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원은 황당한 보고를 접하고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그때 헌원의 눈앞에 정말로 엄청난 크기의 호랑이떼가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호랑이를 발견한 말들이 놀라 기겁하며 마구 날뛰기 시작하자, 숲속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말을 진정시키지 못한 기병들은 말에서 떨어져 여기저기 뒹굴고 나머지 병사들도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개전 이래 세번씩이나 천황의 함정에 빠진 헌원의 병사들은 느닷없는 맹호들의 습격을 받고 허둥대다가 잔혹하게 희생되었다.
불과 며칠 전 견군대(犬軍隊)의 습격으로 참담하게 패전했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더욱 처참하게 호랑이들의 맹습을 당하게 된 것이다.
결국 헌원의 병사들은 천황군과 단 한번의 정면대결도 해보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예기치 못했던 호군대의 출현으로 전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면서 미친 듯 날뛰던 말발굽에 수많은 전상자들이 속출했다. 혼란속에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기 시작한 헌원의 장군들이 호랑이를 막으려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호랑이들이 밀집된 헌원군의 대오 속을 마구 휘젓고 있어서 어찌해야 이 맹수들을 제압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불과 수백 마리의 호랑이가 수천명의 헌원 병사들을 모조리 물어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치우천황이 신장(神將)이라고는 하나 호랑이 같은 맹수(猛獸)를 이처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천황은 헌원이 백병전을 각오하고 싸움을 걸어오자 적의 작전에 말려들어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을 치루기보다는, 적의 기병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숲속으로 유인한 후 호군대(虎軍隊)를 풀어 적을 섬멸하는 작전을 편 것이었다.
또다시 천황의 함정에 빠졌음을 알게 된 헌원은 징을 크게 울려 전군을 숲 밖으로 퇴각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헌원군이 패잔병들을 이끌고 겨우 호랑이 굴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패주로(敗走路)를 미리 차단하고 있던 천황군이 공격을 가했다. 헌원의 군대는 미처 숨돌릴 겨를도 없이 또다시 흩어지고 말았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계획된 치우천황의 입체적인 작전이었다. 동양 고대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화족과 배달족의 민족간 대결전은 이렇게 하여 치우천황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것이 바로 탁록(?鹿)의 대첩(大捷)이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이런 말이 있다. “북쪽에 군자국이 있다. 그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모자를 쓴다. 개를 즐겨먹고(食獸), 큰 호랑이(虎) 두 마리를 옆에 데리고 다니며 서로 양보하기 좋아하고 다투길 싫어한다(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 在蒡其人好讓不爭).”
이 문장에 나오는 군자국(君子國)은 천자국(天子國)으로서 배달한국(倍達桓國)을 말하는 것이다. 또 식수(食獸)라고 했는데 ‘수(獸)2)’자는 네발에 털이 난 짐승을 뜻하며, 이 문장의 경우는 개나 늑대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개고기를 즐겨먹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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