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1)貊族,고구리,발해

발해의 지방행정조직(2) - 15부

자연정화 2018. 7. 19. 09:47

➅ 솔빈부 (率賓府)

 

1. 솔빈부[率賓府] - doopedia, 민족문화대백과, 해동성국발해

 

 

 

 

발해의 지방행정구역인 15부 중의 하나.

 

발해는 영토를 5경 15부 62주를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15부는 지방통치의 중심지로서 하부 행정단위인 62주를 거느리고 있었다. 솔빈부는 15부의 하나이며, 속주(屬州)로는 화주(華州)·익주(益州)·건주(建州)의 3개 주가 있었다. 중심지역은 러시아 연해주(沿海州)의 우스리스크[雙城子]로 비정(比定)되고 있으며 흑룡강성(黑龍江省) 동녕현(東寧縣)에 있는 대성자(大城子)의 고성(古城)이 솔빈부의 터라는 견해도 있다. 말의 특산지로 이름이 났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京)·15부(府)·62주(州)를 설치하였는데 솔빈부는 15부 중의 하나이다. 이 부는 솔빈의 옛 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는 화주(華州)·익주(益州)·건주(建州)의 3개 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이곳에는 말이 특산물로서 유명한데, 역사적으로 중국 동북지방의 말은 오래전부터 알려져왔고, 국방·생산·교통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의 수출과 진공용(進貢用)으로 이용되었다.

 

솔빈부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우수리스크(중국명 雙城子)로 보고 있는데, 혹은 흑룡강성(黑龍江省) 동녕현(東寧縣)에 있는 대성자(大城子)의 고성(古城)을 조사하여 이곳의 구조가 기존의 발해도성과 같다는 점을 들어 이곳이 솔빈부의 터전이란 설도 주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발해국과 연해주의 발해문화유적』(에 베 샤프쿠노프, 레닌그라드, 1968)

「大城子古城調査記」(張太湘, 『文物資料叢刊』 4, 1981)

 

 

 

2. 솔빈부[率賓府] 3주

 

화주[華州]

 

《신당서》 발해전에 따르면 솔빈부는 솔빈의 옛 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위치에 대해서는 우수리스크설이 대부분이나 정설은 없다. 화주는 솔빈부의 수주(首州)이며 치소(治所)는 솔빈부와 동일하다. 요(遼)나라가 발해 멸망 후 화주의 인구 일부를 이동하여 요나라의 현주 소속 강주와 강주 소속 솔빈현 등지에 옮긴 사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전 발해 솔빈부 관하 주들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화주의 속현(屬縣)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 doopedia -

 

건주[建州]

 

발해는 전국을 5경 15부 62로 나누었다. 건주는 솔빈부(率賓府)에 속한 주이다. 지금의 헤이룽강[黑龍江] 남동부의 쑤이펀허[綏芬河] 부근으로 추정된다. 요(遼) ·금(金)나라 때에는 다링허[大凌河] 지방의 주명(州名)으로 사용되었으며, 원(元)나라 때는 행정구역명, 또는 지린[吉林] 부근의 성(城) 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명(明)나라 때는 일종의 군정(軍政) 시행기관인 위(衛)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는데, 건주위(建州衛)는 위의 이름인 동시에 건주위 내에 거주하는 여진족의 총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 doopedia -

 

솔빈부(率賓府)에 속한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의 흑룡강성(黑龍江省) 동녕현(東寧縣) 부근으로 보는 설과, 동녕현 또는 소련 연해주의 수찬시(지금의 파르치잔스크)로 보는 설과, 흑룡강성 동녕현에 있는 대성자(大城子)로 보는 설 등이 있다. 속현(屬縣)은 알 수 없다.

- 민족문화대백과 -

 

익주[益州]

 

개주(蓋州)로도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된 62주(州) 가운데 하나이다. 솔빈부(率賓府)에 속하는데, 그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의 흑룡강성(黑龍江省) 동녕현(東寧縣) 부근, 동녕현 또는 소련 연해주의 수찬시(지금의 파르치잔스크시)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속현은 미상이다. - 민족문화대백과 -

 

 

 

➆ 동평부 (東平府)

 

1. 동평부[東平府] - doopedia, 민족문화대백과, 해동성국발해

 

 

발해의 지방행정구역 15부(府)의 하나.

발해는 전국을 5경(京) 15부 62주(州)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다. 동평부는 15부 중의 하나이며, 말갈 불열부족(拂涅部族)의 옛땅인 목단강(牧丹江) 중하류지역에 설치되었다. 그 중심지역은 러시아의 연해주(沿海州)와 접경을 이루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미산현[密山縣]의 싱카이호[興凱湖] 지방과 후란강[呼蘭江] ·이란현[依蘭縣] 등지로 추정된다. 속주(屬州)로는 이주(伊州) ·몽주(蒙州) ·타주(沱州) ·흑주(黑州) ·비주(比州)의 5주가 있었다.

