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침탈(侵奪)

BC 28세기 요하문명의 濊貊族이 남하 하여 夏, 商, 周를 건국하면서 황하문명을 일구었으며, 鮮卑族이 秦, 漢, 隨, 唐을 건국했습니다. - 기본주제 참조

홍익인간·인류공영/환단고기·한민족역사

제1장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서-천해(天海)시대②

자연정화 2012. 8. 13. 16:53

출처 : 다물넷

 

제1장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서-천해(天海)시대②


『천부경(天符經)』

『천부경』은 우리 민족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전수된 신서(神書)이다. 하늘의 글로 전해진 『천부경』은 한님[桓因]들에 의하여 백성들에게 말로 전해오던 것을 한웅대성존[桓雄大聖尊]이 신치[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게 하였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옛글을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즈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신치의 전문(篆文)을 옛 비석에서 발견하고 이를 다시 한자로 번역해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했던 것이다. 천부경은 불과 81자로 된 짧은 경전임에도 그 뜻이 너무나 깊고 오묘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직 속시원한 뜻풀이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도 『천부경』의 해설은 뒤로 미루고 여기 그 원문만 소개하기로 한다.

신라의 스님 안함로(安含老)가 쓴 『삼성기(三聖紀)』를 보면 “우리 환국(桓國)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사백력(斯百力, 시베리아)의 하늘에 일신이 있었는데 홀로 신(神)이 되어 광명이 우주를 비추었다.”고 했다.

한편 태천(泰川) 백진사 관묵(寬默)의 소장본을 정리한 원동중(元董仲)의 『삼성기』에는 한국을 다스렸던 역대 일곱 분의 한님들이 소개되어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기록에 근거해 일곱 분들의 존영을 그려 이 책에 소개한다.
이들 두 『삼성기』의 기록을 비교하여 보면, 스님인 안함로가 ‘환인(桓因)’이라는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기록한 것에 비해 원동중은 ‘환인(桓仁)’이라고 쓰고 있는 점이 다르다. 이 경우 ‘환(桓)’은 ‘, 한, 한(韓)’이고, 인(仁)은 ‘님(任)’이니 ‘桓仁, 桓因’은 다같이 ‘한님’으로 읽어야 옳다.
한국의 태시조는 그 이름을 ‘안파견(安巴堅)’이라 했다. 그는 천산에 살면서 도(道)를 얻고 하늘을 대신하여 덕화(德化)로 사람들을 다스려 사람들 간의 분쟁을 종식 시켰다. 제2세 한님은 혁서(赫胥), 제3세 한님 고시리(古是利)에 이어 제4세 주우양(朱于襄)이 뒤를 이었다.


한국 제5세 천황 석제임 한님 [桓國 第五世 天皇 釋提壬 桓因]

오랜 세월 동안 천산(天山) 일대를 중심으로 차츰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며 나라의 질서를 잡아가던 한국은 석제임 한님 시대에 이르러 북쪽의 신천지를 찾아 대대적인 민족이동을 감행한다. 천지개벽 이래로 비교적 살기 좋았던 천산 일대가 차츰 삭막한 사막 지대로 변해가자 백성들의 안녕을 걱정하는 한님으로서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찾아낸 곳이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수많은 짐승들이 넓은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놀고 있던 천해(天海, 바이칼호수) 일대이다.
필자가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바로 석제임 한님 시대를 전후하여 파미르고원 일대에 기상 악화와 지질학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쾌적한 생활환경이 파괴되었고, 또 이즈음 인류가 처음으로 야생마를 길들여서 교통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한님으로부터 하늘의 섭리를 배우고 인간의 도리를 깨우친 우리 민족은 말(馬)이라는 동물의 등에 올라타면서 변모하기 시작하여 어느덧 기마민족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말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로 우리 민족이 주로 길들여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때 우리 민족이 이용한 말들을 ‘천마(天馬)’라고 불렀을 것이다.
긴 세월을 천산에서 보냈을지라도 우리 민족이 본격적인 나라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역시 대대적인 민족이동을 시작하여 바이칼호수 근처에 정착한 이후일 것으로 짐작한다.

