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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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라’의 세계 -2

자연정화 2016. 3. 10. 01:49

9. ‘라’의 세계 -2

 

자료출처 : 통일일보 2007.02.23  12:22:26 <서현우의 바다의 한국사 9>

 

2. '라'의 세계 -2

우리는 앞장에서 우리 역사에 나타나는 무수한 ‘~라’ 지명이 중근동과 관계가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해 보았다.

이집트의 태양신 라(Ra)와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Al-Rah), 또 술탄협의체를 칭하는 ‘슈라’ 등에서 알 수 있는 신성함이나, 존귀함의 뜻에다, 우리의 ‘~라’와 같이 여러 지명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하여 근래에 와서 남부인도의 문화와 우리문화의 친연성이 거듭 확인되고 있음에 따라, 남부인도의 고대국가 촐라국과 체라국의 국호에 따른 ‘~라’가 우리의 지명 ‘~라’와의 관련성이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고지도상의 마라碼羅(오늘날의 몰디브 섬)를 통해 ‘~라羅’라는 우리의 한자음 표기가 실제의 발음을 반영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장에선 이러한 ‘~라’ 지명이 한반도에 이르기까지의 동남아시아에 남긴 여러 자취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앞장에서 오늘날의 태국이 우리역사에선 섬라暹羅라 지칭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섬라란 지명이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단지 명사明史에서 초대황제 홍무제(주원장) 시기에 섬라가 최초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 시기부터 쓰였음은 분명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섬라暹羅란 지명이 비록 중국의 사서에 시기적으로 앞서 나타나긴 하지만, ‘라羅’에서 알 수 있듯이 지명의 유래는 우리의 것이란 사실이다.

섬라는 흔히들 태국의 옛 이름 시암Siam(또는 샴)의 음역이라 한다. 필자의 견해 또한 이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필자의 관심은 Siam의 음역을 暹羅란 한자어로 나타낸 점에 있다. 오늘날 정확한 유래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학계에선 Siam의 유래를 대략 ‘흑인의 나라’란 설과, ‘나무에 뒤덮인 산, 즉 흑산黑山의 나라’란 설로 나누고 있다. 그런데 섬라에서의 섬暹의 뜻은 ‘햇살이 치미다’, ‘해가 돋다’이다. 즉 섬라暹羅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론 ‘햇살 돋는 땅’으로 시암Siam의 본래 뜻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기서 필자는 두 가지의 의미를 발견한다. 하나는 삼국유사에 보이는 ‘아침의 땅’이란 뜻의 ‘아사달’을, 또 그것과 연관되는 태양국 ‘촐라’와 일본이란 국호를, 또 하나는 섬라와 신라의 중국 보통어 발음상의 유사성이다. 중국 보통어 발음으로 섬라暹羅는 시엔루어(xian-luό)이고, 신라新羅는 신루어(xin-luό)로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오늘날의 중국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종류는 무려 57여종이다. 이 중에서 우리의 언어와 친연성이 깊다는 절강이나, 복건에서 사용되는 언어 중에는 위 섬라와 신라가 완전히 동일한 발음으로 읽히는 언어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점은 필자가 앞으로 확인해 나갈 일이다.

기록으로 볼 때 태국인(타이인)이 정착한 태국 땅에 중국 대륙인이 대거 이주했을 때는 명나라 개국 직후이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명나라의 개국과 동시에 초대황제 주원장은 중국역사상 가장 강고한 해금정책을 실시했는데 이에 반발한 해상세력이 대거 대륙을 탈출하면서 태국 땅에까지 이른 까닭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하에서 섬라란 지명이 명사明史에 최초로 기록된 것으로 볼 때, 섬라란 지명은 늦어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지해야할 점은 앞서 살펴본 오늘날 태국에 남아 있는 ‘부리’란 백제의 지명과, 태국의 신라 관련 지명이다. 아직 필자가 그 기원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방콕 인근에만도 안그 실라 사원(Wat Ang Sila)이 있다.

