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1)貊族,고구리,발해

발해사 [1]: 대조영의 출신 문제

자연정화 2013. 10. 1. 19:47

자료출처 : 박현배의 발해사

 

한국 역사를 살펴볼 때 패망한 국가의 터에서, 성공적으로 국가를 개국했던 나라는 발해가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가 아닐까 싶다. 다른 국가들은 단순히 왕조 교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발해가 이민족에 의해서 멸망했기에 그 역사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결국 발해의 건국자에 대한 출신 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이다.

중국.남북한.러시아가 서로 자국의 역사로 주장하면서, 제각각 대조영을 자기네 역사의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지하에서 대조영이 듣고 있으면 통탄할 일이다. 대조영의 출신 문제는 논란이 많고, 다양한 주장이 있기에 대조영의 출신을 인용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로 평가 받고 있는 구당서, 신당서, 삼국 유사를 중심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중국측 사료: 구당서, 신당서

두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자.

구당서 발해말갈전1)

발해말갈 대조영은 본래 고려 별종이다.
渤海靺鞨大祖榮者 本高麗別種也

신당서 발해전 2)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려에 덧붙여, 성은 대씨이다.
渤海 本粟末靺鞨 附高麗者姓大氏

구당서와 신당서에 나오는 대조영과 관련된 내용을 필자가 정리하였다.

구당서를 살펴보자.

종족 출신-영주 생활-이진충의 반란-대조영의 역할-이진충 사망-이해고의 추격-걸사비우 전사-전열 보강-천문령 전투-도로 두절-동모산 도착-성축 쌓음-성품-진국왕 즉위-돌궐
과 통교-진국의 영토와 인구,병사 소개-당과 통교-당의 책립.

신당서의 경우에는,

발해 출신-고려멸망-동모산 건국-영토-성축 수축 및 주민 돌아옴-이진충 반란-사리걸걸
중상-걸사비우-이동-태백산 도착-성의 수축 및 방어-당의 측천무후 허국공,진국공 임명-
거절-이해고 공격-중상 사망-대조영 등장-천문령 전투-이해고 패배-길이 막힘-대조영
건국-진국왕이라 자칭-돌궐과 통교-영토,인구,병사 소개-당과 통교-당의 책립.

구당서는 후진 시대에 재상 유구 등이 편찬하여 장소원에 의해서 945년에 완성한 사서이며
, 신당서는 북송에서 다시 구양수 등이 편찬하여 1060년에 완성된 사서이다. 구당서에 나오
는 대조영의 기록은 사건 전개가 시간상으로 정확하다. 신당서의 경우 시간과 장소가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며 구당서에서 누락한 내용이 보강 되었다. 두 사서의 큰 차이점이라면 대조영의 종족 출신 문제이다.

구당서에 따른다면 대조영은 고구려인이고, 신당서에 의하면 속말 말갈인이다. 별종이라는
의미는 이미 노태돈 교수의 해석처럼 원 종족에서 분리된 종족으로 보는데, 신당서 권 229
동이 고려편에 '高麗,本扶餘別種也' 이라고 하여 '고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의미는 구
당서의 고려별종과 같은 의미로 해석 되어진다.

상이한 기록 때문에 대조영의 출신 문제는 남북한, 중국 학계가 다른 입장이다.

한국측 사료: 삼국 유사

고려 시대 발해 관련 사서를 참조한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제왕운기이다. 삼국사기는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기에, 발해 부문은 생략 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별도로 '말갈,발해전' 이라 하여 발해 역사를 포함시키고 있으며, 제왕운기는 발해를 한국사 내로 편성 시키고 있다.

삼국유사 3),

"삼국사에서 말하기를, 의봉 3년 고종 현술에 고려의 남은 세력들이 서로 모여 북쪽의 태백
산 아래 의지하였다. 나라 이름을 발해라 하였다. 개원20년 경에 명황이 장수를 보내 토벌하
였다. 또한 성덕왕 32년 현종 갑술, 발해말갈이 바다를 건너 당의 등주를 침범하였다. 이에
현종이 토벌하였다. 신라고기에 말하기를 고려의 옛 장수 조영은 대씨이다. 남은 병사들을
모아 태백산 남쪽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발해라 하였다."

三國史云,儀鳳三年高宗戊寅 高麗殘?類聚 北依太伯山下.國號渤海.開元二十年間 明皇 遣將
討之.又聖德王三十二年玄宗甲戌 渤海靺鞨越海侵唐之登州.玄宗討之.又新羅古記云 高麗舊
將祖榮大氏 聚殘兵 立國於太伯山南 國號渤海.

여기서 삼국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말한다. 즉,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 삼국사기를 참조한 것이다. 이 글에서 중요한 인용 사서가 나오는데,바로 '신라고기'이다. 일연 스님은 당시 전해져 내려오던 '신라고기'를 인용해서 대조영의 출신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신라고기' 는 고려 이전에 저술된 것으로 추측 되는데, 당대의 신라인이 국경을 접하고 있던 발해의 건국자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당서와 후대에 쓰여진 신당서보다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신라고기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것은 다음 두 사료이다. 이 두 사료는 그가 무장 출신이라는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구당서 하 199

조영은 날쌔고 용감하며 병사를 잘 활용하였다.
祖榮驍勇善用兵

발해고 군고 4)

고왕의 휘는 조영으로, 진국공의 아들이다. 일찍이 고구려의 장수였으며, 날쌔며 용감하고 말타기와 활을 잘 하였다.
高王諱祖榮,震國公子也,嘗爲高句麗將,驍勇善騎謝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기이편에 말갈의 역사를 포함시킨 것은 말갈이 한국사의 범위로 설정 할 수 있는 인식을 제공해 준다. 고구려, 말갈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말갈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한국사 내로 설정하여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말갈의 역사를 고구려 종속민의 역사로 폄하하여 바라보는 시각은 재고 되어야 한다.

민족 출신이 중요한가?

대조영이 고구려인이든, 말갈인이든 그의 출신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근래에 페루의 대통령이 일본계라고 해서 페루의 역사를 일본사로 편성시키지 않듯이, 발해 역시 핏줄보다는 지배층의 국가 통치 운영 방향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조영과 지배층은 국가의 통치 체제와 운영을 중국식이나 말갈 형태가 아닌 고구려의 지배 체제를 계승했다는 점에서, 발해 존속 기간 동안 보여준 지배층의 일관된 태도에 대조영의 출신 문제는 답이 나오지 않나 싶다.

주)

1)<<舊唐書 券 199>>,<列傳149下>,北狄.
2)<<新唐書 券 219>>,<列傳144>,北狄.
3)<<三國遺事>> 1券 紀異 第1 第2(靺鞨,渤海).
4)<<渤海考>>.<君考>,高王.

참고문헌)

박시형,<<발해사>>,김일성 종합 대학 ,1979 ;송기호 해제,<<발해사>>, 이론과 실천,1989.
송기호,<<발해정치사연구>>,일조각,1995.
송기호 역,<<발해고>>,홍익출판사,2000.
한규철,<<발해의 대외 관계사>>,신선원,1994.
한규철 외,<<발해사의 종합적 고찰>>,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