
그대로 적어야 합니다

우리들 정사학도들을 가리켜
"한국사의 영광이나 긍지만을 조작하고 창조해내는 학자"라고
얘기한다면 이는 중상이요 모략입니다

우리야 말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적어내자는 것이 그 주장입니다
우리는 그런면에서 볼 때 훌륭한 실증사학도입니다

"낙랑, 현도, 진번, 임둔"이라는 글은
제 1차사료 "사기 조선열전"에는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식민사학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낙랑, 현도, 진번, 임둔" 한사군의 기록이 1차 사료인 "사기 조선열전"에는 없다)

즉, "수정조선위사군(遂定朝鮮爲四郡)"이라
"마침내 조선이 평정되어 사군이 되었다"라는 기록 다음에
글의 순서로 봐서 "낙랑, 현도, 진번, 임둔야(也)"라 하는
기록이 있어 주어야겠는데 그것이 없습니다

요즘 식민사학가들이 "그래도 있어 주었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내 쉴텐데 그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하게도 이 "사군"이라고 하는 말
바로 다음에는 글자하나 빼놓지 않고 바로 계속되는
다음의 글이 뭐냐하면

"평주, 날양, 추저, 홰청"이라고 하는
조선사람 네사람이 다스리는 네 개의 지명이 나옵니다

문법적으로 보아서 이는 동격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나의 조국 - 한반도"라 하면 "나의 조국"과 "한반도"는
동격어입니다

또 "고대사학자"인 "나 임승국"하면
"고대사학자"와 "나"는 동격어입니다

따라서 이기록은 "사군"인 "평주, 날양, 추저, 홰청"이라고
읽을 수 있으므로 이 "사군"과 계속되는 네 개의 지명을
저는 동격어라고 보는 것 입니다


("한사군"이 아니라 "조선사군")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군이 모두가 한나라측 통치자가 아니라
전부 조선사람이 통치자예요

그러니까 우선 대전제로 이 사군의 이름을 저는
"한사군"이 아니라 "조선사군"이라고 일단 가정을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정을 입증하기 위해서 전쟁내용을 흝어봅니다

전쟁의 상대자는 보통 "적군과 아군"이며 "피, 아"의 쌍방인데
한사군 전쟁이라고 하는 전쟁에는 "피, 아"말고도
"어나더 케이스"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고조선족의 세력"입니다


(기자조선의 마지막왕 기준은 인정하면서 기자조선은 부정하고 있다)

저는 위만정권과 그 피치자(被治者)인 고조선족의 세력을
분리해서 봅니다

여러분들은 잘 아시겠지마는 위만이라고 하는 자는
기자조선을 둘러업고 그 자리를 들어선 정권입니다

"위만이 우리 한국쪽이다. 기자의 성씨는 한(韓)이다"해서
한씨조선으로 말하는 이병도 박사의 말씀도 있지만
여기서 국적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위만은 그의 국적상의 소속은 연나라 사람입니다
위만은 고조선 사회에 망명해 와가지고 사기를 했어요

사기의 내용까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한(漢)나라의 병사가 여덟길로 쳐들어 오니까 내가 왕성에
들어가서 성을 지키겠소이다"하고

기자조선의 마지막왕 기준(箕準)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국사에서는 기자조선은 부인한다고 하면서
이상하게도 기준의 이름을 밝혔어요

즉, 국사교과서를 보면 "기준을 내어 쫓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왕 기준은 인정하면서 기자조선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넌센서"입니다

숭늉을 마시면서 휘파람을 분다는 모순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들어선 위만정권이 다스리는 백성들은
고조선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확하게 말하면 기자조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손자 우거때에 내부적인, 말하자면 갈등이 일어났는데
고조선 사람들이 주동이 돼서 정권을 뒤엎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사군의 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무제의 수륙양군은 기자조선에 참패하였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전쟁이 나고 혁명이 나니까
한나라 무제는 "수륙양군"을 슬쩍 보냈습니다

이는 마치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바구니 들고 도둑질이라도
해볼까 하고 뛰어드는 격이예요

한무제는 수륙양군을 파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륙양군이 아무 전과도 올리지 못하고
패전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