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제주도에서, 보통 코스모 2000(COSMO 2000)이라고 부르는 세계 우주론 학회가 열렸다. 국내에서 열린 중요한 대규모 국제학회이기는 하지만, 물리학자나 천문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 학회에 특별히 관심을 가질 이유는 사실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 학회는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학회 비서 일을 하던 한 연구원은 참여가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 일반인의 전화는 물론이고 경호 문제를 묻는 제주도 현지 경찰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 학회가 그렇게 이목을 끈 이유는 단 하나, 스티븐 호킹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스티븐 호킹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존재다. 이 책(<스티븐 호킹>(키티 퍼거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에서 본인 스스로 표현하기에도 "대중에게 나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일 것이다"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주론과 천체 물리학 분야의 지도급 학자로서의 업적과 근위축성측삭경화증, 혹은 ALS라는 파괴적인 병을 극복한 사람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 중 한 가지만 가진 그 누구였더라도 이미 유명해지고 존중받을 만한 인물일 텐데, 스티븐 호킹은 그 두 가지가 결합된 사람인 것이다. 한없이 초라한 육체와 무한을 향하는 드높은 지성이 공존하는 호킹의 이미지는 너무도 강렬하고 극적이어서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 <스티븐 호킹>(키티 퍼거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해나무
그러나 호킹 본인에게 자신의 지성과 신체는 똑같이 현실일 뿐이다. 호킹은 자신을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내 지성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신체장애 역시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 냉정한 현실 감각이 그를 오늘날까지 훌륭하게 활동하도록 해 주었을 것이다. 자신을 비하하지도, 기만하지도 않으면서도. 그래서 호킹은 자신의 신체적 문제를 덜 언급할수록 더 좋아한다고 한다.
과학 저술가인 키티 퍼거슨이 쓴 <스티븐 호킹>은 오랜 기간에 걸친 저자와 과학자 사이의 충분한 교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쓴 아주 뛰어난 과학자의 평전이다. 여기에는 호킹의 사적인 생애와 학문적인 여정이 아주 섬세하고도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사람들에게 호킹이 알려진 것은 그의 대표적인 책인 <시간의 역사>가 발표된 뒤일 것이다. 그래서 호킹은 항상 휠체어 위에서 컴퓨터로 합성된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평전을 읽으면, 그가 어떻게 점점 진행되어가는 병과 싸워가며, 주위의 도움을 받거나 거부하며, 장애를 넘어서 활동하고, 항상 죽음의 가능성을 가까이 느끼면서, 학문적 업적을 이뤄왔는지를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성공담으로 읽으면 안 된다. 아주 특별한 상황에 처한, 뛰어난 물리학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 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호킹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빛나는 부분은 <시간의 역사>를 발간한 뒤, 세계적인 명사가 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가 아니라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기는 그의 삶과 생활이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시기였다. 몸의 상태는 서서히 나빠져서 점차 다른 사람이 그의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워졌고, 계단을 오르지 못하게 되고, 결국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었다. 아직 케임브리지의 계약직 연구원이면서, 연구 외에는 강의나 다른 활동은 불가능한 그에게 연구소에서의 미래조차 불투명했다.
▲ 스티븐 호킹. ⓒen.wikipedia.org
이런 모든 어려움을 버티게 해 준 것은 과학이었다. 이 시기 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업적인 시공간의 특이점과 블랙홀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빛나는 연구 업적 덕분에 칼리지는 그의 계약을 계속 연장해 주었고, 결국 교수 자리에 오르고, 왕립학회 회원 자격도 얻게 된다. 이 시기에 칼리지가 그에게 너그러움을 보이지 않았거나, 아내인 제인처럼 그를 돌볼 사람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병을 제외하고 호킹은 대부분의 일에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아내인 제인의 표현대로 "무명의 물리학 선생이었더라면 간호 비용으로 연간 5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을 지원해달라고 재단을 설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그가 받는 것과 같은 지원은 꿈도 꿀 수 없었을 테고, 어느 요양원에서 고립되어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물리학자의 평전은 그가 연구하는 내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 당연하지만, 키티 퍼거슨의 책은 특히 어느 물리학자의 일생을 빌어 현대 과학의 최신 성과와 그 성립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과학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세하게 현대물리학과 우주론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물리학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써 본 저술가라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아주 기본적인 개념부터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끈기 있게 읽는 독자라면 현대우주론에 관해 아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호킹의 업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면, 사실 그건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호킹은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학문적으로 노벨상만 빼놓고 온갖 영예를 다 누렸으며, 행복한 가족이 있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명사가 되었다. 과연 그 동안의 고통과 분투가 감수할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 호킹의 아내였던 제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는 이 놀라운 성공이 그 모든 어두운 경험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고 보진 않아요. 블랙홀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다가 휘황찬란한 모든 영예의 정점으로 올라갈 때까지 우리가 경험한 진자의 요동을 속으로 영원히 감수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결과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모든 것을 보상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호킹 본인에게는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호킹은 그 심연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완벽하게 외면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호킹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런 괴리가 결국은 제인과의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키티 퍼거슨의 책을 읽다 보면 호킹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이라면 모를까, 더 이상의 호킹 전기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까지 든다. 게다가 키티는 호킹이 자신의 간호 비용을 댈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자서전을 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키티 퍼거슨의 책(원서)이 나온 2년 뒤인 2013년, 스티븐 호킹 자신이 쓴 자서전이 등장했다. (이 점에 대해서 키티 퍼거슨의 생각이 조금 궁금하다.)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My Brief History)>(전대호 옮김, 까치 펴냄)는 호킹 자신이 직접, 그의 손이 아니라 뺨 근육을 움직여서 쓴 특별한 자서전이다. (손이 아닌 이유는 이제 손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간결하고 얇다.
