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라’의 세계 -1
자료출처 : 통일일보 2007.02.13 17:39:37 <서현우의 바다의 한국사 8>
2. ‘라’의 세계 -1
우리 역사의 고대국가 신라新羅. 그 신라를 실제 발음으론 ‘실라’라고 발음한다. 우리는 앞장에서 신라와 같은 발음을 지닌 Silla나 Sila(또는 Silah)가 동남아시아와 아라비아, 지중해 연안에서 지명으로서, 또 언어의 어휘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사서들엔 신라와 같이 ‘~라羅’로 끝나는 옛 지명들을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신라 외에 삼국의 사서들에 나타나는 ‘~라’ 지명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다라多羅, 탁라托羅, 탐라耽羅, 담라憺羅, 섭라涉羅, 가라加羅, 아라阿羅, 안라安羅, 아슬라阿瑟羅, 보라保羅, 발라發羅, 말라末羅. 담모라聃牟羅, 탐부라耽浮蘿, 섬라暹羅 등’
위 지명들 중 탁라, 탐라, 담라, 섭라, 담모라, 탐부라는 오늘날 학계의 정설로서 모두 제주도를 일컫는 것이라 하지만, 탐라 외엔 정확히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여러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섭라涉羅는 현재 오키나와 섬을 포함하는 류쿠 열도라 보기도 하고, 또 원광대학교 소진철 교수의 견해에 의하면 담모라聃牟羅는 지금의 타이완 섬으로, 당시 백제의 속국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정확한 위치 비정이 어려운 것은 사료의 부족과 함께, 위 지명들이 조선시대에선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껏 제주도를 탐라라 병행하여 부른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런데 위 지명들 중 맨 마지막의 섬라暹羅는 논란의 여지없이 오늘날의 태국을 뜻한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유는 섬라가 조선왕조실록에 수차례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까지 태국을 일컫는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처음에 한국인 대부분의 인식이 그렇듯이 섬라가 중국을 통해 들어온 지명이라 보았다. 그러다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의문은 바로 섬라의 ‘라羅’ 지명에서였다. 비록 섬라가 중국을 통해 들어온 지명일지 모른다 하더라도, ‘라’는 위에서 보았듯이 우리 동이계 지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명의 유래가 중국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비롯되었는 게 아닌가?
필자는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태국을 다녀오면서, 태국의 지명들에 ‘~부리’란 지명이 허다함을 알고 있다. 칸차나부리란 도시의 이름도 그렇고, 펫차부리란 방콕의 거리 이름도 그렇다. 현재 태국엔 ‘~부리’란 지명이 무수히 많다.
지난해에 타계한 문화탐험가이자, 태국 치앙라이 주립대학 교수를 역임한 김병호 선생은 태국의 ‘부리’가 백제의 지명과 연관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백제의 부리 지명은 도읍지 소부리所夫里(사비)를 비롯, 고사부리古沙夫里, 미동부리未冬夫里, 모량부리牟陽夫里 등이 있다.
김병호 선생은 백제의 ‘부리’가 신라에선 ‘벌’로 변화되었다며, 그 예로 서라벌을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견해 중 놀라운 것은 이 ‘부리’, ‘벌’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과 터키의 이스탄불에서의 ‘불’과도 언어적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 데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스탄불의 옛 이름인 콘스탄티노플과 영국의 리버풀 등의 ‘플’이나 ‘풀’ 등과도 연결된다고 본 점이다.
필자에게 김병호 선생의 견해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우리문화가 중국보다 오히려 그리스나, 페르시아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필자는 단재 선생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스나 페르시아는 우리와 인종적으로부터 다르다는 단순한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던 필자는 삼국유사에서 중근동 아라비아 세계의 언어학적 증거를 발견하곤, 단재 선생의 선견지명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삼국유사의 언어학적 증거는 바로 신라향가 처용가에 보이는 ‘라후덕羅候德’이란 글귀이다. 라후덕의 ‘라羅’는 태양(햇님)을, 후候는 제후나, 후작에서와 같은 존칭의 뜻을, 덕德은 은혜나, 덕택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체적인 뜻은 ‘태양의 은덕’이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태양을 뜻하는 ‘라羅’이다.