더하여 타이인이 오늘날의 태국 땅에 정착한지는 9C 이후부터란 사실이다. 타이인의 유래는 오늘날 학계에서 두 가지 학설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티벳 고원에서 유래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양자강 이남에서 남하하였다는 것인데 현재까지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백제의 지명인 ‘부리’는 타이인이 오늘날의 태국 땅에 이주하기 시작한 9C 이전의 지명이 아닌가? 게다가 신라 관련 지명마저 남아 있다. 그렇다면 타이인의 이주 이전에 백제의 해상력과, 신라선단의 활동영역이 오늘날의 태국 땅에까지 미쳤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가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상당수 독자들은 백제의 담로계 지명이 동남아시아 일대와 스리랑카와 인도 동쪽에 분포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더하여 필자는 앞장에서 스리랑카에 신라 관련 지명이 3곳이나 있다고 밝혔다. 이 담로계 지명과 신라 관련 지도는 방글라데시에서도 발견된다. 이와 함께 독자들은 이제 한반도와 태국 사이의 또 다른 ‘~라’ 지명의 확인을 통해 고대 우리 해양사에 대한 확신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태국의 섬라를 지나 말레이 반도로 시선을 돌려보자.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는 콸라Kuala와 룸푸르Lumpur란 두 어휘의 합성어이다. 말레이시아어로 콸라(영어식 발음으론 쿠알라)는 해구海口란 뜻이고, 룸푸르는 진흙이란 뜻이다. 이로서 우리는 ‘콸라’가 바다와 관련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은 아라비안나이트의 신밧드의 모험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신밧드가 4번 째 여행 중에 도착한 ‘카라’는 콸라룸푸르 북서쪽에 위치한 현재의 페낭Penang이다. 최근에 필자가 본 일본의 해양서적엔 여전히 그곳이 ‘카라’라 표기되어 있다.

이제 콸라룸푸르와 카라가 위치한 말라카 해협을 지나 남중국해로 접어들어 보자.

독자들은 백제의 부흥운동을 이끈 무장이자, 백제의 유민으로 당나라에서 무공을 세운 흑치상지 장군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래는 1929년 중국에서 발견된 그의 묘비명의 일부이다.

‘부군府君은 이름이 상지常之이고 자字는 항원恒元으로 백제인百濟人이다. 그 조상은 부여夫餘씨로부터 나왔는데 흑치黑齒에 봉해졌기 때문에 자손들이 이를 씨氏로 삼았다.’

위의 내용은 상당수 독자들엔 익히 알려져 있을 것이다. 내용의 핵심은 흑치상지가 본래 부여상지였는데 흑치지역에 봉해져 흑치를 성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문제는 바로 흑치 지역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학계에서 흑치지역을 둘러싼 여러 주장이 제기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의 학자 량자빈梁嘉彬 등이 제기한 ‘필리핀’ 설이다. 이 주장은 저명한 백제사학자 이도학 박사에 의해 수용되었고, 최근에 이르러 필리핀 혹은 보르네오일 것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위 주장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리가 배워온 역사에서 백제는 삼국 중 가장 허약한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근래에 학계에서 수용되기 시작한 일본의 국가기원으로서의 백제와, 또 그 강역에 대한 위의 이러한 견해들은 우리로 하여금 백제사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어쨌든 필자에겐 흑치 지역에 대한 위의 견해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이유는 필리핀이나, 보르네오 또한 우리의 ‘~라’ 지명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 점에 대해 논의해 보자.

자, 이제 우리들의 관심을 동남아시아의 보르네오 섬으로 돌려보자.

 

 

▲ 칼리만탄(보르네오) 섬 지도 [자료사진 - 서현우]

 

보르네오 섬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섬으로 전체 면적의 70% 영역의 남부지역이 인도네시아령이고, 나머지 북부는 대부분이 말레이시아령을 이루는 가운데 작은 면적의 보르네이 왕국이 말레이시아령에 둘러싸여 있다. 보르네오란 이름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며, 현재 인도네시아에선 칼리만탄이라 불리고 있다.

필자가 여기서 칼리만탄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와 관련되는 몇 가지 문제 때문이다.

하나는 칼리만탄 섬의 서부도시, 폰티아낙Pontianak 일대가 20C 전반기까지 중국에서 서파라西婆羅라 불렸다는 점이다. 서파라西婆羅라면 우리의 지명이 아닌가?

 

▲ 서파라(서부칼리만탄) 지도. [자료사진 - 서현우]

 

독자들은 혹시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란방蘭芳(란팡)공화국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1777년, 미국 독립선언이 발표된 그 이듬해에 칼리만탄의 서파라에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란방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초대 대총장(대통령 격)을 역임한 라방백羅芳伯(뤄팡보, 1738~1796)에 의해 시작되어 1884년 네덜란드에 의해 동인도 식민지에 병합되기까지 107년의 역사를 이은 공화국이었다.

란방공화국의 수도는 폰티아낙 인근의, 세계에서 4번째로 긴 강이라는 카푸아스 강 연안의 도시 만도르Mandor(중국에선 동만률東萬律)이고, 주민 구성은 중국에서 이주한 객가客家인들로 이뤄졌다 하여, 학계에선 객가공화국, 혹은 화교공화국으로 알려져 있다.
(객가客家: 북경어 커자, 객가어 학가로 발음. 유명한 객가인 싱가포르의 이광요 전 총리의 조부와 증조부는 란방공화국 출신으로 알려져 있음)

이 란방공화국이 유명해진 것은 1961년 홍콩에서 출판되어 국제학술계에 파문을 낳은 홍콩역사학자 라향림羅香林의 저서 ‘서파라주 라방백 등이 건립한 공화국에 대한 고찰’이란 저서 때문이었다. 그러다 지난 2005년 인도네시아 출생의 화교 전기 작가인 장영화張永和, 장개원張開源 공저의 ‘라방백전’이 인도네시아에서 출간된 바 있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위 저술에도 언급된 바,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서부칼리만탄 일대를 서파라란 지칭과 함께 파라이婆羅夷라고도 불렀다는 점이다. 파라이라면 파라에다, 동이족의 이夷를 말함이 아닌가?