 

- 민족문화대백과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京)·15부(府)·62주(州)를 설치하였다. 동평부는 이 15부 중의 하나로서 불녈(拂涅)의 옛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는 이주(伊州)·몽주(蒙州)·타주(沱州)·흑주(黑州)·비주(比州)의 5개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여기서 불녈이란 『수서』에 나타나는 말갈 7부(部)의 하나로서 대체로 오늘날의 목단강(牧丹江) 중하류지역에 거주했던 부족을 의미한다.

 

동평부지역의 특산물로서는 현재의 흥개호(興凱湖)로 추정되는 미타호(眉沱湖)의 붕어가 유명하였다. 동평부의 위치에 대해서는 헤이룽장성 후란(呼蘭)지방, 헤이룽장성 미산현(密山縣) 싱카이호지방, 헤이룽장성 이란현(依蘭縣) 부근 등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2. 동평부 [東平府] 5주

 

이주[伊州]

 

제10대 선왕(宣王) 대인수(大仁秀) 재위기인 건흥(建興) 연간에 정비된 행정구역으로서 몽주(夢州)·타주·흑주(黑州)·비주(比州)와 함께 지금의 무단강[牧丹江] 중하류 지방으로 추정되는 동평부(東平府)의 속주(屬州)이다. 자세한 위치와 속현(屬縣)은 밝혀지지 않았다. - doopedia -

 

몽주[蒙州]

 

발해는 전국을 5경(京), 15부(府), 62주(州)로 나누었다. 발해 62주 가운데 하나인 몽주는 동평부에 속하였으며, 지금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발해 15부의 하나인 동평부는 말갈(靺鞨)의 한 부락인 불녈부(拂涅部)의 옛 지역에 설치되었는데, 지금의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평부가 다스린 주는 몽주를 비롯해 이주(伊州)·흑주(黑州)·비주(比州)·타주 등이다.《요사(遼史)》의 기록에 따르면, 몽주의 속현(屬縣)으로 자몽현(紫蒙縣)이 있었다. - doopedia -

 

비주[比州]

 

62주의 하나이며, 최북단의 회원부(懷遠府) 남부에 인접한 동평부(東平府)의 속주였다. 동평부는 말갈의 7개 부족 가운데 하나인 불열부족(拂涅部族)이 살던 땅에 설치한 15부 가운데 하나이다. 위치와 속현(屬縣)은 밝혀지지 않았다. - doopedia -

 

『신당서』발해전에 기록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동평부(東平府)에 속하며, 『요사(遼史)』지리지에는 북주(北州)로 기록되어 있다. 비주의 위치와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 민족문화대백과 -

 

흑주[黑州]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로서 동평부(東平府)에 한다. 흑주라는 명칭이 말갈(靺鞨) 부족인 흑수부(黑水府)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위치와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 민족문화대백과 -

 

타주[沱州]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로 동평부(東平府)에 속한다. 그 위치는 자세하지 않으나 『신당서(新唐書)』발해전에 나오는 미타호(湄沱湖)가 현재의 흥개호(興凱湖)로 추정되는 바, 이 호수 부근으로 여겨진다. 미타호의 특산물로서 붕어[鯽]가 유명한데, 현재 흥개호에서는 어업이 번창하여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속현은 미상이다. - 민족문화대백과 -

 

 

 

 

➇ 철리부 (鐵利府)

 

 

철리부 [鐵利府]

집필자 송기호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京)·15부(府)·62주(州)를 설치하였는데, 그 15부 중의 하나이다. 철리의 옛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는 광주(廣州)·분주(汾州)·포주(蒲州)·해주(海州)·의주(義州)·귀주(歸州)의 6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위치에 대해서는 흑룡강성(黑龍江省)의란현(依蘭縣 : 옛 三姓을 지칭)으로 추정하는 설과 소련의 하바로프스크시(伯力市) 부근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광주 [廣州], 분주 [汾州], 의주 [義州], 귀주 [歸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에 기록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철리부(鐵利府)에 속하나, 그 위치와 속현(屬縣)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포주 [蒲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철리부(鐵利府)에 속하며, 그 명칭은 철리국(鐵利國)의 포곡(蒲谷)에서 발원한다는 포하(蒲河)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와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해주 [海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철리부(鐵利府)에 속하며, 그 명칭은 철리부가 소련의 연해주에 있으면서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기 때문에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와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➈ 회원부 (懷遠府)

 

 

회원부 [懷遠府]