옛글에 “파나류산(波奈留山) 밑에 한님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의 동쪽 땅이다. 이 나라는 모두 9족속[九桓], 12개의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가 된다.”고 하였다.
국의 9족은 황이(黃夷), 백이(白夷), 현이(玄夷), 적이(赤夷), 풍이(風夷, 藍夷), 양이(陽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견이(?夷) 등이다. 그리고 12개국은 비리국(卑離國:비류국),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캄차카),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Ur 혹은 필나국(Pella)),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裨國 혹은 通古斯(Tungus)), 수밀이국(須密爾國:슈메르, Sumer) 등이다.
중국의 유명한 25사(史) 가운데 하나인 『진서(晋書)』에는 “숙신(肅愼)씨의 나라가 바로 파나류국 즉 한국[桓國]을 가리키는 것이고, 숙신의 원음은 쑤우신, 쥬신(조선:朝鮮)”이라 하여 우리의 옛 글이 사실임을 증언하고 있다.

대평원을 무아지경으로 내달렸던 우리 기마민족의 바탕은 바로 천해 일대였다. 자작나무형의 금관과 빗살무늬토기, 비파형 청동검 등으로 통칭하는 북방문화의 뿌리는 바로 이곳에서 태동했던 것이다.


쥬신의 강역[朝鮮疆域]


대청제국(大淸帝國) 건륭황제(乾隆皇帝) 때 편찬된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를 비롯하여 『서경(書經)』,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삼국지(三國志)』 그리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 등은 쥬신국[朝鮮, 肅愼]의 영토에 대하여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중 『흠정만주원류고』에 언급된 쥬신의 영토를 살펴보면,
“쥬신[朝鮮, 肅愼]은 남녘으로는 백두산[太白山,長白山]을 포함하고, 북녘으로는 흑룡강(黑龍江, 弱水), 서녘으로는 구막한(寇莫汗國)까지 닿았는데, 이 나라에서 양운국(養雲國)까지는 말을 타고 100일간, 비리국(卑離國)까지는 50일간을 가야 한다. 쥬신[肅愼]의 서북녘에 있는 비리국 땅은 200일을 달려야 다 통과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쥬신[朝鮮]