독자들은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을 ‘라Ra’라고 일컬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다. 중근동 지방에서 ‘라’는 태양신뿐만 아니라, 신성하거나, 존귀함을 뜻하기도 한다.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Al-Rah)'를 보자. Al은 단지 정관사일 뿐, 신을 뜻하는 말은 바로 Rah이다. 또 이슬람 역법을 ’히쥬라‘라 칭하는 것이나, 성지인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말인 ’키브라‘의 ’라‘도 모두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더하여 ’라‘는 대지大地라는 뜻도 갖고 있어, 우리와 ’~라‘와 같이 여러 지명에서 쓰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사하라 사막이라 부르는 ‘사하라The Sahara’를 예로 들어 보자. 사하라는 영어식 발음이고, 원음은 첫음절에 엑센트가 놓인 ‘사라Sahra’인데 사막, 또는 불모지, 황무지란 뜻이다. 더하여 중세 유럽인들이 아라비아의 여러 나라들을 통칭하여 사라센 제국諸國이라 했을 때의 사라센은 바로 사막의 사람들을 뜻했다. 이 이외에도 이라크 최대의 항구도시 ‘바스라’나, 이슬람교의 한 종파인 시아파의 성지로 유명한 ‘카르바라’, 몽골제국 일칸국의 수도였던 아제르바이잔의 ‘마가라’ 등 오늘날 중근동 지방엔 무수한 ‘라’ 지명이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중근동의 ‘라’가 태양을 뜻함과 동시에 대지를 뜻하는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니? 그것은 우리 고대사에 보이는 무수한 ‘~라’와 처용가에서 나타나는 ‘라후덕’의 ‘라’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근동과 한반도가 고대의 어느 시기에 관련성을 맺고 있었다는 말인가? 더불어 처용가로 유명한 처용은 학계에서조차 아라비아나, 페르시아 출신이라 추정하고 있는 인물이다. 필자는 이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인도양과 동남아시아 세계에서 ‘라’ 관련 지명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무수한 ‘~라’들이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발견한 곳은 남부 인도였다. 남부 인도의 고대국가 ‘촐라’와 ‘체라’가 필자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각기 인도 반도 남쪽 끝의 동과 서의 해안에 나란히 자리잡은 촐라국과 체라국은 모두 해양국가였다. 이들 국가는 기원 전 2~3C의 어느 시기부터 기원후 10C가 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왕국을 유지했는데, 특히 촐라국은 한때 강력한 해군력을 기반으로 멀리 중근동에서부터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인도양의 광활한 지역에 걸쳐 해상무역권을 장악한 국가였다. 촐라는 자신들을 ‘태양국’이라 칭했는데, 이 사실에서 우리는 촐라의 ‘라’가 인도 지역 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위 지도상의 촐라와 체라가 위치한 인도 남부는 오늘날 주로 타밀족의 분포지역이다. 타밀족은 그 옛날의 드라비다 족에서 갈라진 일파인데, 드라비다 족은 오늘날 인도인의 주류를 이루는 아리아인이 인도 대륙에 진출하기 전, 인도의 선주민으로서 인더스와 하라파의 위대한 문명의 주인공들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약 5천만 명에 육박하는 타밀족 중의 일부가 스리랑카에 2백6십여만 명이 존재한다. 그곳의 타밀족은 소수민족으로 스리랑카 사회의 주류인 아리안계 싱할리족에 대항하여 분리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유명한 게릴라 조직 타밀호랑이가 그들이다.
필자가 여기서 타밀족을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대두되기 시작한 타밀문화와 우리문화의 상호관련성 때문이다.
