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성루에 높이 올라서서 천황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공상 성주 유망(楡罔)과 그의 참모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새로운 공성장비들이 배치되는 것을 발견하고 아연 긴장한다. 공성장비 가운데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로 ‘비석박격지기(飛石迫擊之機)’가 있는데 이는 큰 돌을 날려 적의 성문이나 성벽을 파괴하는 투석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외에도 적의 성문을 효과적으로 깨뜨릴 수 있는 충차 등과 같은 여러 장비들이 투입되었다.
돌연 한 마리의 솔개가 천황의 손을 떠나 하늘로 솟구쳐 오르자 진군을 알리는 나팔과 북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진격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천황이 지휘하는 제국의 연합군이 기세를 올리며 노도(怒濤)와 같이 진격하자 겁에 질린 유망은 할 수 없이 소호(少顥) 장군에게 출전 명령을 내린다.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군인의 사명이어서 장군 소호는 이미 공포에 질린 성병들을 추스려 제국군의 앞에 나섰다. 주군의 명령에 떠밀려 싸울 뜻도 없이 성문을 나선 소호의 성병들은 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뿔뿔이 도망쳐 버렸으나, 죽기를 각오한 소호는 아직도 그를 따르는 수십 기를 거느리고 천황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결국, 치우천황의 용력에 참패한 소호는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구했다.
공상성 함락(空桑城 陷落)
장군 소호(少顥)가 대오를 이탈하여 먼저 탈출해버리자 대장을 잃고 공포에 질린 잔병들도 모조리 창칼을 버리고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다. 싸움은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말았다. 이제 유망은 소수의 성병만 거느린 채 성안에 홀로 고립되고 말았다. 치우천황은 즉시 공성장비를 투입하여 직접 성문을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성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유망은 이제 그의 힘으로는 더 이상 공상성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주군인 헌원도 천황군의 진출을 알고 있겠지만 성을 구하려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남은 길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성밖으로 나가 남자답게 싸우다 죽든지, 아니면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치욕적인 죽음을 맞든지, 그것도 어렵다면 차라리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해 보든지 하는 선택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어차피 천황이 노여움을 풀지 않고 징벌군을 이끌고 여기까지 진출해 온 이상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마침내 유망은 성문을 열고 천황의 자비에 그의 목숨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먼저 항복과 복종의 뜻으로 하얀 의복으로 갈아입은 후, 옥새(玉璽)를 공손히 두 손으로 받쳐들고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섰다. 이때의 상황이 여러 역사서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규원사화(揆園史話)』를 비롯하여 여러 사서들이 전하는 전황을 살펴보자.
『규원사화(揆園史話)』 : “이제 치우천황군은 양수(洋水)를 건너 공상(空桑)으로 진격하였다. 공상은 지금의 진류(陣留)로서 유망이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 공상에서는 소호(少顥)가 군사를 이끌고 대항하여 왔는데 치우천황이 안개를 크게 일으키고 옹호창(雍狐槍)을 휘둘러 소호를 공격하니 소호는 허겁지겁 탁록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대변경(大辯經)』 : “공상 성주 유망(楡罔)이 소호를 시켜 거전(拒戰)하게 하였는데 천황이 예(芮 : 뾰족한 날)의 과(戈 : 창)와 옹호(雍狐 : 끝이 벌어진 창)의 극(戟 : 날이 두 개인 창)을 휘둘러 소호를 크게 무너트리고 안개를 일으키어 적의 장병들로 하여금 혼미자란(昏迷自亂 : 판단력을 잃고 방황함)하게 하니 소호가 크게 패하여 급히 달아났다.”
『술이기(述異記)』 : “치우씨의 귀와 옆수염이 검극(劍戟)과 같고 머리에는 뿔이 있어서 헌원의 병사와 접전할 때 뿔로 치받아 병사들이 감히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단 한번의 접전에서 크게 패한 소호는 혼비백산하여 본진이 있는 웅이산으로 도망친 후 헌원에게 전황을 보고하였는데, ‘치우군은 신병(神兵)들이라 가히 당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자 격노한 헌원이 단칼에 소호를 죽이려 들었으나 주위에 있던 풍후(風后)의 만류로 겨우 목숨을 구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서들이 이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좀더 극적으로 과장하고 있는 것들만 제외하면 그 내용들이 서로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