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님의 교화를 받은 백성들은 서로가 평등하고 공평하여, 다툼이 없어지고 서로 합심하여 열심히 일을 하니 모두가 평안하였다. 한님나라(국, 桓國)의 백성들과 소문을 듣고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돌을 쌓아 자리를 마련하고 그 주위를 한화[桓花]로 장식한 후 한님을 모시고 임검(壬儉)으로 추대하였다. 한님은 이렇게 민족 최초의 임검님이 되셨지만 나라(桓國)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할 때는 완전한 합의를 얻고서야 집행에 옮기었다.”
안파견 한님이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주위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마침내 그들의 추대를 받아 임검으로 등극하였다. 유의할 점은 안파견 한님의 통치방식이 ‘백성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다시 말해 ‘화백(和白)제도’를 이용한 완전한 민주주의의 실천이었다는 점이다.
조화로운 종교와 교육의 터 수두(蘇塗)
수두는 우리 민족의 시조인 안파견한님에 의하여 처음 설치된, 제천단(祭天壇)이 있는 성역을 말한다. 매 절기 또는 나라의 중대한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하였다. 대체로 숲이 울창한 곳에 위치했으며, 주위엔 검줄[神索]을 쳐서 부정한 자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나 죄인이라도 숨어 들어와 잘못을 뉘우치면 그를 보호해주고 벌을 면해주었다. 대문에는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와 솟대를 세웠으며, 제사를 드릴 때는 노래와 춤을 중요시했다. 수두 경내에는 경당(Ξ堂)을 세웠는데, 경당은 미혼의 젊은이들에게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의 다섯 가지 계율과 글짓기, 활쏘기, 말타기, 노래와 음악, 주먹치기, 칼쓰기 등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였다. 수두는 종교와 교육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우리 민족만의 독창적인 문화로서 우리 민족이 진출한 동북아시아의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 민족은 이름 그대로 천손(天孫:하늘의 자손)족으로서 수두를 중심으로 하늘을 우러러 경배하는 종교적인 의식이 전해 왔으니, 태초의 수두교[蘇塗敎], 부여의 대천교(代天敎), 신라의 숭천교(崇天敎) 또는 배달교(倍達敎), 풍류교(風流敎), 풍월교(風月敎), 고구려의 경천교(敬天敎), 밝해의 신종교(眞倧敎), 고려의 임검교(壬儉敎), 이씨조선의 대종교(大倧敎) 등이 바로 그것이다.
태양신의 사자 까마귀
솟대는 수두와 함께 전승되어 온 우리 민족의 귀중한 정신문화 유산이며 상징이다. 원래는 수두의 경내에 세워놓고 조상에 대한 중요한 제사가 있을 때마다, 멀고 먼 하늘 구천(九天)에 계시는 조상님들의 혼령을 모시고 오는 신조(神鳥, 까마귀)의 날개를 쉬게 하고 그 수고를 위로해 준다는 뜻에서 세웠던 ‘샛대’였다. 조상에 대한 제사가 끝난 후 제삿밥을 나누어 까마귀들에게 던져주는 우리 풍습에는 그런 철학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수두와 더불어 솟대를 세우는 유속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하늘기둥(天柱, 地柱)’이라 부르는 큰 나무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천둥새(Thunderbird)나 가루다(Garuda) 혹은 까마귀를 올려놓는다. 또 까마귀는 태양신의 사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까마귀를 신조(神鳥) 또는 태양신의 사자(使者)로 보는 신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흔히 까마귀를 현조(玄鳥:검은새)라 부르는데, 검은 새 현조는 하느님이 보낸 사자(使者)인 천조(天鳥)로서 태양 속에 있다는 까마귀[三足烏, 金烏, 陽烏]를 가리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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