일찍부터 인도문화와 우리문화의 관련성이 제기되어 왔지만 그동안 크게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그 중 한국어와 인도 드라비다어와의 친연성을 최초로 제기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구한 말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로, 그는 자신의 저작 '조선어와 인도 드리비다어의 비교문법’(1905)과 ‘The passing of Korea’(1906)에서 40여개의 어휘를 비교하여 그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한국어와 만주어의 유사성은 한때 가까웠지만, 한국어와 드리비다어는 아직도 친족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대 드라비다어는 현재 4종류의 언어로 파생되어 발전해 왔는데, 타밀어, 말라얄람어, 텔루구어, 칸나다어가 그것이다. 이 중의 타밀어와 텔루구어는 과거 촐라국의 언어로서 오늘날 인도 타밀나두주州에서, 말라얄람어는 체라국의 언어로서 오늘날 케랄라 주州에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와 고대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선 1970년대부터 ‘드라비다어와 일본어’ 또는 ‘타밀어와 일본어’ 등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진행되어 일본어와의 유사성을 밝혀왔다. 그런데 아래에서 보듯이 한국어와 타밀어의 관계가 일본어와 타밀어와의 관계보다 훨씬 친연성이 높다.
한국어 타밀어 일본어
엄마 엄마 하하
아빠 아빠 치치
나 나 와따시
너 니 아나따
하나 아나 히토추
둘(두) 두 후타추
셋 셋 미추
한국어: 타밀어:
나는 너와 한국에 왔다. 나누 닝가룸 한국 완돔
나는 그런 것 모른다. 나누 그런 거 모린다.
위의 비교표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렇게 놀라운 유사성은 과거 우리 조상들과 타밀인이 상당한 기간 접촉을 했다는 언어학적 증거이다. 이외에 두 언어간엔 유사한 어휘가 셀 수 없이 많지만 여기선 생략하기로 하고, 최근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소개해 본다.
아래는 지난해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남아시아 연구센터와 토론토의 타밀인협회, 등이 자료들을 추적한 결과를 근거로 한, ‘신라4대왕 석탈해는 인도인’(뉴스메이커, 2006.8.11)이란 제하의 기사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석탈해昔脫解: 자신을 “숯과 숯돌을 사용하는 대장장이 집안 출신”이라 함.
성씨 석(Sok): 타밀어로 대장장이란 뜻의 ‘석갈린감(Sokalinggam)'의 줄인 말. 석갈린감이나, 줄임 말의 석 또는 ’석가(Soka)' 등은 현재도 타밀인의 남자 이름으로 남아 있음.
탈해(Talhe): 타밀어로 ‘머리’, ‘우루머리’, ‘꼭대기’를 의미하는 ‘탈에(Tale)'나, ’탈아이(Talai)'와 거의 일치.
단야구鍛冶具: ‘대장간 도구’란 뜻인데, 당시 타밀어의 ‘단야구(Dhanyaku)’와 발음이 와벽히 일치.
니사금尼師今: ‘임금’의 어원. 타밀어의 ‘니사금(Nisagum)’으로, 일반적인 왕보다 상위 개념의 황제나, 대왕을 뜻함.
대보大輔: 석탈해가 처음 맡은 국무총리 격의 벼슬이름. 타밀어에서 ‘신의 다음 자리’, 또는 ‘막강한 사람’이란 뜻의 ‘데보(Devo, 남성)’와 ‘데비(Devi, 여성)’에서 비롯됨.
위에 실은 내용은 지명 관계상 극히 일부일 뿐이다.
두어 가지 덧붙인다면, 석탈해가 자신의 출신지를 다파나국多婆那國이라 하였는데, 다파나는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타밀어로 태양을 뜻하는 다파나(Tapana) 또는 다파난(Tapanan)과 일치해 다파나국은 ‘태양국’, 즉 당시 타밀인의 촐라왕국임을 말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석탈해가 가져온 동물 뿔로 만든 술잔인 각배角杯인데, 각배는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와 서아시아의 페르시아(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발생한 것으로, 그동안 우리 학계에선 중앙아시아를 거쳐 전해진 것이라 보았지만, 정작 고구려나 백제에선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바다를 통해 신라에 전해진 것을 알리고 있다.
필자는 위의 견해들을 지지한다. 더불어 바다야말로 당시엔 육지에 비할 수 없는 문명교류의 고속도로였다고 확신한다. 누가 봐도 위의 증거들은 그것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필연적으로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에 국내에 알려진 캐나다 타밀협회의 연구 성과들엔 석탈해 관련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야 허황후의 출신지가 기존에 의견이 분분하던 인도 북부의 아유타가 아니라, 촐라국 영토에 위치한 ‘아요디야 쿠빰’이란 것과, 박혁거세를 옹립한 신라 6촌장 모두가 타밀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등인데, 여기선 그러한 내용이 있다는 사실만 간략히 전한다.
