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청문회 임승국 (5-3) "한무제가 보낸 군사는 조선사군에 전멸 당하였다"
(요점정리)
사마천의 조선열전을 읽고도
한무제가 이겨 고조선 땅에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주장하거나 믿는 사람은
"원문을 안 본 무지의 소치거나",
"얼빠진 인간"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무제의 수륙양군은 조선사군과의 전쟁에서 "전멸"을 당했는데
어찌 한사군을 설치 할수 있겠는가 ?
그 "조선사군"의 위치는 한반도가 아닌 "발해만" 즉 하북성 유역이었다
소설 쓰지말라는 것이다
(도표설명 : 추후보완예정)
(주) 기시(棄市) : 사지를 찢어 죽여 시체를 장안 사대문안에 걸어 놓는 극형을 말함
(한무제의 수륙양군은 기자조선에 참패하였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전쟁이 나고 혁명이 나니까
한나라 무제는 "수륙양군"을 슬쩍 보냈습니다
이는 마치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바구니 들고 도둑질이라도
해볼까 하고 뛰어드는 격이예요
한무제는 수륙양군을 파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륙양군이 아무 전과도 올리지 못하고
패전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수륙양군 가운데 "누선장군"이라는 사람입니다
다락 "루(褸)"자, 배 "선(船)"자 니까
아마도 다락같이 큰배를 타고 출전한 해군제독이겠지요
제가 해병대사령부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사람이 누선(주1)장군 양복(楊僕)이라는 사람인데
이사람은 아마 중국의 해병대사령관 일꺼라고 했어요
왜 그런고하니 해군제독이니까 큰배를 타고 나갔는데 자기 부하들은 전부 물귀신이 만들고
배는 파선되고 누선정군 "양복"은 "둔산중십여일(遁山中拾餘日)"이라 했으니까
산 속에 10여일 동안 혼자 몸을 피해 도망다녔다고 하는 기록이
조선열전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배를 타고 나간 사람이 "둔산중십여일(遁山中拾餘日)" 했으니까
이것이 해병대사령관이 아니고 무었입니까 ?
우리는 한국해병대야말로 귀신잡는 해병대지만
중국의 해병대는 "처음서부터 이렇게 패색이 짙은 해병대인가" 보라고 했어요
이것은 수군에 관한 얘기입니다마는 육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한무제 군사가 "참패"하여 돌아왔는데 무슨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소설을 쓰는가 ?)
좌장군은 육군사령관인데 그의 부하인 졸정다(卒正多)라고 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죽었습니다
전선에 나가서 패해 가지고 돌아오니까
"너 왜 후퇴했느냐" 해서 사형에 처했습니다
이밖에 이 한나라 측의 인물이 "사기 조선열전" 상에 등장되는 인물이 모두 여섯사람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한번 언급해 보겠습니다
섭하(涉何)는 천자(天子)의 사신(使臣)입니다
또 지금 말씀드린 "졸정다(卒正多)"
그리고 또 한사람은 공손수(公孫遂)이며
그 다음에 위산(衛山)인데
이 네 사람(섭하, 졸정다, 공손수, 위산)은 전부 천자의 사신입니다
여기에
육군사령관이 순체(荀 )요
해군사령관이 양복(楊僕)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 여섯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
한사람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조리 다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느냐 하면
"섭하(涉何)"는 전쟁초기에 전사하였고
"졸정다(卒正多)"도 엮시 법에 의해서 참수(斬首)되고
천자의 사신 두사람과 육군사령관, 공군사령관이 논공행상을 받기위해
한무제 앞에 섰는데 이 사람들에게 어느정도의 논공행상이 내려진 줄 아십니까 ?
높은 상이나 높은 벼슬이던가 ?
아닙니다
"사형"이 내려졌습니다
한나라의 형법에는 사형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사형이 기시(棄市)라고 하는 사형입니다
폐기한다는 "기(棄)"자에 저자 "시(市)"자입니다
즉 시장에 버린다는 말이니 글자도 좀 기분이 나쁩니다
사람을 죽여서 시지를 뜯어서 장안의 사대문에다 걸어 놓은 사형이에요
극악스런 정말 국사범이 아닌 다음에야 처형할 수 없는 이런 사형을 다 받았어요
전원 사형입니다
장수(將帥)나 천자의 사신할 것 없이 전원 처형이라고 하는 이런 승리도 있습니까 ?
"관계자 전원처벌 전원처형"이라고 하는 이런 승리도 있습니까 ?
나는 이제까지 이런 승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누군가 하면
"평주·날양·추저·홰청" 이 사군의 책임자가 된 조선사람들입니다
(조선사람 : 최, 참, 음, 협)
물론 사기는 군(郡)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후(四候)"라고 했어요
이 점에 대해서는 이따가 해명하겠습니다
'홍익인간·인류공영 > 단군조선(BC2333)'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회청문회 임승국 (5-5) 고구려에 항복한 "동수( 壽)의 묘" (0) | 2014.03.05 |
---|---|
※ 국회청문회 임승국 (5-4) "발해만 연안에서 기자조선 유물도 나와" (0) | 2014.03.05 |
※ 국회청문회 임승국 (5-2) "한무제는 기자조선에 패하였다" (0) | 2014.03.05 |
※ 국회청문회 임승국 (5-1) "동화속의 한사군" (0) | 2014.03.05 |
한민족은 중국과 근본이 달라 (0) | 2013.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