더하여 필자는 란방공화국을 건립한 라방백羅芳伯의 본명은 방백芳栢인데, 새로운 성씨 라羅는 파라의 ‘라’에서, 이름은 본래의 방백芳栢의 백栢에서 존칭을 나타내는 백伯으로 바꿔 방백芳伯이라 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란방공화국의 란방蘭芳은 네덜란드의 음역인 화란和蘭의 ‘란’과, 본래 성씨인 방芳의 조합이었다.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한 네덜란드는 당시 서부칼리만탄의 영유권을 주장하던 중이었음)

서파라西婆羅와 파라이婆羅夷라?
이에 자극받아 필자는 서부 칼리만탄 폰티아낙 일대의 문화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그러자, 의미 있는 발견들이 뒤따랐다. 난생설화, 옹관묘(독무덤), 홍살문 등은 모두 우리 문화와 연결되는 요소들이었다. 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종족인 다약족은 외모상으로 우리 한국인과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여기에다, 란방공화국의 수도였던 만도르 인근의 시다스Sidas에서 삼바스Sambas에 이르는 지역엔 현재까지 기원이 확인되지 않은 왕묘급 고분군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이 지역이 백제의 담로계 지명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중세 중국의 항해서書 ‘순풍상송順風相送’에는 ‘오서浯嶼(복건성)에서 제갈담남諸葛擔藍(칼리만탄 남부)까지의 항로에 담물란주부淡勿蘭州府가 있다’고 하였는데, 중국의 학자 시앙따(向達향달) 씨 등은 담물란주부를 서파라로 비정한 바 있다. 담물란주부의 담물이 바로 백제의 담로계 지명인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서부 칼리만탄 지역은 분명한 우리 해양사의 무대이다. 중국의 기록에 나타나는 파라이婆羅夷란 동이계 지명과, 또 담물淡勿이란 백제의 지명은 단지 우리와 문화적 친연성을 지닌 인도의 촐라, 체라와는 달리 우리 민족사의 영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파라’가 아닌 ‘서西파라’라면 혹시 東파라 등의 또 다른 파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궁금증을 말이다. 이 궁금증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제 또 다른 ‘파라’를 찾아가 보자. 독자들은 아래 지도에서 팔라완 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팔라완 섬 지도. [자료사진 - 서현우]

 

위 지도엔 필리핀 루손 남부에서 보르네오(칼리만탄) 섬 북쪽으로 길게 잇는 띠 모양의 섬이 보인다. 바로 팔라완Palawan 섬이다. 이 팔라완 지명의 유래에 대해선 4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 4가지 설은 다음과 같다.

1. 팔 라오 유: 중국어로 ‘아름다운 항구’란 뜻.
2. 팔라완스: 인도어로 ‘영토’란 뜻.
3. 팔와: 원주민이 부르는 식물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설.
4. 파라구아의 변형: 스페인어에서 ‘접힌 우산 모양’에서 유래한다는 설. (남아메리카의 파라과이는 여기서 유래)

독자들은 어느 설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필자의 생각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팔라완이 실제론 서파라의 파라와 관계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다음의 남중국해 지도를 통해 판단의 근거를 들어보겠다.

 

▲ 파라셀 군도, 스프라틀리 군도, 팔라완 섬 지도. [자료사진 - 서현우]

 

지도상엔 위아래로 두 개의 사각형이 둘러져 있는데 위의 것은 파라셀(Paracel) 군도이고, 아래의 것은 스프라틀리(Spratly) 군도이다. 이들은 흔히 서사군도西沙群島와 남사군도南沙群島로 더 알려져 있으며 현재 국제적으로 영유권 분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들 섬의 명칭 또한 팔라완과 마찬가지로 유래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면 여기서 이들 섬의 이름을 한번 나열해 보자.
- 파라셀, 스프라틀리, 팔라완.-

무엇인가 공통성이 발견되지 않는가? 필자는 이들 고유명사가 모두 ‘파라’와 관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즉 파라셀에서 파라를, 스프라틀리에서 서파라를, 팔라완에서 파라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확신하건대 스프라틀리의 어근語根인 ‘스프라’는 분명 ‘서파라’의 변형이며, 팔라완의 ‘팔라’ 또한 ‘파라’의 변형이다. 여기서 팔라완의 ‘완’은 장담할 순 없지만 만灣을 말하는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臺灣(대만)을 타이완이라 발음하듯이 말이다. 이 점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