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이 만든 또 다른 비극(悲劇)…홍기택 사태
4.3조 투입한 부총재직(職)…‘한국 위한 자리는 없다’
자료출처 : 스페셜경제 2016. 07. 12. 황병준 기자
▲ 홍기택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 부총재.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정부가 휴직에 들어간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부총재 후임으로 한국인을 내정할 수 있도록 노력을 펼치겠다고 밝힌 8일 오후 AIIB는 부총재 공모 일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동안 홍 부총재가 맡았던 최고위험관리자(CRO) 지위를 국장급으로 강등시키고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부총재급으로 격상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4조원의 출자금을 투입하고 이사국 지위로서 부총재직을 보상받았지만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비정상적인 인사로 국제적 망신과 함께 국익 손실까지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정부의 비상상식적인 홍기택 인사의 속내를 짚어 봤다.
지난 6월 27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홍기택 부총재가 임명된 지 넉 달 만에 갑자기 휴직계를 제출했다. 정부가 한국인 부총재를 만들기 위해 전방위적 외교를 펼친 가운데 올해 초 당시 산업은행장이던 홍기택 회장을 AIIB 부총재로 내정했다. 하지만 홍 부총재가 임명된지 넉 달만에 휴직계를 던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서별관회의’ 언급한 홍기택
홍 부총재가 사상 초유의 휴직이라는 선택을 한 이유는 지난 6월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별관회의’를 언급한 것을 두고 정부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홍 부총재는 당시 인터뷰에서 “4조2000억원의 대우조선해양 지원은 지난해 서별관회의에서 정부가 결정한 것으로 산업은행은 들러리만 섰다”고 주장하면서 큰 논란이 불러 일으켰다.
또한 홍 부총재는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오면서 책임론이 불거져 거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AIIB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측이 홍 부총리의 사의를 요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은행 이어 AIIB에 낙하산 투하…‘결말 예견됐다’
강등된 ‘CRO’ 격상된 ‘CFO’…‘낙하산에 발등 찍혔다’
지난달 30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홍 부총리의 휴직은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중국측의 요청에 따라 휴직계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휴직계 내기 전 한국 정부와 이 사실을 비공식 채널을 통해 알려 왔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중국은 산업은행 및 대우조선해양 부실 등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이 갈수록 파장이 커질 것으로 봤다”며 “홍 부총재가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을 경우 한국과의 관계가 오히려 껄끄러워 질 것으로 판단, 정중하게 휴직을 권했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는 보도와 관련, 홍 부총재의 휴직계 제출과 관련해 사전에 중국 측으로부터 통보받은 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낙하산에 발등 찍힌 정부
하지만 홍 부총재가 자의적이던 타의적이던 AIIB를 갑작스럽게 물러나면서 전문적이지 못한 인사로 인해 국제적 금융기구의 부총재직을 잃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홍 부총재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부실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AIIB 부총재로 선임됐다. 일각에서는 홍 부총재가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관가에서는 30년간 교수만 하다가 2년 산업은행 회장을 거친 인물이 국제기구 부총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홍 부총재는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서강대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교수로 제직하다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쳐 산업은행 회장을 맡았다. 산업은행 회장에 임명될 당시에도 자격시비가 끊이질 않았고, 낙하산 논란이 제기됐었다.
홍 부총재는 산업은행 회장 취임 당시 “나 낙하산 맞다. 그런데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1차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연차총회에서 2017년 AIIB총회 개최 초청사를 하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AIIB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측에서 홍 부총재 선임과정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진리췬 AIIB총재는 한국에 부총재직을 제의하면서 금융 전문가를 요청했지만 한국측이 홍 부총재를 선임하자 다른 인사를 거명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도로·항만 등 각종 개발 사업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AIIB 내에서 관련 경험이 없는 홍 부총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선임 당시부터 제기됐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의 한 관계자는 “홍 부총재 이외의 나머지 AIIB의 부총재들은 국제기구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 전문가들”이라며 “국제기구 부총재는 올라오는 보고서에 사인이나 하는 역할이 아닌 직접 발로 뛰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날아간 부총재직…찾을 수 있나?
우리 정부는 37억달러(약4조3000억원)의 분담금을 내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의 부총재 자리를 얻었다. 지분율은 3.5%로 중국(26.06%), 인도(7.51%), 러시아(5.93%), 독일(4.15%)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유일호 “홍 사태 답답하고 유감”…무능한 외교 라인
부총재 없는 분담금 5위 ‘현실’…AIIB, 韓 위상 급락(?)
홍 부총재가 이러한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 노력과 함께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홍 부총재가 사실상 보직을 잃고 한국인의 후임 부총재 선임도 당분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거액의 정부 분담금도 빛이 바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AIIB는 지난 8일 재무담당 부총재직을 새롭게 부총재직으로 격상하고 홍기택 투자위험관리 부총재의 후임 자리를 국장급으로 강등한다고 밝혔다. 또한 새로운 부총재에 프랑스 출신 티에리 드 롱구에마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AIIB는 중국의 진리췬 총재 외에 현재 인도와 독일 한국, 인도네시아, 영국 등 5개국이 각각 부총재를 맡고 있다. 부총재 수의 제한은 없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부총재직과 관련해 “후임 선임 절차가 공식화되면 한국인이 후임이 될 수 있게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 부총재 자리가 국장으로 강등되고 새로운 부총재에 프랑스인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장자리를 얻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AIIB내 입지 변화(?)