▲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스티븐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까치 펴냄). ⓒ까치
이 책에서 키티 퍼거슨의 책에 나오지 않은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지만, 가능한 한 중립적으로 쓰려고 애쓴 키티의 책과 달리 여러 사안에서 호킹 자신의 관점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호킹과 함께 살면서 비서 겸 연구원을 맡았던 돈 페이지에 대한 대목이다. 키티는 독실한 기독교도인 그가 호킹에게 종종 성경 이야기를 했다고만 쓰고 있지만, 호킹은 그가 자신을 개종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하고 있다. 또한 두 번에 걸친 이혼과 결혼에 대해서 키티 퍼거슨은 어디까지나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 반면, 호킹은 자신의 느낌을 분명히 표현한다. 부인에게 애인이 생겼을 때의 솔직한 느낌도 기술되어 있다.
자서전에는 또한 곳곳에서 호킹 특유의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하는데, 이런 부분이 그렇다.
"나는 응용수학 및 이론물리학과의 내 연구실 문에 '블랙홀이 보이지 않아(BLACK HOLES ARE OUT OF SIGHT)'라고 적힌 범퍼 스티커를 붙여놓곤 했다. 학과장은 이 스티커가 몹시도 눈에 거슬린 나머지 교묘하게 일을 꾸며 내가 루카스 교수로 선출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를 더 좋은 연구실로 옮겨놓고 옛 연구실 문에서 그 기분 나쁜 스티커를 손수 떼어냈다."
또 본인이 직접 쓴 글이다 보니 역시 물리학자가 아니고서는 쓰기 어려운 표현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이 그렇다.
"이후 5년 동안, 로저 펜로즈, 보브 게로치, 그리고 나는 일반상대성이론 내의 인과구조에 관한 이론을 개발했다. 한 분야 전체를 사실상 우리가 독차지하는 기분은 정말 멋졌다. 새 아이디어가 나오면 사람들이 떼로 달려들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입자물리학 분야에서는 벌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입자물리학자들은 지금도 그러면서 산다."
자서전 역시 과학 얘기가 절반쯤 되는데, 지면 관계상 그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지는 못하고 호킹 특유의 직관적이고 간결한 설명만 주어진다. 아마 이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라면 이 책에 나온 내용만으로는 알아듣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호킹은 올해 만 71세다. 이 자서전의 생생한 문체와 명료한 사고는 71세인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기에 놀랄 만한 것이다. 역시 호킹은 신체 상태와 나이를 넘어서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는 정말로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다. 이 두 권을 함께 읽으면 스티븐 호킹이라는 특별한 사람에 대해 확실히 잘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2000년에 한국에 왔을 때, 호킹은 청와대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대중을 위한 강연을 했다. 그 해에 나는 서울 홍릉에 위치한 고등과학원의 연구원이었는데, 호킹은 이곳에도 한차례 강연을 하러 왔다. 호킹이 연구소에 도착하고 비서진과 함께 강연장으로 향할 때 나는 이 놀라운 사람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당시 58세였던 호킹은 건강해 보였지만 다소 피곤한 듯 침울한 표정이었다. 호킹을 강연장인 국제회의실 연단에 올리느라고 여러 사람이 애쓰던 것이 기억난다.