흔히 이두식 발음으로 ‘조선’이라고 발음되는 이 단어의 참뜻은 과연 무엇일까? 조선의 한자 표기는 ‘조(朝:아침)’와 ‘선(鮮:빛남)’의 조합으로 ‘아침이 빛난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어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영문으로 ‘ Land Of Morning Calm ’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일찍이 역사학계의 큰 스승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은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를 인용하여, ‘조선(朝鮮)의 원래 발음은 ‘쥬신’이고 그 뜻은 ‘주신(珠申)의 소속 관경(管境)’인데 ‘관경’의 뜻은 우리 ‘배달민족이 살고 있는 온누리’라고 했다. 과연 옛 역사서들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영역을 쥬신이라 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태고의 역사를 열자마자 대뜸 조선[朝鮮:쥬신]이 등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옛 쥬신[古朝鮮]보다 훨씬 먼저 그 땅에 존재했던 쥬신(肅愼:숙신, 쑤우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노대국들의 뒤를 이어 같은 민족으로 같은 땅에서 흥기한 여진족도 스스로를 쥬신의 방언쯤으로 보이는 ‘주-ㄹ진[朱里眞]’으로 불렀으며, 청나라를 세워 중국대륙을 호령했던 만주족도 자신들을 ‘주신(珠申)’족이라고 불렀던 사실이 『청태조실록(淸太祖實錄)』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쥬신[朝鮮]’이라는 나라 이름은 한자가 생기기 훨씬 이전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서(晋書)』의 「숙신열전(쥬신열전-肅愼列傳)」에는 12연방국을 ‘숙신(肅愼)’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런 예에서 소리말을 뜻글인 한자로 쓰는 과정에서 ‘쥬신’이라는 소리를 나타낼 수 있는 수단으로 쥬신[朝鮮]과 숙신(肅愼) 등을 혼용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우리 민족 외에도 태양을 국명 또는 지명으로 쓰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그 한 예로 현대어 ‘아시아(Asia)’는 아시리아어(語)로 ‘해뜨는 곳’을 말하며, ‘유럽(Europe)’은 ‘해가 지는 곳’이다. 또 ‘아나톨리아(Anatolia: 옛날의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는 ‘해가 뜬다(日出)’는 뜻이고, ‘에스파냐(Espana)’는 ‘해가 진다(日沒)’는 뜻의 그리스어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그리스의 지중해(Medit-erranean:Middle Earth Sea)를 대지의 중심으로 본 세계관의 결과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이 사는 영역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도 ‘우리 민족이 사는 온누리’인 ‘쥬신[朝鮮]’을 스스로 ‘가우리[高句麗: 세상의 가운데 자리]’라 불렀으며 이를 국명으로 삼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아직 영토 개념이 흐릿한 상태에서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 즉 ‘쥬신’을 ‘우리의 주권이 미치는 단군 임검님의 나라’로 여겨 나라이름으로 대신한 듯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 평의 땅도 소중하게 생각하여 나라마다 다툼이 심하게 되자 자긍심의 극치인 ‘가우리[高句麗, 高麗, 句麗, 九禮, 孤竹, 九離]’를 국명(國名)으로 채택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민족명은 ‘ ’이고 국토는 ‘쥬신[朝鮮]’이며 국명은 ‘가우리[高麗]’이다.

국민족이 한동안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음은 우리 고기(古記)의 기록 외에 중국의 역사학자 서량지(徐亮之)의 증언을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연구를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세석기(細石器) 때 한 무리의 문화부족(文化部族)이 맨 처음으로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 근방에서 살았었는데, 그들이 바로 중국의 전설적인 염제신농(炎帝神農)의 본족(本族)이다. 그들 민족은 『서전(書傳)』 「우공편(禹貢編)」의 기록에 보이는 조이(鳥夷), 우이(隅夷), 래이(萊夷), 회이(淮夷), 석지직피(析支織皮)이며 은(殷)나라 당시의 복사(卜辭)로 적은 이방(夷方), 토방(土方), 길방(吉方), 강방(羌方), 괴방(鬼方) 또 주(周)나라 때의 이(夷), 적(狄), 험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때의 호(胡), 맥(貊), 흉노(匈奴) 그리고 위(魏)나라, 진(晋)나라 때의 오환(烏丸), 선비(鮮卑) 등이 모두 그들의 후손이다.”

또 다른 중국의 역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의 연구결과를 살펴보자.

“한족(漢族)의 대부분은 동이(東夷)로부터 나왔다. 중국의 진(秦)나라 이전의 동이(東夷)는 중국의 동부지역인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및 회수 일대를 넓게 점령하고 살았고, 그 갈래로는 우이(隅夷), 회이(淮夷), 서융(徐戎), 도이(島夷), 래이(萊夷), 개이(介夷), 근모이(根牟夷) 등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순(舜)임검은 동이(東夷)사람이다. 제(齊)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도 동이(東夷)인이고, 은(殷)나라도 동이(東夷)가 세운 나라이다. 그러나 B.C 246년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중국 내의 동이족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거나 한족(漢族)에 동화되었다.”

이들의 주장에서 보았듯이 우리 한민족[東夷族]의 활동무대가 은(殷)·주(周) 이전부터 이미 중국의 산동성, 하북성, 밝해연안, 하남성의 동남녘, 강서성의 서북 지역, 안휘성 일대, 호북성의 동반부, 요동반도와 만주 전역 그리고 한반도 등 실로 엄청난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한민족의 태고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벌써 쥬신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여 읽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