➀ 장령부 (長嶺府)
고구려의 옛땅인 만주 랴오닝성(遼寧省) 선양(瀋陽) 지방에 있던 서경(西京)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 하주(瑕州)와 하주(河州) 2개의 주를 두었음. 수도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와 영주(營州: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를 잇는 교통 요지이다.
장령부의 소재지에 관해서는 크게 다섯가지 설이 있다.
첫째, 해룡부근설(龍附近說), 둘째 산성자설(山城子說), 셋째는 영액성설(英額城說), 넷째는 협혁성설(?赫城說), 화전현 소밀성설(蘇密城說)이 있다.
하주(瑕州)는 철령부의 수주(首州)이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소밀성 부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주(河州)는 오늘의 길림성 해룡현 산성진(吉林省 海龍縣 山城鎭) 으로 비정된다.
장령부 [長嶺府]
집필자 송기호
발해는 전국토를 5경 15부 62주로 나누었는데, 장령부는 15부 중의 하나이다. 고구려의 옛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는 하주(瑕州)와 하주(河州)의 2개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한편, 장령부는 발해의 수도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부터 당나라의 동방전진기지였던 영주(營州 : 지금의 遼寧省 朝陽)로 왕래하던 교통로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가탐(賈耽)의 『도리기(道里記)』에는 그 경로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영주로부터 동쪽으로 180리(里 : 唐里로서 1리는 454.36m) 떨어진 곳에 연군성(燕郡城)이 있으며, 이로부터 여라수착(汝羅守捉)을 지나고, 요수(遼水)를 건너면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에 이르는데, 연군성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500리가 된다.
여기에서 동북쪽으로 고구려의 개모(蓋牟)·신성(新城)을 지나면 발해의 장령부에 이른다고 하였다. 장령부의 위치에 대한 논의는 『도리기(道里記)』의 기록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길림성(吉林省) 해룡현(海龍縣) 산성진(山城鎭) 또는 길림성 화전현(樺甸縣) 소밀성(蘇密城)이라는 설이 있으며, 이 밖에도 요령성(遼寧省) 영액문(英額門) 부근설 등이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吉林史蹟』(吉林市博物館, 吉林人民出版社, 1984)
『渤海國志長編』(金毓?,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하주 [瑕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 있는 발해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장령부(長嶺府)에 속하며, 또한 이 부의 수주(首州)이기도 하다. 따라서 치소(治所)는 장령부와 동일하다. → 장령부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하주 [河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로서 장령부(長嶺府)에 속한다. 명칭은 강가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위치는 길림성 조양진(吉林省朝陽鎭)의 동쪽에 있는 휘발하(輝發河)에 접한 휘발성(輝發城), 또는 관가(官街)의 서쪽에 인접한 소밀성(蘇密城) 부근으로 비정된다. →장령부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➁ 부여부 (扶餘府)
부여부 [扶餘府]
집필자 송기호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京)·15부(府)·62주(州)를 설치하였다. 부여부는 이 15부 중의 하나로서 부여의 옛 땅에 설치되었으며, 항상 날랜 병사를 거주시켜 거란(契丹)을 방비하게 하였다. 또, 그 밑에는 부주(扶州)·선주(仙州)의 2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는데, 발해의 수도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부터 거란으로 내왕하던 교통로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부여부가 있던 지방은 평원으로 관목과 수초가 무성하여 사슴이 번식하기에 알맞은 지역이다. 따라서, 부여의 특산물로서 약재·식용·썰매용으로 쓰였던 사슴이 유명하였다. 부여부의 위치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길림성 농안현(吉林省農安縣)설이 유력하다. 그 밖에도 길림성 농안의 서남쪽에 있는 사면성(四面城)설 등이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부주 [扶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발해전에 열거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부여부(扶餘府)에 속하며, 또한 이 부의 수주(首州)이기도 하다. 따라서 치소(治所)는 부여부와 동일하다. 부여(扶餘)·포다(布多)·현의(顯義)·작천(鵲川)의 4개 속현(屬縣)이 있었으며, 부여현이 수현(首縣)이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선주 [仙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新唐書)』발해전에 열거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이며, 부여부(扶餘府)에 속한다.