그 강연의 주 대상은 연구원이었고, "Brand New World"라는 제목의 비교적 전문적인 강연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회의실 바닥에까지 청중이 가득 찼다. 강연은 시간 절약을 위해 미리 준비되었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즉석에서 해야 했기에 대답을 한 번 들으려면 그가 단어를 입력하고 음성 합성기를 통해 나오기까지 5분가량은 기다려야 했다. 물론 모든 청중은 매번 조용히 호킹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 감동적인 두 편의 전기를 읽으며 오랜만에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키티 퍼거슨의 책 마지막 부분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바람처럼 나 역시 그가 앞으로도 오래 건강하길 바란다.
/이강영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조교수
"힉스 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물리학이 더 재미있어졌을 것"
자료출처 : 연합뉴스 2013. 11. 13. 21:08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영국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71) 박사는 12일(현지시간) "힉스 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물리학이 더 재미있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킹 박사는 이날 런던 과학박물관에서 열린 강입자충돌기(LHC) 전시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힉스 입자는 137억 년 전 빅뱅(대폭발)때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진 이른바 '신의 입자'로, 수십 년 동안 가설로만 받아들여지다 2008년 유럽원자핵 공동연구소(CERN)가 LHC를 가동하면서 입증됐다.
힉스 입자를 발견한 벨기에의 프랑수아 앙글레르(80) 브뤼셀 자유대 명예교수와 영국의 피터 힉스(84) 에든버러대 명예교수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호킹 박사는 "두 사람은 충분히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며 "두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것을 보며 이론 물리학을 연구하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사람이 상을 받은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힉스 입자 때문에 난 개인적으로 돈이 좀 들었다"며 "미시간 대학교의 고든 케인 교수와 힉스 입자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며 100달러 내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7명의 친구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호킹 박사는 "그 친구들과 무선조종 기기에서부터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놓고 긴 토론을 하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우주의 기원과 신이 우주를 창조했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는 LHC가 힉스 입자 발견에서 우주의 본질을 설명해줄 수 있는 기본적인 이론을 찾는 것으로 그 방향을 바꾸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호킹 박사는 "우주에 대한 상(像)은 지난 50년 동안 많이 변했고, 내가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 매우 기쁘다"며 "우리는 인간이 미래에 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다음 1천년 동안 이 연약한 공간(지구)을 벗어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호킹 "의사들이 생명유지장치 끄려 했다"
자료출처 : 연합뉴스 2013. 07. 29. 09:07
"'시간의 역사' 집필중 죽을 고비…아내 반대로 유지"
"지금도 매일 일하러 가…매순간 충만하게 살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의사들이 생명유지장치를 끄는 게 어떻겠냐고 가족에게 권유했다… '시간의 역사' 집필을 마칠 희망이 사라진 것 같았다."
영국의 세계적인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71) 박사가 대표 저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뻔했다고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가 이 책을 집필 중이던 1985년 스위스에 머물 때 폐렴 악화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의료진이 그의 생명유지장치를 떼는 방안까지 가족에게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킹의 첫번째 아내인 제인이 이에 반대해 그를 영국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천만다행으로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다.
이같은 사연은 오는 9월 자서전 출간에 맞춰 공개될 예정인 다큐멘터리 영화 '호킹'에 담겼다.
호킹 박사는 "몇 주일에 걸쳐서 폐렴과 싸웠던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당시 투병생활로 목소리도 잃었다.
호킹은 "약물치료가 듣기 시작하자 의료진은 산소호흡기를 달기 위해 목구멍을 절개했고 그 때문에 더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며 "책을 끝낼 희망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죽음 직전까지 다녀온 호킹은 '시간의 역사' 집필을 무사히 마쳤다. 이 책은 40개국어로 번역돼 1천만부 넘게 팔려 그에게 전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줬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호킹은 두 차례 이혼 등 개인사와 관련해 첫번째 아내 제인과 최근 다시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1965년 제인과 결혼해 세 자녀를 뒀고 1995년에 이혼했다. 같은 해 자신의 간호사인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했다가 11년 만인 2006년 헤어졌다.
제인은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시간의 역사'로 얻은 명성이 결혼생활 측면에서는 '블랙홀'과 같은 상황으로 몰고 갔다고 회고했지만 "스티븐이 이뤄낸 것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22세 때인 1964년 온몸이 마비되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반세기 가까이 투병해온 호킹은 폐렴으로 목소리를 잃은 뒤 인공 음성 재생장치 등에 의존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한쪽 볼 근육으로 커서를 움직여 의사소통을 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 그는 지난달에는 우주여행을 신청하는 등 여전한 열성을 보이고 있다.
호킹 박사는 "언젠가 이 볼 근육마저 움직이지 않게 될까 봐 두렵다"면서 "내가 더 빠른 속도로 말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는 또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고 매일 생각하지만 일흔한 살인 지금도 나는 매일 일을 하러 간다"며 "매 순간을 최대한 충만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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