이번 사태로 AIIB내 한국의 영향력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전망이다. AIIB는 5명의 부총재가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데 여기에서 빠지게 되면 결국 주도적인 입김을 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4조3000억원의 혈세를 투입하고 받은 부총재 자리를 고스란히 내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한 홍 부총재의 중도 하차로 인해 오는 2019년까지 부총재직을 다시 얻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11일 국회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홍기택 아이아인프라투자은행 부총재 사임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홍기택 사태’와 관련해 “한국은 국익을 위해 AIIB에 4조원이 넘는 돈을 지분 투자했다”며 “그러나 우리 정분튼 누가 부총재로 적합할지 검증도, 정리도 하지 않았고 결국 부총재직을 박탈당했어도 아무런 답변을 못하고 있는 외교적 참사가 발생했다”고 비난의 화살을 쐈다.
유 부총리가 홍 부총재에 대해서는 “범정부적으로 (AIIB 부총재직에) 한국 사람을 받아달라는 노력을 안 한 게 결단코 아니다”라며 “결과적으로 사태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답답하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사설]
만사(萬事) 아닌 망사(亡社)로 끝난 ‘홍기택 낙하산’
자료출처 : 아시아타임즈 2016. 07. 11.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인사(人事)는 망사(亡社)’가 돼버렸다. 낙하산인사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자 전 아시아개발은행(AIIB) 부총재의 얘기다. 그는 2013년 4월 산업은행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낙하산논란에 휩싸이자 “나는 낙하산이 맞다.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화려하게 데뷔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대학교수였다. 한국은행에 잠깐 근무한 이력은 있지만 경제 관료로서 트레이닝 받은 경력이 없었다. 단지 박근혜 대통령과 서강대 동문에 경제공부모임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에 그는 대통령인수위에 이름을 올리더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회장으로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다.
홍 전 부총재는 올해 2월 AIIB 부총재로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5조원 대 회계비리에 휩싸인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기관장으로서 부실적발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또 다시 정권의 줄을 타고 국제기구의 부총재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낙하산의 말로를 직접 결과로 보여줬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에 발목을 잡히며 AIIB 부총재직을 휴직하더니 이젠 그 자리마저 잃었다. AIIB는 홍 전 부총재가 맡았던 투자위험관리(CRO) 부총재직을 국장급으로 강등시켰다. 이 자리는 정부가 국민의 혈세 37억 달러(약 4조3000억 원)의 분담금을 납부하며 지켰던 자리였다.
그의 몰락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가 도화선이 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우조선에 대한 부실지원 책임자로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3인을 지목했다. 당시 산업은행장이었던 자신은 들러리였고, 부실기업에 4조2,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윗선’이라고 폭로했다. 이후 서별관 회의에 대한 청문회개최 요구가 높아지자 돌연 AIIB에 장기 휴직계를 내고 사실상 잠적해 버렸다.
홍 전 부총재의 낙하산인사 논란이 일자 정부는 AIIB 부총재 선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홍기택 개인이 공모에 참가해 이뤄진 것이라는 변명이다. 또 부총재 자리가 날아간 것은 중국주도의 국제기구가 그리 한 것은 우리정부 책임이 아니라는 태도다. 군색한 변명이다. 홍 전 부총재가 AIIB 이사회에서 부총재로 공식 승인되자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과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라고 자화자찬했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인사 때마다 헛발질을 많이 했다. 관가에서는 청와대의 인재풀이 빈약하다는 한탄과 함께 검증절차에 구멍이 뚫렸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 인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섞여있다.
홍기택 사태는 박근혜 정부 초기에 국제적 조롱거리를 만들었던 ‘윤창중 사건’과 함께 ‘양대 망신’의 인사라 할 수 있다. 윤창중과 홍기택의 사건의 공통점은 역량이 못 미치는 인사를 그 자리에 앉혀놓은 인사권의 문제다. 함량미달의 인사조차도 걸러내지 못하는 인사검증 체계는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홍 전 부총재가 AIIB 부총재로 영전할 때 경제 관료들 사이에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국제기구의 부총재나 국장급 자리는 산업은행 회장처럼 거드름 피우며 도장이나 찍던 사람이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다섯 명의 AIIB의 부총재 중 ‘비전문가’로 분류될 만큼 일천한 경험을 가진 것은 홍 부총재뿐이었다. 다른 부총재들은 국제기구와 자기 업무에서 수년간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번 홍기택 사태는 개인의 돌출발언과 기행으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행해졌던 낙하산인사의 문제점을 통렬히 반성하고 검증된 역량 있는 인사들로 교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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