그 위치에는 속현(屬縣) 중의 하나가 어곡현(漁谷縣)으로서 그 명칭으로 보아 송화강(松花江)을 건너는 지점에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하나, 자세한 지점은 알 수 없다. 강사(强師)·신안(新安)·어곡(漁谷)의 3개 속현이 있었으며, 강사현이 수현(首縣)이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➂ 막힐부 (鄚頡府)
막힐부 [鄚頡府]
집필자 송기호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京)·15부(府)·62주(州)를 설치하였는데 막힐부는 15부 중의 하나이다. 부여부(扶餘府)와 더불어 부여의 옛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는 막주(鄚州)와 고주(高州)의 2개 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막힐부의 특산물로는 돼지가 유명하였으며, 막힐부의 위치에 대해서는 흑룡강성 아성(黑龍江省阿城)설과, 흑룡강성(黑龍江省) 오상현(五常縣)설 및 길림성(吉林省) 장춘(長春)·농안현(農安縣)부근설 등 여러 설이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東北歷代疆域史』(張博泉·蘇金源·董玉瑛, 吉林人民出版社, 1981)
『東北通史』(金毓黻, 國立東北大學, 1940)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막주 [鄚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 발해전에 열거되어 있는 62주 중의 하나이다. 막힐부(鄚頡府)에 속하며, 이 부의 수주(首州)이므로 그 위치는 막힐부와 같다. 월희(粤喜)와 만안(萬安) 두개의 속현이 있었으며, 수현(首縣)은 월희였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고주 [高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에 기록된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막힐부(鄚頡府)에 속한다. 그러나 그 위치와 속현(屬縣)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➃ 정리부 (定理府)
1. 정리부[定理府] - doopedia, 해동성국발해, 민족문화대백과
발해의 지방행정구역은 5경(京) 15부(府) 62주(州)로 나누어졌다. 정리부는 15부의 하나로 발해의 동북방에 위치하며, 정주(定州)와 반주(潘州)의 2개주를 관할하였다. 《신당서》발해전에는 읍루(揖婁)의 옛 땅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리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아메리카만에 있는 수찬강 유역설과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이루는 우수리강 유역설, 러시아 연해주 올가만 부근설 등이 있다. 따라서 정주와 반주의 정확한 지점은 명시되지 않고 있으나, 정주는 수주(首州)이고 반주는 그 다음 주였다.
정주의 치소(治所)는 정리부와 동일하다.《원일통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정리부의 정주·반주가 모두 9개현을 관할하였다고 그 이름을 전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정주에는 정리(定理)·평구(平邱)·암성(巖城)·모미(慕美)·안이(安夷)의 5개 속현이 있었고 수현(首縣)은 정리현이었다. 반주에는 심수(瀋水)·안정(安定)·보산(保山)·능리(能利)의 4개 속현이 있었고, 수현은 심수현이었다.
- 민족문화대백과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京)ㆍ15부(府)ㆍ62주(州)를 설치하였는데, 정리부는 15부 중의 하나이다. 읍루(挹婁)의 옛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 정주(定州)와 반주(潘州)의 2개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다만 읍루의 옛땅이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련 연해주의 아메리카만에 있는 수찬강(중국지명은 蘇城江) 유역설, 중국과 소련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우쑤리강(중국지명은 烏蘇里江) 유역설, 소련 연해주의 올리가만(灣)부근설 등이 있다.
2. 정리부[定理府] 2주 - 해동성국발해, 민족문화대백과
정주 [定州] - 민족문화대백과
일명 ‘안정군(安定郡)’이라 한다. 62주(州) 중의 하나로서 정리부(定理府)에 속하며, 또한 이 부의 수주(首州)이기도 하다. 치소(治所)는 정리부와 동일하다. 정리(定理)ㆍ평구(平邱)ㆍ암성(巖城)ㆍ모미(慕美)ㆍ안이(安夷)의 5개 속현(屬縣)이 있었다.
반주 [潘州] - 민족문화대백과
『신당서』발해전(渤海傳)에 열거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이 주는 정리부(定理府)에 속하는데, 『요사』지리지에는 심주(瀋州)로 기록되어 있다.
위치는 미상이다. 심수(瀋水)·안정(安定)·보산(保山)·능리(能利)의 4개 속현(屬縣)이 있었으며, 심수현이 수현(首縣)이다.
➄ 안변부 (安邊府)
안변부 [安邊府]
집필자 송기호
발해는 전국토에 걸쳐 5경(京)·15부(府)·62주(州)를 설치하였는데, 안변부는 15부 중 하나이다. 정리부(定理府)와 더불어 읍루(挹婁)의 옛 땅에 설치되었으며, 그 밑에는 안주(安州)와 경주(瓊州)의 2개주를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안변부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다만 읍루의 옛 땅이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소련의 하바로프스크시(중국지명 伯力市) 부근, 또는 하바로프스크시의 남쪽 우수리강(중국지명 烏蘇里江) 부근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테추헤 또는 해안가의 테추헤―프리스타니에 비정하기도 하고, 또 올리가(o○ga)지방에 비정하기도 하나, 어느 견해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東北歷代疆域史』(張博泉·蘇金源·董玉瑛, 吉林人民出版社, 1981)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경주 [瓊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에 기록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안변부(安邊府)에 속하나, 그 위치나 속현(屬縣)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안주 [安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新唐書)』에 기재된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안변부(安邊府)에 속하며, 또한 이 부의 수주(首州)이기도 하다. 따라서 치소(治所)는 안변부와 동일하다. 속현(屬縣)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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