이제 여기서 우리 민족의 기원을 유추해 보기 위해 현대 과학의 성과에 눈을 돌려 보자. 우리는 앞 장에서 인간 유전자 중의 가장 한국적 특징을 지녔다는 조직적합성 항원체 HLA-B 59의 분포 영역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한국인에 고유한 유전자이므로, 극소수 스페인인을 제외하곤 유럽에선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유전자가 인도의 일부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드라비다계 인도인과 우리는 문화만이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관련이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다음은 지난 해 동아일보(2006.7.21)에 소개된 단국대학교 김욱 교수의 연구결과로, ‘한국인, 아버지는 농사꾼, 어머니는 기마민족’이란 제하의 기사를 정리한 것이다.
‘남성염색체(Y염색체) 분석결과 한국인 남성은 농경민족에게 많이 나타나는 ’M122‘와 ’SRY465‘라는 남방계통 고유의 유전자를 가진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Y염색체는 부계로만 유전되고 다른 염색체와는 섞이지 않기 때문에 순수 ’부계‘ 조상을 찾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모계의 경우 몽골과 중국 중북부 등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는 북방계 성향이 뚜렷하다. 미토콘도리아 DNA 조사결과 한국인의 60% 가량은 북방계 모계혈통을 따른다. 한반도로 이동한 북방계 민족과 남방에서 유입된 민족이 섞이면서 오늘날의 한국민족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앞서의 HLA-B 59와, 위의 연구결과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가 50% 이상 그 기원이 남방과 관련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다의 한국사는 우리 민족의 기원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장의 마지막으로 인도양의 또 하나의 ‘~라’ 지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의 고지도에서 마라碼羅라고 기록된 오늘날의 몰디브 섬이 그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몰디브 섬이, 동북아 한자문화권의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 촐라와 체라와는 달리, 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필자의 판단에 이 점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바로 마라碼羅에서의 ‘라羅’의 발음에 있다.
우리가 중근동의 여러 지명에서 확인한 현지 발음의 ‘라’를 중국어로선 결코 ‘羅’라 기록할 수 없다. 왜냐하면 羅는 보통어인 북경어론 ‘루어’라 발음되고, 또 광동어에선 ‘로’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오늘날의 한국인만이 羅를 정확히 ‘라’라고 발음하고 있다. 앞에서 확인한 태양을 뜻하는 처용가의 ‘라후덕’의 라는 역시 태양을 뜻하는 중근동의 ‘라’와 완벽히 일치하는 발음이 아닌가?
뒤에서 다루겠지만 중국 한족漢族은 결코 해상민족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옛 문헌에 나타나는 ‘~羅’ 지명은 기실 중국 한족 고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의 해상활동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란 사실이다.
한 가지 덧붙여, 백제가 망한 후, 왜국이던 일본이 백제로부터 자립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국호를 태양을 상징하는 일본日本이라 제정한 것과, 역사서인 고사기古事紀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편찬하면서 자신들의 기원을 천손족天孫族의 하강에서라고 한 것은 ‘라’와 태양과의 상관관계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알다시피, 고대 일본은 야요이 시기 한반도에서 건너간 집단에 의해 역사가 시작되었고, 실상 우리와 동일한 민족적 기원을 두고 있음이 아닌가? 그 사실은 오늘날의 유전자가 말해주고 있다.
일본의 고대 수도의 하나인 ‘나라’ 역시 필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나라’는 오늘날의 한국어로 국가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나라’의 기원이 원래 모국을 뜻하는 ‘나의 라’에서 기원한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나의 라’에서 ‘나’는 언어의 변천에서 가장 보수적인 인칭대명사이다. 고대에도 ‘나’는 1인칭 대명사로 쓰여 진 데다, 더불어 ‘나’에다 지명이나, 국호에 쓰이는 ‘라’가 붙은 걸로 보아, ‘나라’의 기원이 모국을 뜻했을 가능성이 한층 크게 느껴진다.
어쨌든 우리의 지명인 ‘~羅’는 아시아 바다의 여타 곳곳에서 발견되는 데, 다음 장에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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