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웅1)님은 임검님으로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일뿐만 아니라 천제(天祭)를 주관하는 제사장(祭司長)이었다. 그 다음 ‘웅(雄)’자는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하늘의 일들을 기록해 놓은 『신사기(神事記)』를 보면, “교화주(敎化主)는 한웅[桓雄]이다. 교화주는 만(萬)의 이치를 열어 보이신 하느님으로 한웅은 곧 스승이며 한님의 별칭(別稱)이다.”라고 분명히 정의하여 놓았다. 즉 한웅의 ‘웅’은 ‘스승’을 뜻하는 것이다.
신라의 남해 거서간(南解居西干)을 차차웅(次次雄)이라 하는데, 이는 곧 임검이나 존장(尊長)을 뜻하며, 지방말로는 무당(巫)이다. 그런데 무당의 역할이 하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화(禍)를 면하고 복을 받게 가르쳐주는 것이므로, 무당을 스승으로 공경하는 것이다. 지금도 회령지방에선 굿하는 무당을 스승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한웅[桓雄]은 하늘을 대신하여 한민족을 다스리는 동시에 백성들에게 하늘의 섭리를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신시개천(神市開天)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에, “배달한웅[倍達桓雄]은 천하를 평정하신 분으로 그 도읍지를 신시(神市)라 한다(倍達桓雄定有天下之號也其所都曰神市).”라는 기록이 있고, 『삼성기전-하(三聖記全-下)』편과 『단군고기(檀君古記)』 그리고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신시본기 제3(神市本紀第三)」 등에는 “커밝한 한웅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에 도착하여 그곳에 도읍을 정하니 신치[神市]라 하고 나라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와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 그리고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를 데리고 곡식, 생명, 형벌, 질병, 선악 등 오사(五事)를 주관하고, 무릇 인간사 360여 가지의 일들을 잘 다스려 세상을 교화하니 인간 세상에 유익함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안함로(安含老)의 『삼성기전 상』편에는, “한웅씨[桓雄氏]는 한님(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白山黑水之間)에 내려왔다.”라고 하여 커밝한 한웅님이 신시를 중심으로 새 나라를 세우신 곳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백산(白山)은 곧 백두산(白頭山)이고 흑수(黑水)란 북만주의 흑룡강(黑龍江)을 말한다. 안함로의 기록을 근거로, 한웅님의 도착지점을 백두산과 흑룡강 사이에서 찾아보면 결국 최초의 신시개천(神市開天)은 하얼빈(哈爾濱) 완달산(完達山) 근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은 북만주 일대의 광활한 대지를 무인지경으로 정복하고 드넓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시 배달한국은 과연 무슨 뜻일까? 한국의 ‘배달’은 밝달[朴達, 倍達]과 같은 말로서 이는 ‘밝은 땅’ 즉 ‘태양의 나라’라는 뜻이 된다. 신시의 ‘신’은 ‘크다’라는 뜻이며, ‘시(市)’는 본시 ‘치’로 읽어야 하는 것으로 ‘사람’, ‘무리의 수장’ 등을 뜻한다. 따라서 ‘신시배달국’은 ‘신치 배달한국’으로서 곧 ‘신치가 다스리는 밝은 나라[太陽帝國]’라는 뜻이다. 이 말은 후대에 ‘한웅’, ‘단군’ 등 존칭이 등장하면서 관리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배달한국 개천(倍達桓國 開天)
개천(開天) 원년(元年) B. C 3898년, 커밝한 한웅은 만백성의 추대로 천황에 즉위하면서 배달한국의 개천(開天)을 만방에 선포하였다. 천황의 통치이념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 그동안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이처럼 지배자들의 통치철학을 건국이념으로 뚜렷하게 밝히고 개국한 경우는 없다. 이러한 ‘홍익인간’의 정신은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다같이 요구하는 최고수준에 도달한 이념으로 천손족다운 긍지가 담긴 정신이다. 천황은 곧 전국 여러 곳에 수두단[蘇塗壇]을 세우고 홍익인간을 위한 세 가지의 윤리(倫理敎育)를 가르쳤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① 사랑의 윤리(愛倫)-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② 예절의 윤리(禮倫)-임검과 백성간의 예법, ③ 도리의 윤리(道倫)-스승과 제자간에 서로 지켜야할 도리 등이 그것이다.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백성들을 교화(敎化)시키는 가장 중요한 신서(神書)였다. 천황은 풍백, 우사, 운사의 세 장관에게 명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유익하도록 기본법을 제정하니 그로부터 서로간의 분쟁이 사라지고 사회의 질서가 바로 서게 되었다. 이 기본법 중에는 결혼예물을 짐승가죽으로 하는 혼례법이 있고, 곡식이나 물건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시장법도 있었다. 공물과 세금도 법으로 정했으며, 부자와 군신 그리고 남녀의 행동거지도 명확하게 구분지어 서로의 자리를 지키도록 하였다. 또한 음식, 의복, 주거의 제도도 만들어졌고 미혼자들은 머리를 땋게 하는 풍습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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