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루쿠츠크 국립대학의 역사학부 교수 스비닌 블라지미르는 바이칼 지방을 20~30만년 전 인류의 발원지 중 하나로 보면서 특히 바이칼 지역의 네 종족인 에히리트, 불라가트, 코리1), 홍고도리로 이루어진 부리아트족2)의 기원을 약 20만 년 전까지 올려보고 있다고 하였다.
3. Baikal - ‘시베리아’는 알타이어로 ‘잠자는 땅’이고 ‘바이칼’은 ‘풍부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부리아트어로는 ‘신(神)들의 골3)’이 된다. 우리의 고서(古書)들은 한결같이 우리 민족을 천손(天孫)이라 하는데 부모(父母)인 하늘(天)과 자손(孫)들은 단군(巫)을 통하여 서로의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 부리아트의 무(巫, 샤머니즘)4) 의식은 전통적으로 행하여오는 한국의 그것과 거의 같다. 부리아트의 소단군(샤먼, 무당)들은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모시고 세계를 9단계로 나누고 있다. 아래는 지옥세계로 일곱 단계로 나누어져 ‘ 7 ’은 나쁜 숫자이고, ‘ 9 ’는 최상의 길수이다. 우리 민족도 9를 최상의 숫자로 삼는데, 이외에도 여러가지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같은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4. 부리아트족은 집안에 날개 달린 말을5) 그린 천을 중앙에 걸어놓고 수호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5. 바이칼 일대에서 발굴되는 옛 무덤들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써 신라의 그것과 같고, 출토유물을 보아도 곡옥이나 말들의 순장풍습 등이 서로 같다. 더구나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나 청동기의 민무늬토기들마저도 거의 같아서 서로 간에 같은 문화권의 관습적 전통을 공유했음을 알 수 있다.
6. 우리 조상들이 과연 어떻게 바이칼(天海)을 시원지(始原地)로 하여 지금의 한반도로 이동해왔을까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1차 사료의 보충을 위해 차선의 방법으로 2차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종교적인 사고방식이나 문화적인 공통점 그리고 현지의 전설들6)까지도 면밀히 살피고 분석하여 한반도와 바이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마치 전문 수사관이 미궁에 빠진 오래된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방법과 같아서 그동안 무시해버렸던 주변의 작은 단서 조각들을 다시 주워 모아 재구성해보면 뜻밖의 해답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금강산 팔선녀’ 이야기가 그곳에도 거의 같은 줄거리로 전승되고 있고, 또 ‘우리 배달한국의 국조(國祖) 한웅[桓雄]께서 삼천 백성을 이끌고 천계(天界)에서 하강하셔서 나라를 세우셨다’는 옛 기록과 똑같은 맥락의 전설도 부리아트의 일반적인 전설집 속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한웅님은 3천의 무리를 인솔했다는데 반하여, 그들은 3백의 백성을 데리고 동쪽으로 떠났다고 하는 정도일 뿐이다. 먼 옛날의 사건들로서 숫자 3천이나 3백은 다같이 ‘많은 무리들’이라는 단순개념의 추상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임을 고려한다면 동시대의 동일한 사건이 전설의 형태로 전해오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알랑고아의 기록
바이칼 지역의 수많은 전설들 중에는 ‘우리의 옛 조상들이 정말 그곳에서 왔구나’하는 심정적 확신을 갖게 하는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우리 가우리족을 백조와 연결시킨 전설로써 『몽골비사』가 전하는 몽골족의 여시조(女始祖) ‘알랑고아’의 기록이 그것이다.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코리족이고 어머니는 바락족의 ‘바르구진고아’로 모두 바이칼족이다. 이 기록은 아버지족인 코리[가우리, Khori, 槁離]족의 탄생비화인데 “현지에 있던 황소가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와 결혼하여 11형제를 낳았는데 이들이 모두 코리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서(古書)에 보면, 우리 민족은 처음부터 12개의 부족집단으로 출발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들도 여러 부족들(11형제)이 그곳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전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백조는 고리(가오리)족의 조상
①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바이칼의 천손족 중에서, 같은 ‘늑대의 후손’이면서도 ‘숲속에 정착’하기를 원했던 부족은 현지에 그대로 남아 오늘날의 부리아트족이 되었다. ② 넓은 초원을 생활공간으로 선택했던 기마족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의 내-외몽골 지역에 자리를 잡고 몽골족이 되었다. ③ 그중에서도 천손족(天孫族)의 사상을 신앙적인 믿음으로까지 승화시켜 무장한 우리 고리[가우리]족은 ‘백조의 후손’들로서 무려 300 혹은 3000명의 무리가 한웅님을 따라 동쪽으로 멀리 날아갔다.
물론 사람의 조상이 새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니 단순한 민간전설로 취급하여 흘려버리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민족의 뿌리를 찾아 고대사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입장에서 이와 같은 전설이 어쩌면 한반도의 민족과 바이칼의 민족을 잇는 결정적인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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