집필자 송기호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京)·15부(府)·62주(州)를 설치하였는데, 회원부는 15부 중의 하나이다. 월희(越喜)의 옛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는 달주(達州)·월주(越州)·회주(懷州)·기주(紀州)·부주(富州)·미주(美州)·복주(福州)·사주(邪州)·지주(芝州)의 9개 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여기서 월희란 발해가 건국하기 이전에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였던 말갈(靺鞨)의 한 마을을 가리킨다. 위치에 대해서는 흑룡강성(黑龍江省)의란현(依蘭縣 : 옛 三省을 지칭), 우쑤리강(烏蘇里江)과 송화강(松花江)이 만나는 지역, 연해주의 동쪽바닷가, 흑룡강성 동강현(同江縣)으로 각각 다르게 추정하고 있어 정확하지 않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東北歷代疆域史』(張博泉·蘇金源·董玉瑛, 吉林人民出版社, 1981)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달주 [疸州]

집필자 송기호

 

62주(州)의 하나이다. 회원부(懷遠府)에 속하며 그 수주(首州)이기도 하였다. 치소(治所)는 회원부와 동일하다. 회복(懷福)·표산(豹山)·유수(乳水)의 3개 속현이 있었으며, 회복현이 수현(首縣)이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硏究』-滿洲篇-, 東洋文庫, 1955)

 

회주 [懷州]

집필자 송기호

 

명칭으로 보아 이 주가 회원부의 수주(首州)일 가능성이 있으나 확증이 없다. 위치와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부주 [富州]

집필자 송기호

 

이 주는 회원부(懷遠府)에 속하나 그 위치는 미상이다. 부수(富壽)와 우부(優富)의 2개 속현(屬縣)이 있었으며, 부수현이 수현(首縣)이다. 아울러 부주의 이명(異名)으로서 은주(銀州)가 있었는데, 이는 관내에서 은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미주 [美州]

집필자 송기호

 

그 위치는 미상이다. 김육불(金毓黻)은 『요사 遼史』지리지를 바탕으로 산하(山河)·흑천(黑川)·녹천(麓川)의 3개 속현(屬縣)이 있었으며, 산하현이 수현(首縣)이었음을 고증하였다. →회원부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월주[越州], 기주[紀州], 복주[福州], 사주[邪州], 지주[芝州]

집필자 송기호

 

그 위치와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➉ 안원부 (安遠府)

 

 

안원부 [安遠府]

집필자 송기호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15부·62주를 설치하였고, 안원부는 15부 중의 하나이다. 회원부(懷遠府)와 더불어 월희말갈(越喜靺鞨)의 옛 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는 영주(寧州)·미주(郿州)·모주(慕州)·상주(常州)의 4개 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안원부의 위치에 대해서는 송화강(松花江) 하류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특히 그 중심지를 흑룡강성(黑龍江省) 부금(富錦)으로 잡고 있다. 그 밖에도 흥개호(興凱湖) 동남쪽 바닷가로, 또는 흥개호 동안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東北歷代疆域史』(張博泉·蘇金源·董玉瑛, 吉林人民出版社, 1981)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영주 [寧州]

집필자 송기호

 

그 위치와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미주[郿州]

집필자 송기호

 

미(郿)는 미(湄)와 통하는 것으로 미타호(湄陀湖 : 현재의 興凱湖)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이 주는 흥개호(興凱湖)의 좌안(左岸)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요사(遼史)』

『渤海國志長編』(金毓黻, 1934)

『渤海國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모주[慕州]

집필자 송기호

 

그 위치는 미상이며, 모화(慕化)·숭평(崇平)의 2개 속현(屬縣)이 있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요사(遼史)』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상주[常州]

집필자 송기호

 

그 위치와 속현(屬縣)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독주주[獨奏州]≫

 

62주의 하나이나, 다른 주와 같이 부(府)에 속하지 않는 상경(上京)의 직례주(直隷州)와 같은 행정구역이다. 그 아래에는 영주(郢州) ·동주(銅州) ·속주(涑州)의 3개 주가 있었다. 위치는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주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郢州]

 

동주[銅州]

 

속주[涑州]

 

 

독주주[獨奏州] - 민족문화대백과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 발해전에 의하면 발해는 전 국토에 걸쳐 5경(京)·15부(府)·62주(州)를 설치하였다고 하고 그 구체적인 명칭들을 나열한 다음 독주주를 덧붙여 놓았다. 이 독주주 아래에는 영주(郢州)·동주(銅州)·속주(涑州)의 3개 주가 있었다.

 

이 주의 성격은 후대의 직례주(直隷州)와 같은 것으로, 부에 속하지 않고 중앙의 직속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위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의 주변으로서 교통상의 요충지에 분치(分置)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硏究』-滿洲篇-, 東洋文庫, 1955)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